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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이두희의 서당(書堂)
등록일 : 2026-06-01 14:19:51.0
조회수 : 7
아흔둘 한학자 이두희 선생…평생 책과 함께 걸어온 배움의 길
아흔둘의 한학자 이두희 선생이 평생 한문에 매진하며 이어온 삶이 소개됐습니다.
이두희 선생은 고향 마을에서 태어나 9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매일 서당 근독재를 찾아 공부와 강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근독재는 이두희 선생이 30년 동안 운영해 온 서당으로, 현재도 한문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농사와 가정을 책임지면서도 틈나는 대로 한문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30대까지 서당에서 공부를 이어간 뒤 40대에는 한문학연구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후 한한대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으며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연구·번역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서울에서 연구원 생활을 마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써왔습니다.
현재 서당에는 퇴직 교사와 서예가, 연구원 등 다양한 제자들이 찾아와 한문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두희 선생은 자신이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국어교육 전공 교수 등 오랜 기간 서당에서 공부를 이어온 제자들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직접 밭과 논을 돌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아내를 떠나보낸 뒤에도 매일 예를 다하며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초서 분야 권위자로서 제자들과 함께 초서의 의미와 해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두희 선생은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알리는 활동에도 참여하며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평생 배움을 멈추지 않은 한학자의 삶과 서당의 의미를 조명했습니다.
아흔둘의 한학자 이두희 선생이 평생 한문에 매진하며 이어온 삶이 소개됐습니다.
이두희 선생은 고향 마을에서 태어나 9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매일 서당 근독재를 찾아 공부와 강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근독재는 이두희 선생이 30년 동안 운영해 온 서당으로, 현재도 한문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농사와 가정을 책임지면서도 틈나는 대로 한문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30대까지 서당에서 공부를 이어간 뒤 40대에는 한문학연구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후 한한대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으며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연구·번역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서울에서 연구원 생활을 마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써왔습니다.
현재 서당에는 퇴직 교사와 서예가, 연구원 등 다양한 제자들이 찾아와 한문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두희 선생은 자신이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국어교육 전공 교수 등 오랜 기간 서당에서 공부를 이어온 제자들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직접 밭과 논을 돌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아내를 떠나보낸 뒤에도 매일 예를 다하며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초서 분야 권위자로서 제자들과 함께 초서의 의미와 해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두희 선생은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알리는 활동에도 참여하며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평생 배움을 멈추지 않은 한학자의 삶과 서당의 의미를 조명했습니다.
-손무강이니라. 유성인 성자라 호기천이시니 불가후 말이라도 교지수여 방명이니라.
-(해설) 매일같이 소리 내어 글을 읽는 어른이 있습니다. 그의 음성과 눈빛은 흐트러짐이 없는데요.
아흔둘의 한학자 이두희 선생입니다.
집 안 책장을 가득 채운 오래된 책 속에는 한평생 그가 한문에 매진한 노력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이 책들 속에는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의 하루는 어쩌면 똑같아 보입니다.
몇 해 전부터는 무릎이 좋지 않아 거동도 힘들지만 일정한 시간 집을 나섭니다.
올해 연세 아흔둘의 한학자 이두희 선생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9대째 살며 대대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아픈 무릎까지 굽혀가며 그 한 포기를 살려냅니다.
불편하고 힘들어도 매사에 적당히란 없죠.
생계마저 어려웠던 그 시기에 농사도 공부도 죽을힘을 다해야만 했죠.
그가 자전거를 챙겨 집을 나섭니다. 어찌 보면 그의 인생은 자전거를 닮아 있죠.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조금씩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돌아서면 닿는 곳.
아흔을 넘긴 연세의 이두희 선생을 여전히 달리게 하는 곳입니다.
책을 부지런히 읽는 집, 이두희 선생의 서당 근독재입니다.
어찌 보면 그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름이죠.
그가 서당을 운영한 건 30년이 됐고 3년 전 고향인 이곳에 다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과거 서당과 분위기는 다르지만 한문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늘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그도 여기처럼 마을에 있던 서당에서 공부를 했었죠.
배움의 기회를 얻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짊어져야 했던 그 시절.
이두희 선생은 농사일에 결혼해 삼남매까지 키워가면서 한문을 공부했습니다.
농사하는 틈틈이 책을 보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았죠.
