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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 겹의 도시 공주
등록일 : 2026-10-26 11:24:51.0
조회수 : 20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이은지입니다.
오늘 함께할 프로 겹의 도시 공주는요.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적 흐름이 모두 모여 있는 공주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특히나 오늘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세 분과 함께 겹겹이 쌓인 공주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주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멕시코에서 온 크리스티안 부르고스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를 축구 선수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사실 방송인 그리고 수어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에서 온 후지모토 사오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실 충청도 사람입니다. 대전살이 6년의 알파고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진짜로 알파고 씨가 지금 한국 분이신 거잖아요.
-귀화를 했어.
-귀화, 이분들은 이제 외국인이고.
-여권이 달라요.
여권이 달라요.
-우리 공항에 들어갈 때 이분들은 따로 저는 따로 라인이 따로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아까도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세 분이라고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이분들이 먼저 이 공주 곳곳을 탐방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각자 다녀온 곳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희들끼리 좀 얘기를 할 수는 없겠죠.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한국 역사를 자세하게 아는 사람.
-그럼요.
그래서 이분을 한번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함께하실 우리 최태성 선생님 어서 오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역사 길잡이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공주를 다녀오셨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공주는 진짜 독특한 곳입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모든 어떤 시간의 축들이 나란히 쌓여 있는 그런 곳이에요.
그래서 이 도시를 뭐라고 규정을 할까 고민하다가 제가 오늘 이 멘트면 좋겠다.
바로 겹, 겹의 도시 공주.
-삼겹살의 겹.
-같은 겹이다.
-시간의 겹, 그 겹의 도시 공주에 대해서 한번 지금부터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좋아요.
-공주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남한 최초의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면서 우리 역사의 시작을 다시 쓰게 만든 곳, 바로 공주
석장리 유적으로 먼저 떠나볼 텐데요. 크리스티안 씨가 다녀오셨잖아요. 어떠셨어요?
-아마 한국 사람들도 다른 나라를 비교하면 우리 역사가 좀 짧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구석기 발견함으로써 어, 잠깐만 우리 역사는 어떤 증거가 생기는 거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크리스티안 구석기 아나요?
-구석기는 인류의 시작.
-그렇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에서 구석기 유적이 이 남한 쪽에서 처음 확인이 된 유적, 공주 석장리입니다.
선사시대는 문자가 없으니까 땅을 파서 석기나 화석을 통해서 그 시대를 이해하죠.
그래서 여기는 1964년 처음 확인이 된 유적이에요. 저기 보실까요?
저 깃발, 저곳이.
-여기서 발견이.
-첫 발굴을 했던 삽을 떴던.
-그러네요, 그렇게 적혀 있네요.
-네, 한국 구석기 첫 발굴지.
-이 공주 석장리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진 우리나라에 구석기가 없었던 것 같아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생각해 보시면 알겠지만 역사는 길면 좋은 거잖아요.
그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 그거 굉장히 중요한 거잖아요.
일본에서 어마어마한 충격적인 고고학 사건이 하나 벌어져요.
그게 뭐였냐면. 그게 뭐였냐면 일본에, 일본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일본도 구석기 유적이 없다 보니까 그들도 나름대로 우리도 구석기 시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을 거 아니야.
그런데 드디어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이 됩니다.
이러면서 그 당시 언론에서 막 대서특필. 우와, 우리 일본에서도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긴 역사를 갖고 있다라고 막 대대적으로. 아, 여기 우리 사오리 있네.
-네, 저 일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거기 그 신문에 보면 정말 그때 구석기 유적이 발견됐다고 난리가 났었어요.
근데 충격적으로 일본 어느 기자가 그 구석기 유적을 발견한 그 고고학자를 추적을 해요.
-왜요, 왜요, 왜요?
-그 고고학자가 구석기 유적을.
-훔쳤어요?
-몰래 심은 거야.
-옳지 않았어, 옳지 않았어.
-왜 그랬어.
-그 역사를 갖고 싶었던 거지.
-갖고 싶었던 마음에.
-약간 만들어 내고 싶어서.
-이렇게 구석기 유적이야라고 해서 발굴을 한 거야, 이렇게.
팠더니 나온 거야. 근데 그 전날 밤에 와서 이미 다 심어둔 거죠.
그러니까 그만큼 역사가 길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을 거 아니에요.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지, 그렇지.
구석기 유물이 등장한 겁니다.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쁠까 .
-유레카.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그 도구, 도구는 뗀석기입니다.
크리스티안, 왜 뗀석기일까요?
-전 알고 있죠.
전 가 봤으니까 알고 있는데.
-좋아요, 대답 못하면 답을.
-알려주기 싫은데.
-까먹었어요.
-그러네요, 다 가능하겠네요.
칼, 망치 이런 거 다.
-정답.
-맞았어, 맞았어.
-잘 배웠다, 잘 배웠다.
-떼어낸 석기.
-떼어낸, 떼어낸, 맞아.
-떼어냈다 해서 뗀석기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뗀석기를 보면 알겠지만 돌멩이처럼 보여요.
근데 이게 과연 자연이 만든 돌인지, 사람이 인위적으로 해서 만든 돌인지.
근데 고고학자들은 딱 보면 압니다. 만들어지는 곡선이라든지 날카로운 날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사람이 만든 도구다. 그게 공주 석장리에서 발견이 된 거예요.
계속해서 이렇게 흙이 쌓이면서 올라오는 거예요.
이걸 지층이라고 하는데 지층을 보면 그 시간대를 알 수가 있어요.
중요한 건 뭐냐면 구석기로 추정되는 그 지층. 그 지층대에서 아까 이야기했던 그 뗀석기가 나왔다는 것이죠.
그걸 보면서 이 당대에 살고 있었던 동물들의 화석 그리고 그 동물들을 잡았을 그 도구가 같은 지층에서
발견되었으니까 그 시간대에 나온 도구를 통해서 이 시기에 사람이 만든 도구가 있었네. 구석기가 있었네,
이렇게 증명을 해내는 겁니다. -일단 그 모양 보면 날카롭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저도 궁금해요.
-날카로운 거.
-그러니까 우리는 오른손에 지금 뭘 들고 다녀요?
-핸드폰.
-휴대폰 들고 다니잖아요.
휴대폰 우리 조작 잘하잖아요. 그런데 그 휴대폰을 구석기인들한테 갖다주면 쓸까, 안 쓸까?
-못 쓰죠.
-못 쓰죠.
-전혀 못 쓰죠.
-이게 뭐야 이러고.
-구석기인들은 그거 갖고 이렇게 흙도 파고 그래야 되는데 파면 깨지겠죠.
쓸모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은 돌에 있어서만큼은 박사예요.
우리한테 지금 돌멩이를 주면요. 돌멩이를 이거 잘 못 다뤄요.
-와이파이 안 잡히죠.
-맞아요.
근데 구석기인들은 돌을 보잖아요.
그러면 그 돌의 결, 결을 정확히 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전혀 할 수 없는데 구석기인들은 결.
그리고 심지어는 손으로도 돌을 떼어낼 수가 있었대요. 결을 보면서. 맞아요.
옛날 사람들은 그 특이한 기술이 아니라 그게 삶의 어떤 생존을 위한.
-그러니까요.
어디 가서 배울 수도 없었잖아요.
-맞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근데 저는 생각이 드는 게 이렇게 어떤 고대 유적지 같은 데에는 항상 강이 좀 흘렀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도 금강이 있잖아요.
-맞아요.
-지금도 강 주변의 부동산 값은 비쌉니다.
-그러네요, 지금도.
-지금도 그러네요.
-여기 석장리에 가보시면 역시 마찬가지로 강이 있었을 겁니다.
금강이 이렇게 흐르면서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 것이죠. 맞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거군요.
-그렇죠.
-그렇죠.
-그 생활이 자꾸 쌓여지면서.
-겹, 겹, 겹.
-겹겹겹이 이제 만들어지는 거죠.
-그렇게 되는구나.
-맞습니다.
-근데 제가 알고 있기로 석장리 유적지가 또 영상으로 기록이 그렇게 잘 되어 있다고 하던데요.
-그런 영상이 남을 수 있었던 건 뭐냐 하면 그 석장리 유적을 발굴할 때 그런 모든 기록들을 아주 꼼꼼하게 기록해 놨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이 공주 석장리 유적을 발견하신 분이 누구냐면 손보기. 그 이름을 사실 참 재미있습니다. 손보기.
-손 보기예요.
그렇네요. 너의 길은 이곳이다.
-맞습니다.
그 손보기 박사님이 사실 이 공주 석장리 유적을 발견한 거예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의 시원, 출발을 쭉 늘려놓은 거잖아요.
사실 그전만 해도 우리 역사는 한 8000년 전부터 시작되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가 이 손보기 박사가 이
공주 석장리 유적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게 몇천 년의 역사가 아니라 수만, 수십만 년의 역사로 막 늘어난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대단한 겁니까?
근데 이때 이분이 그걸 발견할 때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발견되었는지를 아주 꼼꼼하게 정말 치밀하게 다 기록을 해 놓으셨어요.
