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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땅의 노래, 삶의 울림 남도의 소리
등록일 : 2026-04-14 15:36:52.0
조회수 : 30
진도아리랑과 장산도 들노래…남도 소리에 담긴 삶의 울림
진도는 과거 유배지이자 외부와 단절된 환경 속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온 지역입니다.
섬사람들의 삶에는 기쁨과 슬픔을 담은 노래가 함께해 왔습니다.
진도아리랑은 이러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대표적인 소리입니다.
농한기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공동체 문화를 이어갑니다.
진도아리랑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형성된 민요로 알려져 있습니다.
1900년대 초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934년 박종기 명인의 음반 녹음을 통해 공식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이후 진도아리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아리랑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진도아리랑보존회는 1985년 창립돼 전승과 기록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들이 활동하며 노랫말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진도아리랑은 시대에 따라 새로운 가사를 더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성은 전통이 이어지는 원동력으로 평가됩니다.
한편, 신안 장산도에서는 노동요인 들노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섬 주민들은 농사일 과정에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격려해 왔습니다.
장산도 들노래는 1960년대 전승이 끊겼다가 1981년을 계기로 다시 이어졌습니다.
이후 보존회가 결성돼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들노래는 세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며 지역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남도의 소리는 삶과 공동체를 잇는 문화로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KNN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진도는 과거 유배지이자 외부와 단절된 환경 속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온 지역입니다.
섬사람들의 삶에는 기쁨과 슬픔을 담은 노래가 함께해 왔습니다.
진도아리랑은 이러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대표적인 소리입니다.
농한기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공동체 문화를 이어갑니다.
진도아리랑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형성된 민요로 알려져 있습니다.
1900년대 초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934년 박종기 명인의 음반 녹음을 통해 공식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이후 진도아리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아리랑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진도아리랑보존회는 1985년 창립돼 전승과 기록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들이 활동하며 노랫말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진도아리랑은 시대에 따라 새로운 가사를 더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성은 전통이 이어지는 원동력으로 평가됩니다.
한편, 신안 장산도에서는 노동요인 들노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섬 주민들은 농사일 과정에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격려해 왔습니다.
장산도 들노래는 1960년대 전승이 끊겼다가 1981년을 계기로 다시 이어졌습니다.
이후 보존회가 결성돼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들노래는 세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며 지역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남도의 소리는 삶과 공동체를 잇는 문화로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KNN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해설)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 조선시대에는 유배객들의 쓸쓸한 종착지였고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거친 바다에 막혀 뭍으로 나가는 길조차 멀고 험했던 곳, 진도.
고립된 삶은 역설적이게도 섬만의 독특한 문화를 키워냈습니다.
이곳 섬사람들의 삶에는 언제나 노래가 함께했는데요.
기쁠 때는 흥으로 슬플 때는 한으로 말로 다 하지 못한 삶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노래가 되어 흘러나왔습니다.
-(해설) 삶의 굽이굽이마다 섬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함께해 온 노래.
삶의 노래이자 진도의 숨결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진도아리랑을 만나봅니다.
가을 추수가 끝난 뒤 찾아온 겨울 농한기.
조용하던 마을 회관이 주민들의 발걸음으로 금세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진도 문화원이 마련한 마을문화사랑방이 열리는 날.
-(해설) 남도 소리를 배우기 전 서먹한 분위기를 풀고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첫 곡은 언제나 진도아리랑입니다.
-오늘 여기서 손뼉 많이 쳐. 이건 뭐냐 하면 서비스가 무엇이냐 하면 손뼉도 많이 치고 잘하시는가.
-(해설) 진도아리랑 가락이 울려 퍼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하나가 됩니다.
-종도 갈아야 되는데 이러고 다니니까 못 갈아주고 있어. 예쁘지, 우리 딸.
-(해설) 살다 보면 차마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이별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해설) 세월에 깎이고 모진 풍파에 씻겨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
진도 사람들은 울음을 삼키듯 꾹 눌러 담은 소리로 그 아픔을 풀어내곤 했습니다.
-(해설) 때로는 고단한 삶을 다독이는 위로로 때로는 벅찬 기쁨을 함께 나누는 신명으로
진도 사람들에게 진도아리랑은 삶의 매 순간을 함께해 온 일상의 노래입니다.
-(해설) 진도아리랑은 예로부터 아리랑 타령이라 불리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여느 민요들처럼 그 기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00년대 초부터 진도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진도아리랑이 오늘의 이름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언급되는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대금산조의 시조로 추앙받는 진도의 예인 박종기 명인입니다.
