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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클래스 - 달콤한 개척자 김성미, 초콜릿 인생의 시작

등록일 : 2026-03-18 10:22:55.0
조회수 : 94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이가연입니다.
-이가연 아나운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가연 아나운서가 너무 이제 나이가 많이 어린 세대셔 가지고 궁금해서 한번 여쭤보려고요.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를 아세요?
-그럼요.
-그래요?
-제 인생 영화 포레스트 검프. 알죠.
-하도 어린 척을 하셔서 제가 이 영화를 모르실 줄 알고 좀 여쭤봤는데. 그 영화에 보면 이런 대사가 있거든요.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무엇을 집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맞아요, 맞아요.
-멋진 대사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제가 갑자기 이 대사를 떠올린 이유가 오늘의 주인공이 이 초콜릿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분이라고 하셔서
한번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의 쇼콜라티에라는 단어가 낯설던 시절 가장 먼저 쇼콜라티에를 국내에 소개한 국내 1호 쇼콜라티에십니다.
김성미 대표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쇼콜라티에 김성미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반갑습니다, 대표님.
-저희가 아까 소개를 해 드린 게 이 쇼콜라티에라는 단어 자체도 좀 많이 생소했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국내 1호 쇼콜라티에라고 소개해 드렸는데 쇼콜라티에가 이제는 사실 많은 분들이
좀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어떤 일을 하시는지 혹시 한 번 더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사실 쇼콜라티에라는 건 좁은 의미로는 우리가 흔히 먹는 한 입 크기의 쇼콜라를 만들어서
이제 포장해서 이제 판매하는 이제 직업이고요.
또 넓은 의미로는 그런 작품 세계를 본인이 이제 초콜릿으로 펼치는 또 아티스트의 역할까지 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국내 1호라라는 의미가 사실 불모지라는 뜻이었잖아요. 사실 그 누구도 이 길을 가보지 않았던 길인데.
그 길을 처음으로 개척하셨을 땐 굉장히 좀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이 돼요. 그때는 어떠셨는지 좀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초콜릿 공부를 하고 국내에 들어와서도 쇼콜라티에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이제 뭐 그냥 제가 들어와서 알리고 싶었던 거지 이제 나중에 1호라고 자꾸 말씀해 주시니까.
그전에는 그럼 이렇게 직업적으로 명명하는 그런 사람이 없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지.
저는 1호로서 어떤 뭐 이제 이름을 알려야지 뭐 이런 계획도 전혀 없었고요.
어쩌다 보니 저는 그냥 1호가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가는 길이 다 그냥 이게 초콜릿이야 이렇게 가는 거야.
그런 식으로 이제 지도가 만들어진 거죠. 저 그냥 우당탕탕 온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런데 이제 그런 제과나 이런 뭐 어떤 것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많은 종류가 있었을 건데.
쇼콜라티에를 처음 선택하신 계기나 이유도 좀 있을까요?
-이제 여러 가지가 있죠. 제가 사실은 음식 관련된 그런 이제 전문 지식도 없었고.
또 그런 전공도 없이 저는 사회학 전공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사실은 이제 90년대 초에 이제 사회학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래서 전혀 이제 디저트하고 뭐 이런 초코릿하고는 무관한 사람이었고
또 그때 우리 뭐 한국이 그 디저트 문화라든가 이런 게 활발하지 않았죠. 굉장히 오래 전에.
-약과 이런 거 드셨으니까.
-과자만 먹어도 행복했죠, 그때는.
-포레스트 검프 나온 그 영화 시절이니까.
-그렇죠.
-디저트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죠.
-그런데 이제 일본에 가니까 우리보다 너무 앞선 그런 디저트 문화를 보고 사실 놀랐어요.
문화적인 충격도 그때 받았고. 이제 그때 커피 문화 또 케이크 문화.
한 끼 식사로 이제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삼십 몇 년 전에는 제가 상상을 못 했거든요.
지금 이제 우리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가잖아요.
그때 이렇게 또 사회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어떻게 문화적인 거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사실 그때는 그냥 놀라웠던 경험밖에 없었는데.
우연히 그 일본 친구들하고 제가 이제 유럽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됐어요.
그때 이제 영국으로 가게 됐거든요. 그때 이제 초콜릿 문화를 처음 봤어요.
그때만 해도 일본에서도 초콜릿 문화가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시 2차적인 충격.
이런 초콜릿이 나는 슈퍼에서 먹는 그런 이제 좀 타블렛 형태의 초콜릿밖에 몰랐는데.
-그렇죠, 우리가 생각하는 기역 니은 초콜릿 있잖아요.
-그것도 사실 귀했죠.
-그래요?
-엄청 귀했죠.
-뭐 흔하게 먹을 수는 없었고. 뭐 어쩌다 하나씩 먹는 거지 그렇게 일상적으로 초콜릿 문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이 초콜릿이라는 테마로 이야기를 할 때
저렇게도 많은 말들을 하는 게 초콜릿인가 할 정도로 제가 놀랐어요.
저는 그냥 초콜릿은 달고 그냥 맛있는 정도의 네모 반듯한 초콜릿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그 친구들은 하다못해 멕시코 친구들까지 그래서 제가 그때는 이제 몰랐으니까.
여기에 왜 갑자기 멕시코가 또 결국은 초콜릿의 고향이 멕시코였던 거죠.
-카카오 때문에.
-전혀 몰랐네요.
-그래서 그런 역사와 문화가 있는 이 어떤 물성을 가진 이 초콜릿에 제가 굉장히 매력을 많이 느꼈죠.
그래서 그때 이제 유럽에 내가 또 언제 오겠나 싶어서 여행도 초콜릿에 관련된 이제 나라만 여행을 또 했었고.
나름대로 저는 그때 테마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거를 바로 제가 직업으로 연결을 못 시켰어요.
그때만 해도 그냥 초콜릿은 대단한 문화를 가진 음식이구나 정도지 그게 직업으로 내가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또 여러 가지 이제 세월이 흘러서 IMF가 또 그때 또 나오게 됐죠.
그래서 97년도를 기점으로 해서 많은 생각들이 또 있었어요.
