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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마음으로 새긴 우리 문양, 떡살장인 김규석

등록일 : 2026-06-22 18:07:54.0
조회수 : 148
떡살 문양에서 목조건축까지…전통을 오늘에 새기다


전통 떡살과 목조건축의 맥을 잇는 장인들의 이야기가 소개됐습니다.

목조각장 김규석 장인은 100년 이상 자란 감나무를 재료로 떡살을 만들며 전통 문양 연구에 평생을 바쳐왔습니다.

떡살은 떡에 문양을 새기는 도구로, 장수와 다산, 복을 기원하는 선조들의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김 장인은 떡을 찍을 때 문양이 잘 새겨지고 쉽게 빠질 수 있도록 떡살의 곡선과 각도까지 세심하게 고려해 제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깨진 유리나 도자기 조각을 활용하는 전통 방식으로 표면을 다듬으며 수작업 제작 원칙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풍속 조각가 이조철 선생에게 조각을 배우며 기술을 익혔고, 아들 역시 조각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김 장인은 이연채 여사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30여 년 동안 연구를 이어오며 1300여 개의 떡살 문양을 정리했습니다.

특히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문양 자료를 공개하며 전통 문양의 확산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는 전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 감각을 더한 새로운 떡살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장인은 우리 문양이 벽지와 포장지,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국가무형유산 대목장인 김영성 장인은 전통 목조건축의 설계와 시공, 문화유산 보수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 장인은 건축물의 용도와 주변 환경, 비례와 균형을 고려해 전통 건축을 설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국보와 보물 보수 현장에서는 수동 공구만을 사용하며 전통 기법을 최대한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송광사와 화엄사 등 다양한 문화유산 보수 현장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전통문화와 국가유산을 교육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전통 목조건축 기술 전수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두 장인은 전통 기술과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더해 후대에 전하고 있습니다.

(해설) 떡. 선조들은 이 음식에 마음과 소망을 담았습니다. 떡의 문양을 새기는 도구 떡살.
-떡살은 중국이나 일본하고도 좀 다르거든요.
-(해설) 문양을 담은 떡은 경조사를 알리고 소망을 기원하는 음식이 됩니다.
한평생 전통문양을 새긴 떡살을 연구하고 있는 목조각장 김규석.
그의 손끝에서 묵직한 떡살의 가치가 섬세하게 살아납니다.
전라남도 담양군. 김규석 씨 집에는 감나무가 유난히 많습니다.
감나무로 떡살을 만드는 장인이라 그런가 봅니다.
100년의 기다림. 감나무가 그 오랜 시간을 지내야 떡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새로운 떡살이 될 감나무를 골라봅니다. 톱질에서부터 재목의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감나무에도 떡살이 될 수 없는 재목이 있습니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나무를 들고 작업실로 향합니다.
떡살의 모양을 잡을 때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양을 잡은 나무에 떡살의 손잡이부터 만들어줍니다.
이제 떡살의 문양을 새길 면이 활처럼 휘게끔 다듬고 또 다듬어 줍니다.
떡살은 주로 아낙네들이 사용했기 때문에 적은 힘으로도 문양을 찍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떡살을 사용하는 사람까지 생각한 선조들의 지혜입니다.
장인의 손길이 수만 번 지나야 완성되는 떡살.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만을 고집하는 김규석 장인. 여기에 그의 신념이 담겨 있습니다.
사포가 없던 옛날에는 깨진 유리나 도자기 파편으로 표면을 정리했습니다.
이 역시 조상들의 지혜죠. 떡살의 형태가 완성됐습니다.
오롯이 사람의 손으로만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선입니다.
-그래서 이왕 조각할 거 좀 제대로 배워보자 해서 이 선생님한테 들어가서 작업하게 된 겁니다.
-(해설) 풍속 조각가 이주철 선생에게 목조각을 배웠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오랜만에 외지에 사는 아들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각의 길을 택했는데요.
전통 떡살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책을 쓴 김규석 장인.
