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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등록일 : 2026-03-30 14:51:36.0
조회수 : 53
-(해설) 투박한 손끝에서 살아나는 얼굴. 이승과 저승을 잇는 소리.
어린 시절을 소환하는 바람의 노래.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록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곳은 무심천과 미호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까치내입니다.
예전에는 강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죠.
정영권 씨가 살던 고향 까치내는 예나 지금이나 갈대가 참 많은데요.
어린 시절 이 길을 따라 소를 먹이러 다닐 때면 갈대를 꺾어 피리를 불곤 했죠.
그 시절 갈대의 소리를 그대로 가져온 호드기입니다.
소 풀을 먹이고 돌아가던 길에 갈대 호드기를 만들어 피리를 불던 목동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은데요.
정영권 씨는 그 시절 갈대 호드기를 지키고 싶습니다.
오늘도 호드기를 만들 갈대를 채취하러 까치내에 왔습니다.
물이 빠진 강가에서 갈대의 뿌리를 찾는데요.
누군가에게는 똑같아 보이는 갈대지만 정영권 씨에게는 달리 보입니다.
수많은 갈대 사이에서도 호드기 만들기에 좋은 갈대는 따로 있습니다.
갈대를 잘 골라서일까요? 이렇게 끝을 갈고 갈대 속을 뚫어주면 우렁찬 소리가 나죠.
그 옛날 어린 목동들이 불었던 호드기 소리도 이랬겠죠?
정영권 씨가 호드기와 함께한 세월은 50여 년.
갈대를 모아두는 집은 어느새 작업실이 되었죠.
까치내에서 구해 온 갈대는 깨끗하게 씻은 다음 삶을 준비를 합니다.
가마솥에서 쑥 뿌리, 콩깍지, 등겨 등을 먼저 삶는데요. 갈대의 뻣뻣함과 냄새,
이물질 등을 제거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에 갈대를 올려 쪄냅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면서 억센 갈대는 부드러워지고 속에 있는 이물질은 빠져나오는데요.
그렇게 삶고 말리고, 삶고 말리기를 여러 차례. 가마솥에 불을 한 번 지피면 손 쉴 틈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화롯가에서 호드기를 만들었던 옛 어르신들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겠죠?
그렇게 비워내고 또 비워내는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호드기를 만들 갈대가 준비됩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단단했던 마음이 문을 열기까지는 시간이 쌓여야 하죠.
지금부터는 장인의 손길로 소리를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정해진 크기도 두께도 없습니다.
오직 손끝의 감각으로 호드기를 완성해 가는데요.
정영권 씨가 원하는 만큼까지 갈대를 갈고 다듬는 작업이 계속됩니다.
얇은 갈대로 속청을 한 번 더 빼줍니다. 이렇게 해 주면 갈대 속에 있는 얇은 꺼풀까지 빠져나오죠.
오직 정영권 씨의 손 감각만으로 갈대 호드기를 만들어가는데요.
돌에 끝을 납작하게 갈아주고 갈대의 크기에 맞게 길이를 조절해 가며 단 하나뿐인 호드기를 만듭니다.
어린 시절 어르신들이 화롯불에서 만들던 그 솜씨 그대로입니다.
호드기 모양이 완성되면 구멍을 뚫어 소리의 길을 내는데요.
구멍을 뚫는 자리도 모양도 정해져 있지 않죠. 구멍의 개수는 갈대 길이나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것은 하나, 또 어떤 건 10개가 넘기도 하죠.
정영권 씨가 섬세한 손길로 몇 번이고 다듬어갑니다.
수많은 호드기를 만들면서 기술과 소리가 쌓였습니다.
어떤 갈대를 쓰느냐에 따라 또 구멍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갈대 호드기 소리의 색깔이나 높이가 완성됩니다.
모양도 색깔도 단 하나. 잊힌 기억을 더듬고 오래된 자료를 찾아 지켜낸 갈대 호드기.
정영권 씨가 지켜오지 않았다면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소리입니다.
갈대 호드기가 우렁찬 나팔 소리도 냅니다. 작업실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초등학생 도근이입니다. 축제 현장에서 호드기를 재미있어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왔네요.
도근이는 여러 악기를 잘 다룬다는데요. 호드기도 어려워하지 않고 재미있게 금세 따라 합니다.
동심의 그 시절처럼 꾸밈없이 진심이 담긴 소리.
까치내에 울려 퍼졌던 목동의 호드기 소리가 아직 이곳에 있습니다.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품은 채 말이죠.
정겨운 이 소리가 여기서 사라진다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그리운 바람을 타고 온 호드기 소리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무르길.