그때는 유학을 가기가 힘들었죠. 유학을 갔던 친구들이 다 돌아오는 시대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그렇죠, 원달러 환율이 거의 2000원 육박하던 시기였으니까.
-영국 같은 경우는 파운드가 3000원까지
-난리도 아니었죠.
-그런데 결국은 역발상이 또 되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또 그게 제 계기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다시 저는 이제 초콜릿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래서 그때가 좀 지금 와 생각을 보니까 굉장히 특별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집 살 돈을 유학 자금으로 쓰셨다는데. 사실 너무 당황스러워 가지고.
-저도 유학을 이렇게 많이 다니시고 여행을 다니셨다면.
집이 잘 사셨나 보다 뭐 이런 생각을 좀 사실 했거든요. 사실 말씀하실 때.
그런데 집 사실 돈으로 유학자금을.
-남아 돌아서 간 건 아니고. 근데 이제 지금 생각하면 지금 집값은 천정부지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IMF라서 집 산다라는 그 개념이 거의 반토막이 됐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래서 집을 살 돈이 막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돈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집 살 돈은 큰돈이죠.
-그때 물가로 환산해 보면 또 어마어마한.
-그래서 지금 같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집을 사서
다시 또 뭔가를 이제 부를 생각한다는 게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거라는 또 생각은 또 있었죠.
왜냐하면 다녀와서 내가 또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이 정도는 또 뭐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지금 후회하시지 않습니까? 그때 집을 샀어야 되는데.
-너무 긴 세월이라서 잊어버렸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안 가겠죠. 다른 생각을 하겠죠.
-그렇군요.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는 젊었잖아요.
젊었을 때는 경제적인 게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꿈꾸는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열정이.
-네, 네. 지금 같으면 그 꿈을 이겨낼 힘이 없지만 그때는 그 꿈이 컸던 것 같아요.
-지금이야 이렇게 쉽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실 수 있겠지만 그때는 유학길을 떠나시는 것도 엄청난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고.
그리고 그 길을 많이 가보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그 길을 나아가는 것 자체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거든요.
어느 학교에 가야 될지부터 벌써.
-맞아요.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것도 그때는 인터넷이 막 그렇게 발달한 시기가 아니었고.
-유학원도 없었을 거고요.
-맞아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때는 제가 이제 일본 유학을 했었기 때문에 또 한 번 유럽을 다녀왔잖아요, 그래서 일본 친구들이 가는 곳만 알게 됐어요.
이미 앞서서 그런 문화를 겪은 친구들의 정보가 저한테는 굉장히 컸고. 또 제가 뭐 불어를 잘해서 프랑스로 갈 수도 없었고.
영어를 또 잘한다고 해서 뭐 영국권이 좋다고 생각은 안 했지만.
일단 일본어가 되니까 일본 친구들을 믿고 사실은 반은 제가 이제 무모하게 발을 뗀 거죠.
어떻게든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은 이제 비빌 수 있겠다.
그리고 이미 그 친구들은 디저트 문화라든가 앞서 있기 때문에 그런 정보 면에서 굉장히 도움이 됐고.
한국에서도 르 꼬르동 블루는 그때는 이제 알려져 있었던 학교였어요.
-그 당시에도.
-네, 네. 그래서 그때가 또 IMF 끝나면서 물밀듯이 또 서양의 식문화가 또 들어왔던 시기예요.
와인이라든가 커피, 케이크가 그때부터 시작이 됐고. 또 나쁜 역기능도 있었지만 음식 문화에 있어서는 굉장한 순기능이죠.
그래서 그때 흐름도 내가 이런 걸 좀 배워와서 나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싶다.
예전부터 이런 게 너무 일본에서도 유럽에서도 내가 신기했었는데
이런 직업을 가지면 나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약간의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이 취미에 맞고 이러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무모하게 갔죠. 반만 믿고.
-맞습니다. 그때 생각이 나는데 그때는 커피 전문점도 없었어요, 거의.
그때 뭐 별다방, 스타땡땡 뭐 이런 곳 있잖아요. 그런 것 자체는 아예 없었던 시절이고. 커피는 다방 가서 먹는 거였고.
-다방이요?
-카페 정도?
-인스턴트커피.
-믹스커피 그런 거, 노란색.
-인스턴트 커피를 먹었던 시절.
-자판기.
-그게 90% 이상이고 그때 우리가 말하는 아메리카노 드립커피가 들어왔던 시기죠, 초창기.
-당시 파리의 쇼콜라티에는 어떠셨어요? 그리고 국내에서 접하지 못한 만큼 되게 충격적인 것도 많았을 것 같아요. 신선한 것도 많고.
-일단 파리의 쇼콜라티에는 1만 명이 넘어요.
-1만 명이요?
-일단 그 숫자 하나 가지고도 다 이해가 되시죠? 그냥 우리나라 그냥 국밥집처럼 진짜 그렇게 많아요.
그러니까 거기 가서 놀란 게 이게 배워서 갈 일인가. 내가 배워서 간들 이 1만 명의 문화를 내가 다 한국에 알려줄 수가 있을까.
그 걱정이 사실 앞서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1만 명이란 숫자와
또 400년이 넘는 그 직업의 역사가 갖는 그 레인지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엄청 역사가 깊겠네요.
-그래서 그때 제가 느꼈던 게 아트 초콜릿이에요.
초콜릿을 아무리 늘어놓고 보여준들 이게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맛을 뭐 찾아내고 돈을 주고 사야 되는 가치를 모르거든요.
그런데 아트는 누구나가 좋아하잖아요. 누구나 웃을 수 있고 뭐 사라고 강요도 안 할 거고.
그래서 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또 미술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런 아트 초콜릿을 굉장히 잘 아는 선생님이셨어요.
그래서 그 이제 왔다 갔다 하면서 배우면서 기술적으로도 물론 배웠지만 제가 그때 약간 아트라는 부분에 매료되는,
너무나 높게만 느껴졌던 그 아트의 세계가 초콜릿으로 내려오니까 너무 친숙하고 스위트하고 재미있는 거예요.
우리는 미술 하면 지금도 어렵잖아요. 뭐 미술관 가는 것도 어렵고 뭐 미술 그림 보는 것도 어렵고.
