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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클래스 - 무대로 말하다 윤정환, 한국 공연계를 뒤흔든 <난타>

등록일 : 2025-12-24 17:29:55.0
조회수 : 68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이가연입니다.
-이가연 아나운서. 이가연 아나운서는 공연 같은 거 많이 보세요?
-뮤지컬 너무 좋아하죠.
-뮤지컬 좋아하세요.
-유명한 게 너무 많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뮤지컬 하면 오페라의 유령부터 시작해서 레미제라블도 캣츠 그다음 미스 사이공
최근에는 국내의 창작 뮤지컬도 해외에서 수상도 하면서.
-맞아요.
-많은 분에게 그야말로 대세라고 손꼽히고 있고 요즘 또 너튜브 같은 데 쇼츠 보면
시카고에 나왔던 한 장면들이 패러디되고 막 이렇게 하면서 많이 이슈가 되는 것 같아요, 뮤지컬이.
-맞아요.
요즘 들어서 또 국내외에서 상을 많이 받으셨고 또 얼마 전에는 토니상을 수상한 어쩌면
해피엔딩 같은 영웅 명성황후 같은 우리 작품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진짜 우리의 이야기, 한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더욱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래서 오늘 탑클래스에서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연출가분을 한번 만나보려고 합니다.
-정선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우리 윤정환 연출가를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저희 탑클래스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한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극단 산의 산지기를 하고 있는 작가 겸 연출가 윤정환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연출가님.
-오늘 나와주신다고 해서 제가 어떤 작품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연출가님의 그동안 작품들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왜요, 왜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작품들을 많이 하셨고.
-맞아요.
-심지어 제가 많이 봤던 그 작품들도 해 오셔서 굉장히 많이 놀랐습니다. 어떤 작품 하셨는지 먼저 여쭤봐도 될까요?
-작품으로는 연극을 주로 많이 했고요.
한국에서는 제가 공부할 때나 이럴 때는 뮤지컬을 배울 수가 없어서 오페라의 유령이나 캣츠
이런 것들이 한국 들어왔을 때 한국 연출을 담당했었고요.
창작 뮤지컬도 했었고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도 공연되고 있는 난타도 했었고요.
-난타.
-난타.
-한 20년 넘게 해 왔던 것 같아요.
-난타는 전용 극장도 생겼었잖아요.
-그렇죠. 난타는 코로나 때 잠깐 힘들기는 했지만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전용 극장도 생겼었고.
-그럼요.
-그런데 그때 저는 안 했고요.
-그러시구나.
-저는 완전 처음에 했던 연출이고.
-저는 난타 저희 세대는 공감하실 거예요. 난타를 거의 대부분 학창 시절에 많이 봤었거든요.
-저도인데?
-그렇죠. 그러니까 필수 코스예요.
-맞아요.
-그러니까 난타 공연을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본다거나.
-그렇죠.
-그러한 경우도 많았고 난타를 보고 와서 집에서 칼 가지고 하다가 도마 여러 개 작살 냈죠.
엄마한테 등짝 맞고. 그랬던 기억이 나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난타를 또 하셨다고 해서.
-그렇죠, 추억의 난타.
-말씀하셔서.
-그렇습니다.
-또 워낙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하셔서 제가 당연히 도시 출신이시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또 태백 출신이시더라고요.
-고향이 태백이십니까?
-태백에서 나고 자랐고요. 중학교까지 거기에서 다녔고 그리고 고등학교를 춘천으로 왔다가 서울에서 졸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태백에 계셨으면 어렸을 때는 연극 공연이라든가 뮤지컬이라든가.
-그러니까요.
-이런 걸 접할 기회가 그때 저희가 어렸을 때는 인터넷도 발달돼 있는 것도 아니고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없죠. 없었고요. TV도 없었으니까 어릴 때는.
-TV도 없어.
-TV도 없었어요.
-TV도 없었다고요?
-TV를...
-라디오...
-저보다 훨씬 그러면 이전 세대는 아니실 거잖아요.
-그러면 TV가 없었으면 어떻게 접하셨어요?
-TV는 옆집 가서 봤죠. 옆집 가서.
-그러니까 TV가 없는 시대가 아니라.
-그렇죠.
-그렇군요.
-그래서 저희 집에 TV가 없었고 한 초, 중학교 2, 3학년 되어서 생겼던 것 같고.
-그렇구나.
-그리고 태백에서도 저는 또 더 산골이거든요.
그래서 정말 문화를 접할 기회는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또 이렇게 뮤지컬을.
-그러니까요. 뮤지컬의 꿈을 어떻게 키우셨는지 모르겠어요. 그 시작이 언제였던 겁니까, 그러면?
-1학년 말에 서울로 전학을 간 뒤에 제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전학 간 날 대학로를 가봤어요, 궁금해서.
그때 연극을 처음 보고 연극이 재밌구나. 그래서 연극을 공부해 볼까?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하게 된 거예요.
-실제로 연극 처음 하실 때는 많이 힘드셨죠? 어떠셨습니까?
-지금도 힘들죠. 지금도 연극은 힘들고요.
-지금도...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제작비를 방금 학교를 졸업한, 금방 학교를 졸업한 사람한테 누가 제작을.
-안 맡기죠.
-맡기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삼삼오오 모여서 자기들 돈을 들여서 하고 있는데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보통은 무대에 서다가 연출가로 탈바꿈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처음부터 연출가가 꿈이셨던 겁니까?
-원래는 극작가로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셨구나.
-어릴 때 놀 게 별로 없으니까 그때는 책을 좀 본 것 같아요.
지금은 잘 못 보는데 그러다 보니까 글쓰기반을 해서 학교 다닐 때 문예부를 하면서 글에
취미가 있다가 웃긴 이야기인데 시를 공부해 보고 싶었는데 연극을 보니까 연극이 훨씬 재밌더라고요, 시보다.
-좀 더 역동적이고.
-맞아요. 연극이 또 어차피 희곡에서 출발하니까.
-그렇죠.
-문학이거든요. 책을 무대에다 올려놓는 거니까.
-혹시 또 처음 연출하셨던 뮤지컬 어떤 작품인지 기억나세요?