그 기록의 흔적들이 어찌 보면 우리나라 한국 고고학 연구의 기준점이 되었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분이 계셨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또 구석기 역사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1500년 전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만나볼 차례인데요.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돼서 백제 역사의 비밀을 풀어준 왕릉이죠.
그리고 동아시아를 연결했던 국제적인 백제의 모습을 간직한 무령왕릉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오리 씨가 다녀오셨죠, 무령왕릉.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왔는데요. 일단 무령왕릉을 보러 갔을 때
1부터 6호까지 있더라고요. 그 이름이 없는, 아직 알 수가 없는 무덤을 그렇게 부르는데 그런 곳도 있는
줄도 모르고 무령왕릉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양하게 방마다의 구조가 있더라고요. 우와.
-6호 벽돌무덤이에요.
-안이 이렇게 커요?
-1호 무덤부터 이 6호 무덤까지는 도굴이 되어서 정확하게 무덤의 주인을 알 수가 없어요. 순서대로 1호, 2호, 3호.
-이름을 그렇게 붙인 거예요, 모르니까.
-네.
-맞습니다, 가카라시마.
-그런데 우리나라 왕인데 일본에서?
-그러니까요.
그래서 굉장히 약간 친근하게 생각했어요.
-백제의 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이런 얘기는 아마 잘 못 들으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무령왕. 무령왕은 재일동포십니다.
-팩트예요?
그건 맞아요?
-일본 역사서죠.
일본서기에 기록돼 있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전달해 보면 이런 내용이에요.
백제의 그 수도가 원래 어디였냐면 지금의 서울이었어요, 서울. 한성이라고 했는데 원래 백제의 수도는
거기였었는데 그 한성을 공격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면서 엄청난. 압박을 줬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어딥니까?
-기회 한번 드릴까요?
-하세요, 하세요.
-기회 한번, 기회 한번.
-하세요, 하세요.
-정답.
-정답.
-고구려.
-고구려, 정답.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몰랐으면 틀렸으면 어떡하나.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거 있어요.
수도를 한성이라고 하셨는데요. 원래 제가 알기로는 백제 수도는 부여였어요.
-너무 좋은 질문이에요.
제가 설명을 좀 드릴게요. 백제의 수도는 세 군데가 있어요. 첫 번째가 방금 이야기했던 어디?
-서울.
-서울, 한성.
두 번째가 어디?
-공주.
-바로 이곳 공주.
세 번째가 어디?
-부여.
-맞아요.
그렇게 수도가 바뀌게 되는데 그 고구려가 서울, 한성을 막 압박해 들어올 때 그때 왕이 누구였냐면 백제 개로왕이었어요.
-괴로왕?
-괴로워.
-괴로워.
-괴로워, 진짜 괴로워.
-이름부터.
-고구려가 자꾸 괴롭히니까 괴로워.
그 개로왕. 그런데 그 개로왕이 고구려가 막 밀고 들어오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일본하고 친하잖아요.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자신의 동생 곤지라고 있어요.
그 곤지를 보내,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는 거야. 자신의 아내, 그 아내를 함께 같이 보내요.
근데 그때 아내가 임신을 한 상태였어요. 가는데 산기가 온 거예요.
-그러면 진짜 아빠는 남아 있고.
-아빠는 여기 나라를 지켜야 되니까.
근데 산기가 오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서 섬으로 들어갔는데 거기가 바로 가카라시마.
거기서 무령왕이 태어났다라는 게 지금 일본서기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신기하다.
-그러니까 무령왕은 기본적으로 요즘 말로 얘기한다면 해외 물 좀 드신 분이야.
-멋있는데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어떤 국제적인 감각 이런 것들을 가질 수밖에 없겠다.
그러니까 백제를 보면 사실 백제를 한 단어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문화강국. 문화강국. 고구려를 한 단어로 얘기하면 군사강국. 힘이 세, 고구려는.
-신라는 외교강국?
-이야, 오늘 왜 이렇게 정신이 그냥 팡팡 도네.
오늘 상태가, 내가 본 상태에서 제일 좋아 오늘. 맞습니다.
백제를 얘기할 때는 문화강국이에요.
정말 문화가 너무 발달된 나라였는데 그 문화가 이렇게 개방적이고 열려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이 있는 그런 모습들.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 그대로 모방해서 따라하는 문화가 아니고
그렇게 들여왔던 문화를 백제식으로 재해석해서 보여주는 그런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데 사오리 씨가 무령왕릉에서 되게 인상 깊었던 게 많이 있었는데 또 중요한 거를 알아오셨다고.
-그 무령왕릉에서 지석을 많이 강조를 하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지석, 고급 단어를 이렇게 우리 사오리 씨가 이렇게 얘기를. 좋습니다.
-정말 구체적인 내용, 날짜까지 다 기록이 돼 있네요.
굉장히 중요하네요.
-혹시 경주에 다녀오신 분?
경주.
-경주, 경주 가봤죠.
-혹시 알고 있는 무덤 이름 한번 얘기해 볼래요?
-천마총.
-날아다니네요, 오늘 우와, 대박.
천마총. 경주의 무덤은 무슨 무슨 총이야.
그런데 오늘 우리가 지금 둘러볼 무덤은 뭐라 그랬죠?
-무령왕릉.
-릉이야.
왜 총이 되고 왜 릉이 될까?
-맞아요.
조선도 릉이고 이것도 지금 릉인데 왜 총일까.
-이거 오늘 하나 알아갑시다.
총은 그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는 거예요.
-아, 그러네.
왜 천마라는 말이 없잖아요. 그냥 천마총이지.
-그래서 그 무덤에서 나온 유물. 거기에 천마도가 나왔거든.
그래서 천마총 이렇게 하는 거야.
-아, 주인 알 수 없는.
-그렇죠, 그런데 릉이 들어간 경우는 그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을 때.
-그래서 무령왕릉.
-그렇죠, 그렇죠.
-유일하게 알 수 있던.
-그렇죠, 그거를 알려준 증거가 뭐다?
-지석이다.
-그렇지.
맞습니다. 정말 무령왕릉을 발견했을 때 언빌리버블.
우와, 뭐야. 지석을 본 거야. 봤더니 어머어머 웬일이야.
이 왕, 이 무덤이 누구의 무덤이고 이 왕, 그 누구가 언제 돌아가셨고 그 누구를 언제 장례했고 이 모든 게 기록돼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왕은 바로 무령왕릉이다라고 그냥 알아버린 거예요.
이게 또 어떤 의미가 있냐면 현존하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책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무엇일까요?
-가장 오래된 역사책.
-가장 오래된 역사책.
-역사책?
-역사책.
-이거 어렵지.
-삼국유사 아니에요?
-우와.
뭐라고요?
-삼국유사 아니에요?
-진짜 알파고가.
아니, 틀렸어. 틀렸지만, 틀렸지만.
-그건 뭐예요.
사람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걸 안다는 것 자체가 나는 너무 대단한 거야.
-정답, 정답.
-정답.
-삼국사기.
-정답.
-삼국사기, 맞아.
-살짝 헷갈렸는데 우리 알파고 씨가
하나를 아닌 걸 확실하게 알려주면서 제가. 대단하네요, 진짜.
-알파고 짱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 이제 삼국사기이고 그다음이 삼국유사예요.
근데 이 삼국사기는 사실 기록만 있잖아요.
근데 그 기록이 맞는지, 안 맞는지 솔직히 증명할 방법이 없잖아. 그렇죠?
근데 삼국사기에도 분명히 무령왕이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다라는 기록이 있어요.
근데 그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야.
-지석.
-그렇지.
-그래서 지석.
-그 지석에 무령왕릉이 태어나고 죽은 게 정확히 삼국사기도 똑같이 있는 거예요.
그건 뭐냐면 삼국사기 역사책이 그만큼 정확하구나라는 것을 그 지석을 통해서 딱 맞춰버리는.
-삼국사기가 사기가 아니네.
-삼국사기는 사기 아니다.
-잘한다, 알파고.
-아재개그, 아재개그.
-잘한다.
-저 아저씨예요.
-그런 어떤 역사적 의미가 이 무령왕릉에 있다.
주인도 알 수 있고 역사와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이게 이제 무령왕릉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사오리 그 무령왕릉을 이렇게 둘러보면서 뭐가 눈에 들어오던가요?
-일단 들어가자마자 중국의 도자기.
도자기나 그리고 일본의 금송도 있고 그리고 제일 처음 신기했던 게 그 벽돌도 중국의 양나라에서 인꽃무늬?
-연꽃무늬.
-연꽃무늬라든가 좀 굉장히
구체적이더라고요.
-너무 잘 보고 왔다.
대단하다, 진짜.
-당시에 이럴 수가 있을까.
-오늘 출연료 받아도 되겠어요.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너무 잘 설명했는데 맞습니다.
지금 사오리가 보고 온 그 무령왕릉 안에는 백제만 있는 게 아니고요.
그 안에 중국도 있고 일본도 있고 동아시아의 문화가 다 들어가 있는 거야.
예를 들면 아까 지금 그 금송 있잖아요.