그런데 초콜릿으로 그런 걸 보니까 누구나 남녀노소가 다 즐거울 수 있잖아요.
-모두 공감할 수 있죠.
-네, 게다가 먹을 수도 있고. 그래서 그때 한국에 오면 나는 꼭 아트 초콜릿을 꼭 선보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그때 했었어.
-대표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너무나 좋은 말씀을 해 주시고 계신 게 뭐냐 하면
어떠한 목표를 잡고 거기를 계속 가다 보면 계속 그 갈래길을 만나게 되거든요.
그 자기의 방향성을 그 갈래길에서 선택을 통해서 계속해서 개척해 나가시는 모습이 보여요.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방송 보시는 우리 또 청년분들은 그런 생각 많이 하세요.
어떠한 목표를 잡고 거기로 그냥 일직선으로 간다라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엄청나게 많은 선택지가 있는데
그 선택지를 통해서 내가 갈 수 있는 방향성을 정한다.
이런 부분들을 좀 오늘 배워보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좀 들고.
어떻게 보면 프랑스에서 쇼콜라를 배워서 우리나라로 가져온다는 건
우리나라의 약과를 프랑스 사람이 배워서 프랑스로 가져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라고 좀 생각이 되거든요.
-약과 떡 이런 거를.
-그렇죠. 그다음에 또 다른 장르로도 개척하신 또 이제 거기에 아트를 접목시키신 건데 어땠을까 궁금해요.
귀국해서 처음에 한다는데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그렇게 뭐 초콜릿을 우리가 아까 얘기했던 편의점에서
기역, 니은 초콜릿 그런 거 먹던 시절인데.
아트 초콜릿을 한다고? 바로 매장을 오픈해도 이게 될까.
이 사람들한테 팔릴까? 너무 주제 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좀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진짜 말씀하신 대로 주제 넘었어요. 그래서 매장을 낼 생각은 못했고.
감히 내가 여기 무슨 가게를 내고 먹어보지도 못한 사람들한테 이걸 어떻게 전달을 할 거야.
그런 생각이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근데 파리나 영국이나 보면 쇼콜라티에가 가장 친한 사람들이 와인 소믈리애들이에요.
-안주 같은 개념이군요.
-와인하고 초콜릿, 꽃 이게 한 세트예요. 항상 파티할 때.
그래서 항상 와인하고 페어링하고 그래서 샴페인. 초콜릿은 샴페인하고 어울리거든요.
또 위스키하고 어울리고. 그래서 제가 와인숍을 찾아갔죠.
이제 그것도 강남에 이제 그때 또 IMF가 끝나면서 와인 붐이 일었어요.
그래서 그때 와인숍이 생기고 와인 동호회라는 게 생겼어요.
-기억나요, 맞습니다.
-진짜요?
-비슷할 겁니다, 아마. 제가 2004년도 데뷔라. 개그맨으로 이제 공채 시험을 본 게. 그때쯤일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와인 매니저한테 와인이 혹시 팔고 싶은 와인이 있으면 그 와인을 내가 넣어서 초콜릿을 한번 해 주고 싶다.
그래서 와인 동호회 분들한테 먼저 이거를 한번 선보이는 게 어떠냐 그렇게 했더니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어떤 이벤트니까.
그러면 우리가 사실 밀고 있는 와인은 이러이러한 와인이라고 해서 그때 샤토라토르가 또 유행이었더라고요.
뭐 북한하고 정상회담 때 썼대나. 그래서 그 와인 병을 준 거예요, 빈병을.
이제 그 이런 와인을 이제 느낌으로 뭔가 해달라고. 그래서 제가 사실은 그 와인을 그대로 초콜릿으로 만들었어요.
-진짜요?
-그러니까 실물 그대로. 그분은 와인을 넣어서 먹는 초콜릿을 가져오는 줄 알았나 봐요.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저도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같이 와인이랑 페어링 할 수 있는 초콜릿을 만드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초콜릿 박스부터 와인 병까지 전부 다 초콜릿으로 만들어서 이만한 작품을 만들어 간 거죠.
근데 그 매니저가 너무 놀라가지고. 이건 와인 동호회에서 선보일 게 아니라 우리 백화점 전시회를 한번 하자.
그분이 그렇게 본사에 의뢰를 해서 그때가 이제 1월이었으니까
2월 발렌타인데이 때 맞춰서 제가 일주일 만에 작품 전시회를 한 거예요.
시간이 촉박해서. 그래서 그때는 뭐 날밤 뭐 일주일 내내 밤 샌 거예요.
집에서. 그것도 작품을 한, 그때는 많이 못 했죠. 5개 정도만 늘어놓는 정도였어요, 사실은.
그래서 그 와인숍에 와인을 사러 오시는 분들한테 선보이는 형식으로 그랬는데 이게 매스컴을 타게 된 거죠.
한국에서는 없었던, 어쨌든 작든 크든 개인 이름을 걸고 초콜릿 작품 전시회? 지금도 사실은 별로 없지만.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저쪽 밑에 백화점 그다음부터는 중앙 백화점 돌아가면서.
-소문이 나서.
-순회 전시를 하셨군요.
-매년 겨울에는.
-아트 초콜릿이라는 이름을 듣고 그냥 예쁘게 만든 초콜릿을 먹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전시회를 열 정도의 진짜 아트. 그러니까 작품을 만드셔서 전시를 한 거라는 것을 지금 처음 들었거든요.
제 생각을 계속해서 비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그때부터 어떻게 보면 언론을 통해서 지금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신 거죠.
그런 전시를 통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많은 사람이 몰리고, 이건 뭐지?
초콜릿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네라고 해서 국내 1호 스콜라티에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을 한 것 같은데.
이후에 그 대표님을 찾는 곳이 저는 제가 봤을 때 그렇게 새로운 뭔가를 해내면 많은 분들의 관심을 타기 마련이거든요.
여기저기 많이 찾을 것 같은데.
-시선 집중.
-물론 이제 매스컴이나 뭐 잡지나 인터뷰라든가 이런 거 뭐 해마다 이제 많이 왔죠, 그래서...
-멋있으세요.
