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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등록일 : 2026-10-20 14:28: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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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우리는 매일 이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매일 이 사람을 잊는다.
-천 원짜리 지폐에 딱 나오시는 그분으로만 잘 알고 있고.
-천 원 지폐에 나오는 그 선생님인가?
-지폐에 그려져 있는 멋진 선비.
-(해설) 교과서 속 퇴계 이황은 지루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의 선택은 상식을 뒤집는다.
물러날 퇴, 시내 계. 퇴계 이황은 스스로를 시냇가로 물러난 사람이라 호를 지었다.
69세의 나이로 권력의 한가운데에서 고향 도산으로 돌아온 사람. 조선 최고의 학자였고
임금의 스승이었던 이황. 고향 산천에 몸을 기댄 그저 평범한 한 노인. 천 원짜리 앞
면에서 뒷면까지 그 거리는 270km.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묻는다.
1569년 선조 2년. 마침내 퇴계의 귀향이 윤허되었다.
관직에 140번 이상 임명됐으나 절반은 고사했던 선비. 그의 삶은 임금의 부름과 낙향의 연속이었다.
예순아홉의 대학자가 평생 품었던 하나의 소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꿨던
퇴계는 그 오랜 뜻을 이루는 길이 높은 벼슬자리가 아니라 고향 도산에 있다고 믿었다.
그로부터 457년이 지났다. 제6회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임금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생께서는 떠나셨습니다.
-(해설) 21세기에 도포자락 휘날리는 선비들이라니.
외국인들 눈에는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서른넷에 급제한 이후 남들은 갖지 못해 안달인 권력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며 평생을 오갔던 길이다.
권력의 중심인 서울을 떠나 후학을 기르며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고자 했던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 이 행사에 올해는 무려 250여 명이 모였다.
서울 경복궁에서 출발해 무려 14일에 걸쳐 약 700리에 이르는 대장정.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린 퇴계는 경기 남양주와 양평, 여주를 거쳐 충북 충주와 제천, 단양을 지나며 걸음마다 가르침을 남겼다.
청렴의 리더십을 보여준 관아. 지방 교육의 혁신을 제시한 서원. 대학자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종택. 그리고 마지막 도산서원까지. 끊임없이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선한
마음으로 해법을 찾고자 했던 위대한 선비의 온 생애가 이 길 위에 압축돼 있다.
457년이 흘러서도 여전히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어쩌면 이 길이 선한 해답을 줄 수 있을까?
퇴계의 서울 집이 있던 곳이다. 예순아홉의 퇴계는 700리 귀향길을 말과 배로 갔다지만 우리는 고스란히 두 발로 걸어볼 작정이다.
많게는 여든세 살, 적게는 아홉 살까지. 2026년 서울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선비군단의 행렬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흰 도포자락 휘날리며 광화문을 지나 금오동 고개를 넘어가는 첫째 날 여정.
다시 돌아올 기약 없이 서울을 등진 퇴계의 마음은 이미 고향 도산을 향해 있었다.
-그 시에 보면 고도비오사 거연재향리 소원선인다 시내천지기.
높은 곳에 머무는 것은 내 할 일이 아니네.
고향 마을에 지내면서 착한 사람이 많아지기를 소원하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해설)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살기 좋은 세상.
어쩌면 도덕책 속 이야기처럼 여겨지겠지만 퇴계는 그 첫걸음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있었다.
그 시작은 내려놓는 일이었다.
귀향 2일 차. 퇴계는 두무개나루에서 배를 타고 봉은사로 향했다.
퇴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임금은 더 큰 벼슬을 내렸지만 퇴계의 발길을 돌려 세우진 못했다.
그의 뒷모습은 당파 싸움에 대립하던 조정 대신들에게 하나의 질문이 되었다.
다 내려놓고 떠난 사람의 길을 우리는 저마다 무언가를 짊어진 채 걷고 있다.
퇴계가 둘째 날 밤을 묵어갔던 봉은사.
이른 봄 경내에는 그가 평생 아끼고 벗 삼았던 매화가 한창 꽃을 피웠다.
-향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네요.
-(해설) 매화를 신선에 빗대 매선이라 부르며 벗 삼았던 그는 마지막 귀향길에서도 매화와 작별의 말을 나눈다.
-매선이 쓸쓸한 나의 짝이 되어 객창 깨끗하고 꿈길도 향기로웠네.
동쪽으로 돌아가며 데리고 가지 못해 서운하네.
-이 늙은이 임금님 허락받고 고향으로 물러가는 길이네.
온 조정을 비우다시피 이리 환송을 해 주시니까.