그에게 떡살을 가르쳐준 어머니 같은 분이 계십니다. 바로 이연채 여사입니다.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이 연채 여사의 떡살. 그에게는 이 자체로 따뜻한 마음이요, 추억입니다.
이연채 여사께서 남긴 자료. 여기에 자신만의 연구를 더해 30여 년의 세월을 바쳐 책을 완성했습니다.
30년 동안 정리해 온 문양들을 누구나 쓸 수 있게 공개를 했지만 처음부터 선뜻 그런 마음이 든 건 아닙니다.
이 문양들의 뜻을 제대로 알기 위해 역사는 물론 풍수와 음양오행 등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그 열정으로 집대성한 떡살무늬를 공유한 김규석 장인.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이름들이 그가 공들인 시간들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김규석 장인의 전통 떡살은 옛것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전통의 근간을 둔 모양에 현대적인 기능을 더한 새로운 떡살. 오랜 시간이 쌓이면 이 역시 전통이 됩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 장인은 홀로 앉아 문양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삼다라는 게 뭐냐 햐면. 오래 살고 자식 많이 낳고 복 많이 받는 거거든요.
-(해설) 떡에 어떤 문양을 찍느냐에 따라 제사용이 되기도 하고 이바지용이 되기도 합니다.
즐거운 날에는 즐거운 이야기를 쓰듯 떡살의 문양 역시 때에 맞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떡살이 말해 주는 이야기는 떡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갑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목련과 돌림문이 함께 새겨진 이 문양은 부귀와 영화가 집안에 끊이지 않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문양을 조각하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자칫 손이 엇나가기라도 하면 어린 감나무가 재목이 되어가는 100여 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늬를 아름답게 새기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습니다.
떡살을 사용하는 사람까지 배려하는 마음. 선조부터 내려오는 귀한 마음입니다.
문양을 조각하다 보면 안쪽에 거무스름한 부분이 나올 때가 있는데요.
김규석 장인도 매우 긴장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조각하기 어려운 만큼 가치가 높습니다.
먹감나무로 만든 장방형사면떡살. 보기 드문 만큼 굉장히 귀한 떡살로 여깁니다.
깎고 다듬고 그렇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인 후에야 조각작업이 끝납니다.
장인의 고집과 기술이 집결된 예술 작품입니다.
조각작업이 끝나면 동백기름을 발라주며 마무리를 합니다.
드디어 완성된 떡살. 이 하나를 만드는 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이 걸리기도 하는데요.
한 달 동안 열심히 만들어도 4개가 고작이며 1년을 만들어도 50개가 채 안 됩니다.
누구도 강요한 적 없지만 오랜 시간 고독하게 걸어온 길.
그에게 목조각은 단순히 떡살을 만드는 기술이 아닌 혼을 불어넣은 필생의 역작과도 같습니다.
떡살은 떡을 찍는 손을 통해야만 그 온전한 의미가 실현됩니다.
밋밋한 떡에 살이 찍히면 떡은 메시지를 담은 신성한 음식이 됩니다.
문양 속에 장수와 풍요, 다산과 벽사 등 극진한 소원을 담아봅니다.
생활의 사소한 것 하나에도 아름다움과 의미를 부여하던 우리 선조들의 격조 높은 음식문화입니다.
떡 중에 떡은 절편이라는 말은 절편에 새겨진 문양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죠.
그렇다면 이 떡살들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장수를 의미하는 복숭아문. 기쁜 일이 집안에 가득하길 비는 쌍희문.
김규석 장인이 새긴 문양이 빛을 발하는 또 하나의 목조각품이 있습니다.
다식판입니다. 떡살과 비슷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살을 박고 염원을 담는 건 떡살과 같습니다.
다식 역시 떡과 같은 의례 음식인 만큼 다식판에도 여러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게 지금 봉황문이고요. 결혼식에 자기가 관복을 입었으니까 자기가 왕이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봉황문을 사용을 했고. 연꽃 같은 경우에는 돌아가신 분들한테 정토의 의미도 있겠지만 축복의 의미입니다.
국화는 장수의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이게 거북이인데 거북이는 오래 살잖아요.