-(해설) 굽이 전승되던 소리가 진도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드 판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34년 박종기 명인이 일본으로 음반 취입을 하러 가는 길에 배 위에서 편곡한 곡을
유성기 음반으로 녹음해 발매한 게 공식 기록상 최초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해설) 진도의 무형유산을 전승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진도군 무형유산 전수관에서는 오늘도 진도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2001년 진도군 향토 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진도아리랑은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아리랑으로 꼽힙니다.
-(해설) 아리랑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건 세계였는데요.
2012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세계가 함께 지켜야 할 유산이 되었고
이어 2015년에는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그리고 진도아리랑은 2022년 전라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며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진도아리랑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소리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앞장서 온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진도아리랑보존회입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소리를 채보하고 잊혀가는 가사를 찾아 기록하기 위해 1985년 진도아리랑보존회가 창립됐습니다.
-(해설) 진도아리랑보존회는 창립 이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도아리랑을 지탱하는 든든한 구심점이 되었고
그 헌신적인 노력을 인정받아 2023년 진도아리랑 보유단체로 지정됐습니다.
현재 5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며 진도아리랑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설) 진도아리랑보존회가 지난 세월 발로 뛰며 모은 노랫말은 어느덧 800수를 넘어섰습니다.
기록되지 못한 채 흩어질 뻔한 이 소박하고 진솔한 가사들은 진도아리랑만의 독보적인 색채를 보여줍니다.
노래는 주로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임을 향한 사랑과 이별 그리고 삶의 애환 등을 민중의 생생한 언어로 풀어냅니다.
여기에 풍자와 해학을 더해 우리네 삶의 정서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해설) 진도아리랑의 노랫말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쪽이 얘가 둘째 아들, 얘가. 우리 이쪽이 막둥이 셋째 아들,. 둘째 아들, 그리고 이제 우리 딸.
-네, 어머니.
-오냐. 쉬냐 오늘?
-네. 어머니 식사하셨어?
-오냐, 밥 먹었다. 너는?
-날씨는 어째요?
-날씨가 오늘은 따뜻하다.
-내일 모레 김장하신다면서요.
-오냐, 할란다. 좀 보내줄까 해서?
-(해설) 진도아리랑은 정해진 노랫말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삶을 담아 새로운 가사를 더할 수 있는데요.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변주되는 이 창조성이 오늘날까지 진도아리랑을 이어온 힘입니다.
-(해설) 진도아리랑의 특색은 곡조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진도아리랑은 누구나 한두 소절쯤 자연스레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친숙한 노래이지만
그 곡조에 담긴 소리의 깊은 맛과 멋을 제대로 살려 부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해설) 가슴 저미듯 구슬프다가도 어느새 어깨춤이 절로 날 만큼 흥겨운 신명으로 바뀌는 진도아리랑.
노랫말에 담긴 사연에 따라 장단과 감정이 물 흐르듯 바뀌고 삶 깊숙이 스민 한과
이를 이겨내는 뜨거운 흥이 한데 어우러져 진도아리랑만의 독특한 예술적 경지를 이룹니다.
-(해설) 1993년 개봉된 영화 서편제는 진도아리랑을 대중의 가슴 속에 다시 한번 깊은 울림으로 각인시켰습니다.
한과 흥의 정서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가락과 가사는 스크린 너머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잊혀가던 전통의 가치를 다시금 일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진도아리랑보존회는 이러한 진도아리랑의 매력을 전국 방방곡곡에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소리의 원형을 지켜내는 한편 시대와 호흡하는 전승의 길을 찾기 위해 다양한 공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설) 장단이 오르고 흥이 퍼지면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금세 허물어집니다.
어깨춤이 절로 나는 흥겨운 가락 속에 관객들도 소리의 주인공이 되어 자연스레 한데 어우러집니다.
-(해설) 지난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백두산 천지에서 분단된 한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묶은 노래 역시 진도아리랑이었습니다.
-(해설) 흥겨운 가락에 장단을 맞추는 박수 소리가 백두산 천지에 울려 퍼졌는데요.
그것은 세대를 넘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진도아리랑의 소통의 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시대를 관통하며 진도아리랑은 K-컬처의 깊이를 보여주는 소리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해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이야기까지.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품어온 노래, 진도아리랑.
세월의 굽이굽이를 건너온 이 노래는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위로하고 또 누군가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명이 되고 있습니다.
삶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다시 삶이 되는 순간들 속에서 진도아리랑은
우리의 삶과 함께 숨 쉬는 노래로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어질 것입니다.