저는 일본은 나무의 나라라고 저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일본 같은 경우는 탑도 나무로 만들지 않습니까? 그렇죠?
목탑이잖아요, 목탑. 그렇죠.
그 일본에 있는 금송 이건 우리나라에 없어요.
일본에 있는 금송을 가지고 와서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 관. 그 관을 만든 거예요.
그게 있으니까 일본과 교류할 수 있죠.
그리고 그 무령왕릉의 무덤 형식이 벽돌 모양의 어떤 무덤인 거예요.
이거는 중국 양조의 양식이거든요. 그러니까 중국과의 교류도 했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정말 중국과 일본 이 동아시아의 모든 문화가 담겨져 있다.
그러니까 무령왕릉을 딱 보면 백제의 어떤 국력이라든지 외교력이라든지 문화 이 모든 것들을 그냥 그곳에 가면 그냥 다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백제의 왕도인 공주를 지켜낸 곳.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서 시대마다
중요한 순간을 항상 함께했던 곳. 공주의 시간을 가장 입체적으로 품고 있는 공산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사오리 씨가 다녀오셨죠?
-다녀왔습니다.
여기에 피난을 오고 그때 약간 인조의 마음이라든가 좀 그런 것도 생각하게 되고 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그 긴 시간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뭉클한 마음 들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맞아요.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것 때문에 그곳에 공산성이 있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올라가자마자 예쁘다가 아니라.
생각보다 진짜 넓네요. 우와, 경치는 예쁘지만 무섭지만. 사실 일본에서도 이런 산성들도 있어가지고
낯설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조금 달라요. 여기가 어디게?
공산성이에요. 높은 데로 왔어요, 공산성.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백제의 수도는 어디에서 출발했다?
-한성.
-한성.
그곳은 지금의 어디다?
-서울.
-서울, 그러다가 누가 쳐들어온다고 그랬죠?
-고구려.
-아이, 잘한다.
맞습니다. 이 고구려가 쳐들어오면서. 그곳이 어디였다?
공주, 바로 여기였던 거예요. 조선시대에도 병자호란의 임금이 누구였냐면 인조였습니다, 인조.
그 인조가 인조반정을 일으켰을 때 쿠데타를 일으킨 거죠, 쉽게 얘기하면. 자기의 공을 왜 인정해주지
않느냐 불만을 가졌던 이괄. 괄괄괄, 이괄이라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 이괄의 난 때 인조가 급하게 도망을 친 거야. 어디로? 공산성으로.
왜 그랬을까?
그 답을 아까 사오리가 한 거예요.
-무서우니까.
-맞습니다, 맞습니다.
일단 그 앞에 올라가니까 뭐가 이렇게 쭉 흐르고 있죠?
금강이 흐르고 있잖아요. 이 강만 봐도 뭐냐. 천연의 그냥 요새잖아, 지금. 그렇죠?
그 뒤에 또 산으로 잘 둘러싸여 있고요.
정말 왜적이 쳐들어오기 어려운 그런 아주 천혜의 요새가 바로 공산성이었습니다.
-공산성이 뭔가 이렇게 말씀하시고 보니까 뭔가 늠름해 보이고 백제시대에는 어떻게 됐는지
조선시대 때는 어떻게 됐는지 이걸 다 보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공산성을 둘러 보니까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제가 꼭 경험해 보고 싶어서 만들고 왔어요.
-직접 뭘 만들고 오셨다는 거예요?
-짜잔.
-인절미야, 인절미.
-사오리가 만들었습니다.
-하나씩 맛 좀 봐요.
-실제로 그 절구질도 했어요.
-떡 이렇게 해서.
-옛날 사람이 이렇게 막. 옛날에 하면서 풀렸구나 하면서.
-아주 잘 오셨어요.
-맞아요?
-네.
-그런데 이게 아직 떡 아니고 밥인데요.
-한번 같이 만들어 볼까요?
-네, 저도 하고 싶어요.
이게 스트레스 풀리겠는데. 옛날 사람이 엄청 많이 스트레스 이걸로 이렇게 딱.
-그러니까요.
-파이팅.
-파이팅.
-귀여워.
짠, 잘 먹겠습니다. 진짜 약간 자연의 맛이네요.
-맛있죠?
-너무 맛있다.
-크리스티안 맛이 어때요?
어떤 맛이에요?
-많이 했나 봐.
-잘 만들었네.
-공산성에 가면 저 인절미를 꼭 한번 드시고 오셔야 해요.
-잘 만드셨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요.
뭐냐 하면 아까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가 급하게 이곳 공산성으로 피신을 온 거예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이게 먹을거리들이 좀 잘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였던 거예요.
-꼬시려고.
-그 떡이 바로 인절미였던 거예요.
이 떡이었던 거야. 그걸 이제 뭐라고 하냐 하면 절. 왜 멋진 경치를 보면 절경이다.
아름다운 미인을 보면 절세미인이다. 뭐 그런 이야기 한단 말이야.
절 자는 정말 최고를 얘기하는 거거든요.
정말 맛있다. 미 자가 뭐냐면 맛있을 미. 맛 미 자거든. 절미다, 절미다.
이 절미, 이 떡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이제 물어본 거예요.
그런데 그때 신하들도 사실은 몰랐어요.
어느 여인이 만들어 온 거니까. 그래서 글쎄요.
이게 여기 이 동네 임 씨가 만들어 온 겁니다. 그런 거예요, 임 씨가. 그래?
임 씨가 만든 그 맛있는 떡. 임절미라고 하자라고 해가지고 임절미가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인절미 이렇게 되었다라는 썰이 있습니다.
진짠지 아닌지 사실 기록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흘러 내려오는 이야기란 말이에요.
하지만 음식 하나에도 바로 이렇게 역사가 담겨 있고 참 힘들었던 시대에도 그 넉넉한 인정이 또
담겨 있는 그런 따뜻한 이야기가 이곳 공산성에 담겨 있다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이 동학이 일어나야지 민족의식이 생기는 건데.
그냥 이렇게 책에서 공부를.
-보기만 했던.
-이번에 와서 그 일들이 벌어졌던 장소에서 눈으로 보니까 좀 약간 좋았습니다.
-조선은 양반, 그러니까 붓의 나라.
공부하시는 분들. 그다음에 중인은 전문 기술직. 그다음에 상민은 농사짓는 분들. 대부분의 백성들은
상민. 천민은 소 잡고 돼지 잡고 이런 백정들. 이렇게 신분제도가 만들어져 있었어요.
이 신분제도를 끝내야 된다라고 해서 나온 종교가 있었는데 그 종교가 바로 동학입니다.
이 동학은 뭘 내걸었냐면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님이다. 우리 모두는 다 하늘님인 거예요.
하늘님을 어떻게 함부로 대해. 하늘님 대하듯이, 하느님 대하듯이 정성을 다해서 존중해야 된다.
그게 바로 동학입니다. 이 당시가 19세기였는데 그 19세기가 정말 부정과 부패와 그냥 탐관오리들의
그 만행이 상상을 초월했어요. 그럼 누가 제일 피해를 봐?
-백성들.
-백성들이 제일 피해를 보겠죠.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사람이 하늘이다라고 하는 평등사상을 외쳤던 이 종교 동학이 이런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자라고
일어났던 운동 그게 바로 동학농민혁명입니다.
충청도, 전라도 이 농민들.
-전국에서.
-이 세상은 썩었고.
정부 군대 있죠, 정부 군대.
-시스템이랑 싸우는.
-싸움이 돼요, 그래도 있잖아.
근데 이겨요.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하고 황룡촌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어딜 들어갔냐면 전주성에 들어가요.
전라도의 제일 중요한 전주와 나주 중에서 전주를 동학농민군이 점령을 한 거예요.
그런데 이 전라도가 어떤 곳이냐면 우리나라에서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에요.
-40% 거의.
-목줄이야, 목줄.
근데 그게 농민군 손에 들어가?
이건 충격이죠. 반만년 역사에 이런 적이 없었던 거예요.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때 정부에서 도움을 요청한 거야.
중국 청나라한테. 그러자 중국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들어오는데 그때 어디도 들어오냐면 일본 군대도 들어오는 거예요.
청나라 너희들이 뭐 가서 뭘 다 할 순 없지. 우리도 할 거야.
일본 군대에 들어왔는데 일본 군대가 들어와서 동학농민군은 지금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있잖아요.
이쪽이 온 게 아니라 일본 군대는 서울 경복궁으로 들어가요.
왜 갔을까? 왜 갔을까요?
-왜 갔을까요?
-경복궁에 누가 있어요?
-왕.
-왕이지.
-그렇죠, 바로 왕.
고종을 사로잡기 위해서. 청나라가 들어오고 일본도 들어와서 청일전쟁이 벌어질 것 같으니까 정부에서도
자칫 잘못하면 국내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전주성을 점령하고 있었던 농민군들하고 화해를 해요.
그게 뭐냐면 전주화약이라는 거야. 이 전주화약을 통해가지고 농민군들의 어떤 욕을 들어줄 터이니 일단 지금은 우리가 싸울 때가 아닌 것 같다.