그래서 장수 의미로 사용되는 겁니다.
-(해설) 다식판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은 떡살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내 가족이 행복하길 오래도록 건강하길 이웃에게 기쁨이 넘치길
누군가가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선한 마음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작업실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 제자 이상국 씨입니다.
전통기능 보유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고자 뒤에 걸어올 이들을 위한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김규석 목조각장.
그가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문양이 이 땅에서 다시금 소중히 쓰여지는 것, 그뿐이면 바랄 게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문양도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처음 들어본 이야기죠.
-(해설) 값싼 외국산 떡살들이 전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우리 떡살의 보존과 전승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집안마다 고운 무늬를 새겨 넣었던 우리 조상들의 손길. 정교하고 아름다운 떡살의 미학은
소중히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그리고 후대에 온전히 전해야 할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입니다.
-(해설)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다
금가락질을 떨어뜨렸다는 명당. 그 명당의 기운을 품고 수백 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온 고택 한 채.
타인도 능히 열 수 있다는 나눔의 정신을 품은 집, 전남 구례 운조루입니다.
세월 앞에 기울어가던 운조루 안채를 전통방식 그대로 다시 일으켜 세운 장인이 있습니다.
손끝으로 역사의 숨결을 짓는 사람 우리나라 전통 목조건축의 명맥을 잇는 김영성 대목장입니다.
고향 전남 곡성에 터를 잡은 작업실. 이곳에서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김영성 대목장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가 걸어온 대목장의 길은 단순히 집을 짓는 기술자를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작업실 한편을 가득 채운 수백 가지 공구들. 오직 나무와 나무의 맞물림만으로
견고한 전통의 틀을 되살리기 위한 장인의 도구들입니다.
대목장의 일은 단순히 나무를 깎고 다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기둥의 높이 하나, 공포를 짜맞추는 포작의 짜임 하나에도 건물의 균형과 품격이 달라지기에
대목장의 손끝은 한순간도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대목장의 설계는 단순히 건물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닙니다.
건물이 들어설 땅의 숨결을 읽고 그 안에 담길 사람들의 삶까지 헤아리는 과정.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완성도를 높이는 길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치밀한 설계와 숙련된 기술 그리고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김영성 대목장은 그동안 수많은 목조건물을 완성해 왔습니다.
전통 목조건축에 대한 그의 열정은 때로는 과감한 변화로, 때로는 거침 없는 도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한옥 카페. 이곳은 김영성 대목장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목조건물입니다.
대지의 형태와주변 경관의 특성을 살려 건물을 유기적으로 배치하고 전통기법 위에
현대적 기능미를 더해 조화로운 공간으로 완성해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12년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한옥건축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고즈넉한 품격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그 안에 감춰진 견고함입니다.
과거 두 차례의 기록적인 폭우로 주변이 모두 침수되는 상황 속에서도
전통 기법으로 지은 이 한옥은 끝내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버텨냈습니다.
우리나라의 건축은 오랫동안 나무를 주재료로 삼아 목조건축 특유의 아름다움을 꽃피워 왔습니다.
나무는 다루기 쉽고 변화무쌍한 사계절 속에서도 유연하게 버텨내는 훌륭한 건축 재료입니다.
그렇기에 대목장에게는 나무의 쓰임을 한눈에 알아보는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 김영성 대목장이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손때 묻은 공구들입니다.
편리한 전동장비들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그가 끝내 놓지 못하는 건 이 수동공구들입니다.
나무를 다듬어 건물의 각 부재를 만드는 치목의 시간.
기둥이 될 통나무에 깎아낼 범위를 정해 먹줄을 칩니다.
도끼로 거칠게 겉면을 쳐내 기를 내고 자귀로 정교하게 깎아낸 뒤 대패질로 다듬어 기둥을 완성합니다.
기둥 위에는 여러 개의 부재를 겹겹이 짜올린 공포로 지붕의 하중을 분산하고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건물의 규모가 커질수록 기둥이 짊어져야 할 지붕의 무게는 막중해집니다.
이때 대목장은 보를 놓기 전 기둥과 보가 만나는 지점에 보아지라는 부재를 덧댑니다.