700리 남한강 물길을 잇는 포구가 있습니다. 바로 목계나루인데요.
조선시대 5대 나루 중 하나였던 이곳은 전국 각지의 사람이 몰리고 물류가 이동하는 남한강 교역의 중심지였죠.
예부터 목계나루에서는 뱃사람들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한마당 잔치가 열렸는데요.
그럴 때마다 마을은 들썩였고 놀이판을 유쾌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마를 치며 흥겨움을 표현하는 최돌이. 제머리를 친다고 해서 제머리 마빡으로 불립니다.
놀이판의 최돌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 관한 전설은 지금까지 목계마을에 전해지는데요.
최돌이의 모습은 제머리 마빡 꼭두 인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진 건 없었지만 넉살 좋고 사람 좋아했던 목계마을의 이웃이 다양한 얼굴로 태어났습니다.
자신의 머리를 치며 유쾌한 웃음을 전했던 최돌이의 모습은 각양각색 인간 군상의 목각 인형으로 만들어졌죠.
인형을 지게에 지고 줄을 당기면 손과 발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이마를 칩니다.
마을의 공장 한편에 마련한 작은 공간.
80대의 변종근 씨는 은행나무를 깎아 제머리 마빡이 인형을 손수 만듭니다.
인형의 얼굴이 될 은행나무 속을 파냅니다. 속을 다 파내고 나면 나무을 뒤집어 인형 얼굴을 그립니다.
나무의 형태와 질감에 어울리는 인물을 그리게 되죠.
밑그림을 그렸지만 인형의 형상은 변종근 씨의 손끝에 달려있습니다.
그린대로가 아닌 때로는 나무의 결대로, 때로는 나무의 강도에 따라 만들어나가죠.
고집은 버리고 순리를 따릅니다. 작업은 집으로 옮겨와 계속됩니다.
오랜 세월 인형을 만들며 변종근 씨의 동선과 손의 움직임에 딱 맞게 만들어진 곳인데요.
작업대도 반세기 넘게 쓰고 있죠. 이 나무판은 깎아놓은 인형을 올리기에 그만이죠.
망치도 수십 년. 모든 도구가 그의 새하얀 머리만큼이나 긴 세월을 이곳에서 함께했습니다.
얼굴 조각을 끝내고 나면 색칠 과정에 들어가는데요. 언제나 그렇듯 정해진 인물은 없습니다.
조각한 얼굴을 보는 그 순간 색이 떠오르고 얼굴 형태가 떠오른다네요.
화려한 색을 입은 꼭두 인형이 또 하나 그려졌네요.
얼굴이 완성되면 팔과 다리를 만들어 움직이게 해 줍니다. 꼭두 인형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이마를 치는 동작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거죠.
얼굴에 어울리는 인형의 옷도 변종근 씨가 손수 만든 겁니다. 마지막으로 줄을 연결해 주는데요.
왼팔과 오른손, 왼손과 오른발을 이어 줄을 당겼을 때 동시에 움직이게 하죠.
이렇게 줄까지 다 연결하면 목계마을의 꼭두 인형 제머리 마빡이 또 하나 완성됩니다.
제머리 마빡이 인형이 놀이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주민들은 보존회를 만들어 꾸준히 공연 연습을 하고 있죠.
인형만 들었다 하면 절로 신이 납니다.
-이렇게, 이렇게.
-몸을 움직이지 말고.
-(해설) 다들 인형을 얼마나 예뻐하는지요. 색도 모양도 각양각색.
좋아하면 서로 닮는다고 했던가요? 사람과 인형이 어쩜 그렇게 짝꿍처럼 닮아있는지요.
제머리 마빡이 인형 놀이는 함께하는 호흡이 중요한데요. 줄을 다 같이 당기며 하나의 장단으로 소리를 내죠.
호흡을 맞추는 단체 장단에 흥겨운 풍물 가락까지. 제머리 마빡이 있어 더욱 신나는 잔치 한마당.
그 옛날 목계나루의 최돌이도 이처럼 흥겹게 한바탕 놀았겠죠?
자신이 만든 인형으로 공연을 하는 주민들을 보며 여든을 훌쩍 넘긴 변종근 씨는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들이 없다면 제머리 마빡 인형 놀이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북적이고 활기가 넘쳤던 남한강의 목계나루.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변종근 씨가 보존회 회원들과 함께 강배체험관을 찾았는데요.
그 시절의 풍경은 이제 대부분 사라지고 사진 속에 남았습니다.
변종근 씨는 14대에 걸쳐 목계마을에서 살아온 그야말로 토박이 중의 토박이.
