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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클래스 - 법을 말하다 이영희, 편견을 넘은 시간들

등록일 : 2026-04-08 15:25:34.0
조회수 : 204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전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이가연입니다.
-이가연 아나운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가연 아나운서는 첫 출근하던 날이 기억이 나십니까, 혹시?
-기억이 안 날 수가 없지 않을까요?
-그래요? 막 설레던 그 감정들.
-설레고 긴장되고 막 벅차오르고 그런 감정 선배님도 느껴보셨죠?
-저는 너무 옛날이라. 2004년도에 데뷔를 해서.
-그럼 20년 더 됐네요.
-20년이 넘었죠, 저도 이제.
그때 생각하면 막 설레고 긴장되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합됐었던 것 같은데.
이 첫 출근, 첫 등교처럼 이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뭐랄까요? 좀 떨리고 설레이고 긴장되는 그런 감정들 말이죠.
그런데 오늘 모신 분이 개인의 처음을 넘어서 하나의 분야에 새로운 처음을 만든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국내 대형 로펌에서 여성 최초로 대표의 자리에 오르신 분입니다. 이영희 대표님 모시겠습니다.
-대표님 반갑습니다. 먼저 탑클래스 시청자 여러분들께 인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법무법인 바른의 경영 대표를 맡고 있는 이영희 변호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최초의 국내 대형 로펌 여성 대표님이다라고 저희가 소개를 해 드렸는데 현재 국내 유일한 여성 대표님이신 건가요?
아니면 처음으로 대표님이 되신 겁니까? 어떻게 알고 있어야 될까요?
-저희가 대형 로펌을 매출 순위로 평가를 합니다. 매출 기준으로 10대 로펌을 보통 얘기를 하는데요.
10대 로펌에서는 경영 대표가 제가 됐을 때 처음인 건 맞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렇군요.
-이게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만 봐도 사실 대형 로펌의 대표가 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로펌 대표는 어떻게 선정이 되는 건가요, 대표님.
-각 로펌마다 선정 기준은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저희 법인 같은 경우에는 파트너 변호사님들이 투표를 통해서 대표를 뽑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그 안에서의 정치도 좀 있어야겠군요.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왜 여쭤보냐면 이런 관련된 드라마들 굉장히 많잖아요.
-수트, 저 사실 인생 드라마가 수트여 가지고 지금 아까 파트너 그 투표하신다고 하셨을 때
그 장면을 딱 제가 떠올렸거든요. 드라마 수트.
-사실 굉장히 좀 힘든 자리라고 저도 좀 생각이 들어요. 그런 과정들 겪으셨을 때는 어떠셨는지 좀 궁금해요.
-공채 1기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현재까지 27년째 근무를 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서 신입사원도 하고 그다음에 파트너도 되고 지분 파트너도 되면서 운영위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했듯이 쉽지는 않은 과정이고요. 그런데 지지하는 동료들이 많이 있어서.
-주변의 도움도 같이.
-주변의 도움도 많이 있었죠. 이건 파트너 변호사님들의 지지가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평상시에 인심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하면 되시지 않을까.
-그러니까요. 이게 단순히 일만 잘해서는 되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이 돼서.
-다양한 게 필요하죠. 특히 중요한 거는 우리 파트너 변호사님들이 아무래도 날카롭게 많은 평가를 하시거든요. 말씀은 안 하시지만.
그중에서 법인을 위해서 가장 장점을 가지고 이분이 되시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밀어주신 거니까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된 거라서 처음 경영대표 됐을 때는 매우 감사했습니다.
-굉장히 좀 뿌듯하셨을 거라고 생각이 좀 되어지고요.
변호사이자 로펌의 대표이신 이영희 대표님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좀 들어볼 텐데.
변호사라는 직업이 참 멋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좀 어려운 직업이다라고 생각이 들어요.
대표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변호사라는 꿈을 꾸고 시작을 하신 건가요? 어떻습니까?
-저 어렸을 때부터 법조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러니까 본인의 꿈을 이룬
케이스이긴 한데 그게 제 스스로 형성된 거는 아니고 저희 아버님께서 너는 커서 법조인이 되면 좋겠다.
여자도 법조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특히 사시에 여성이 몇 명 합격했다
그러면 그때는 사진이 나오고 또 이번에 여성 판사님이 임명됐다 하면 또 신문에 나오는 그런 시절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그분들 사진을 오려다 주면서 너도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해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는 어린 마음에 대학교는 법학과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아버님의 교육으로 인해서.