자칫하면 지금 청나라, 일본이 여기서 싸운다, 지금. 그래가지고 농민들이 자신들의 어떤 그 개혁을 하기 위해서 집강소라는 걸 설치를 해요.
그래서 개혁을 해. 근데 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거야.
일본이 우리 왕을 잡아?
농민군들이 참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나라를 구하러 가자. 그 이전까지는 사실은 이 부패한 이 조선사회를 바꿔보자라고 출발했는데 이제는
바로 경복궁을 점령했던 일본의 소식을 듣고 나라를 구하러 가자라고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일본이 있는 그 서울을 향해 가는 거예요.
그곳이 어디였냐면 바로 공주 우금티였던 거예요.
이 공주로 들어오면 이제 서울로 나갈 수 있는 그 길이 쫙 뚫리는 거예요.
고속도로처럼 뚫린다고 보시면 되는 거예요.
-이 고개 우금치를 우금치라고도 부르고 우금고개라고 불러왔습니다.
공주에서 원래 불러왔던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던 130여 년 전에 원래 불러왔던 명칭이 우금티였고
그래서 명칭을 우금티로 공식적으로 이렇게 확정을 했습니다.
평양 이남에서 전국적으로 봉기했을 때 가장 큰 세력은 전라도에서 일어난 남접 동학농민군, 전봉준 등의 세력이죠.
-정말 왜냐하면 이 동학농민군의 그 기세가 어마어마했거든요.
그래서 그 동학농민군이 몰려오기 전에 이미 그 공주 우금티에다가 기관총을 걸어놨어요.
기관총. 거기에 그 기관총이 걸려 있는데 그 밑에 정말 5만에서 10만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농민군들이 모여 있었던 거예요.
무서웠을까, 안 무서웠을까?
-무섭겠죠.
-무섭죠.
-무섭죠, 당연히 무섭죠.
그래서 너무 무서우니까 여기다가 그 부적이라고 있어요.
부적을 달았대요. 그 부적을 달면 총알이 피해 나간대요.
그러니까 얼마나 무서웠던 거야. 뛰어 올라오고 있는 동학농민군을 향해서 일본의 기관총에 불꽃이 당깁니다. 500여 명의 일본군. 많지도 않아요.
여기는 5만 명, 10만 명이야. 결국 우금티를 넘지 못하고 동학농민군은 더 이상의 전진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죠.
그 공주 우금티에서 그 기관총을 바라보고 있는 그 농민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아버지들이었을 거예요. 그렇죠?
그분들이 왜 그 우금티를 기어이 넘고자 했을까?
그 꿈은 뭐냐면 이 우금티를 넘어야만 양반, 주민, 상민, 천민이라는 그 신분제 이 신분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외국 세력도 물리칠 수 있는 거거든요.
다들 손 잡고 마음껏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꼭 물려주고 싶다는 그 꿈. 그 꿈 하나로 그 부적 하나 달고 그 우금티를 향해서 올라갔던 거예요.
사실 이 동학농민혁명이 어찌 보면 실패했다라고 볼 수 있겠죠.
바로 그 해에 우리 역사상 어마어마한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그게 바로 1894년 갑오개혁. 이 갑오개혁의 역사적 의미는 뭐냐면 몇천 년간 내려왔던 그 신분제가 법적으로
폐지가 되었다는 사실. 즉 그들은 실패한 듯하지만 성공한 거죠.
-그래서 지금 저희가 이렇게 평등한 세상을 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독립을 하는데 또 이렇게 맞는 선택이었는지 어떻게 그게 나중에 알아요.
그 당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그래서 약간 그것 때문에 지금 그 생각에 좀 빠져 있어요.
우리 덕분에 살고 있을지,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지는.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우리 크리스티안 씨가 보고 오셨는데 떡을 드시고 계셨네요.
-너무 맛있어.
-절미로다, 절미로다.
-절미구나.
-이번에 제가 가서 보니까 공주랑 굉장히 중요한 인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공주에 이 동상이 있게 된 이유가 유관순 열사가 영명학교를 다니다가 그 사애리시라는 선교사 선생님의
추천에 의해서 이화학당으로 가셨고 이화학당에서 공부하시다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활동 중에 하나로
만세운동을 하시다가 잡혀가서 돌아가셨는데 이제 그걸 기리기 위해서.
-있어요?
-최근 발견된 건데 앞에 보시면 비교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거기 보면 유관순 사진과 어릴 때 사진을 비교해 가지고.
-추정이죠?
-네.
-그러니까 이 천안에서 이렇게 살다가 되게 똑똑했나 봐요.
그러니까 외국인 선교사가 눈에 띈 거야.
-영특하구나 이 아이.
-저 친구를 좀 이렇게 성장을 시켜봐야 되겠다라고 해서 데려온 곳이 바로 이 공주 영명학교입니다.
근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제 강점기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꿈이 공통적으로 나오는 게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이 식민지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를 공부를 통해서 꿈꾸게 된 거죠.
그 안에 유관순도 있었던 것이죠.
-그렇죠.
-교육을 가르칠 때도 토대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임진왜란 알잖아요. 그 일본이 쳐들어왔던 전쟁. 그때 어디가 무너지냐면 충주가 무너져요.
충주와 청주잖아요. 근데 그 충주의 그 기능이 약해진 거예요.
그럼 또 하나의 도시가 필요할 거 아니야. 그게 바로 공주였던 거예요.
공주목, 목이 들어가는 데는 중요한 도시라는 얘기예요.
공주목이 설치된 곳이기도 했고 관찰사가 머무는. 관찰사가 머무는 곳이 아까 얘기했던 그 주요 도시들이거든요.
이곳에 설치를 한 거예요. 충청감영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설치가 됩니다.
그래서 그때는 충청도가 아니라 공청도라고 불렸어요, 공청도라고. 왜냐하면 공주가 중요한 곳이 됐으니까.
조선 후기는 그래도 공청도. 이렇게 되면서 이 공주는 이 충청도 일대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그런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또 우리나라는 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거든요.
자연스럽게 신식 교육, 근대식 교육이 이곳 공주에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인재들이 모이는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저희가 있는 이곳이 하숙마을 옆에 있기도 하고 또 아름답게 제민천이 흐르기도 해요.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기숙사 시설이 거의 없었어요.
공부를 하면 이제 먹어야 되고 자야 될 거 아니에요.
근데 학교에는 기숙시설이 없는 거예요.
그럼 자연스럽게 학교 밖, 하숙. 그걸 하숙이라고 하는데 학교가 많아 그 주변에 하숙집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이 근처를 지금 우리는 하숙마을이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너무 낭만적이잖아.
-나태주.
난 되게 마음에 드는 게 여기 항상 이름이 있는 게.
-이름표?
-왜냐하면 멕시코 교복도
다 이름이 없어.
-서양에는 없어요.
-서양에는 없어.
-중동에도 없고.
-좋아하면.
-심장에 가까운 버튼을
좋아하는 여자한테 주는 거야. 이거 하나밖에 없잖아.
-그렇지.
-줄을 서는 거지. 이게 약간 몇 학년마다 좀 다른가?
-와, 향이.
공부의 향.
-히노키 같은.
공부의 향.
공부의 향이.
-배움의 향.
-기숙사 문화가 중동에서 오래 돼 가지고 자더 기숙사 학교에서 졸업했어요.
-아니요, 멕시코는 그런 개념은 아예 없고 대학교 다녀도 그냥 각자 이렇게 집에 살고.
-각자 집에서 어떻게든 가는 걸로.
-이렇게 같이 하는 문화가 잘 없어요.
-일본은 좀 비슷한 문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일본은 약간 기술전문학교나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같이 사는 그런 기숙사 그런 개념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많이 들은 적은 없어요.
-그만큼 공주가 또 특별한 매력이 있는 그런 도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주는 정말 인재를 키워내는 그런 곳이었지만 그 인재가 미래를 만들었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이 공주는 미래를 만들어 낸 그런 첫 페이지를 열었던 그런 도시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우리가 한번 정리를 한번 해보면 공주 석장리. 거기서 그냥 돌을 갖고 땡땡땡땡 깨면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다음에 우와, 이 공주 무령왕릉을 통해가지고 정말 문화 강국, 국제
교류의 어떤 면모를 보였던 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그다음에 조선시대 때 우리 이렇게 맛있는 인절미를
먹으면서 사람의 어떤 그 정, 따스한 정을 또 느낄 수 있는 어떤 그런 공간. 우금티를 통해가지고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 누구나 다 평등한 세상, 자유를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꿈꾸면서 우금티를
올라갔던 이 사람들의 모습들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고 또 유관순과 정말 이 많은 학교의 학생들이
새로운 시대를 꿈꿨던 그런 모습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그 모습을 관통하고 있는 그 하나의 정신은 뭐냐면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살만한 세상을 꿈꾸면서 이곳
공주의 역사가 흘러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그 시간의 겹이 켜켜이 층으로 쌓여 있는 겹의 도시구나.
그곳이 공주구나라는 것들을 오늘 여러분들이 한번 여행을 해보십니다.
-여러분 덕분에 정말 공주의 이 겹의 역사를 저희가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역시 최고 최고 최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최고.
