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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천상의 쉼터, 신정일의 무주구천동 33경
등록일 : 2026-01-12 15:47:21.0
조회수 : 62
천상의 쉼터, 무주구천동 33경…역사와 자연이 만나다
덕유산 자락에 펼쳐진 무주구천동은 자연과 역사가 겹겹이 쌓인 공간입니다.
KNN ‘테마스페셜’은 이 시대의 이야기꾼 신정일 사학자와 함께 무주구천동 33경을 따라, 그 속에 담긴 시간의 흔적을 조명했습니다.
덕유산은 해마다 100만 명이 찾는 명산으로, 무주구천동 33경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이곳에서 시작된 물길은 36km에 이르는 구천동 계곡을 따라 33개의 비경을 만들어냅니다.
무주구천동 제1경인 라제통문을 비롯해 강선대와 학소대 등 주요 경승지는 역사적 의미와 자연미를 함께 간직하고 있습니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일사대에는 조선 후기 학자 송병선이 지은 정자 서벽정이 남아 있습니다.
서벽정은 후학을 기르고 나라의 일을 논하던 공간으로, 구천동이 품은 인문적 가치를 보여줍니다.
구천동 제11경 파회와 제12경 수심대는 계곡의 흐름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절경입니다.
수심대 일대는 명승으로 지정돼 있으며, 병풍처럼 둘러선 절벽산은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계곡을 벗어나 적상산에 오르면 천년의 고요를 간직한 안국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려 충렬왕 3년인 1277년, 나라의 안위를 기원하며 세워진 안국사는 지금도 기도의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안국사 인근에는 고려시대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적상산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조선왕조실록을 300년 넘게 보관했던 적상산 사고가 있어, 적상산은 자연과 함께 역사를 지켜낸 요새로 평가됩니다.
구천동 33경 가운데 제15경인 월하탄을 지나 향적봉에 이르면 여정은 마무리됩니다.
무주구천동은 물이 쉼 없이 길을 내는 반복 속에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조용한 쉼과 사유의 시간을 건네고 있습니다.
덕유산 자락에 펼쳐진 무주구천동은 자연과 역사가 겹겹이 쌓인 공간입니다.
KNN ‘테마스페셜’은 이 시대의 이야기꾼 신정일 사학자와 함께 무주구천동 33경을 따라, 그 속에 담긴 시간의 흔적을 조명했습니다.
덕유산은 해마다 100만 명이 찾는 명산으로, 무주구천동 33경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이곳에서 시작된 물길은 36km에 이르는 구천동 계곡을 따라 33개의 비경을 만들어냅니다.
무주구천동 제1경인 라제통문을 비롯해 강선대와 학소대 등 주요 경승지는 역사적 의미와 자연미를 함께 간직하고 있습니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일사대에는 조선 후기 학자 송병선이 지은 정자 서벽정이 남아 있습니다.
서벽정은 후학을 기르고 나라의 일을 논하던 공간으로, 구천동이 품은 인문적 가치를 보여줍니다.
구천동 제11경 파회와 제12경 수심대는 계곡의 흐름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절경입니다.
수심대 일대는 명승으로 지정돼 있으며, 병풍처럼 둘러선 절벽산은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계곡을 벗어나 적상산에 오르면 천년의 고요를 간직한 안국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려 충렬왕 3년인 1277년, 나라의 안위를 기원하며 세워진 안국사는 지금도 기도의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안국사 인근에는 고려시대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적상산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조선왕조실록을 300년 넘게 보관했던 적상산 사고가 있어, 적상산은 자연과 함께 역사를 지켜낸 요새로 평가됩니다.
구천동 33경 가운데 제15경인 월하탄을 지나 향적봉에 이르면 여정은 마무리됩니다.
무주구천동은 물이 쉼 없이 길을 내는 반복 속에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조용한 쉼과 사유의 시간을 건네고 있습니다.
-(해설) 산은 오래된 책처럼 겹겹이 이야기를 품고 계곡은 쉼 없이 문장을 고쳐 씁니다.
바람은 숲의 페이지를 넘기고 햇살은 물길 위에 반짝이는 줄을 긋죠.
그렇게 심심산골 따라 구천 번 굽이치는 계곡은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 갑니다.
우리 땅을 걸으며 잊힌 역사를 찾아가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 신정일 사학자와 함께 덕유산 무주구천동이 간직한 오랜 이야기를 들으러 갑니다.