-아버님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법조인이 되고 싶었고 그 길을 바라보면서 계속 왔고 다행히 감사하게도 그 꿈을 이룰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러네요.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동기부여를 많이 해 주신 거군요.
-그렇죠, 부모님의 동기부여가 가장 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동기부여를 해 주셔도 저도 그렇게 동기부여를 많이 받았어요.
아버지께서도 너도 법조인이 돼야 된다라고 많이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는 개그맨이 됐거든요.
그래도 약간 다른 거죠. 그걸 이루어내신 게, 실천으로 이루어내신 게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왜냐하면 시골 마을에 살다가 법조인이 되신 거거든요. 그러면 그만큼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하셨다라고 생각이 드는데.
어떤 소녀셨는지 좀 궁금해요. 화천군 사내면에서 살고 계셨었죠?
-강원도 화천의 산골마을의 소녀가 어린 시절이 특별나겠습니까?
저 어렸을 때 호기심 많고 모험심 많고 그다음에 골목대장 스타일로 컸습니다.
-그때부터 또 리더십이 있으셨군요.
-리더십이라기보다는 남한테 지는 걸 좀 싫어했던 치기 어린 마음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어린 동생들만 데리고 놀이공원에 다녀오기도 하셨다고요?
-5월 5일 어린이날인데 아버님은 군인이셨기 때문에 바빴고 어머니도 나름 또
살림하시느라 바빠서 동생들한테 뭘 해주면 제일 기뻐할까 생각하다가 놀이공원에 가면 좋겠다.
그때 춘천에 육림공원인가 제 기억이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육림공원이 있었거든요.
-그럼 화천에서 춘천으로 또 올라오셨겠네요.
-그래서 5명을 다 데리고 제가 부모님 허락을 받고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정말 모험을 가지고 버스를 타고 5명을 다 데리고 육림공원에 중학교 2학년 때 다녀왔습니다.
-장녀신 거죠?
-딸 5명에 제가 첫째입니다.
-뭔가 K-장녀의 느낌이 나시는 것 같아요.
-요즘 한창 말이 많이 나오는 K-장녀의 대표적인 모습이다라고 볼 수가 있겠네요.
-없다고는 할 수 없죠.
-그렇게 골목대장이었던 소녀가 사실 사법고시라는 게 지금이야 사법고시가 없고
로스쿨로 바뀌었지만 그때 당시에 사법고시를 패스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잖아요.
공부를 원래 잘 하셨던 건가요, 어떻습니까?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공부를 잘했다기보다 항상 전교 1등을 한 건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공부하던 친구가
어느 날 공부를 좀 해볼까 해서 중학교 때 아주 열심히 공부했는데 처음으로 1등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공부를 하면 부모님이 좀 기뻐하시는구나 잘하면.
그런 생각이 있어서 열심히 했던 부분이 있는데 저는 천재는 아니고 평범한데 감사하게도
주변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들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겸손의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또 겸손하셔서.
-하루에 몇 시간 정도 하셨어요, 중학교 때 공부를.
-약간 벼락치기 스타일이라서 거의 시험 기간 동안에 한 서너 시간밖에 안 잤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스스로 그때 제가 모든 선생님이 말하는 거를 노트에 적고 제가 또 필기의 여왕이라 노트에 적어서 그거를 반복했는데
시험에 나온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 필기에 있어서 운이 좋게도 전교 1등을 하면서 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그때부터 열심히 했습니다.
-서너 시간 주무시고 공부하면 21시간, 20시간씩 공부하신 거라고 제가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그렇겠죠?
-또 중학교 때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중학교 때면.
-이게 보통 마음으로 접근한 게 아니었네요. 엄청 열심히 하셨던 거네요. 그러면 그때부터.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뭔가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된 겁니까? 중학교 때부터 그런 거면.
-그때 저희 중학교 때 아마 인천에서 되게 공부 잘하는 친구가 전학을 왔습니다, 그 산골 마을에.
그 친구가 이런 산골마을 촌 친구들하고 이거 하느니 맨날 공부만 했는데 그 친구가 전교 1등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그 친구를 한번 이겨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승부욕이.
-그 친구를 열심히 관찰하고 쟤가 뭘 하나 그다음에 많이 물어봤죠. 쟤는 집에 가서 공부 몇 시간 한대?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서 제가 아까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어렸을 때는 강했기 때문에 한번 1등을 해볼까.