-이제 대학에서 강의 의뢰가 왔어요. 아무래도 제과제빵을 하시는 분들이 또 초콜릿도 필요로 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마 제과제빵에 초콜릿 부분이 좀 들어갔어요.
그래서 제가 한 대학에서 8년 내내 이제 강의를 했고 그 중간에 이제 제가 개인 작업실을 냈죠.
사실은 저는 그렇게 해서 교육으로 가게 된 거예요.
제가 처음부터 교육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초콜릿 시장이 없다 보니 기술자가 있어야 선보이는
사람이 많아야지 시장도 커지는 건데 저 혼자 전국을 커버하면서 팔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저 혼자? 누가 수요가 될지도 모르는데 덜커덕 가게를 낼 수도 없고.
그래서 일단은 가르치는 교육이 제 메인이 돼 버렸어요.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이걸 배워서 나도 초콜릿숍을 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이제 제가 약간의 워너비가 된 거죠.
-선구자. 일인자.
-그 역할을 또 제가 하게 됐어요, 진짜.
-초느님, 초느님.
-그래서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같아요.
-참 재미있네요.
이게 뭔가를 시작하기 위해서 유학을 갔다 오셨는데 초콜릿을 만드는 법을 배우러 가셨는데
한국에 오셔서 예술 작품으로 승화를 하셨고 예술 작품을 만들다 보니
교육의 업종에 또 진출하게 되는 이런 이 연속적인 이 갈림길에서 계속 뭔가를 찾아내시는 이런 모습을 볼 수가 있네요.
참 우리가 배울 게 많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만드신 작품들 중에 가장 애착이 많은 작품이 있을 것 같거든요. 어떤 게 있으신지.
이제 제가 만든 것 중에 엄마 곰이 아기 곰을 안는 인형 같은 초콜릿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전시회를 취재하러 온 기자, 남자 기자분이 다시 이제 끝나고 나서 그 제품을 하나 만들어 달래요.
작품을. 그래서 어떤 용도예요, 그랬더니 프러포즈를 할 거래요. 그러면서 그 밑에 내 아를 낳아도, 경상도 분이셨나 봐요.
-그때 당시 개그콘서트 유행어죠.
-네, 맞아요. 내 아를 낳아도라는 게 유행이었어요.
-2003년 정도 됐을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걸 써달래요. 왜냐하면 곰이 아기를 안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때 프로포즈 곰.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그 작품 이름이 프러포즈 곰돌이가 됐어요.
-아니 그런데 궁금한 게 그 초콜릿으로 작품을 한번 만들면 그 작품은 변하지 않습니까?
-변하지 않죠.
-변하지 않는군요.
-다만 이제 발색이 되고. 아무래도 먹는 거다 보니까 색이 이제 이렇게 부식된다고 그렇죠.
그렇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웃기지만 꽃처럼 시들어서 버린다든가 그러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10년 이상 갖고 있는 초콜릿 작품도 있어요.
-진짜요?
-영구 보존도 가능합니까?
-잘 보관하면. 일단 뭐 덥지 않게 뜨겁지 않게 온도만 보관하면.
그래서 유럽에 초콜릿 박물관 가면 몇십 년 된 초콜릿도 많아요.
이제 큰 덩어리째로 조각을 하니까 그게 쉽게 안 녹죠.
-초콜릿 작품을 만드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뭐 당연히 뭐 초콜릿이니까 맛도 생각을 하실 것 같고.
디자인도 당연히 생각을 하시고 식감이라든가 스토리도 있어야 되고요.
예술 작품은 사실 스토리가 또 있어야 스토리텔링이 돼야 많은 분들이 또 공감해 주시니까요.
다 중요하겠죠. 어떻게 뭐 만드십니까?
-이제 먹기 위한 초콜릿은 맛도 굉장히 중요하죠.
이제 하나의 박스를 만들려면 이런 맛 저런 맛도 들어가지만 큰 아트 작품을 만들 때는 사실 맛은 제외하죠.
변하기가 쉬우니까. 안에 어떤 내용물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그래서 저는 직접 이제 그림을 그려서 제가 이제 만약 꽃을 주제로 한다면
꽃으로 수묵화 형태를 그리든 민화 형태를 그리든 유화 형태를 그리든 제가 그 작업을 직접 해요.
그 작업을 직접 하면서 색을 찾아내고 어떻게 보면 이제 필력이 생기죠.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 느낌으로 그 비슷한 초콜릿을 제가 만들어요.
그게 가장 제 것이 되지 초콜릿만 뭔가를 하면 이제 일단은 작아지죠.
모든 게. 근데 이제 그림을 그리면 뭐든지 커지죠.
-그림 엄청 잘 그리시겠네요, 그러면은.
-그렇게 착각들을 하세요. 그래서 제가 만들어내면 미술 전공했냐고.
그래서 제가 그게 히얼이라고 했잖아요. 초콜릿을 하다 보면 초콜릿에 맞는 아트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수묵화로 장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화가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내 초콜릿을 위한 수묵화는 좀 달라요. 다만 수묵화의 형태를 빌리는 거죠.
그래서 이런 이제 말씀을 드리면 그게 뭐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그린 그림으로 스티커를 만들어서 제 초콜릿 박스에 넣는다던가
그런 형태로 이게 그림이었어요라든가 그런 식으로 작게 이제 표현도 해보고.
또 앞으로는 이제 그 전시회를 또 제가 기획 중이에요.
처음으로 초콜릿 아트를 선보였던 사람이 지금은 또 어떤 지점에 가 있을까.
그러면 그때는 이제 단순한 인형 같은 뭐 실생활에 재미있었던 조각 같은 초콜릿이었다면
제가 직접 그린 작품하고 그 작품에서 나온 제 초콜릿 작품하고 같이 이렇게 진열해 놓는 게
대중들이 보기에는 또, 또 다른 아트의 재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스토리도 많이 좀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확실히 또 교육 업계에 계시니까 쉽게 저희가 이해하기 쉽게 또 설명을 잘해 주시는 것 같아서 저희 둘이 공감을 많이 할 것 같아요.
아~ 이런 거를 리액션을 좀 많이 하게 되네요.