-(해설) 14일에 걸친 귀향길 곳곳에서는 퇴계가 머물렀던 자리마다 연극과 음악 이야기가 더해졌다.
500년 전 그의 시간이 잠시 오늘의 길 위로 돌아온다.
-제 자리에서 열심히 매진해야지요.
-네, 선생님의 가르침을 늘 끄집어내어 되새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설) 나는 왜 그렇게 올라가려 하는가?
퇴계에게 주어진 질문이 어느새 나를 향한다. 이제 서울을 떠나 남양주로 향해 가는 길.
-비가 와도 연습 훈련을 했습니다.
-(해설) 11살 희상이는 칠순 할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왔다.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먼 길을 함께 걸을 일이 평생 몇 번이나 있을까.
말없이 나란히 걷는 동안 둘 사이에도 새로운 길 하나가 생겨난다.
아이들에게 이 길은 아직 공부보다 신나는 여행에 가깝다.
말몰이 하인이 말의 고삐를 쥐고 걷던 그때 그 속도로 뒤처진 친구를 기다리고 옆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강을 바라본다.
이렇게나 걸었으니 밥맛이 없을 리 없다.
하루 대여섯 시간 걷는 일쯤은 거뜬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몸도 슬슬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고단했던 하루가 끝났다.
퇴계의 귀향길 4일 차. 지원팀 응급차가 부산하다. 오늘은 무려 29km를 걷는 날이다.
-어디요? 무릎이요?
-(해설)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남양주의 한강변은 퇴계를 존경했던 다산 정약용의 자취가 남아 있다.
다산은 벼슬에서 좌천됐을 때 매일 아침 퇴계문집을 경전 삼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하지만 제 몸 하나 다스리는 것도 아이들에겐 버겁다.
그런데 초등학생 세율이는 이 와중에 뛴다.
퇴계 이황에 대해 뭔가 깨우친 걸까?
그럼 그렇지. 퇴계의 깊은 뜻을 11살 세율이가 어찌 알까.
다산 생가와 묘소를 지나 몇 개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한여울이다.
500년 전 퇴계처럼 우리도 꼭 나흘이 걸렸다.
머리로만 익히는 게 아니라 몸으로 겪으며 깨닫는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공부다.
퇴계는 세상을 바꾸는 일도 결국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퇴계 선생이 강조하신 위기지학은 자기 자신의 인격을 잘 다듬어서 수양하는 공부입니다.
-(해설) 오늘은 한여울에서 배개나루까지 총 23km의 여정이다.
마음 좀 빼앗기면 어떤가?
양평 8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화사한 풍경에 아이들의 마음도 빼앗겼다.
씩씩하던 삼부자네는 첫째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군가. 이제부터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형 연우뿐만이 아니다.
11살 룩한이는 발목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그런데도 기어코 걷겠단다. 씩씩한 동생들에 비해 형님들은 꾀가 빤하다.
포기, 포기, 포기. 그새 배추 한 단이 꾸려졌다.
이날부터 환자들은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구간별 지원 차량이 운영됐다.
이제 겨우 귀향 닷새째. 아직 갈 길이 멀다.
끝까지 걷겠다는 마음과 잠시 쉬고 싶은 몸 사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은 이쪽 저쪽으로 흔들린다.
그때마다 다시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 쉽지 않다.
오늘은 여주 배개나루에서 혼바위나루까지 연일 30km에 가까운 강행군이 이어진다.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 퇴계는 거창한 가르침보다 살아가는 태도를 먼저 가르쳤다.
그래서 신분이 낮은 노비도 이름 없이 살아가던 여성도 한참이나 어린 제자도 누구도 가벼이 여기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섬겼다.
그 삶의 중심에는 경이 있었다.
-우리가 저 사람 괜찮다 할 때 그 몸을 보고 얘기하잖아요.
우선 몸과 마음을 늘 바르게 해야 됩니다.
또 한 가지 일에 집중을 해야 돼요.
그리고 늘 정신을 탁 깨어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차분하게 한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그런 명상의 시간, 자연 속에서 심호흡하는 그런
삶을 좀 자주 가질 때 경에 좀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됩니다.
-(해설) 또래의 세계가 전부였던 아이들.
500년 전 한 어른을 따라 걷는 길에서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아온 어른들을 만난다.
조금씩 서로의 세계가 가까워진다.
여주와 충주를 지나 드디어 제천에 도착했다.
제천의 옛 지명이 청풍명월할 때의 그 청풍이다.
한때 청풍 관아에 딸려 있던 한벽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 누각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매우 빼어나서 조선시대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한벽루를 주제로 시를 지었다.
청풍 관아에서 하룻밤을 묵은 퇴계는 단양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충주댐이 생기면서 물 아래로 가라앉은 귀향길. 덕분에 오늘은 모처럼 발이 잠시 쉬어간다.