휘어진 나무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그 기운을 그대로 살려내는 대목장의 지혜.
정교한 곡선과 문양이 더해질수록 보아지는 단순한 구조재를 넘어 전통 목조건축의 미학을 담아내는 작품이 됩니다.
김영성 대목장의 건축 기법은 국가무형유산 대목장 보유자였던 고 고택영 선생에게서 비롯됐습니다.
20살 어린 나이에 고 고택영 선생의 제자로 들어간 김영성 대목장.
전남 순천 송광사 사자루 보수공사를 시작으로 그는 전통 목조건축의 길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전남 구례 화엄사 원통전에서는 부편수로. 나주 남고문 1, 2층 보수공사에서는 도편수로 참여하며
전통 목조건축 해체, 보수현장의 중심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김영성 대목장은 수많은 목조건축 해체와 보수현장을 거치며 고건축을 읽어내는 깊은 통찰을 쌓아왔습니다.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온 나무의 짜임 속에서 시대를 관통해 온 흐름을 읽어내고
그 정신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것, 그것 또한 대목장의 소명입니다.
전통기법과 정신을 지키기 위한 김영성 대목장의 치열한 집념과 헌신은
마침내 그를 국가무형유산 대목장 보유자라는 더없이 큰 명예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백화도량 완주 송광사. 이곳에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종을 달아두는 누각, 종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유일의 십자형 2층 누각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의 무게로 종루 곳곳에서 심각한 노후화가 확인됐습니다.
종루의 기둥 상단부와 기둥 머리를 연결하는 창방 그리고 그 윗부분을 모두 해체한 뒤
보물 지정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보수작업.
이 까다로운 공정의 전 과정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바로 김영성 대목장입니다.
-밑으로 내려, 밑으로.
-(해설) 복원의 시작은 해체에서 비롯됩니다.
수백 개의 부재를 하나하나 분리해 번호를 매겨 기록하고 상태를 꼼꼼히 살핀 뒤
정말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남은 부재들은 세밀한 보존처리를 거쳐 다시 제자리에 정교하게 맞춰 조립합니다.
문화유산 보수는 선조들의 건축 기술과 그 속에 담긴 지혜를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대목장에게 이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경건하고 겸허한 순간입니다.
김영성 대목장의 기술은 이제 다음 세대를 향한 가르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통 목조건축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그 기술과 정신을 제자들에게 온전히 전하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나무의 쓰임이 정해지면 먹줄을 놓습니다.
단순히 선을 긋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이 선 하나가 이후 모든 시공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높은 숙련도와 정확함이 요구됩니다.
먹줄을 놓고 나면 도끼질과 자귀질로 나무를 다듬습니다.
리듬감 있게 내리치는 자귀 끝에서 투박했던 나무는 서서히 매끄러운 부재로 거듭납니다.
편리한 기계 대신 투박한 수동공구로 이어가는 작업은 수십 배의 땀과 수고로움을 필요로 하지만
그만큼 선조들의 지혜를 고스란히 배울 수 있는 과정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목조건축에서는 곱게 뻗은 나무뿐 아니라 휘어진 나무도 저마다 훌륭한 부재가 됩니다.
나무의 결을 읽어내고 어디에 힘을 받게 할지 계산해 최적의 쓰임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대목장의 안목이자 지혜입니다.
전통문화와 국가유산을 교육하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김영성 대목장은 이곳 전통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전통 건축의 맥을 이어갈 인재들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책 속에만 머물던 전통 건축의 원리는 대목장의 세심한 지도 아래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지혜가 됩니다.
나무와 나무가 빈틈없이 맞물려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결구의 원리.
학생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전통기법의 정교함을 몸소 깨우치며 장인의 감각을 익힙니다.
수백 년의 비바람을 견뎌온 목조 건물 앞에 서면 대목장은 시공을 초월해 선조들과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옛 장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무의 결을 살피고 자연을 닮은 집을 짓는 사람.
김영성 대목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갈 전통을 위해 오늘도 묵묵히 장인의 길을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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