-그러니까요. 근데 또 초콜릿 작품을 만드실 때 뭐 크기도 다양할 것 같고
모양도 다양할 것 같은데 만드는 데 시간은 어느 정도 소요되세요?
-짧은 건 하루만에도 되죠.
-하루만에도요?
-하루만에도 가볍게 얇은 초콜릿으로. 그런데 초콜릿도 트렌드가 있어요.
요즘 이제 아트 초콜릿이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저처럼 맛을 생각 안 하게 크게 아트 초콜릿을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작은 초콜릿 봉봉들도 이제 색을 내서 이제 어떻게 보면 먹기 위한 초콜릿으로 또 쓰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그런 거는 시간이 사실 정해져 있지는 않죠. 한 달 내내 걸리는 것도 있고 하루 만에 끝나는 것도 있고요.
-작품이니까.
-그렇군요. 먹는 초콜릿도 아트로 만드셔 가지고 제작을 하시는군요.
이런 질문을 좀 제가 좀 드리기 좀 죄송한데. 저는 이게 사실 제일 궁금합니다, 사실.
의뢰받아서 제작하시는 작품은 얼마입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질문...
-초창기에 제가 초콜릿 작품전시 할 때는 꽤 의뢰가 많았어요.
그러니까 그때 말씀드렸듯이 그때는 우리가 낭만이 있었어요.
초콜릿 작품을 사서 선물하고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엄청 이제 선호하고 안 받으면 서운하고.
전국의 어떤 명절날이었거든요.
-명절이었어요, 맞아요.
-그때는 저는 그냥 기본적으로 100만 원 이상이었죠. 그만큼 또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그 제작한 초콜릿이요?
-네. 다양했고 그 당시에는 정말 저는 작품 초콜릿 갖고 먹고살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러면 지금은 그때보다 가격이 좀...
-지금은 추세가 좀 다르죠.
지금은 이제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그렇게 막 이제 보여주는 초콜릿보다는
내가 정말 먹기 좋고 또 가볍게 또 주머니도 얇아졌고 거기에 쓰기에는 또 여러 가지가 비싸졌죠.
그래서 지금은 아트 초콜릿이 이제 소형화되면서 먹는 초콜릿으로 바뀌는 거예요.
-점점 이렇게 또 트렌드가 바뀌어가고 있는 그 단계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초등학교 다닐 때 과자로 만든 집 이런 거 탐구 생활로 해가지고.
-헨젤과 그레텔.
-네, 숙제로 많이. 방학 숙제로 많이 제출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맞아요. 웨하땡으로 지붕 만들고.
-그런 개념으로 우리가 지금 직업을 좀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뭐 접점이 좀 있겠다라고 좀 생각이 되어지기도 하네요.
-그리고 사실 요즘 제일 인기 많은 초콜릿 아시죠, 다들.
-혹시 그건가요?
-네, 그겁니다.
-허니버터? 아닌가요?
-요즘 두쫀쿠가 엄청 인기가 많잖아요.
-난리더라고요, 정말.
-두바이 쫀득쿠키의 줄임말 두쫀쿠. 요즘 정말 난리인데. 없어서 못 먹잖아요.
그런데 혹시 대표님도 그런 유행하는 두바이 쫀득 초콜릿 같은 그런 거 만드시나요?
-당연히 만들죠. 원래 이제 두바이 초콜릿에서 파생된 어떻게 보면 k디저트죠. 우리가 이제 만든.
-그게 원래부터 있었던 건가요?
-두바이가 있었지 두쫀쿠는 없었어요.
-두쫀쿠는 없었죠? 새로 만든 거죠?
-그렇죠.
-한국 분들이.
-그게 이제 우리 젊은 친구들의 역동성인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친구들이 프랑스의 초콜릿들을 다 자기화시키면서
생초콜릿 이런 걸 만들어낸 게 일본 초콜릿이거든요.
-생초콜릿.
-그래서 일본의 초콜릿 로이땡.
-공항에서.
-감자칩 그거.
-무조건 사 와야 되는 거.
-사실은 유럽에는 없어요.
-너무 멋있어요, 단짠 단짠.
-일본 친구들이 만들어내서 잰스타일로 다시 역수출을 한 케이스거든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아마 그런 시대에 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두바이가 들어왔다면 그거를 파생시키면서 뭐 두쫀쿠 되든 다음에
또 어떤 게 또 들어오든 그거를 한국식으로 만들어내는 이 풀이가 되는 세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네요.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다시 재창조하면서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문화군요.
두쫀쿠 자체가. 저는 당연히 두바이에서 들어왔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카다이프는 두바이에서 온 게 맞는데 그 쿠키는 우리나라에서 만드신 거죠?
-쿠키처럼 만드는 거.
-쿠키처럼 한국식을 접목시켜서 새롭게 탄생한 문화다라고 생각을 해 봐야겠군요. 알겠습니다.
김성미 대표님과 이야기를 좀 나누면서 느끼는 건데 대표님께서 만드신 초콜릿 자체가 너무 궁금합니다.
먹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보고 싶기도 하고.
-맞습니다. 그래서 오늘 프로취준러 오하연 씨가 오늘은 초콜릿 만들기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달콤한 초콜릿들을 만들고 있을지 기대가 되는데요. 일단 화면으로 먼저 만나보시죠.
-제가 여기서 초콜릿을 만드는 건가요? 저 너무 기대돼요.
어떡해. 이거는 뭐예요? 신어봐도 되나? 이 초콜릿이에요? 진짜 신기하다. 어떤 분이시지?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도전 오하연입니다.
-네, 하연 씨 반갑습니다.
-근데 여기는 어디고 누구시죠?
-여기는 한국 쇼콜라티에 협회고요. 저는 협회장을 맡고 있는 쇼콜라티에 김성미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협회장님께 직접 배우는 건가요?
-네, 오늘 맛있는 두바이 초콜릿 한번 만들어볼게요.
-어머, 저 너무 기대돼요. 두바이 초콜릿이라고 하면 요즘 유행하는 피스타치오 아삭아삭 씹히는 그런 거 맞죠?
-네. 피스타치오 그다음에 볶은 카다이프의 식감이 아주 맛있는 초콜릿이에요.