-제가 데뷔를 한 게 난타예요.
-난타로 데뷔하셨어요?
-데뷔를 한 게 난타라서.
-그럼 데뷔부터.
-정말.
-완전 초대박이 났겠네요.
-그렇죠. 대박이었는데요. 그때는 그런 공연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때거든요.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막 마지막 학기를 할 때인데 대학 4학년 때 한 거거든요, 시작을.
군대 제대하고서 그런 공연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학기 수업을 다 해놓고.
학점을 먼저 받아놓고 빨리 밖에 나가야지 않고 있을 찰나인데. 광고에 신문에 나왔어요. 연출부를 모집한다고.
-난타라는 공연이 있는데.
-하려고 하는데.
-하려고 하는데 연출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편지를 보냈던 것 같아요, 회사의 담당자한테. 그래서 와보라고 해서.
-낭만적이시다, 이메일 아니고 편지.
-편지를.
-그때는 이메일 없었을 거예요.
-그래요?
-그렇죠, 이메일 없었죠? 그때는 우편 엽서 접수하는.
-죄송합니다.
-그래서 와 보라고 해서.
-참조, CC 이런 거까지 있을 줄 알았는데.
-갔었는데.
-굉장히 어린 척을 많이 하죠.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알 것 같은데.
-그래서 하게 됐어요. 일손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연극 공연은 아니고 약간 퍼포먼스 공연 같은 느낌인 거잖아요.
-그래서 처음 올라갔을 때 연극계에서는 사실 인정을 안 했어요.
이게 무슨 연극이냐. 연극이라고 그렇죠. 연극은 아니죠, 사실. 장르가 많이 다르니까.
그런데 2000년 넘어가서는 워낙 관객도 많고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러니까 자연이 괜찮은 공연으로 흡수가 된 것 같아요.
-그렇죠, 난타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약간 반응들이 의아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난타라고 해서 공연을 앞두고 저거는 칼로 도마 치고 있고. 저게 뭐지 이랬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97년 10월이 초연이에요, 97년 10월이. 그때가 대한민국이 IMF거든요.
-맞아요, 제가 97년생이어서 그때 알아요. IMF.
-웃어도 되는...
-그럼요. 저도 나오고 IMF도 터지고.
-그렇구나.
-나이를 굉장히 자주 강조하시는데 이유가 뭡니까?
-팩트, 팩트를 말씀드린 거죠.
-팩트죠.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낳으셨네.
-난타와 함께 탄생하신 거네요.
-난타. 난타와 친구네요.
-그러네.
-난타랑 동갑이니까.
-마이 프렌드.
-그런 어려운 시기다 보니까. 저희가 저렴했거든요, 공연 관람료가 그때 당시.
-그때 사랑의 티켓 이런 것도 있지 않았어요?
-그런 것도 있었죠.
-사랑의 티켓.
-맞아요.
-관객들이 와서 연극하면 되게 철학적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고 진중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들이 많죠.
그런데 이거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와서 1시간 20분 정도 즐겁게 놀다가면 되니까.
-맞아요.
-아마도 어려운 시기에 스트레스 해소가 됐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그리고 저희가 관객들도 되게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끔.
-그렇죠.
-아예 공연 플랜을 짜놨기 때문에 객석에서 일어나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아마도 관객들을 위로하게 했던 것 아닐까. 그러면서 좋아지고.
-같이 즐기고 스트레스도 풀고 그렇죠?
-그랬던 것 같아요.
-난타 공연을 지금 그러니까 활동 중인 유명한 영화배우 중에서도 난타 공연 출신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렇죠. 지금 김원해 배우나 류승룡.
-그렇죠.
-정말요?
-장혁진 뭐 이 세 사람이 다 저랑 같이했던 사람인데. 사실 말도 없는 공연이거든요, 그 공연은.
-대사가 없죠.
-대사가 없는.
-그러면 헤이, 헤이 이런 것만 하고.
-하이, 다닥. 허이 짜. 이런 것만 하고.
-그거 입에서 나는 소리예요?
-두구두구 탁탁. 그거 다 입에서 나는 소리예요, 몰랐어요?
-진짜 입에서 나는지 몰랐어요.
-뭘 입에서 나요.
-그 배우들이 사실 개국공신인 거죠. 지금도 연락하면서 지내고.
-친하시고.
-김원해 배우는 그 이후에 저희 극단 연극을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고.
-그러시구나.
-오늘도 연습하고 있을 거예요. 제가 연습을 하다가 온 거라서. 제대로.
-엄청 소중한 인연이 함께하고 계시네요.
-그럼요.
-사실 난타가 뮤지컬 K-뮤지컬의 뭔가 시초 같은.
-맞아요.
-뮤지컬인데 다른 나라에서도 공연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제가 들었어요.
-제일 처음 갔던 것만 저는 기억하는데 97년에 시작했고 99년에 외국을 처음 갔어요.
-2년 만에.
-그렇죠. 그래서 97년에 처음으로 간 게 뉴욕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공연의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그거를 점검하려고 뉴욕에서 한 달간 워크숍도 하고 시범 공연도 하고 그리고 바로
99년 8월에 에든버러 축제,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에서 한 달간 공연한 게 첫 해외 공연이에요.
그게 그 이후에 난타는 전 세계를 다니게 된 거죠.
-그거를 시점으로.
-그리고 99년에 갔다 와서 저는 그만두었기 때문에.
-많이 힘드셨나 봐요.
-아니, 연극도 해야 하고 말 없는 거 했으니까 말 있는 것도 해야 하죠. 제가 그게 데뷔작이라서 말도 하고 싶어서.
-그렇죠.
-그렇습니다. 처음 맡은 연출작이 소위 말해서 초대박이 나면서 그런데
바로 방금 말씀하셨던 이어진 공연이 큰 화제를 모았던 연극, 짬뽕이라는 연극인데.
드디어 여기에서 말을 하기 시작하시죠. 짬뽕이라는 연극을 혹시 모르시는 분도 계실 수 있으니까 어떤 연극인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짬뽕은 5.18이 짬뽕 한 그릇 때문에 일어났다는 이야기예요.