무주의 높은 산 깊은 계곡을 빨리 보고 싶어 선택한 길.
이 곤돌라를 타고 해발 1520m 설천봉에 오르면 덕유산 정상을 단 20분 만에 만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해설) 여행은 시작할 때가 가장 설레죠. 하늘이 내어준 길을 따라 미지의 풍경으로 들어갑니다.
-(해설) 과연 구름을 지키는 파수병 신세는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사람보다 계절이 먼저 도착했나 봅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가을빛이 짙어집니다.
발아래 펼쳐진 이 풍광을 보고 싶어 힘들어도 산에 오르는 거겠죠.
-(해설) 구름바다를 헤치고 마침내 하늘과 맞닿은 곳 덕유산 정상 향적봉입니다.
해마다 100만 명이 찾는 명산. 사람들은 덕유산에서 또 한 계절의 추억을 만들어 갑니다.
-(해설) 무주구천동 33경의 처음이자 끝. 덕유산에서 시작된 물길은 33개의 비경을 품으며 구천동 36km의 장대한 여정을 풀어갑니다.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계곡을 감싸고 가을에 굽이굽이 깊은 골짜기를 따라 오색 단풍이
눈부시도록 찬란하게 물들어 가다가 겨울이면 상고대가 눈꽃처럼 피어오르는 곳.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펼쳐내는 구천동은 자연의 시간과 사람의 손길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근사한 산수화입니다.
걸음걸음마다 경이로움을 펼쳐내는 구천동 33경 그 깊숙한 속살을 만나러 갑니다.
지금은 무주와 영동의 경계. 오래전엔 백제와 신라가 오가던 길목이던 라제통문입니다.
무주구천동 제1경이죠. 사실 이 길은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을 위해 뚫린 인공 동굴입니다.
비록 역사 상처 위에 새로운 해석이 더해졌지만 지금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관문으로 수많은 사람의 사연이 오고 갑니다.
-이곳을 갖다가 건너편 그러니까 무풍 예전에 무풍현이 있었고 무계현이 있었는데
무풍 쪽은 신라 땅이고 여기 무계, 무주 쪽은 백제 땅이었었습니다.
-(해설)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목놓아 우는 물길은 그날의 붉은 기억을 잊지 못하나 봅니다.
-(해설) 굽이치며 흐르던 구천동의 물길이 바위 앞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비단 물길뿐이었을까요? 옛 시인, 묵객들 또한 걸음을 멈추고 이곳의 절경을 찬미했습니다.
-(해설) 우암 송시열의 9세손 조선 후기 학자 송병선.
그는 이 아름다움에 매료돼 중국의 무이구곡에 빗대어 이곳 은구암을 구천동 제1곡으로 꼽았습니다.
-(해설) 역사의 아이러니를 품은 채 여전히 변치 않은 절경을 간직한 강선대.
옛 선인들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그 비경 안에서 장쾌한 물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해설) 세찬 물소리는 마음을 깨우는 죽비가 되어 계곡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해설) 신성한 학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곳 구천동의 5경 학소대입니다.
-(해설) 바위에 부서지는 물소리가 학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해서 붙은 이름.
구천동에서도 명승으로 지정된 절경인데요. 이 굽이 너머에는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해설) 옛 시인 묵객들의 춤을 부르고 목을 놓아 통곡을 쏟게 한 비경.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무주구천동의 풍경에 반해 찾아옵니다.
걸음마다 연둣빛 봄이 따라오고 뜨거운 불볕더위 피해 시원한 물살에 몸을 맡기면 세상 시름 모두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계절이 무르익으면 알록달록 단풍을 뽐내는 자연의 품에서 추억을 남기려는 발길이 이어지고
겨울이면 덕유산을 덮는 눈꽃이 마음까지 환하게 밝힙니다.
천상의 자연 무주구천동입니다. 골짜기를 가득 메우는 우레 같은 물소리.
장대한 물줄기가 큰 바위를 만나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계곡을 내달립니다. 온통 푸른 물과 나무의 세상입니다.
-(해설) 옛 선인들이 풍류를 즐기던 일사대에서는 송병선 선생이 지은 정자 서벽정이 있습니다.
그가 나랏일을 논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역사적인 공간인데요. 오늘 이곳에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지 음악 소리가 들려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설) 구천동 11경 파회입니다. 곡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흐르는 물길이 참으로 근사합니다.
-(해설) 다른 소리 모두 다 지워내는 물소리에 복잡했던 생각들도 잠시 사라집니다.