그렇게 마을 서당에서 30대까지 열심히 한문을 공부했던 청년 이두희에게
실력을 펼칠 기회가 찾아온 건 40대였습니다.
그는 전국에 내로라하는 한문 실력자들이 다 모인다는 한문학연구원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한중일이 경쟁적으로 한자사전 작업에 나서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한한대사전 편찬 작업에 들어갔는데요.
그때도 이두희 선생이 발탁되어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우리나라 역사 자료의 연구와 번역에도 이두희라는 이름 석 자를 올렸습니다.
오롯이 본인의 땀과 노력으로 일군 자리였습니다.
별이름 두, 밝을 희. 북두칠성처럼 빛난다는 그의 이름과도 잘 어울리는 삶이죠.
모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 이두희 선생은 오늘도 서당에 있습니다.
이두희 선생은 서울에서의 20여 년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30년 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서당을 열고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공부하고 강의 준비에도 빈틈이 없죠.
아흔둘이란 숫자를 잊게 합니다.
아는 것은 반복해서 보고 모르는 것이 있다면 제대로 알 때까지 파고듭니다.
예전에도 그는 힘든 농사일 와중에도 논으로 책을 가져와 시간 나는 대로 읽고 밤에는 졸음을 이겨내며 공부했습니다.
한문책만 보면 보고 싶었고 매일같이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은 책들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이 됐습니다.
한자의 매력은 시대와 공간, 국경을 넘어 기록을 통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
한학자 이두희 선생에게도 한문의 길은 끝이 없습니다.
서당 칠판에 항상 쓰여져 있는 말이 있습니다.
조용했던 서당에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바로 서당에서 공부하는 제자들입니다.
퇴직한 교사와 서예가, 연구원 등 청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오는 제자들인데요.
함께 공부한 세월이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이 넘는 사이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서당에서는 수업이 열립니다.
요일별로 문집 해석과 초석, 서경, 주역 등 다양한 주제로 한문을 공부하는데요.
이번 시간은 문집에 실린 한문 문장을 풀이해 보는 시간입니다.
제자들이 그날그날 정해진 순서대로 문장을 해독하고 선생님 앞에서 읽으면 이두희 선생이 확인해 줍니다.
제자들에게는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합니다.
한문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마음. 이두희 선생은 자신이 평생 쌓아온 것을 아낌없이 나눕니다.
제자들에게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시간.
이두희 선생의 목소리, 눈빛, 글자 하나까지도 마음에 담습니다.
책을 부지런히 읽는 집, 근독재의 밤이 깊어갑니다.
다음 날 오전 근독재 열기는 여전히 뜨겁습니다.
국어교육 전공교수도 20년 넘게 일주일에 한 번 이곳에서 한문 공부를 합니다.
한 시간의 수업. 선생님도 제자도 늘 정성을 다합니다.
지난 몇 년간 교수님은 서당에서 경서를 공부했었는데요.
그것을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소학의 주요 판본을 분석하고 해석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이두희 선생이 칠판에 논어의 한 문장을 적습니다.
농사 준비로 바빠지는 들녘. 이두희 선생도 밭으로 나왔습니다.
아흔을 넘긴 연세에도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인근에 사는 막내아들 재흥 씨가 아버지의 손발이 되어 주는데요.
막내아들이 오면 아버지의 농토도 활기가 돕니다.
그리고 오늘은 타지에 사는 큰아들 내외도 아버지의 집을 찾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큰절로 아버지께 문안인사를 올립니다.
아버지의 아픈 다리가 늘 신경 쓰입니다.
그래도 이두희 선생은 자손들만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증손주가 일곱이나 됩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지켜왔는지 아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삼남매가 서당에 모였습니다. 가족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다들 애썼다는 한마디. 가장 귀한 말일수록 마음에 아껴 둡니다.
만남은 짧고 그리움은 깁니다. 이두희 선생에게는 요즘이 부쩍 그런데요.
혼자 생활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아내는 지난해 남편 이두희 선생의 곁을 떠났습니다.
1년 전 아내가 떠난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일. 아무도 보지 않고 누가 강요한 적도 없지만
먼저 떠난 아내에게 예를 다합니다.
어려웠던 그 시절 힘든 농사일에 공부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70년을 해로한 아내는 참 고마운 사람이었죠.