-제가 오늘 이거 잘 만들어 가지고 남자들의 마음을 훔치려고요.
-훔쳐보세요.
-네, 한번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파이팅. 대표님, 저 달콤해질 준비 완료했습니다.
-오늘 그럼 초콜릿을 한번 시작해 볼까요?
-저 너무 기대돼요.
-지금부터 이 틀을 이용해서 요즘 유행하는 두바이 초콜릿 만들어볼 거예요.
그러기 전에 이제 이 틀이 이렇게 삼각형 틀의 모양도 예쁘지만
여기에 이제 색소를 넣어서 약간 화려하게 데코레이션한 다음에 그다음에 초콜릿을 부을 거예요.
-제가 사랑 고백도 적을 수 있나요?
-글씨는 지금 이 판이 안 될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사랑 고백은 맛으로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색소를 안 입히고 다크 초콜릿을 입히는 방법도 있지만 오늘 더 예쁘게 하기 위해서
일단 이제 그림 작업처럼 한번 이제 먼저 작업을 할 거예요.
이거는 우리가 쓰는 그림 물감 색소처럼 보이지만 초콜릿 전용 색소로 카카오 버터가 함유된 색소예요.
그래서 이거는 초콜릿에만 쓰는 색소예요.
-그럼 그냥 먹어도 맛있겠네요.
-그다지? 그래서 초콜릿을 이제 붓기 전에 이제 그림 작업처럼 한번 해 볼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번 이렇게 이제 시뮬레이션을 보여드리면 샘플을 보여드리면 한번 따라서 해 보세요.
-네, 따라서 해보겠습니다.
-지금 이거는 이제 흰색이잖아요. 그래서 흰색은 약간 우주의 점처럼 표현하는 기법이에요.
그래서 이게 흩뿌리기 기법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툭툭툭 이렇게 한번. 이제 한번 해 보세요.
-너무 멋있어요.
-이렇게 큰 이제 물방울이 생겨도 되니까 과감하게 한번 해보세요.
-이게 초콜릿이 그냥 음식이 아니라 예술이네요.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나요?
-쭉 이렇게 9개 정도 균일하게.
-9개를 균일하게.
-조금 더 이렇게 가깝게 툭툭 하거나. 그러면 똑똑 큰 방울도 떨어지고. 작은 방울도 떨어지고.
-이렇게 초콜릿이 정말 작품 같은데. 대표님께 초콜릿은 작품이에요, 인생이에요? 아니면 무언가의 음식이에요?
-초콜릿을 하면 행복하잖아요, 재미있고. 그래서 저는 이제 제 행복을 만드는 훌륭한 도구.
-도구? 행복을 만들어주는 도구. 네잎클로버 같은 거네요.
-그렇죠. 이거는 어차피 자기 느낌대로 가는 거니까 잘하고 못하고는 없어요.
-이츠 마이 필링.
-그럼요.
-어때요?
-마치 예술 작품 하듯이 잘하셨어요. 다 완성이 됐네요.
-진짜 예뻐요. 어떡해. 근데 이거 색 조합이 진짜 너무 예쁜 것 같아요.
-그렇죠. 아까 하영 씨가 만든 색이니까. 그렇게 조화롭게 하는 거고. 한번 드셔보세요.
-제가 또 막 한 거 같은데 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니까 또 맛있게 예쁘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막 한 거 아니에요, 예술적으로.
-맞아요, 예술적으로 탁탁 했더니 딱 이렇게 나왔네. 긴장된다.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바삭거리는 식감이 여기까지 들리네요.
-이거 진짜 엄청 바삭거려요. 그리고 이 비율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비율이 대박인데요. 여기 안에.
-아까 다 하셨잖아요.
-고소함과.
-볶음 카다이프, 피스타치오, 화이트 초콜릿, 배합이 맛있죠.
-진짜 너무 맛있어요. 그리고 안에 꽉 차 있으니까. 저는 쫀득쿠기보다 두바이 초콜릿이 100배는 맛있는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이제 이게 오리지널이죠.
-진짜 너무 맛있어요.
-그리고 이제 아무래도 피스타치오가 들어가 있으니까 이런 그린빛의 이제 그 피스타치오를 상징하는 또 색감을 쓰셨어요.
-저 소질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네, 맞아요. 소질 있으세요. 수제자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대표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는 건가요?
-생각해 볼게요.
-받아주셔야 됩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네.
-대답하셨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확실히 초콜릿은 사람들에게 좀 행복을 선물해 주는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고
특히 여성분들에게 훨씬 더 기쁨을 주는 것 같다 그런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오하연 씨의 표정이 정말 찐행복 그 자체였던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주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받는 사람도 엄청 행복하잖아요. 사실 초콜릿.
-그렇죠. 대표님 혹시 들고 계신 게 저희에게 주실 초콜릿인가요?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요.
-우리 두 분도 드셔보셔야 될 것 같아서.
-진짜요?
-받아와도 되겠습니까. 이게 대표님께서 직접.
-케이스부터. 아주 강렬한 레드로 또.
-앞에 또 케이스가 이렇게 또 그림으로 직접 작품을 그리신 거죠?
한번 보겠습니다. 굉장히 설레이고 왠지 좀 선물 받은 것 같은 기분.
-따라라 따따.
-그건 집 아닌가요?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나. 아니 이거 어떻게 먹어요? 같이 생각을 했나요?
-진짜 이거 어떻게 먹어요?
-아니, 이거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한번 보시겠어요. 이걸 선물받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 이거 그거 같아요. 밤하늘에 그런 은하수 같아요.
-전 약간 어떤 느낌이 들었냐면 별 헤는 밤이라는 미술 작품이 있잖아요. 피카소의...
-반 고흐.
-반 고흐의, 피카소란다. 제가 이렇습니다.
-아닙니다.
-반 고흐의 별 헤는 밤이라는 약간 그 그림과 같은 느낌이 드는 진짜 작품이네요.
-그런데 사실 말씀을 안 하시면 초콜릿인 거를 전혀 모르겠어요. 이거 그냥 보석 같아요. 약간 뭔가 스톤 그런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조개껍데기 같기도 하고.
-이거 진짜 그냥 반지에 올려놓으면 그냥 액세서리가 될 것 같은.