단양 8경 중 하나인 옥순봉은 그 모양이 죽순 돋아나듯 우뚝우뚝 솟아 있다 해서 퇴계가 이름 지은 곳이다.
어느새 귀향길도 열흘째.
처음엔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남은 길만 보였다면 이제는 지나온 길이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것들이 보인다.
이번 귀향길의 최고령 여든셋의 박문환 어르신은 넘어져 다친 상처를 반창고와 약으로 버티면서 꿋꿋하게 걷고 있다.
단양을 출발해 죽령을 거쳐 풍기로 향하는 길. 반갑지 않은 비 소식이다.
500년 전 그 귀향길에도 이렇게 비바람이 치던 날이 있었다.
날이 궂을수록 산빛은 더 깊어지고 길이 힘들수록 함께 걷는 발소리는 더 또렷해진다.
산을 보고 물소리를 듣고 곁의 사람과 보폭을 맞춘다.
그 속을 오래 걷다 보면 나 역시 그 풍경의 일부가 된다.
귀향길 열두 번째 날의 아침. 도산이 가까워질수록 퇴계가 고향에서 이루고자 했던 뜻도 조금씩 선명해진다.
그렇게 백운동서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소수서원이 되었다.
임금이 이름을 내린다는 것은 한 지방의 배움터를 나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책이 내려오고 토지가 주어지고 공부를 지속할 힘이 생긴다.
한 사람의 뜻으로 시작된 배움터가 더 많은 사람을 기르는 자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퇴계는 좋은 정치도 풍요로운 지역도 결국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서원을 세워 사람을 기르려 했고 그들이 지역과 나라의 미래를 바꾸길 바랐다.
이산서원은 그 뜻이 고향 가까운 마을에 뿌리 내린 자리다.
학문을 닦을 마땅한 공간이 없던 고을에 퇴계의 자문을 받아 세운 영주 최초의 서원이다.
-요즘 말로 하면 대학교 교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뜻이 정직하고 뜻을 크게 가지고 스스로 도의를 지키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고.
-(해설) 서원의 터를 정하는 일부터 원규를 짓고 배움을 이끄는 일까지.
중앙의 관직보다 작은 고을의 배움터를 세우는 일에 더 마음을 쏟았던 퇴계.
배운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배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 500년 전 퇴계의 고민이 낯설지 않다.
퇴계에게 서원은 누군가의 삶을 본받고 서로를 보살피며 함께 배우고 배운 것을 삶의
자리로 확장하는 곳. 그렇게 저마다의 삶터에서 착한 사람을 기르는 자리였다.
어쩌면 퇴계의 길 위에 선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작은 서원이 아닐까?
퇴계를 공부하고 서로에게 배우고 내 삶을 돌아보는 14일간의 귀향길.
퇴계의 꿈과 닿은 이 길 위에 또 하나의 서원이 선 것이다.
-이제 고향이 지척입니다.
-(해설) 나는 왜 이 길을 걷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붙들고 사는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퇴계의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도 조금씩 오래 들여다보지 않던 나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
다 내려놓고 떠난 사람의 길을 뭔가 짊어진 채 걸었던 우리의 시간도 어느새 그의 삶과 포개지기 시작한다.
길 위에는 퇴계의 삶이 깃든 흔적들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그 생애가 시작된 곳이 있다.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퇴계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빠져 밥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곤 했다.
14일 전의 출발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즈음 드디어!
-박수, 박수, 박수.
-진짜 끝까지 걸으셨어요.
-박수.
-(해설) 서울 경복궁을 떠난 지 열나흘.
700리 길을 걸어 마침내 도산에 닿았다.
퇴계가 평생 돌아오고자 했던 곳. 그리고 우리가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찾아온 곳이다.
-제6회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700리 완주 기념패.
위 사람은 본행사를 통해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에 뜻을 기리고 온고지신의 정신을 수행하였기에 이 패를 수여합니다.
축하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해설) 길 위에서 모두가 저마다의 퇴계를 만났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퇴계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다시 길을 이어간다.
-우주들과의 만남.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우주다.
-퇴계 선생께서 소원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이번에 걸으면서 이 퇴계의 길이 1년 내내 사람들이 호젓하게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해설)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
퇴계가 평생 품었던 꿈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간절하고 여전히 멀게만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길 위에서 한 사람의 공부가 어떻게 삶이 되는지 그 삶이 다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보았다.
생애 마지막 순간에도 가장 작은 생명을 걱정했던 퇴계. 사람은 갔지만 그가 걸었던 길은 남아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뒷모습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이 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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