사실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련하신 분들은 화가 나실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그거는 사실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어쨌든 발상이 그렇게 출발하는 거고 그래서 실제 광주의 사실과 만나질 때 더 충격이 커지는 거죠.
광주 5.18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로 만든 작품이고 아마 그렇게 코미디로 광주를 접근한 게 그 작품이 처음이고 신문에서도.
-그렇죠.
-언론에서도 많이 나왔었죠.
-쉽게 그렇게 손댈 수 없는 소재고.
-그렇죠.
-굉장히 다루기 어려운 주제와 소재를 포함하고 있어서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습니까?
-그 작품은 2002년에 썼어요. 2002년에 썼는데.
-직접 대본을 다 쓰시고 무대에 올리시는 거죠?
-그래서 몇 개 극단들이 하려고 했지만 당시만 해도 5.18를 그렇게 다루는 게 정말.
-그렇죠.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너무 비극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맞아요.
-그래서 다들 꺼려 했고 2년 뒤에 제가 직접 하게 된 거죠. 그런데 저희 극단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 극단 창단 공연 때 제가 그 작품을 썼어요.
그래서 그런 다른 데서 어렵다면 우리가 직접 해보자 해서 제가 직접 하게 됐고.
-그랬을 때는 보통 계기가 있잖아요.
내가 이거를 대본화시켜서 무대 위에 올려보겠다고 생각을 먼저 미리 하셨을 텐데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쓰게 되신 겁니까?
-2002년에 극단을 만들고 5월에 대학로에서 연극하고 있었어요, 창단 공연을. 2002년 5월이면 어마어마할 때죠.
-월드컵.
-월드컵.
-그날은 이렇게 관객이 없구나. 조금 의기소침해 있는데 같이 일하던 PD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월드컵 예선이지 이 정도였는데 5.18이었어요, 그때. 오늘이 5.18이라고 이야기한. 너는 5.18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철학적인 질문을.
-그래서 저는 제 스타일대로 코미디지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그래요?
-형이 그럼 그렇게 한번 써 봐. 그게 시작이었어요. 대학 때 저도 5.18 영상을 봤고 그랬는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죠.
-진짜 어디 코미디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상도 못하는 일들이라고 보죠.
-저는 코미디언들을 되게 높이 평가하거든요.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해내니까.
-맞아요.
-그 안에서. 그거는 진짜 코미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대답했는데 그런데 그게 우리 현실이었잖아요.
형이 사실 광주가 잘 안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때만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조금 더 그것을 알 수 있게 써보면 어떠냐.
네가 그걸 한번 해봐라. 그래서 쓰게 된 거예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공연을 했었는데 올해 5월까지도 공연을 했었다고 제가 들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이 과연 뭘까요?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
-진짜 어렵고 심오한 질문이네요.
-제가 그냥 그 질문을 많이 받기는 해요.
-그렇죠.
-연극 때 많이 받기는 하는데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광주를 담은 또는 저희 짬뽕의 이야기들이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또는 크고작은 일들 중에 비슷한 사건들이 있고 그리고 저희는 영웅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그 작품은 그냥 평범한 소시민을 다루는 작품이기 때문에 또 편안하게 보실 수 있지 않나.
그리고 5.18이 아니더라도 와서 보시면 극 안에서도 개연성 있게 사건이 진행되면서
그냥 그 자체로도 즐길 수 있기 때문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연극은 그 안에 내제되어 있는 의미가 있고 관객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잖아요.
짬뽕 같은 연극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 주시려고 했던 것일까요?
-사실 5.18은 역사적으로는 책을 보면 되고 사실을 찾아보면 되잖아요.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이 꾸던 꿈과 희망들이 국가 폭력에 의해서 무참히 밟힌 그 상황이 그게 너무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그 상황이 좀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코미디로 접근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던 거고요.
그 상처들을 안고 사는 그 사람들의 아픔 그거를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마지막 대사 중에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중에 그들이 소풍 가서 제일 즐겁게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을 찍고 사진에서 빠져나오면서 한 25년이 흘러요.
무대 위에서. 그 주인공의 첫 대사가 나도 그때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그 사람은 그날 이후 살아온 지금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인생을 산 거잖아요.
그런데 그 원인이 또 국가예요. 나를 보호해야 할. 그 아픔이 같이 나누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그렇죠. 다른 작품도 연출 많이 하셨잖아요. 집필하신 작품도 굉장히 많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중에 어떤 작품이 있었는지 소개 좀 부탁드릴까요?
-사실 연극은 많이 모르시니까 가장 최근에 지난주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나 했어요.
나운규라는 우리나라 영화 감독 아실 건데 나운규의 아리랑이 만들어지던 과정을 연극으로 만든 작품인데
연극과 영화와 영상 기법이 다 합쳐진, 합쳐져서 나운규가 영화를 만들 때를 무대에서 재현해 보는 그런 연극, 비욘드 아리랑이라고요.
그 작품을 얼마 전에 있었고 또 2년 됐는데. 그리고 또 비슷하게 아리랑의 콘셉트인 작품인데 비밀의 노래라는 연희 음악도 뮤지컬이에요.
정통 연희도 있는 뮤지컬인데 그 작품은 아리랑이 독립군의 암호였다는 설정으로 저 아래 진도부터 해서 만주까지 독립군이
45년에 총공격하게 하는 암호로 쓰였다는 발상으로 전국의 아리랑이 많이 나오는 작품으로 비밀의 노래라는 작품이 있고요.
많이 공연을 하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제가 대표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스스로가 당신의 눈이라는 작품.
-당신의 눈이요?
-층위가 3층위가 같이 합류해서 벌어지는데 구조적으로 A, B, C가 다 다른 건데 나중에 다 합쳐지는 형태인데요.
이거는 세상의 모든 것이 시선에 따라 진실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예요.
다 다르게 볼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한쪽만을 보고 그게 진실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이런 이야기인데 이야기 자체는 되게 간단해요.
장애인 극단이 연극을 만드는 데 작가가 죽어요. 그런데 이 작가의 글을 장애인들이 만들어요.
연극을 다시 만들어요, 온전하게 만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작가는 살아있어요. 그런데 그 작가의 글이랑 이들이 만든 글이 맞아떨어져요.