흥겨운 듯 구슬픈 듯 아낙들의 애환이 깃든 소리. 이 노래는 약 100년 전부터 신안 장산도에서 들려오던 소리입니다.
작은 섬에서 논밭을 일구며 한 평생을 살아온 섬 아낙들은 고된 순간마다 이 들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북돋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저도 장산도 들노래라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해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지만 들노래가 뿌리내린 장산도.
섬이 품은 그 유구한 시간과 삶이 오늘도 신안 장산도 들노래와 함께 흘러갑니다.
신안의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가 많아졌지만 장산도에 가려면 여전히 배를 타야 합니다.
목포에서 출발해 1시간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산줄기가 끝없이 길게 연결됐다 해서 이름 붙은 장산도에 도착하죠.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이지만 여느 섬마을과는 달리 너른 논밭이 눈에 담기는데요.
섬 주민의 약 80%가 농업에 종사 중이라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 더 가깝습니다.
신안의 섬들 중 최남단에 위치한 장산도는 지리적으로 목포에서 가까운 편인데 화원반도,
진도, 하의도 등으로 사방이 가로막혀 있어서 주변에 큰 바다가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해설) 항만이나 대규모 어업이 발달하기 어려웠던 장산도는 방조제를 쌓아 농경지와 염전을 조성하기 시작했는데요.
섬의 논밭이 점점 늘어나면서 남성들은 비교적 더 큰 힘이 필요한 어업에 집중했고 농사일은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몫이 됐습니다.
바다 너머 뭍과 단절된 이 작은 섬에 모여 고된 노동을 함께해 온 장산도의 아낙들.
힘이 드는 순간마다 서로를 다독이며 부르던 노래가 있었는데요. 장산도 들노래입니다.
-(해설) 한국 전통 농요인 들노래는 주로 논이 많은 호남평야나 전라도 지방에서 발달한 소리입니다.
대농가들이 많았던 장산도에서도 모내기 철이나 논매기 철이 되면 들노래 팀을 초청해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신안 장산도 들노래는 여기에서 기원했습니다.
큰 논밭이 많았던 오음마을을 중심으로 불려지다가 1960년대 전승이 끊겼는데
당시 섬을 다니며 해양 민속학 연구에 힘을 쏟았던 최덕원 교수의 권유로
1981년 남도 문화제에 출연했고 이를 계기로 장산도 들노래 보존회까지 결성해 지금까지 소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노래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그저 일상이었죠.
-(해설) 남편 따라 시집 온 사람도 있고 평생을 섬에서 산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부모 생각에 외롭고 농사일에 손은 매일같이 부르트지만
그 속에서도 흥을 찾고 어깨짓을 덩실거릴 줄 아는 이들이 장산도의 여인들입니다.
-(해설) 노래 하나로 서로를 품으며 한데 뭉쳤던 장산도 사람들. 그 때문일까요.
장산도에는 들노래 밭매기 노래, 길쌈노래 등 전해 내려오는 노동요가 많습니다.
섬에서 한 가락 한다는 소리꾼 가운데서도 단연 손에 꼽히는 인물이 있는데요.
-(해설) 장산도에서는 노동요뿐만 아니라 무속의례도 많이 불렀는데
진도에서 시집 온 강부자 선생은 장산도 씻김굿을 전승하는 무속 예인이었습니다.
그의 남편인 이귀인 선생 역시 무계 집안 출신의 민속 예술인이었는데
두 부부는 하중 밭매기 노래 장산도 들노래 등 섬 문화의 맥을 이어왔습니다.
소리 전승에 힘써온 강부자 선생은 1988년 장산도 들노래 예능보유자로 지정됐고
이후 섬 주민들은 보존회를 중심으로 그 역사를 지켜오고 있는데요.
다수의 대회에서 큰 상을 수상하고 전남 무형유산에 지정되는 등 값진 결실을 맺었습니다. 첫 번째 가락은 모 찧는 소리입니다.
모를 찧다는 건 모판에서 뽑은 모를 논으로 옮기는 과정인데 한 사람이 앞소리를 내면 여러 사람이 짧은 후렴을 받는 방식입니다.
단순한 반복이라 일을 하면서 함께 소리 내기 좋죠.
-(해설) 모를 찧을 때 모를 나눠주는 사람과 그 모를 받는 사람 사이의 호흡이 중요한데요.
노래를 부르면서 그 박자를 자연스럽게 맞추곤 했습니다.
이 과정은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일해야 하는 중노동이기도 한데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흥을 돋우고 일하는 효율도 높였죠.
다음은 모 심는 소리입니다. 모내기 작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농요인데요.