아나운서 이은지입니다.
오늘 함께할 프로 겹의 도시 공주는요.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적 흐름이 모두 모여 있는 공주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특히나 오늘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세 분과 함께 겹겹이 쌓인 공주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주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멕시코에서 온 크리스티안 부르고스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를 축구 선수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사실 방송인 그리고 수어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에서 온 후지모토 사오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실 충청도 사람입니다. 대전살이 6년의 알파고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진짜로 알파고 씨가 지금 한국 분이신 거잖아요.
-귀화를 했어.
-귀화, 이분들은 이제 외국인이고.
-여권이 달라요.
여권이 달라요.
-우리 공항에 들어갈 때 이분들은 따로 저는 따로 라인이 따로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아까도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세 분이라고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이분들이 먼저 이 공주 곳곳을 탐방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각자 다녀온 곳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희들끼리 좀 얘기를 할 수는 없겠죠.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한국 역사를 자세하게 아는 사람.
-그럼요.
그래서 이분을 한번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함께하실 우리 최태성 선생님 어서 오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역사 길잡이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공주를 다녀오셨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공주는 진짜 독특한 곳입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모든 어떤 시간의 축들이 나란히 쌓여 있는 그런 곳이에요.
그래서 이 도시를 뭐라고 규정을 할까 고민하다가 제가 오늘 이 멘트면 좋겠다.
바로 겹, 겹의 도시 공주.
-삼겹살의 겹.
-같은 겹이다.
-시간의 겹, 그 겹의 도시 공주에 대해서 한번 지금부터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좋아요.
-공주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남한 최초의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면서 우리 역사의 시작을 다시 쓰게 만든 곳, 바로 공주
석장리 유적으로 먼저 떠나볼 텐데요. 크리스티안 씨가 다녀오셨잖아요. 어떠셨어요?
-아마 한국 사람들도 다른 나라를 비교하면 우리 역사가 좀 짧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구석기 발견함으로써 어, 잠깐만 우리 역사는 어떤 증거가 생기는 거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크리스티안 구석기 아나요?
-구석기는 인류의 시작.
-그렇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에서 구석기 유적이 이 남한 쪽에서 처음 확인이 된 유적, 공주 석장리입니다.
선사시대는 문자가 없으니까 땅을 파서 석기나 화석을 통해서 그 시대를 이해하죠.
그래서 여기는 1964년 처음 확인이 된 유적이에요. 저기 보실까요?
저 깃발, 저곳이.
-여기서 발견이.
-첫 발굴을 했던 삽을 떴던.
-그러네요, 그렇게 적혀 있네요.
-네, 한국 구석기 첫 발굴지.
-이 공주 석장리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진 우리나라에 구석기가 없었던 것 같아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생각해 보시면 알겠지만 역사는 길면 좋은 거잖아요.
그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 그거 굉장히 중요한 거잖아요.
일본에서 어마어마한 충격적인 고고학 사건이 하나 벌어져요.
그게 뭐였냐면. 그게 뭐였냐면 일본에, 일본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일본도 구석기 유적이 없다 보니까 그들도 나름대로 우리도 구석기 시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을 거 아니야.
그런데 드디어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이 됩니다.
이러면서 그 당시 언론에서 막 대서특필. 우와, 우리 일본에서도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긴 역사를 갖고 있다라고 막 대대적으로. 아, 여기 우리 사오리 있네.
-네, 저 일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거기 그 신문에 보면 정말 그때 구석기 유적이 발견됐다고 난리가 났었어요.
근데 충격적으로 일본 어느 기자가 그 구석기 유적을 발견한 그 고고학자를 추적을 해요.
-왜요, 왜요, 왜요?
-그 고고학자가 구석기 유적을.
-훔쳤어요?
-몰래 심은 거야.
-옳지 않았어, 옳지 않았어.
-왜 그랬어.
-그 역사를 갖고 싶었던 거지.
-갖고 싶었던 마음에.
-약간 만들어 내고 싶어서.
-이렇게 구석기 유적이야라고 해서 발굴을 한 거야, 이렇게.
팠더니 나온 거야. 근데 그 전날 밤에 와서 이미 다 심어둔 거죠.
그러니까 그만큼 역사가 길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을 거 아니에요.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지, 그렇지.
구석기 유물이 등장한 겁니다.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쁠까 .
-유레카.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그 도구, 도구는 뗀석기입니다.
크리스티안, 왜 뗀석기일까요?
-전 알고 있죠.
전 가 봤으니까 알고 있는데.
-좋아요, 대답 못하면 답을.
-알려주기 싫은데.
-까먹었어요.
-그러네요, 다 가능하겠네요.
칼, 망치 이런 거 다.
-정답.
-맞았어, 맞았어.
-잘 배웠다, 잘 배웠다.
-떼어낸 석기.
-떼어낸, 떼어낸, 맞아.
-떼어냈다 해서 뗀석기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뗀석기를 보면 알겠지만 돌멩이처럼 보여요.
근데 이게 과연 자연이 만든 돌인지, 사람이 인위적으로 해서 만든 돌인지.
근데 고고학자들은 딱 보면 압니다. 만들어지는 곡선이라든지 날카로운 날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사람이 만든 도구다. 그게 공주 석장리에서 발견이 된 거예요.
계속해서 이렇게 흙이 쌓이면서 올라오는 거예요.
이걸 지층이라고 하는데 지층을 보면 그 시간대를 알 수가 있어요.
중요한 건 뭐냐면 구석기로 추정되는 그 지층. 그 지층대에서 아까 이야기했던 그 뗀석기가 나왔다는 것이죠.
그걸 보면서 이 당대에 살고 있었던 동물들의 화석 그리고 그 동물들을 잡았을 그 도구가 같은 지층에서
발견되었으니까 그 시간대에 나온 도구를 통해서 이 시기에 사람이 만든 도구가 있었네. 구석기가 있었네,
이렇게 증명을 해내는 겁니다. -일단 그 모양 보면 날카롭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저도 궁금해요.
-날카로운 거.
-그러니까 우리는 오른손에 지금 뭘 들고 다녀요?
-핸드폰.
-휴대폰 들고 다니잖아요.
휴대폰 우리 조작 잘하잖아요. 그런데 그 휴대폰을 구석기인들한테 갖다주면 쓸까, 안 쓸까?
-못 쓰죠.
-못 쓰죠.
-전혀 못 쓰죠.
-이게 뭐야 이러고.
-구석기인들은 그거 갖고 이렇게 흙도 파고 그래야 되는데 파면 깨지겠죠.
쓸모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은 돌에 있어서만큼은 박사예요.
우리한테 지금 돌멩이를 주면요. 돌멩이를 이거 잘 못 다뤄요.
-와이파이 안 잡히죠.
-맞아요.
근데 구석기인들은 돌을 보잖아요.
그러면 그 돌의 결, 결을 정확히 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전혀 할 수 없는데 구석기인들은 결.
그리고 심지어는 손으로도 돌을 떼어낼 수가 있었대요. 결을 보면서. 맞아요.
옛날 사람들은 그 특이한 기술이 아니라 그게 삶의 어떤 생존을 위한.
-그러니까요.
어디 가서 배울 수도 없었잖아요.
-맞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근데 저는 생각이 드는 게 이렇게 어떤 고대 유적지 같은 데에는 항상 강이 좀 흘렀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도 금강이 있잖아요.
-맞아요.
-지금도 강 주변의 부동산 값은 비쌉니다.
-그러네요, 지금도.
-지금도 그러네요.
-여기 석장리에 가보시면 역시 마찬가지로 강이 있었을 겁니다.
금강이 이렇게 흐르면서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 것이죠. 맞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거군요.
-그렇죠.
-그렇죠.
-그 생활이 자꾸 쌓여지면서.
-겹, 겹, 겹.
-겹겹겹이 이제 만들어지는 거죠.
-그렇게 되는구나.
-맞습니다.
-근데 제가 알고 있기로 석장리 유적지가 또 영상으로 기록이 그렇게 잘 되어 있다고 하던데요.
-그런 영상이 남을 수 있었던 건 뭐냐 하면 그 석장리 유적을 발굴할 때 그런 모든 기록들을 아주 꼼꼼하게 기록해 놨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이 공주 석장리 유적을 발견하신 분이 누구냐면 손보기. 그 이름을 사실 참 재미있습니다. 손보기.
-손 보기예요.
그렇네요. 너의 길은 이곳이다.
-맞습니다.
그 손보기 박사님이 사실 이 공주 석장리 유적을 발견한 거예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의 시원, 출발을 쭉 늘려놓은 거잖아요.
사실 그전만 해도 우리 역사는 한 8000년 전부터 시작되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가 이 손보기 박사가 이
공주 석장리 유적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게 몇천 년의 역사가 아니라 수만, 수십만 년의 역사로 막 늘어난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대단한 겁니까?
근데 이때 이분이 그걸 발견할 때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발견되었는지를 아주 꼼꼼하게 정말 치밀하게 다 기록을 해 놓으셨어요.