암석에 부딪혀 부서지던 물이 고요하게 머물다 다시 급류가 되는 파회입니다.
-(해설) 파회의 거친 숨소리를 뒤로하고 불과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풍경은 거짓말처럼 또 다른 표정입니다.
옥같이 맑은 물이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구천동 12경 수심대입니다.
-여기 무주구천동 수심대를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것은.
-(해설) 물을 보다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는 수심대. 이곳에서는 흐릿해진 마음도 닦아낼 수 있을까요?
한 계절 찾아오면 다음 계절이 궁금해서 다시 오게 된다는 수심대 일대는 명승으로 지정됐습니다.
병풍처럼 둘러선 절벽산이 마치 금강산같이 아름답다고 해서 소금강으로도 불리는데요.
거센 물살에 깎이고 다듬어진 바위벽이 구천동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을 이룹니다.
구천동 계곡을 잠시 벗어나 무주의 또 다른 역사가 잠든 곳 덕유산의 연봉 적상산으로 향합니다.
-(해설) 적상산 자락 깊숙이 천년의 고요를 품은 절집 하나가 있습니다.
가을이면 붉은 치마를 두른 듯 단풍이 곱다는 적상산에서 이 땅의 역사를 지켜온 고찰입니다.
고려 충렬왕 3년인 1277년 나라의 안위를 빌며 세워진 안국사.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기도의 자리.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잇는 피안의 풍경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해설) 천 분의 부처님을 모신 천불전. 세상을 굽어살피는 부처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해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는 부처의 가르침처럼 역사의 기록을 품었던 천불전은 사람의 염원을 품는 공간이 됐습니다.
산의 고요와 부처의 침묵 속에서 나와 멀어졌던 나를 조용히 마주합니다. 세상과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
그리하여 세속의 소음은 멀어지고 마음은 고요 속에서 조금씩 밝아집니다.
8년 전부터 이곳 안국사에서 머물러 수도하고 계신 스님을 뵙게 됐습니다.
-(해설) 1000m 고산준령에 들어앉은 안국사를 나서면 험준한 산세가 스스로 성곽이 되어 준 천혜의 요새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처음 터를 닦은 것으로 추정되는 적상산성입니다. 적상산성은 나라의 땅뿐만 아니라 나라의 역사를 지켜낸 성곽인데요.
지금은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300년 넘게 보관하던 적상산 사고가 이곳에 있습니다.
-(해설) 광해군 6년 1614년에 세워진 적상산 사고는 1997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는데요.
전시관에는 조선왕조실록 복본 34권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 복본 5권이 전시돼 있습니다.
실록이 만들어지고 이곳까지 옮겨졌던 지난 여정 또한 살펴볼 수 있는데요.
위기 때마다 나라의 역사와 기록을 지켰던 옛사람들의 긍지가 이곳에 살아 있습니다.
다시 구천동 계곡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달빛 아래 선녀들이 춤추듯 물이 너울거리며 흐른다는 곳.
구천동 33경 중 15경인 월하탄입니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게 시와 그림의 무대가 되어 준 자리.
그 아름다움에 이끌린 분이 여기에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아, 여기 폭포구나. 월하탄.
-뭐 별건 아니고요.
-아닙니다.
-시간이 걸려서 이렇게 사실적으로.
-(해설) 보이는 풍경 너머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양규준 화가.
그의 눈에는 아득히 펼쳐진 구천동 계곡이 현실 속 무릉도원이었답니다.
화가는 이 멋진 무주의 풍경을 검은 산수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해설) 산과 물, 바람과 햇살이 그림으로 스며들고 검은 먹빛 아래 계곡의 숨결이 살아납니다.
-(해설) 땅의 길이 끝나고 하늘이 시작되는 곳 향적봉은 무주구천동이 빚어낸 웅장한 마침표입니다.
산은 늘 거기에 있고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이곳에 올라 답을 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설) 한 권의 책을 넘기듯 무주구천동 33경의 이야기를 만난 여정.
산은 계절마다 표정을 바꾸고 물은 쉼 없이 길을 냅니다. 계곡의 시간표는 단순합니다.
음악처럼 흐르다 머물고 다시 흐릅니다. 어쩌면 그 간결함이 우리의 복잡한 삶을 조용히 위로해 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억겁의 시간을 건너온 물소리는 오늘도 구천동 계곡을 감싸 흐르고 고요한 위안을 실어 나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