어쩌면 그 시절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것들은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지켜온 것들이 더욱 소중합니다. 목계마을에서 변종근 씨가 지켜온 제머리 마빡 인형도 그중 하나죠.
목계마을 제머리 마빡은 이곳에 와서 누구라도 움직여볼 수 있는데요.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목계마을의 꼭두 인형은 이제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마음에 닿을 겁니다.
주름진 손끝에서 탄생한 나무 인형도 줄이 당겨지는 한 기꺼이 놀이마당의 흥을 돋을 재주꾼이 되어 줄 겁니다.
옥천군 청산면의 한 마을. 이곳에도 오래된 전통과 함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청산면 읍내에서 아내와 함께 인테리어 가게를 하는 김기화 씨.
옥천 토박이인 그는 이 동네에서 마당발이자 재주꾼으로 통하는데요.
풍물과 소리를 잘해 청산면 민속 보존회장으로 또 방범 대장으로
청산면에서 열리는 축제나 행사 사회자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365일 공사다망한 그에게 마을에서 맡은 또 하나의 특별한 역할이 있습니다.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을 시작으로 그 역할을 맡은 지는 어느덧 30여 년이 됐습니다.
젊고 목청이 좋았던 그는 동네에서 초상이 나면 상엿소리로 상여를 이끌었습니다.
상엿소리는 운율도 내용도 지역의 정서를 담고 있는데요.
이 동네 토박이인 김기화 씨는 가족이나 이웃들의 사연을 소리로 풀어냅니다.
김기화 씨의 아버지도 마을 일에 대장 격으로 같은 역할을 맡아왔죠.
내 일, 남 일을 가리지 않고 마을 일에 진심을 다했던 집안에 주민들이 맡겨준 역할입니다.
김기화 씨가 맡은 역할을 부르는 이름, 요령잡이. 상여가 나갈 때 요령을 흔들며 지휘하는 사람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그에게 주어진 역할. 요령잡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웃집으로 도배 일을 하러 나왔는데요. 꼼꼼하게 작업을 이어갑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일을 하다가도 마을에 초상이 나면 달려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요.
일을 맡긴 주민들의 이해 덕분에 요령잡이 역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장례는 공동체를 보듬는 일이기 때문이었겠죠.
오늘은 민속 보존회 사람들과 함께 마을 한편에 보관해 둔 오래된 상여를 꺼내봅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이 동네 누군가 상을 당하면 대여섯 개의 조가 괘를 이루어 마을 사람들이 함께했는데요.
지금은 장례 문화가 바뀌면서 상여도 대부분 동네에서 사라진 풍경이 되었죠.
이 마을에서도 상여를 매는 전통 장례는 20여 년 전 점점 줄어들어 10여 년 전부터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초상 때 불을 지폈던 모습도 이웃들이 십시일반 돕던 풍경도 세월과 함께 점점 잊히는 듯합니다.
상여는 어쩌면 과거 마을을 지탱해 온 단단한 공동체 의식을 지키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요령잡이 김기화 씨가 쇠방울을 울리며 선소리를 하면 상여를 맨 상두꾼은 받는 소리와 함께 발을 맞추며 이동합니다.
구성진 소리에 깊은 위로를. 내딛는 발걸음에 이웃을 위로하는 마음이 함께 깃들어 있죠.
무덤의 흙을 다지면서 부르는 달구질 소리는 망자가 좋은 곳으로 떠나기를 바라는 위로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가지만 묵묵히 남아 때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요령잡이도 그렇죠. 지난해 가을에는 마을에서도 아주 오랜만에 요령 소리가 다시 울렸는데요.
청산면 민속 보존회가 청산면 상엿소리로 민속 예술제 수상을 한 다음 날 이 댁 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요.
그래서 준비되어 있는 상여로 주민들이 함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동네 가득 울려 퍼진 상엿소리에 가족들은 마음껏 슬퍼하고 위로를 받으며 장례를 치렀습니다.
김기화 씨도 오랜만에 요령을 들고 장례를 이끌었습니다.
요령잡이 김기화 씨는 이 위로의 소리를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옥천 청산면에서는 신명의 가락이 울려 퍼집니다.
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고 했던가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습니다.
무엇인가 사라지지 않는 건 누군가가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절실히 애쓰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그 힘은 더욱 커지겠죠. 여기 그들이 있습니다.
마을에 다시 울려 퍼지는 그 시절의 요령 소리. 팔순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목계마을의 꼭두 인형.
목동의 고향 까치내에서 다시 추억하는 갈대 호드기 소리.
어쩌면 이들의 오늘은 마지막이 아닌 내일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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