그 기록의 흔적들이 어찌 보면 우리나라 한국 고고학 연구의 기준점이 되었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분이 계셨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또 구석기 역사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1500년 전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만나볼 차례인데요.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돼서 백제 역사의 비밀을 풀어준 왕릉이죠.
그리고 동아시아를 연결했던 국제적인 백제의 모습을 간직한 무령왕릉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오리 씨가 다녀오셨죠, 무령왕릉.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왔는데요. 일단 무령왕릉을 보러 갔을 때
1부터 6호까지 있더라고요. 그 이름이 없는, 아직 알 수가 없는 무덤을 그렇게 부르는데 그런 곳도 있는
줄도 모르고 무령왕릉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양하게 방마다의 구조가 있더라고요. 우와.
-6호 벽돌무덤이에요.
-안이 이렇게 커요?
-1호 무덤부터 이 6호 무덤까지는 도굴이 되어서 정확하게 무덤의 주인을 알 수가 없어요. 순서대로 1호, 2호, 3호.
-이름을 그렇게 붙인 거예요, 모르니까.
-네.
-맞습니다, 가카라시마.
-그런데 우리나라 왕인데 일본에서?
-그러니까요.
그래서 굉장히 약간 친근하게 생각했어요.
-백제의 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이런 얘기는 아마 잘 못 들으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무령왕. 무령왕은 재일동포십니다.
-팩트예요?
그건 맞아요?
-일본 역사서죠.
일본서기에 기록돼 있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전달해 보면 이런 내용이에요.
백제의 그 수도가 원래 어디였냐면 지금의 서울이었어요, 서울. 한성이라고 했는데 원래 백제의 수도는
거기였었는데 그 한성을 공격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면서 엄청난. 압박을 줬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어딥니까?
-기회 한번 드릴까요?
-하세요, 하세요.
-기회 한번, 기회 한번.
-하세요, 하세요.
-정답.
-정답.
-고구려.
-고구려, 정답.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몰랐으면 틀렸으면 어떡하나.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거 있어요.
수도를 한성이라고 하셨는데요. 원래 제가 알기로는 백제 수도는 부여였어요.
-너무 좋은 질문이에요.
제가 설명을 좀 드릴게요. 백제의 수도는 세 군데가 있어요. 첫 번째가 방금 이야기했던 어디?
-서울.
-서울, 한성.
두 번째가 어디?
-공주.
-바로 이곳 공주.
세 번째가 어디?
-부여.
-맞아요.
그렇게 수도가 바뀌게 되는데 그 고구려가 서울, 한성을 막 압박해 들어올 때 그때 왕이 누구였냐면 백제 개로왕이었어요.
-괴로왕?
-괴로워.
-괴로워.
-괴로워, 진짜 괴로워.
-이름부터.
-고구려가 자꾸 괴롭히니까 괴로워.
그 개로왕. 그런데 그 개로왕이 고구려가 막 밀고 들어오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일본하고 친하잖아요.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자신의 동생 곤지라고 있어요.
그 곤지를 보내,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는 거야. 자신의 아내, 그 아내를 함께 같이 보내요.
근데 그때 아내가 임신을 한 상태였어요. 가는데 산기가 온 거예요.
-그러면 진짜 아빠는 남아 있고.
-아빠는 여기 나라를 지켜야 되니까.
근데 산기가 오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서 섬으로 들어갔는데 거기가 바로 가카라시마.
거기서 무령왕이 태어났다라는 게 지금 일본서기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신기하다.
-그러니까 무령왕은 기본적으로 요즘 말로 얘기한다면 해외 물 좀 드신 분이야.
-멋있는데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어떤 국제적인 감각 이런 것들을 가질 수밖에 없겠다.
그러니까 백제를 보면 사실 백제를 한 단어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문화강국. 문화강국. 고구려를 한 단어로 얘기하면 군사강국. 힘이 세, 고구려는.
-신라는 외교강국?
-이야, 오늘 왜 이렇게 정신이 그냥 팡팡 도네.
오늘 상태가, 내가 본 상태에서 제일 좋아 오늘. 맞습니다.
백제를 얘기할 때는 문화강국이에요.
정말 문화가 너무 발달된 나라였는데 그 문화가 이렇게 개방적이고 열려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이 있는 그런 모습들.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 그대로 모방해서 따라하는 문화가 아니고
그렇게 들여왔던 문화를 백제식으로 재해석해서 보여주는 그런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데 사오리 씨가 무령왕릉에서 되게 인상 깊었던 게 많이 있었는데 또 중요한 거를 알아오셨다고.
-그 무령왕릉에서 지석을 많이 강조를 하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지석, 고급 단어를 이렇게 우리 사오리 씨가 이렇게 얘기를. 좋습니다.
-정말 구체적인 내용, 날짜까지 다 기록이 돼 있네요.
굉장히 중요하네요.
-혹시 경주에 다녀오신 분?
경주.
-경주, 경주 가봤죠.
-혹시 알고 있는 무덤 이름 한번 얘기해 볼래요?
-천마총.
-날아다니네요, 오늘 우와, 대박.
천마총. 경주의 무덤은 무슨 무슨 총이야.
그런데 오늘 우리가 지금 둘러볼 무덤은 뭐라 그랬죠?
-무령왕릉.
-릉이야.
왜 총이 되고 왜 릉이 될까?
-맞아요.
조선도 릉이고 이것도 지금 릉인데 왜 총일까.
-이거 오늘 하나 알아갑시다.
총은 그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는 거예요.
-아, 그러네.
왜 천마라는 말이 없잖아요. 그냥 천마총이지.
-그래서 그 무덤에서 나온 유물. 거기에 천마도가 나왔거든.
그래서 천마총 이렇게 하는 거야.
-아, 주인 알 수 없는.
-그렇죠, 그런데 릉이 들어간 경우는 그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을 때.
-그래서 무령왕릉.
-그렇죠, 그렇죠.
-유일하게 알 수 있던.
-그렇죠, 그거를 알려준 증거가 뭐다?
-지석이다.
-그렇지.
맞습니다. 정말 무령왕릉을 발견했을 때 언빌리버블.
우와, 뭐야. 지석을 본 거야. 봤더니 어머어머 웬일이야.
이 왕, 이 무덤이 누구의 무덤이고 이 왕, 그 누구가 언제 돌아가셨고 그 누구를 언제 장례했고 이 모든 게 기록돼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왕은 바로 무령왕릉이다라고 그냥 알아버린 거예요.
이게 또 어떤 의미가 있냐면 현존하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책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무엇일까요?
-가장 오래된 역사책.
-가장 오래된 역사책.
-역사책?
-역사책.
-이거 어렵지.
-삼국유사 아니에요?
-우와.
뭐라고요?
-삼국유사 아니에요?
-진짜 알파고가.
아니, 틀렸어. 틀렸지만, 틀렸지만.
-그건 뭐예요.
사람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걸 안다는 것 자체가 나는 너무 대단한 거야.
-정답, 정답.
-정답.
-삼국사기.
-정답.
-삼국사기, 맞아.
-살짝 헷갈렸는데 우리 알파고 씨가
하나를 아닌 걸 확실하게 알려주면서 제가. 대단하네요, 진짜.
-알파고 짱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 이제 삼국사기이고 그다음이 삼국유사예요.
근데 이 삼국사기는 사실 기록만 있잖아요.
근데 그 기록이 맞는지, 안 맞는지 솔직히 증명할 방법이 없잖아. 그렇죠?
근데 삼국사기에도 분명히 무령왕이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다라는 기록이 있어요.
근데 그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야.
-지석.
-그렇지.
-그래서 지석.
-그 지석에 무령왕릉이 태어나고 죽은 게 정확히 삼국사기도 똑같이 있는 거예요.
그건 뭐냐면 삼국사기 역사책이 그만큼 정확하구나라는 것을 그 지석을 통해서 딱 맞춰버리는.
-삼국사기가 사기가 아니네.
-삼국사기는 사기 아니다.
-잘한다, 알파고.
-아재개그, 아재개그.
-잘한다.
-저 아저씨예요.
-그런 어떤 역사적 의미가 이 무령왕릉에 있다.
주인도 알 수 있고 역사와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이게 이제 무령왕릉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사오리 그 무령왕릉을 이렇게 둘러보면서 뭐가 눈에 들어오던가요?
-일단 들어가자마자 중국의 도자기.
도자기나 그리고 일본의 금송도 있고 그리고 제일 처음 신기했던 게 그 벽돌도 중국의 양나라에서 인꽃무늬?
-연꽃무늬.
-연꽃무늬라든가 좀 굉장히
구체적이더라고요.
-너무 잘 보고 왔다.
대단하다, 진짜.
-당시에 이럴 수가 있을까.
-오늘 출연료 받아도 되겠어요.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너무 잘 설명했는데 맞습니다.
지금 사오리가 보고 온 그 무령왕릉 안에는 백제만 있는 게 아니고요.
그 안에 중국도 있고 일본도 있고 동아시아의 문화가 다 들어가 있는 거야.
예를 들면 아까 지금 그 금송 있잖아요.
저는 일본은 나무의 나라라고 저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일본 같은 경우는 탑도 나무로 만들지 않습니까? 그렇죠?