앞소리를 매기면 농부들이 모를 심으면서 소리를 받는데 앞소리를 할 때 모두가 일어나서 어깨춤을 추는 모습이 퍽 인상적입니다.
논에 줄을 맞춰서 모를 꽂아야 하기 때문에 규칙적인 장단이 특징입니다.
-(해설) 모를 꽂는 동작에 맞춰서 리듬이 정확히 끊어지는데요.
구성은 단순하지만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피로를 덜어냅니다.
장산도 들노래는 1980년대에 활동한 1세대 단원을 시작으로 어느덧 3세대까지 이어오는 중입니다.
현재 앞소리를 하는 윤순심 씨는 30대 때부터 들노래를 불렀다는데요.
-(해설) 마을 사람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앞소리꾼.
지금은 신안 장산도 들노래 예능보유자로 지정됐고 남편 송경연 씨도 장구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반대가 심했다는데요.
-(해설) 뒤늦게 입문한 들노래. 지금은 보존회에서 단장을 맡아 연출과 연습을 총괄할 만큼 열정이 남다릅니다.
-(해설) 특히 큰 대회나 시연을 앞둔 때면 농번기에 온종일 일하고 나서도 밤늦게까지 연습을 이어가는데요.
들노래를 지키는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해설) 장산도 들노래. 세 번째 가락은 논에 난 잡초를 뽑을 때 하는 논매는 소리입니다.
논매기는 벼농사에서 가장 품이 많이 드는 작업 중 하나인데요. 박자가 느리고 마디가 긴 노래가 많습니다.
논매기가 끝나면 논매고 일어서기를 하는데요. 논바닥을 밟고 돌아다니면서 빠른 장단으로 몰아가다가 마칩니다.
이렇게 논바닥을 밟는 행위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해설) 느리게 소리를 이어가다 갑자기 빠르게 전환하는 장산도 들노래.
장단뿐만 아니라 박자도 수시로 변하는데요. 이게 장산도 들노래만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해설) 전남 민요의 기본은 육자배기토리입니다.
육자배기토리란 전라도와 그 인접 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음악 어법으로 애잔하면서도 구성진 특징이 있죠.
하지만 장산도 들노래는 뱃길을 통해 외지인들이 오가던 섬의 특성 때문에 서울 경기 민요의 전형인 경토리가 섞여 있는데요.
그 결과 밝고 경쾌한 경토리와 유장한 육자배기토리가 고루 섞인 독특한 소리가 완성됐습니다.
마지막 소리는 논을 다 메고 돌아올 때 부르는 길꼬냉이입니다.
새마치 장단으로 앞소리를 하면 농부들은 일제히 뒷소리를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
-(해설) 들노래를 부르면서 고된 농사일의 무게를 견딘 선조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뒤 논을 빠져나오며 부르던 길꼬냉이는 서로를 붙잡는 끈이었고 나에게 보내는 위로였을 겁니다.
-(해설) 신안 장산초등학교. 전교생이 22명인 이 작은 학교에도 장산도 들노래가 울리는데요.
학교 특색 사업 중 하나로 장산도 들노래를 꾸준히 전승해 왔기 때문입니다.
노래, 악기, 모쟁이 등 역할까지 나눠서 연습을 이어가는데 나이는 어려도 속은 제법 깊습니다.
-(해설) 이날은 학생들 연습 현장에 최막례 어르신이 찾아왔습니다.
학생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줄 겸 함께 소리도 맞춰보는데요.
-(해설) 악기와 소리가 더해지니 차츰 옛 들노래 소리가 살아납니다.
한 세대가 건넨 노래를 또 다른 세대가 따라 부르고 아이들 목소리에 어르신 목소리가 포개지고
그렇게 시간을 건너온 장산의 노래가 여전히 섬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해설) 논에서 모를 심고 함께 호흡을 맞췄던 삶.
장산도 주민들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후대에 남기고픈 마음입니다.
-(해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하죠.
모 심는 풍경도 노래가 불리던 들판도 낯선 이야기가 돼버린 지금.
장산은 소리를 통해 우리네 옛 이야기를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갑니다.
-(해설) 논이 많은 작은 섬.
그 안에서 모를 심고 푸름했던 아낙들의 고된 하루에서 태어난 신안 장산도 들노래.
그저 옛 노래가 아닌 서로의 등을 토닥이던 삶의 기록이자 섬사람들이 함께 버텨온 시간의 흔적입니다.
섬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의 뿌리이자 세대를 잇는 가교 신안 장산도 들노래.
그 소리는 오늘도 바다 건너 우리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