녹록지 않았던 살림살이에 아내 덕분에 하고 싶었던 공부도 끝까지 해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가 공부를 시작한 곳도 서당이었고 그를 키워낸 곳도 서당이었습니다.
바로 옆마을 어린 시절 이곳에 있던 서당에 다녔죠.
그렇게 이두희 선생은 군대를 다녀와서도 또 결혼을 해서도 서당에 다녔습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사람들은 먹고살기도 힘든데 한문을 왜 배우냐고
배워서 뭐 하냐고 다들 말렸었죠.
그래도 그는 공부했습니다. 노인이 된 제자는 스승님의 산소를 찾아 예를 다합니다.
누구보다 너그러운 인품을 닮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선생님께 전하고픈 마음을 비석에 한 자 한 자 새겼습니다.
누군가의 제자는 또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 선생님이 걸어간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소년의 제자에서 아흔의 스승이 된 이두희 선생은 여전히 책 앞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한문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는 초서 분야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초서는 풀이 바람에 날리듯 글자를 흘려 쓰는 서체인데요.
한자의 여러 서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글자로 꼽힙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은 초서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은 제자들이 선생님이 쓴 글을 액자에 담아왔습니다.
초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 질문을 하는 제자들이 많은데요.
추상화처럼 쓰인 글씨체를 해석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평생을 공부한 스승도 20년을 공부한 제자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어려운 게 초서입니다.
-삼가 아직 살피지 못했습니다. 봄날이 화창한데.
-(해설) 열기가 가득한 배움의 현장.
제자들이 해석해 온 초서 문장을 선생님과 함께 한 자 한 자 풀어갑니다.
붓끝의 화려함이 아닌 글자에 담긴 본질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하죠.
초서를 배우는 시간은 한자의 깊이와 선생님이 다다른 배움의 경지에도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제자들은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합니다.
오늘 저녁 수업이 끝났습니다.
제자들은 선생님이 짧은 길이라도 편하게 가실 수 있게 댁까지 차로 모셔다 드립니다.
공부에서는 누구보다 엄격하고 생활에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검소한 모습으로
삶의 본보기가 되어 주시는 스승님. 제자들은 그를 존경합니다.
이두희 선생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갑니다.
다음 날 아침. 자전거를 탄 이두희 선생이 봄바람을 맞으며 논으로 달려갑니다.
아흔을 넘긴 연세에도 농사일만큼은 지금도 손수 챙기는 천생 농부인데요.
농사가 시작되는 봄에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논으로 나온 그에게 마을 주민이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그 조그마한 걸 직접 치우러 들어갑니다.
부지런하고 빈틈없는 성격에 무엇 하나 놓치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이두희 선생은 한평생 묵묵히 자신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책을 부지런히 읽는 집, 근독재에는 그의 생각이 깃들어 있죠.
조용히 붓을 들어 몇 자 적어 내려갑니다.
오늘은 서당 안이 분주합니다. 제자들이 선물한 액자를 아들과 손자가 겁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증손자들도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는데요.
엄격하고 무뚝뚝했던 이두희 선생도 증손자들 앞에서는 무장 해제됩니다.
자전거대회에 나가면 1등을 독차지한다는 막내 증손자가 멋지게 솜씨를 뽐냅니다.
행복이 별거 있나요?
이런 게 행복이죠. 오늘도 서당에는 반가운 분들이 찾아왔습니다.
충북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나 인물을 발굴해 연구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는 호서문화연구소 교수님들입니다.
이 연구소의 고문을 맡고 있는 이두희 선생은 지역에 묻혀 있는 독립운동 인사를 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역의 한학자이자 어른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밝아온 아침. 이두희 선생의 하루가 여느 날처럼 시작됩니다.
마당으로 천천히 나와 봄볕에 조금 더 자란 텃밭을 살핍니다.
매일같이 반복되지만 단 하루도 느슨하지 않고 단 하루도 멈춰 서지 않았던 이두희 선생의 삶.
그렇게 구순을 넘었습니다.
한평생 고향에서 어울려 살며 무엇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삶.
자신은 평범했다지만 결코 쉽지 않았을 그 길을 오늘도 달립니다.
그가 다시 서당에 있습니다.
어쩌면 배움이란 끝내 도달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달리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요?
이두희 선생의 서당처럼요. 부지런히 책을 읽는 집, 이두희 선생의 서당 근독재.
오늘도 책 읽는 소리가 창밖을 넘어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