목탑이잖아요, 목탑. 그렇죠.
그 일본에 있는 금송 이건 우리나라에 없어요.
일본에 있는 금송을 가지고 와서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 관. 그 관을 만든 거예요.
그게 있으니까 일본과 교류할 수 있죠.
그리고 그 무령왕릉의 무덤 형식이 벽돌 모양의 어떤 무덤인 거예요.
이거는 중국 양조의 양식이거든요. 그러니까 중국과의 교류도 했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정말 중국과 일본 이 동아시아의 모든 문화가 담겨져 있다.
그러니까 무령왕릉을 딱 보면 백제의 어떤 국력이라든지 외교력이라든지 문화 이 모든 것들을 그냥 그곳에 가면 그냥 다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백제의 왕도인 공주를 지켜낸 곳.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서 시대마다
중요한 순간을 항상 함께했던 곳. 공주의 시간을 가장 입체적으로 품고 있는 공산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사오리 씨가 다녀오셨죠?
-다녀왔습니다.
여기에 피난을 오고 그때 약간 인조의 마음이라든가 좀 그런 것도 생각하게 되고 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그 긴 시간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뭉클한 마음 들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맞아요.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것 때문에 그곳에 공산성이 있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올라가자마자 예쁘다가 아니라.
생각보다 진짜 넓네요. 우와, 경치는 예쁘지만 무섭지만. 사실 일본에서도 이런 산성들도 있어가지고
낯설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조금 달라요. 여기가 어디게?
공산성이에요. 높은 데로 왔어요, 공산성.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백제의 수도는 어디에서 출발했다?
-한성.
-한성.
그곳은 지금의 어디다?
-서울.
-서울, 그러다가 누가 쳐들어온다고 그랬죠?
-고구려.
-아이, 잘한다.
맞습니다. 이 고구려가 쳐들어오면서. 그곳이 어디였다?
공주, 바로 여기였던 거예요. 조선시대에도 병자호란의 임금이 누구였냐면 인조였습니다, 인조.
그 인조가 인조반정을 일으켰을 때 쿠데타를 일으킨 거죠, 쉽게 얘기하면. 자기의 공을 왜 인정해주지
않느냐 불만을 가졌던 이괄. 괄괄괄, 이괄이라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 이괄의 난 때 인조가 급하게 도망을 친 거야. 어디로? 공산성으로.
왜 그랬을까?
그 답을 아까 사오리가 한 거예요.
-무서우니까.
-맞습니다, 맞습니다.
일단 그 앞에 올라가니까 뭐가 이렇게 쭉 흐르고 있죠?
금강이 흐르고 있잖아요. 이 강만 봐도 뭐냐. 천연의 그냥 요새잖아, 지금. 그렇죠?
그 뒤에 또 산으로 잘 둘러싸여 있고요.
정말 왜적이 쳐들어오기 어려운 그런 아주 천혜의 요새가 바로 공산성이었습니다.
-공산성이 뭔가 이렇게 말씀하시고 보니까 뭔가 늠름해 보이고 백제시대에는 어떻게 됐는지
조선시대 때는 어떻게 됐는지 이걸 다 보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공산성을 둘러 보니까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제가 꼭 경험해 보고 싶어서 만들고 왔어요.
-직접 뭘 만들고 오셨다는 거예요?
-짜잔.
-인절미야, 인절미.
-사오리가 만들었습니다.
-하나씩 맛 좀 봐요.
-실제로 그 절구질도 했어요.
-떡 이렇게 해서.
-옛날 사람이 이렇게 막. 옛날에 하면서 풀렸구나 하면서.
-아주 잘 오셨어요.
-맞아요?
-네.
-그런데 이게 아직 떡 아니고 밥인데요.
-한번 같이 만들어 볼까요?
-네, 저도 하고 싶어요.
이게 스트레스 풀리겠는데. 옛날 사람이 엄청 많이 스트레스 이걸로 이렇게 딱.
-그러니까요.
-파이팅.
-파이팅.
-귀여워.
짠, 잘 먹겠습니다. 진짜 약간 자연의 맛이네요.
-맛있죠?
-너무 맛있다.
-크리스티안 맛이 어때요?
어떤 맛이에요?
-많이 했나 봐.
-잘 만들었네.
-공산성에 가면 저 인절미를 꼭 한번 드시고 오셔야 해요.
-잘 만드셨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요.
뭐냐 하면 아까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가 급하게 이곳 공산성으로 피신을 온 거예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이게 먹을거리들이 좀 잘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였던 거예요.
-꼬시려고.
-그 떡이 바로 인절미였던 거예요.
이 떡이었던 거야. 그걸 이제 뭐라고 하냐 하면 절. 왜 멋진 경치를 보면 절경이다.
아름다운 미인을 보면 절세미인이다. 뭐 그런 이야기 한단 말이야.
절 자는 정말 최고를 얘기하는 거거든요.
정말 맛있다. 미 자가 뭐냐면 맛있을 미. 맛 미 자거든. 절미다, 절미다.
이 절미, 이 떡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이제 물어본 거예요.
그런데 그때 신하들도 사실은 몰랐어요.
어느 여인이 만들어 온 거니까. 그래서 글쎄요.
이게 여기 이 동네 임 씨가 만들어 온 겁니다. 그런 거예요, 임 씨가. 그래?
임 씨가 만든 그 맛있는 떡. 임절미라고 하자라고 해가지고 임절미가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인절미 이렇게 되었다라는 썰이 있습니다.
진짠지 아닌지 사실 기록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흘러 내려오는 이야기란 말이에요.
하지만 음식 하나에도 바로 이렇게 역사가 담겨 있고 참 힘들었던 시대에도 그 넉넉한 인정이 또
담겨 있는 그런 따뜻한 이야기가 이곳 공산성에 담겨 있다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이 동학이 일어나야지 민족의식이 생기는 건데.
그냥 이렇게 책에서 공부를.
-보기만 했던.
-이번에 와서 그 일들이 벌어졌던 장소에서 눈으로 보니까 좀 약간 좋았습니다.
-조선은 양반, 그러니까 붓의 나라.
공부하시는 분들. 그다음에 중인은 전문 기술직. 그다음에 상민은 농사짓는 분들. 대부분의 백성들은
상민. 천민은 소 잡고 돼지 잡고 이런 백정들. 이렇게 신분제도가 만들어져 있었어요.
이 신분제도를 끝내야 된다라고 해서 나온 종교가 있었는데 그 종교가 바로 동학입니다.
이 동학은 뭘 내걸었냐면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님이다. 우리 모두는 다 하늘님인 거예요.
하늘님을 어떻게 함부로 대해. 하늘님 대하듯이, 하느님 대하듯이 정성을 다해서 존중해야 된다.
그게 바로 동학입니다. 이 당시가 19세기였는데 그 19세기가 정말 부정과 부패와 그냥 탐관오리들의
그 만행이 상상을 초월했어요. 그럼 누가 제일 피해를 봐?
-백성들.
-백성들이 제일 피해를 보겠죠.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사람이 하늘이다라고 하는 평등사상을 외쳤던 이 종교 동학이 이런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자라고
일어났던 운동 그게 바로 동학농민혁명입니다.
충청도, 전라도 이 농민들.
-전국에서.
-이 세상은 썩었고.
정부 군대 있죠, 정부 군대.
-시스템이랑 싸우는.
-싸움이 돼요, 그래도 있잖아.
근데 이겨요.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하고 황룡촌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어딜 들어갔냐면 전주성에 들어가요.
전라도의 제일 중요한 전주와 나주 중에서 전주를 동학농민군이 점령을 한 거예요.
그런데 이 전라도가 어떤 곳이냐면 우리나라에서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에요.
-40% 거의.
-목줄이야, 목줄.
근데 그게 농민군 손에 들어가?
이건 충격이죠. 반만년 역사에 이런 적이 없었던 거예요.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때 정부에서 도움을 요청한 거야.
중국 청나라한테. 그러자 중국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들어오는데 그때 어디도 들어오냐면 일본 군대도 들어오는 거예요.
청나라 너희들이 뭐 가서 뭘 다 할 순 없지. 우리도 할 거야.
일본 군대에 들어왔는데 일본 군대가 들어와서 동학농민군은 지금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있잖아요.
이쪽이 온 게 아니라 일본 군대는 서울 경복궁으로 들어가요.
왜 갔을까? 왜 갔을까요?
-왜 갔을까요?
-경복궁에 누가 있어요?
-왕.
-왕이지.
-그렇죠, 바로 왕.
고종을 사로잡기 위해서. 청나라가 들어오고 일본도 들어와서 청일전쟁이 벌어질 것 같으니까 정부에서도
자칫 잘못하면 국내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전주성을 점령하고 있었던 농민군들하고 화해를 해요.
그게 뭐냐면 전주화약이라는 거야. 이 전주화약을 통해가지고 농민군들의 어떤 욕을 들어줄 터이니 일단 지금은 우리가 싸울 때가 아닌 것 같다.