그런데 또 이 작가는 면접 시험을 보기 위해서 방송 드라마 작가를 하기 위해서
면접 시험을 보느라고 글을 썼는데 면접관이 보는 드라마는 또 달라요.
그런 것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연극인데 좀 어려운 것 같은데 안 어려워요.
-그런데 설명을 엄청 잘해주셔서.
-말씀을 듣고 있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작가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못했겠다. 왜냐하면 발상이 너무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소재가.
-저도 모르게 빠져서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작품 소재는 어떻게 찾으시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평상시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갑자기 이렇게 형광등이 켜진 것처럼 머리가 탕?
-그런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경우도 많죠.
-그런 경우가 제일 흔한 것 같고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거를 조금만 삐딱하게 한번 생각해 보는 거죠.
다른 시선이면 어떨까.
-다른 시선으로.
-맞아요.
-그러면 그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렇게 하면서 작품으로 쓰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만나면서 두 분의 인상이 저한테 남을 거잖아요.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어떤 인물로 구현할 수 있는 거고 일상에서 제일 많이 얻는 것 같고요.
-저는 예전에 남녀 공감대 그런 거 아이디어할 때는 이어폰을 오히려 음악 같은 거 안 틀고 이어폰을 꽂고 카페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옆 테이블에서 하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까 그거 뭔지 아시죠? 이런 공감대를 잡아내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
그랬었던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아이디어라는 것에서는 공감대가 많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네요.
-예술가라고 한다면 예술가는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항상 하죠. 감각을 키워라.
내 이야기를 하더라도 저쪽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느껴야 한다.
바람을 좀 느낄 줄 알아야 하고 그런 이야기는 많이 해요.
-바람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바람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가을바람도 느끼고 이렇게.
-그렇죠.
-짬뽕도 느끼고.
-그런데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이렇게 대한민국 공연의 중심에 계셨던 윤종환 연출가가 갑자기 정선에 내려오셔서 공연을 올립니다.
이것도 이유가 궁금하거든요. 정선에 오시게 된 계기는 뭘까요?
-저도 뭐 어느 정도 실력이나 어느 정도 위치가 되면 고향을 위해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도립극단에서 저를 불러서 외부 연출로 하게 됐고.
그 공연을 하면서 강원도 전국을 다녔어요, 그때 당시.
메밀 꽃 필 무렵이라는 것을 가지고 강원도 전국을 다니다가 정선에서, 정선에 제가 지금
공연하는 극장에 오픈 공연을 저희가 했는데 그때까지 저는 정선을 한 번도 안 가봤거든요.
그 공연, 저희 공연을 도립극단 공연을 보고 정선에 계신 열정적인 두 공무원이 이거를
한 사람을 만나야겠다 찾아오셔서 우리 정선 아리랑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다.
그리고 현대적으로 현대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 하시면서 세 번을 찾아오셨어요.
그분들의 열정 때문에 정선은 정선 아리랑이 문화의 중심이에요.
-맞아요.
-정말로 정선의. 그리고 정선 아리랑은 또 우리나라의 3대 아리랑 중에 가장 오래된 아리랑이라고도 하고요. 노래 가사 수도 제일 많아요.
-그래요?
-보통 5000수 정도라고 하는데 5000에서 8000 정도를 이야기해요.
그게 우리가 아는 아리랑 한 구절이 한 수라고 보는데 제일 많은 노래 중의 하나고.
그분들은 그거를 알리고 싶어했어요. 그리고 마침 평창올림픽이 동계올림픽이 있어서 그때 세계에 정선 아리랑을 올리고 싶어하셨고.
-18년도에.
-그래서 17년에 저를 이렇게 찾아다니시다가 저를 만나게 된 거고.
저는 강원도에 나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가야지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내려오게 된 거예요.
-PD님 저 정선은 처음 와봐요. 여기 레일바이크 유명하던데 저희 레일바이크에서 일하는 건가요?
-아쉽지만 레일바이크는 아니고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고즈넉하고 예쁜데요.
-여기가 아라리촌이에요.
-아라리요?
-네.
-아리랑 아라리요 할 때 그 아라리?
-네.
-저 알아요, 그거 들어봤어요.
-오늘은 바로 그 정선 아리랑을 배워볼 겁니다. 바로 뮤지컬 배우가 되어 보는 거예요.
-저 예고 때부터 뮤지컬 진짜 좋아했거든요. 저 오늘 진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재밌겠다. 빨리 가요, 빨리, 빨리. PD님 빨리.
-(노래) 아라리가 났네
-오랜만에 하니까 되게 이상해.
-(노래)
-안녕하십니까? 저는 배우를 향한 꿈꾸는 도전을 하고 있는 오하연입니다.
-네 보내주신 영상 잘 봤고요.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 공연에 응시한 이유 좀 들어볼까요?
-저는 전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공연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서 정말 멋진 퍼포먼스와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 공연이 어떤 음악들을 하는지 알아요?
-정선 아리랑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정선 아리랑 할 줄 알아요?
-조금 연습해 왔는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어디 아리랑이에요?
-이게 아리랑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어렵습니다.
-그럼 이거 정선 아리랑 말고 다른 아리랑 아는 거 있어요?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이건 또 어디 아리랑이에요?
-재밌어서 기억이 납니다. 죄송합니다. 극단에서 더욱더 열심히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연출가님께 배우고 싶습니다.
-한번 노래해 볼까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좀 구슬프게 불러야지 제가 감정이 나올 것 같아서 한번 무릎을 꿇고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의자에서?
-먼 길 가는 내 님 내 사랑~ 부디 몸조심해요~ 내 마음은 언제나 여기에. 당신과 함께 있소. 너무 몰입했습니다.
-혹시 악보 보고 노래할 줄 알아요?
-잘 못 합니다.
-됐습니다.
-저 보여드릴 게 또 있습니다.
-뭐...
-제가 고등학교 때 또 난타부였어서.
-그게 무슨 장단인지 알아요?
-기억이 안 납니다.
-알겠습니다. 또 다른 거 뭐 보여줄 수 있는 거. 춤 잘춰요?
-춤은 현대무용을 하기는 했었는데.