-왠지 이거 보니까 이게 프러포즈 하고 싶고 막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하고 초콜릿이 참 그런 매력이 있군요.
약간 그런 감정을 담아서 만드실 때도 좀 하시는 거죠.
-그리고 이런 걸 받으면 어머, 이거 어디서 구했어 막 이러면서 우리 커피 한 잔씩 마시면서 먹을까 이렇게 또.
이렇게 예쁜 초콜릿을 만들면 행복할 것 같아요, 대표님. 그렇죠.
-만들고 나면 뿌듯하지 않으세요?
-이제 후련하죠.
-근데 드시기에 아깝다는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시죠?
-맞아요, 맞아.
-아까 말씀하셨듯이 먹는 보석, 먹는 패션 이렇게 별명이 붙여지는 거죠. 그래서 먹기에 아깝지만 많이 먹지는 않잖아요.
보석도 뭐 흔하게 있으면 보석이 아니듯이 그렇게 귀하게 먹기 때문에 작게 먹어도 맛있는 거 같아요.
-그렇군요. 말씀하실 때 그 초콜릿 이야기를 하시면 좀 행복이 느껴지거든요.
-초콜릿 사랑이 반지에서 또 느껴지세요. 너무 귀여운 반지.
-항상 즐겁게 일하신다라는 생각이 좀 드는데.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실 마냥 즐겁거나 행복하다 뭐 이렇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표님도 힘드실 때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고.
어떤 점이 좀 가장 힘드신지도 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그때는 물론 행복하겠지만 경제적인 또 그 뭐랄까.
수요와 공급이 안 맞으면 그것도 상당히 괴로운 일이거든요. 뭐 사실 통장에 찍히는 게 많으면 좋죠.
너무 행복하고 자다가도 일어날 수 있지만.
-금융 치료.
-그게 아닌 경우는 또 고민도 되고. 그래서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초콜릿으로 관련된 거 교육이나 뭐 판매나 또 뭐 출장이나 이런 것도 굉장히 잦고 아트에만 집중할 수도 없고.
그럴 때는 체력적으로도 힘들기도 하고 뭐 그게 마냥 좋지만은 않죠. 아무리 초콜릿이라고 그래도.
교육이 너무 내가 원하지 않는 또 단순한 그런 노동이 될 수도 있고. 그럴 때는 또 많이 힘듭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경제적인 생각을 한다면 어떤 나의 다른 데 나의 노동과 시간을 써야 되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보니 그런 걸 경험할 때는 좀 힘드시다라고 좀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대표님께서 처음 활동하실 때와 달리 한국의 초콜릿 문화가 사실 많이 달라졌었어요.
제가 아까 잠깐 방송 촬영할 때가 아니라 잠깐 돌아가기 전에 이야기를 좀 나눴던 거죠.
우리 때는 뭐 키스 초콜릿 약간 이런 초콜릿이 엄청 그때 귀했고. 미군 부무대에서.
-저는 세면서 먹었어요. 그 금색 초콜릿 있잖아요. 그게 너무 맛있어서. 정말 저는 문화 충격을 받은 거예요.
-그 안에 아몬도 들어 있고 이렇게. 둘러싸져 있는.
여기는 또 이 세대는 그게 고급 초콜릿이네요. 그거 봐봐요.
이 문화가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요. 그 하트 모양 뭐 별 모양 나와가지고 벨 모양.
-조개 껍데기 모양.
-맞아요. 그런 게 진짜 저희 때는 너무 비쌌어요.
-그렇죠. 이게 문화가 계속 달라진단 말이죠. 대표님이 보실 때 어떻습니까?
계속 문화가 어떻게 달라져가고 있다라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일단 시장이 커져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 뭐 지금 말씀하신 모든 초콜릿 시장이 사실은 리얼 초콜릿 시장은 아니에요.
이제 초콜릿 과자 시장이죠.
그 시장이 탄탄하고 넓게 펴져야지 고급 초콜릿이 또 자리를 쌓아가는 건데.
그 시장이 조금 이제 제 생각에는 좀 늦게 오지 않았나. 빨리 와도 되는데 많이 늦어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고급 초콜릿 시장이 아직도 우리나라는 좀 덜 큰 형국이죠.
그래서 계속 이제 변형되는 또는 계속 그 유행에 맞춰서 움직여야 되는.
그래서 이제 우리 때 시장처럼만 가면 탄탄해졌을 거다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급격히 변해서 이 시류에만 쫓아다니다 보니까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이 어떻게 정착될지 저는 조금 궁금하긴 해요.
그래서 그럴 때일수록 나는 내 영역을 조금 확대를 시켜야겠구나.
남이 안 하는 길을 더 가줘야지 그 레인지가 또 이렇게 넓어지는 거라서.
또 그런 면에서 또 숙제가 생기는 거죠.
-맞아요. 스위스 이런 데는 초콜릿 문화가 되게 잘 돼 있는.
-유럽은 전부 다.
-전 깜짝 놀랐어요. 그 유럽에 갔는데 초콜릿이 종류가 뭐 우리나라는 제품이 세 가지라면
유럽은 20가지 맛도 엄청 많은 거예요. 그래서 충격이었는데.
-아니, 안 가 본 나라가 있나요?
-많은, 많아요, 많아.
-거의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다 문화를 다 아시는 것 같아서.
-아닙니다.
-대단하십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초콜릿이 우리나라 약간 좀 가공식품 위주 대기업에서
이렇게 나오는 초콜릿 위주의 시장이었던 것 같은데.
그게 이제 어떻게 보면 하나의 다른 장르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그 시기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좀 하게 됩니다.
최근에 또 쇼콜라티에라는 그 직업으로 활동하시는 분도 점점점 늘어나고 있다라고 생각을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좀 다소 좀 불안하다라고 느끼세요. 아니면 좋은 경쟁자가 생겼다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죠. 쇼콜라티에 시장은 더 넓어져야 돼요.
-더 넓어져야 되고 파이가 커져야 되니까.