자칫하면 지금 청나라, 일본이 여기서 싸운다, 지금. 그래가지고 농민들이 자신들의 어떤 그 개혁을 하기 위해서 집강소라는 걸 설치를 해요.
그래서 개혁을 해. 근데 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거야.
일본이 우리 왕을 잡아?
농민군들이 참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나라를 구하러 가자. 그 이전까지는 사실은 이 부패한 이 조선사회를 바꿔보자라고 출발했는데 이제는
바로 경복궁을 점령했던 일본의 소식을 듣고 나라를 구하러 가자라고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일본이 있는 그 서울을 향해 가는 거예요.
그곳이 어디였냐면 바로 공주 우금티였던 거예요.
이 공주로 들어오면 이제 서울로 나갈 수 있는 그 길이 쫙 뚫리는 거예요.
고속도로처럼 뚫린다고 보시면 되는 거예요.
-이 고개 우금치를 우금치라고도 부르고 우금고개라고 불러왔습니다.
공주에서 원래 불러왔던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던 130여 년 전에 원래 불러왔던 명칭이 우금티였고
그래서 명칭을 우금티로 공식적으로 이렇게 확정을 했습니다.
평양 이남에서 전국적으로 봉기했을 때 가장 큰 세력은 전라도에서 일어난 남접 동학농민군, 전봉준 등의 세력이죠.
-정말 왜냐하면 이 동학농민군의 그 기세가 어마어마했거든요.
그래서 그 동학농민군이 몰려오기 전에 이미 그 공주 우금티에다가 기관총을 걸어놨어요.
기관총. 거기에 그 기관총이 걸려 있는데 그 밑에 정말 5만에서 10만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농민군들이 모여 있었던 거예요.
무서웠을까, 안 무서웠을까?
-무섭겠죠.
-무섭죠.
-무섭죠, 당연히 무섭죠.
그래서 너무 무서우니까 여기다가 그 부적이라고 있어요.
부적을 달았대요. 그 부적을 달면 총알이 피해 나간대요.
그러니까 얼마나 무서웠던 거야. 뛰어 올라오고 있는 동학농민군을 향해서 일본의 기관총에 불꽃이 당깁니다. 500여 명의 일본군. 많지도 않아요.
여기는 5만 명, 10만 명이야. 결국 우금티를 넘지 못하고 동학농민군은 더 이상의 전진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죠.
그 공주 우금티에서 그 기관총을 바라보고 있는 그 농민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아버지들이었을 거예요. 그렇죠?
그분들이 왜 그 우금티를 기어이 넘고자 했을까?
그 꿈은 뭐냐면 이 우금티를 넘어야만 양반, 주민, 상민, 천민이라는 그 신분제 이 신분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외국 세력도 물리칠 수 있는 거거든요.
다들 손 잡고 마음껏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꼭 물려주고 싶다는 그 꿈. 그 꿈 하나로 그 부적 하나 달고 그 우금티를 향해서 올라갔던 거예요.
사실 이 동학농민혁명이 어찌 보면 실패했다라고 볼 수 있겠죠.
바로 그 해에 우리 역사상 어마어마한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그게 바로 1894년 갑오개혁. 이 갑오개혁의 역사적 의미는 뭐냐면 몇천 년간 내려왔던 그 신분제가 법적으로
폐지가 되었다는 사실. 즉 그들은 실패한 듯하지만 성공한 거죠.
-그래서 지금 저희가 이렇게 평등한 세상을 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독립을 하는데 또 이렇게 맞는 선택이었는지 어떻게 그게 나중에 알아요.
그 당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그래서 약간 그것 때문에 지금 그 생각에 좀 빠져 있어요.
우리 덕분에 살고 있을지,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지는.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우리 크리스티안 씨가 보고 오셨는데 떡을 드시고 계셨네요.
-너무 맛있어.
-절미로다, 절미로다.
-절미구나.
-이번에 제가 가서 보니까 공주랑 굉장히 중요한 인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공주에 이 동상이 있게 된 이유가 유관순 열사가 영명학교를 다니다가 그 사애리시라는 선교사 선생님의
추천에 의해서 이화학당으로 가셨고 이화학당에서 공부하시다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활동 중에 하나로
만세운동을 하시다가 잡혀가서 돌아가셨는데 이제 그걸 기리기 위해서.
-있어요?
-최근 발견된 건데 앞에 보시면 비교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거기 보면 유관순 사진과 어릴 때 사진을 비교해 가지고.
-추정이죠?
-네.
-그러니까 이 천안에서 이렇게 살다가 되게 똑똑했나 봐요.
그러니까 외국인 선교사가 눈에 띈 거야.
-영특하구나 이 아이.
-저 친구를 좀 이렇게 성장을 시켜봐야 되겠다라고 해서 데려온 곳이 바로 이 공주 영명학교입니다.
근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제 강점기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꿈이 공통적으로 나오는 게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이 식민지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를 공부를 통해서 꿈꾸게 된 거죠.
그 안에 유관순도 있었던 것이죠.
-그렇죠.
-교육을 가르칠 때도 토대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임진왜란 알잖아요. 그 일본이 쳐들어왔던 전쟁. 그때 어디가 무너지냐면 충주가 무너져요.
충주와 청주잖아요. 근데 그 충주의 그 기능이 약해진 거예요.
그럼 또 하나의 도시가 필요할 거 아니야. 그게 바로 공주였던 거예요.
공주목, 목이 들어가는 데는 중요한 도시라는 얘기예요.
공주목이 설치된 곳이기도 했고 관찰사가 머무는. 관찰사가 머무는 곳이 아까 얘기했던 그 주요 도시들이거든요.
이곳에 설치를 한 거예요. 충청감영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설치가 됩니다.
그래서 그때는 충청도가 아니라 공청도라고 불렸어요, 공청도라고. 왜냐하면 공주가 중요한 곳이 됐으니까.
조선 후기는 그래도 공청도. 이렇게 되면서 이 공주는 이 충청도 일대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그런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또 우리나라는 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거든요.
자연스럽게 신식 교육, 근대식 교육이 이곳 공주에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인재들이 모이는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저희가 있는 이곳이 하숙마을 옆에 있기도 하고 또 아름답게 제민천이 흐르기도 해요.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기숙사 시설이 거의 없었어요.
공부를 하면 이제 먹어야 되고 자야 될 거 아니에요.
근데 학교에는 기숙시설이 없는 거예요.
그럼 자연스럽게 학교 밖, 하숙. 그걸 하숙이라고 하는데 학교가 많아 그 주변에 하숙집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이 근처를 지금 우리는 하숙마을이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너무 낭만적이잖아.
-나태주.
난 되게 마음에 드는 게 여기 항상 이름이 있는 게.
-이름표?
-왜냐하면 멕시코 교복도
다 이름이 없어.
-서양에는 없어요.
-서양에는 없어.
-중동에도 없고.
-좋아하면.
-심장에 가까운 버튼을
좋아하는 여자한테 주는 거야. 이거 하나밖에 없잖아.
-그렇지.
-줄을 서는 거지. 이게 약간 몇 학년마다 좀 다른가?
-와, 향이.
공부의 향.
-히노키 같은.
공부의 향.
공부의 향이.
-배움의 향.
-기숙사 문화가 중동에서 오래 돼 가지고 자더 기숙사 학교에서 졸업했어요.
-아니요, 멕시코는 그런 개념은 아예 없고 대학교 다녀도 그냥 각자 이렇게 집에 살고.
-각자 집에서 어떻게든 가는 걸로.
-이렇게 같이 하는 문화가 잘 없어요.
-일본은 좀 비슷한 문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일본은 약간 기술전문학교나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같이 사는 그런 기숙사 그런 개념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많이 들은 적은 없어요.
-그만큼 공주가 또 특별한 매력이 있는 그런 도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주는 정말 인재를 키워내는 그런 곳이었지만 그 인재가 미래를 만들었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이 공주는 미래를 만들어 낸 그런 첫 페이지를 열었던 그런 도시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우리가 한번 정리를 한번 해보면 공주 석장리. 거기서 그냥 돌을 갖고 땡땡땡땡 깨면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다음에 우와, 이 공주 무령왕릉을 통해가지고 정말 문화 강국, 국제
교류의 어떤 면모를 보였던 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그다음에 조선시대 때 우리 이렇게 맛있는 인절미를
먹으면서 사람의 어떤 그 정, 따스한 정을 또 느낄 수 있는 어떤 그런 공간. 우금티를 통해가지고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 누구나 다 평등한 세상, 자유를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꿈꾸면서 우금티를
올라갔던 이 사람들의 모습들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고 또 유관순과 정말 이 많은 학교의 학생들이
새로운 시대를 꿈꿨던 그런 모습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그 모습을 관통하고 있는 그 하나의 정신은 뭐냐면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살만한 세상을 꿈꾸면서 이곳
공주의 역사가 흘러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그 시간의 겹이 켜켜이 층으로 쌓여 있는 겹의 도시구나.
그곳이 공주구나라는 것들을 오늘 여러분들이 한번 여행을 해보십니다.
-여러분 덕분에 정말 공주의 이 겹의 역사를 저희가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역시 최고 최고 최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