-언제 했어요?
-고등학교 때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무용도 잠깐 배웠었습니다.
-할 줄 아는 거 있으면 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가셔도 돼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저 이 극단에서 꼭 공연을 올리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정선 아리랑 뮤지컬로 만드신 작품 내용,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요. 그러니까 짐작이 안 가거든요.
아리랑으로 어떻게 뮤지컬 작품을 만드셨는지에 대해서 저는 상상력 발동이 안 되거든요.
내용 자체가 궁금해요.
-정선 아리랑의 가사가 모두 짧은 이야기들인데요, 그 한 수, 한 수가.
정선 아리랑 소재 중의 하나, 가사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요.
흥선대원군이 조선시대에 경북궁을 다시 지을 때 정선의 소나무들을 썼어요.
정선의 아우라지라는 데에서 나무를 말려서 한강까지, 서울까지 보내요.
마포나루까지. 그러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그 뗏목.
-배로.
-나무를 떼로 엮어서 뗏목이 되고 그걸 타고 가서 나무를 서울에다 파는 거예요.
그 뗏꾼, 뗏꾼과 나무꾼 일을 하는 아버지가 경복궁 중수에 참여해서 돈을 벌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못 돌아오고 기억을 잃은 채 한양에 살고 있고.
집에서는, 정선 집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있고 죽은 줄 알고.
그러다가 한 15년 지나서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아빠가 떠날 당시에 한
3살이던 아이가, 딸아이가 그 친구 이름이 아리인데 아리가 아버지 찾아오겠다 그러고 서울로 가.
찾으러 가는 이야기예요.
-(노래) 아리랑
-또 듣다 보니까 뮤지컬이 아니고 뮤지컬 퍼포먼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뮤지컬과는 그게 좀 다른 건지.
-사실 없는 개념인데요. 제가 만든 개념이에요.
-만드셨구나.
-다른 분도 썼을 수도 있고요.
뮤지컬은 극의 주요 핵심이 사건의 갈등, 대화 이런 것들이 다 음악으로 되는 게 뮤지컬인데 저희 공연은
다양한 장르가 음악도 있고 연극도 있고 영상도 있고 타악 리듬도 있고 다양한 장르가 합쳐져요.
각 장르가 한 씬마다 극대화시키는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게 제가 했던 난타가 넘버별 퍼포먼스거든요.
대화가 없이 리듬으로 하는 퍼포먼스, 타악으로. 그리고 점프라는 퍼포먼스는.
-점프.
-마샬아트, 움직임 중에 무예로 하는.
그리고 춤추는 춤으로 하는 이렇게 특징적인 장르가 극대화된 것들을 한국에서 퍼포먼스라고 하는데
그 둘을 합쳐 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고 대화가 없어, 대사가 없어도 다 즐겁게 볼 수 있는 공연.
그러려면 어떤 한 요소가 대사가 아닌 표현으로도 관객들에게 뭐를 전달하면 되겠다.
그래서 장르를 생각한 게 그럼 뮤지컬과 퍼포먼스를 합친 어떤 형태의 공연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뮤지컬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제가 규정한 거죠.
그리고 지금 아리 아라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거고.
-그럼 뮤지컬이면 노래도 있어야 하잖아요.
-노래 많이 있습니다.
-대사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연극이 또 주가 되는 씬이 있죠.
-연극이 또 주가 되는 씬이 있고. 그렇군요.
배우분들의 자료 화면을 보니까 에너지가 대단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뮤지컬 공연
한번 준비하시는 준비 기간이 어느 정도나 걸리고 얼마나 연습을 해야 이 정도의 무대가 나오는 겁니까?
-8개월 준비한 것 같아요.
-8개월을 준비하신 거군요.
-처음 할 때 8개월 정도 한 것 같고.
-반 년 넘게.
-지금은 저도 정선 아리랑을 몰랐으니까 정선에 대해서 공부하느라고 하기로 하고
바로 집을 계약하고 내려가서 살면서 글을 썼고 오디션을 해서 4월 2일이 첫 공연이에요, 매년.
4월 2일이 아리 아라리 첫 공연인데 그때까지 계속 연습한 거니까 배우들은 총 4, 5개월 연습한 거고 그전에 제가 사전 작업을 한 거고.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 아라리가 2023년에 또 호주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고 들었습니다.
-상까지 받았으면 완벽한 것 아닙니까? 연출가님이랑 게스트 어떻게 보세요.
-상보다는 관객의 박수가 더 좋죠.
-그래도 이게 받으면 좋잖아요.
-그럼요, 그럼요. 없는 것보다는 낫죠. 이 작품을 처음 할 때 한 3년 뒤면 해외를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그게 안 된 거고 제가 한 20년 넘게 공연 쪽 일을 하면서 느낀 게
한 3년 정도를 한 작품에 공을 들이고 나면 안정되더라고요.
실제로 난타도 그랬거든요.
-그렇죠.
-난타도 제가 97, 8, 99년까지 하고 나니까 그만둘 수 있었던 것도 이제 좀 안정이 됐다, 난타는.
-자리를 잡았구나.
-내가 굳이 여기서 더 안 해도 나는 또 다른 공부를 해야겠다.
다른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만뒀는데 아리 아라리도 그렇게 처음 시작했고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안 되다가 해외를 나가기 위해서 해외 쪽에 시설을 갖고 있는 사람을 초청해서 모니터를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해외 공연을 제일 많이 다니는 대표님을 초청해서 모니터를 했는데 지금 당장 나가도 될 것 같다.
그러면서 애들레이드를 추천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해외를 나가기 위한 어떤 장치를 더 넣는다거나 작품을 변형시키는 게 아니라.
-그럴 필요 없다. 번역만 잘해서 가자.
-그대로 가지고 나가도 된다.
-그래서 본인이 그걸 다 뭐라고 해, 어렌지를 한다.
본인이 다 하겠다 그래서 같이 가는 첫 작업이 애들레이드고 에든버러는 코로나 이후에
아직 많이 올라오지 않았으니 조금 더 작은 규모의 애들레이드에서 외국인들의 반응을 직접 보자.