-몇만 명이 생겨도 지금 뭐 더 이제 어떻게 보면 교육을 시켜야 하는 아직은 단계예요. 아직 쇼콜라티에의 시장은 너무 좁고 많이 없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제가 보니까 우리나라는 쇼콜라티에라는 단순한 초콜릿만 만드는 게 아니라
아까처럼 두쫀쿠며 초콜릿 케이크이며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며 초콜릿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해 나가야지만이
쇼콜라티에가 자리를 잡는 게 아닌가.
그래서 조금 걱정이 그런 면에서 되는 거예요. 너무 닥치는 대로 해야 되는 거 아닐까.
팔리는 거 위주로 해야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다 보면 또 우리는 또 이제 또 재미난 걸 또 많이 하니까.
그게 또 우리의 문화죠.
-맞습니다.
-굳이 뭐 프랑스나 유럽을 쫓아갈 필요는 없고요.
다만 저는 좀 클래식한 면을 좀 더 지켜줘야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한 사람 정도는 남아 있어줘야지라는 생각이 좀 들죠.
-그 안에서 파생되면서 또 하나의 문화가 생기고 그게 이제 정착하고 더 해외로 길도 열리고 하는 방향성이 되겠죠.
저는 궁금한 게 쇼콜라티에가 되고 싶어서 대표님을 찾아오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어떻게 생각이 되시고. 어떻게 이제 나아가야 되겠다라고 보고 계신지.
-전문적으로 쇼콜라티에 창업을 위하는 친구들도 많이 오고 또 요즘은 10대들 이제 뭐 직업 체험
또 현장 체험으로 10대들 학교 밖 이제 어린이집부터 시작해서 학교 안에서도 굉장히 많은 체험들을 해요.
그래서 저희 쇼콜라티에 젊은 제자분들이 그런 교육 강사로서 굉장히 활동을 많이 하고
아무래도 우리 시장은 좀 교육 쪽으로 많이 가는 것 같아요.
교육해서 많이 배워야지 그 사람들이 또 밖에 나와서 이제 수요 공급을 맞춰주는 것 같아요.
-저도 사실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게
제가 뭔가를 가르쳐 주지만 제가 받아오는 것도 분명히 있거든요.
대표님께도 그런 게 좀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뭐 새로운 발상들이 떠오른다든가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런 지점들도 분명히 있겠죠.
-그게 요즘 두쫀쿠죠. 저는 두바이 초콜릿만 가르쳐 봤는데 어느 날 시장에 두쫀쿠가 나오니까 제가 시장에서 배우는 거예요.
저는 두쫀쿠를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거든요.
-드셔는 보셨어요, 대표님.
-이제는 만들죠. 인터넷을 보고 저희가 배워서 만들죠.
그래서 그걸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어떻게 이거를 만들 생각을 했지.
그런 식으로 배우는 거죠.
-그런데 진짜 생각지도 못한 유행 아닙니까?
이게 이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이제 모르는 시장이 되어 버리고.
또 SNS가 활발하게 운영이 되면서 말이죠.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거 보면.
-두쫀쿠 좋아하세요, 대표님?
-한번 먹어보고 한번 만들어보고 했지만 많이 먹지는 않아요.
-저는 아직 못 먹어봤어요.
-진짜요?
-되게 막 미개하다는 듯이 저를... 하대하시네요, 약간.
-요즘 이 정도예요. 프러포즈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두쫀쿠로 마음을 표현한다.
그 정도고. 요즘 그 정도더라고요. 구하기가 힘들어 가지고.
-드셔보셨습니까?
-네. 저는 내 돈 내 산 했습니다.
-그렇군요.
-또 대표님께 쇼콜라티에 수업을 받고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신가요?
-많이 있죠. 이십 몇 년 동안 가르쳤으니까 얼마나 많겠어요? 거의 제가 다 아는 분들이 많죠.
-진짜요?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또 중간에 그만둔 사람들 또 많죠.
-그 요즘에 또 제일 유행하는 프로그램 중에 흑과백 요리사 이런 프로그램도 있잖아요.
그런데 아직 디저트 만드시는 분은 안 나오신 것 같은데.
-맞네요.
-후학 양성을 하실 때 많이 가르쳐 주셨던 분들이 그런 데 출연하셔서
더 많은 곳에 알려주심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기회가 오면 좋죠.
-뭐랄까요? 이렇게 애정이 많으시고 후학 양성에 관심이 많으신데.
이와 관련된 계획이나 목표가 또 있으실 거라 생각이 되어지거든요.
어떤 목표를 갖고 계신지 여쭤보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제 전시회를 다시 기획하고 있는데.
처음 전시회하고는 다르게 제가 직접 그린 이 그림이나 회화나 같이 전시해서 아트 초콜릿의
세상을 조금 더 확대시키는 단순한 또 먹는 초콜릿만이 아닌 또 나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죠.
먹는 초콜릿도 귀해 죽겠는데 왜 저러냐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때는 밥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시기라.
-지금 좀 나을까요?
-그랬었던 것 같아요, 옛날에는.
-그래서 사실은 다른 쇼콜라티에들도 여유가 없잖아요. 이제 그런 작업을 할.
그런데 나중에는 나도 저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그런 희망도 주고 싶고 하나의 또 다른 점을 한번 찍어주는 거죠.
그래서 제 역할은 또 그렇게 또 갈 것 같습니다.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탑클래스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에게 있어 초콜릿이란 무엇일까요?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서 살죠. 다 행복하기 위한 또 도구도 많을 거고.
근데 제가 제일 좋아했던 도구가 초콜릿이었던 것 같아요. 제일 행복을 만들어 줬던 도구.
-행복을 만들어줬던 도구가 초콜릿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제가 앞서 오프닝에서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라고 좀 말씀을 드렸었는데.
오늘 김성미 대표님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눠보니까 이 초콜릿 상자 속에 어떤 맛이 들어 있느냐보다 누가 어떻게 만들고.
-맞아요.
-이 상자를 어떻게 꾸미고 그 초콜릿에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어떻게 설계해 나가고
이런 게 더 중요한 상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때론 달고 또 때론 쓰고 때론 매운 것이 우리의 인생이지만 그 맛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속깊은 이야기 들려주신 김성미 대표님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요.
-감사합니다. 탑클래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이 시간에도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여러분들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
-손 흔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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