그리고 만약에 수정할 게 있으면 그때 업그레이드를 하자고 해서 그날 이야기를 듣고 진짜 가도 되겠냐, 가도 된다.
그다음 날 군수님이 진짜 가고 싶냐, 자신 있냐고 하셔서 자신 있습니다. 그랬더니 갑시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전제 조건 같은 건 없으니까 너 갔는데 안 가면 어떡할 거야라든가.
-저도 있을 법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자신 있으면 해보자고 하셨고 갔는데 또 성과가 연극뮤지컬 부분의 최우수 작품으로 돼서.
-그러니까요.
-좋은 결과까지.
-다행이었죠. 그게 안 됐어도 상관없지만.
-진짜.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
-그 의도가 정확하게 공연에서 나온 것 같아서 정선 아리랑을 알리자가 목표였잖아요.
전 세계 유명한 뮤지컬에 관련된 상을 받으셨으니 정선 아리랑을 어떻게 보면 세계로 알리신 계기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게 시작이었죠.
-그렇죠.
-어떤 점을 가장 좋게 보던가요, 공연 봤을 때. 전 세계 사람들이.
-일단 의상이 우리 거고 배경이, 그림도 한국화잖아요.
-새롭겠군요.
-그들에게는 그게 생소한 거고 호기심이 가는 거고.
-신선하고.
-그리고 음악도 다르죠. 음악도 물론 서양 음악도 있어요.
팝 버전의 곡들도 있기 때문에 우리 정선아리랑이 기본적으로 거기서 변주들이 일어나는 거니까.
음악도 그들과는 생소했고.
-그렇죠, 다른 악기들로 사용해서 소리를 내고.
-그런 것들이 일단 호기심으로, 관객들은 신기함으로 시작했고 이야기가 쉬웠고, 가족의 이야기로.
그리고 제가 볼 때는 가장 중요한 거는 배우들의 에너지였던 것 같아요.
-에너지.
-배우들이 저희 공연을 언제 한번 보시면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하는데 정말 1시간 동안, 1시간 10분인데 미친듯이 달려요.
정말 온 혼신을 불태워서 공연해요.
-달린다는 게 진짜 무대에서.
-무대에서 달리기도 하고요.
-달리기도 하고.
-그런데 그 에너지가 계속 뛰는 거죠.
-에너지도.
-계속.
-그게 느껴지거든요, 관객들한테 사실.
-저는 그거라고 봐요. 크게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아니면 관객들이 반응이 있을 수 있는 힘은 배우들의 정말 최선을 다하는 에너지.
그게 살아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함께) 안녕하세요?
-저 이번에 신입단원으로 들어온 오하연입니다.
-반갑다.
-반갑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좀 군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들 너무 반겨주셔서 행복한데요.
-처음이니까.
-뭔가 눈빛이 무서워요. 저 선배님들 오늘 처음 뵈어서 선배님들 소개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요.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아라리에서 뚱월 역할을 맡은 배우 황인욱입니다. 반갑습니다.
-뚱월 역할이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아라리에서 백발할멈 역을 맡고 있고 안무 캡틴을 맡고 있는 남현우라고 합니다.
-캡틴님.
-저는 신기목과 뱃사공 역할을 맡고 있는 계현욱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아라리에서 뭉치모 역을 맡고 있는 김화영입니다.
-(해설) 익숙한 도시 풍경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바쁜 일상 속 큰 위로를 얻고는 합니다.
도심 속 마주한 뷰가 도시인의 마음을 헤아리듯 뷰는 지역 경제의 힘이 되기도 하는데요.
-만드셨구나.
-다른 분도 썼을 수도 있고요.
뮤지컬은 극의 주요 핵심이 사건의 갈등, 대화 이런 것들이 다 음악으로 되는 게 뮤지컬인데
저희 공연은 다양한 장르가 음악도 있고 연극도 있고 영상도 있고 타악 리듬도 있고 다양한 장르가 합쳐져요.
각 장르가 한 씬마다 극대화시키는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게 제가 했던 난타가 넘버별 퍼포먼스거든요.
대화가 없이 리듬으로 하는 퍼포먼스, 타악으로. 그리고 점프라는 퍼포먼스는.
-점프.
-마샬아트, 움직임 중에 무예로 하는 그리고 춤추는 춤으로 하는 이렇게 특징적인 장르가 극대화된 것들을
한국에서 퍼포먼스라고 하는데 그 둘을 합쳐 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고 대화가 없어, 대사가 없어도 다 즐겁게 볼 수 있는 공연.
그러려면 어떤 한 요소가 대사가 아닌 표현으로도 관객들에게 뭐를 전달하면 되겠다.
그래서 장르를 생각한 게 그럼 뮤지컬과 퍼포먼스를 합친 어떤 형태의 공연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뮤지컬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제가 규정한 거죠.
그리고 지금 아리 아라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거고.
-그럼 뮤지컬이면 노래도 있어야 하잖아요.
-노래 많이 있습니다.
-대사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연극이 또 주가 되는 씬이 있죠.
-연극이 또 주가 되는 씬이 있고. 그렇군요.
배우분들의 자료 화면을 보니까 에너지가 대단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뮤지컬 공연
한번 준비하시는 준비 기간이 어느 정도나 걸리고 얼마나 연습을 해야 이 정도의 무대가 나오는 겁니까?
-8개월 준비한 것 같아요.
-8개월을 준비하신 거군요.
-처음 할 때 8개월 정도 한 것 같고.
-반 년 넘게.
-지금은 저도 정선 아리랑을 몰랐으니까 정선에 대해서 공부하느라고 하기로 하고
바로 집을 계약하고 내려가서 살면서 글을 썼고 오디션을 해서 4월 2일이 첫 공연이에요, 매년.
4월 2일이 아리 아라리 첫 공연인데 그때까지 계속 연습한 거니까 배우들은 총 4, 5개월 연습한 거고 그전에 제가 사전 작업을 한 거고.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 아라리가 2023년에 또 호주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고 들었습니다.
-상까지 받았으면 완벽한 것 아닙니까? 연출가님이랑 게스트 어떻게 보세요.
-상보다는 관객의 박수가 더 좋죠.
-그래도 이게 받으면 좋잖아요.
-그럼요, 그럼요. 없는 것보다는 낫죠. 이 작품을 처음 할 때 한 3년 뒤면 해외를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그게 안 된 거고 제가 한 20년 넘게 공연 쪽 일을 하면서 느낀 게 한 3년 정도를 한 작품에 공을 들이고 나면 안정되더라고요.
실제로 난타도 그랬거든요.
-그렇죠.
-난타도 제가 97, 8, 99년까지 하고 나니까 그만둘 수 있었던 것도 이제 좀 안정이 됐다, 난타는.
-자리를 잡았구나.
-내가 굳이 여기서 더 안 해도 나는 또 다른 공부를 해야겠다.
다른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만뒀는데 아리 아라리도 그렇게 처음 시작했고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안 되다가 해외를 나가기 위해서 해외 쪽에 시설을 갖고 있는 사람을 초청해서 모니터를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해외 공연을 제일 많이 다니는 대표님을 초청해서 모니터를 했는데 지금 당장 나가도 될 것 같다.
그러면서 애들레이드를 추천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해외를 나가기 위한 어떤 장치를 더 넣는다거나 작품을 변형시키는 게 아니라.
-그럴 필요 없다. 번역만 잘해서 가자.
-그대로 가지고 나가도 된다.
-그래서 본인이 그걸 다 뭐라고 해, 어렌지를 한다.
본인이 다 하겠다 그래서 같이 가는 첫 작업이 애들레이드고 에든버러는 코로나 이후에
아직 많이 올라오지 않았으니 조금 더 작은 규모의 애들레이드에서 외국인들의 반응을 직접 보자.
그리고 만약에 수정할 게 있으면 그때 업그레이드를 하자고 해서 그날 이야기를 듣고 진짜 가도 되겠냐, 가도 된다.
그다음 날 군수님이 진짜 가고 싶냐, 자신 있냐고 하셔서 자신 있습니다. 그랬더니 갑시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전제 조건 같은 건 없으니까 너 갔는데 안 가면 어떡할 거야라든가.
-저도 있을 법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자신 있으면 해보자고 하셨고 갔는데 또 성과가 연극뮤지컬 부분의 최우수 작품으로 돼서.
-그러니까요.
-좋은 결과까지.
-다행이었죠. 그게 안 됐어도 상관없지만.
-진짜.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
-그 의도가 정확하게 공연에서 나온 것 같아서 정선 아리랑을 알리자가 목표였잖아요.
전 세계 유명한 뮤지컬에 관련된 상을 받으셨으니 정선 아리랑을 어떻게 보면 세계로 알리신 계기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게 시작이었죠.
-그렇죠.
-어떤 점을 가장 좋게 보던가요, 공연 봤을 때. 전 세계 사람들이.
-일단 의상이 우리 거고 배경이, 그림도 한국화잖아요.
-새롭겠군요.
-그들에게는 그게 생소한 거고 호기심이 가는 거고.
-신선하고.
-그리고 음악도 다르죠. 음악도 물론 서양 음악도 있어요.
팝 버전의 곡들도 있기 때문에 우리 정선아리랑이 기본적으로 거기서 변주들이 일어나는 거니까.
음악도 그들과는 생소했고.
-그렇죠, 다른 악기들로 사용해서 소리를 내고.
-그런 것들이 일단 호기심으로, 관객들은 신기함으로 시작했고 이야기가 쉬웠고, 가족의 이야기로.
그리고 제가 볼 때는 가장 중요한 거는 배우들의 에너지였던 것 같아요.
-에너지.
-배우들이 저희 공연을 언제 한번 보시면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하는데 정말 1시간 동안, 1시간 10분인데 미친듯이 달려요.
정말 온 혼신을 불태워서 공연해요.
-달린다는 게 진짜 무대에서.
-무대에서 달리기도 하고요.
-달리기도 하고.
-그런데 그 에너지가 계속 뛰는 거죠.
-에너지도.
-계속.
-그게 느껴지거든요, 관객들한테 사실.
-저는 그거라고 봐요. 크게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아니면 관객들이 반응이 있을 수 있는 힘은 배우들의 정말 최선을 다하는 에너지.
그게 살아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함께) 안녕하세요?
-저 이번에 신입단원으로 들어온 오하연입니다.
-반갑다.
-반갑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좀 군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들 너무 반겨주셔서 행복한데요.
-처음이니까.
-뭔가 눈빛이 무서워요. 저 선배님들 오늘 처음 뵈어서 선배님들 소개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요.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아라리에서 뚱월 역할을 맡은 배우 황인욱입니다. 반갑습니다.
-뚱월 역할이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아라리에서 백발할멈 역을 맡고 있고 안무 캡틴을 맡고 있는 남현우라고 합니다.
-캡틴님.
-저는 신기목과 뱃사공 역할을 맡고 있는 계현욱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아라리에서 뭉치모 역을 맡고 있는 김화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아라리에서 정선 역과 그리고 음악 캡틴을 맡고 있는 조슬아입니다.
-다들 멋있는 것을 너무 많이 하셔서 사실 뭐가 뭔지 아직 잘 몰라요.
오디션 볼 때도 작품 잘 몰라서 연출님 표정이 쟤는 뭐야,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아직은 잘 모르지만 많이 배워가고 싶습니다.
만약에 제가 이번에 극에 투입된다면 어떤 역할이 잘 어울릴 것 같으세요?
-아마 신... 신나리?
-신나리도.
-신나리?
-신나리?
-이따 한번 보면서 어떤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현대적인 것도 섞여서 아우, 아우 이러면서 춤추는 것도 있던데 그런 식으로도 표현이 많이 되나요?
-이거는. 안무 캡틴이.
-현대적인 현대의 관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장면들이 있어서 잔치를 하는 장면을
조금 단계별로 신나게 만들어놓은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 잠깐 배워볼까요?
-아리랑 메들리를요?
-선배님들이 눈빛이 조금씩 무서우셔.
-그러면 아리아라리에 있는 아리랑 메들리라는 장면의 첫 동작 한번 배워볼게요.
이렇게 팔 이렇게 하시고 물결을 만드시는 거예요, 오른쪽으로 네 번. 하나, 둘, 셋, 넷.
반대쪽 네 번. 둘, 둘, 셋, 넷. 그리고 한국무용 기본 동작 팔 위로 들었다가 이것을 멘다고 하거든요. 어깨에 메고.
-메고.
-반대 들었다가 메고 한 번씩 메면서 도는 겁니다.
-잘하는데.
-잘하시네요.
-그래요?
-그러니까 오디션 합격했겠죠.
-같이 해볼게요. 셋, 둘, 시작. 하나, 둘, 셋, 넷.
-(함께) 아리아리~ 스리스리~
-천천히.
-(함께) 아라리요~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됐나요?
-감각이 있으시네요.
-역시 한 몇 년 후에는 저도 캡틴을 맡을 수 있을까요?
-그거는 조금...
-죄송합니다.
-저희 자리를 위협하시려고.
-군기를 더 잡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몇 년이 한 30년일 수 있어.
-그렇죠.
-공연 준비할 때 이 장면은 진짜 어렵다, 힘들다 하는 장면들이 있으신가요?
-어렵다기보다는 저희 공연 같은 경우에 관객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서 퍼포먼스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많은 체력을 요하는 그런 퍼포먼스들이 많이 있어요.
-끝나고 나면 막 냄새, 땀 냄새.
-냄새는 기본이죠, 냄새는 기본이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옷을 갈아입고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그런 것들이 연습 때도 그렇고 공연 때도 항상 그런 것들이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무대에서는 티가 하나도 안 나던데요.
-그럼요, 저희는.
-프로니까요.
-진짜 멋있었습니다. 저도 열심히 배워보도록 할게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팀 구호 하면서 마무리하고 싶어요. 팀 구호 어떻게 하면 되죠?
-손 모으시고.
-제가 선창하겠습니다. 아리아라리 허기영차.
-(함께) 허야 허야!
-파이팅.
-파이팅.
-연극에 앞으로의 방향성도 좀 제시해 준 것 같은데 어떻게 보세요?
이런 점을 중점을 두고 공연을 만드신다면 전 세계적으로 한국 뮤지컬이나 연극이 많은 분에게
사랑을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실 것 같은데 해 보셨습니까?
-우리가 예전에는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씀이 있어요. 맞는 말씀이세요.
그런데 거기에 반드시 필요한 게 세계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이 같이 플러스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고 우리 것을 하더라도 세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요, 저도.
국악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 외국인이.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국악을 외국 사람들이 편안하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들어내는 게 결국 세계화되는 거라고 보고요.
아리랑이 우리나라의 문화가 우리가 부르는 게 아니라 그들이 부를 때라야 비로소 세계적인 게.
-그렇죠.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작업들을 하면서 그들과 같이 만날 수 있는 지점들을 더 극대화시키고 그걸 그들의 방식으로도
표현도 해 보고 또 같이 그런 노력들을 해야 좀 세계적으로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요.
우리 것을 버리라는 게 아니라 우리 것을 포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좀 생각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죠.
-지금까지도 다양한 도전을 하고 계시는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도전을 해 나가실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새로운 형식이나 새로운 주제나 새로운 작품, 전체적으로 기획하시는 어떤 계획이라든가 이런 걸 좀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있을까요?
-제 고향이 태백인 만큼 저희 아버지도 광부로 돌아가셨거든요.
지금 전국의 광산은 다 문 닫았는데 광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대학 때 써놓은 희극이 있어요.
연극 대본이 있는데 재미가 없어서 안 했고 지금 신작을 하나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대사가 없는, 그것도. 대사가 있기는 있어요. 그런데 주 소통이 소리예요, 소리.
-흥미롭네요.
-갱 안에서 나는 소리, 탄광촌에서 들을 법한 소리.
모든 소리로 의사소통이 되고 그것이 연극이 만들어지는 그런 실험을 지금 하고 있고요.
고향이기도 한 탄광촌에 대해서 작품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지금 한 가지 일만, 해외로 연극, 뮤지컬 진출시키고 그것만 해도 정신없으실 것 같은데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연구를 하시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시고
그걸 실제로 무대 위에 올리시려고 노력하신다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신 것 같아요.
-엄청 바쁘시겠어요.
-네, 바쁘죠.
-꿈에 정선 아리랑 나올 것 같아요.
-그러면 저희 공연 성공이네요. 오늘의 만남은 성공이네요.
-대성공입니다, 대성공.
-실제 나오시죠, 꿈에?
-이제는 안 나와요. 처음에는 나왔죠.
-그렇죠.
-처음에는 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계속 들리는... 본래 그러니까.
-환청 아닙니까?
-그렇죠.
-너무 관심이 그쪽에 빠져 있으니까.
-그렇죠.
-뮤지컬 하면 또 그래요.
-그래요, 맞아요. 그럴 수 있어요. 꿈에서도 아이디어도 나오잖아요.
-그럼요, 그럼요.
-정말요?
-마지막으로 탑클래스 공식 질문드리면서 마쳐볼까 하는데요.
윤정환 연출가님에게 뮤지컬, 연극이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희 방송하면서도 MC님이 가끔 이야기하셨던 것 같은데 세상을 향한 도전 같아요, 저는.
세상을 향한 도전인데 그 도전이 세상에 띄우는 연애편지.
-러브레터.
-그런 느낌을 받아요. 뭘 하나 고민할 때 즐겁고요, 설레고.
어차피 없는 거에 대한, 없는 것에서 만들어내는 작업을.
-무에서 유를.
-창작이죠.
-그 도전들이 설레면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야죠.
-안 늙으실 것 같아요. 계속 새로운 생각을 하셔서 젊게 감각을 유지하시려고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타로 세계와 호흡하고요. 또 짬뽕으로 현실을 이야기하고 아리아리 아라리로 우리의 정서를 다시 풀어낸 윤정환 연출가.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K-뮤지컬의 새로운 길이 되고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윤정환 연출가님이 만들어 갈 다음 무대가 어떤 감동을 전할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정말 기대됩니다.
-오늘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윤정환 연출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감사합니다.
-탑클래스 오늘은 여기에서 이만 인사드려야겠죠?
-저희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다른 이야기들을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함께) 감사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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