한번 나도 쟤처럼 해볼까 그렇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냥 타고난 승부욕도 있으셨고 거기에 따른 노력까지 하시니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저도 승부욕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질 것 같으면 그냥 빨리 포기하는 성향이 좀 있어서.
그런데 저랑은 반대시고 끝까지 이겨내시는 성향을 좀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이 제일 싫어하는 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걸 싫어합니다. 해보지도 않고 결과를 네가 어떻게 아느냐.
갈 때까지 가서 실패하더라도 가 봐야 되는 거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제가 1등을 할지 안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까지는 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도전했던 것 같고 지금도 약간 대표 돼서도 그 마음은 계속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거라서 그대로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뭔가 하나 걸리면 끝까지 갑니까?
-그러니까 회의를 해서 우리가 어떤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부정적 의견을 많이 내면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가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건들도 지는 거고 끝까지 해보고 여기까지 가보고 아니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더라도 나는 기본적으로 해보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이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결론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너무 좋은 말씀이세요
-고 정주영 회장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잖아요. 해봤어, 약간 이런 말을 했는데.
역시 뭔가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라는 것은 좀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들, 그 과정이 있어야 결국은 성공할 수 있다라는 것도 좀 저희가 배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까 또 말씀 들어보니까 아버님이 무척 자상하셨던 것 같아요.
-공부하는 딸이 되게 보시기에 대견해 보이셨던지 그 추운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거든요.
거기서 갑자기 나가시더니 한참 있다 들어오셔서는 이렇게 잠바에서 딱 꺼내면서 호빵 그걸 따뜻하게 가지고 와서 먹고 해라.
잠도 좀 자면서 해야지, 이런 얘기를 해 주셨고요.
-부모님의 교육 방식이 뭔가 좀 확실히 훌륭하신 대단하신 뭔가가 있으셨는지 대표님 다섯 자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 다섯 자매 분 중에 세 분이 법조인이 되셨다는 얘기가 맞습니까?
-맞습니다. 저희가 딸 다섯에 제가 첫째고 저희 넷째와 다섯째가 같이 사시를 합격해서 같이 변호사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하다가 안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하신 거예요?
-저희 어머니의 기준이 명확하십니다. 너희들은 미인이라 괜찮다.
-넌 안 해도 된다.
-그러나 너희 셋은 반드시 공부를 해야 되느니라.
저희 어머니 우스갯소리를 맨날 하시는 게 내가 둘은 예쁘게 낳았지만 너희 셋은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
-그중에 첫째 너는 반드시.
-반드시 너는 더더욱 더 인생 살아가려면 혼자 살아갈 수도 있으니.
-재미있네요.
-입담도 너무 좋으셔서.
-자매분들이 같은 길을 가고 같은 집에 살았고 같이 다 알 거 아니에요. 자매들은 워낙 또 친분 관계가 돈독하니까요.
법조인 자매분들의 에피소드가 좀 있을 것 같은데요. 같은 일을 하고 계시니까.
-저희 딸 다섯이 결혼을 했는데 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요?
-다른 호수, 다른 층.
-위층 또는 옆동 이렇게 같이 살고 있다 보니까.
-남편분들이 얼마나 힘드실까.
-제가 그렇게 제부들이 제일 불쌍하다고.
그런데 어쨌든 그러다 보니까 아침 출근 시간에 제가 서초동을 지나서 테헤란로를 가면 되거든요.
그래서 아침 출근할 때 같이 출근하면서 각자의 사무실에 떨어뜨려주고 제가 출근을 한 다음에
퇴근할 때도 거의 사실 늦게까지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퇴근할 때도 같이 태워서 같이 퇴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좋겠는데요.
-그러다 보니 아침에 출근하다가 또는 저녁에 퇴근하다가 차 안에서 그날 있었던 법정에서의 에피소드, 또 어떤 사건들 이야기,
어려운 문제 있으면 각자 다른 시각에서 보면서 그렇게 출퇴근을 많이 해서 주변의 많은 분들이 부러워하긴 합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이게 사실 여성 변호사분들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걸로 제가 기억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워낙 거의 반반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데.
-제가 1997년에 사시에 합격을 했거든요. 저희 연수원 29기가 600명이 조금 안 됐습니다.
그중에 여자 48명이었으면 10%가 안 되는 거였고 그게 여자가 많이 늘어난 숫자였기 때문에
전체 여성 법조인은 아마 6-7% 됐을 것 같아요.
-거의 없었죠.
-그런데 작년 12월 말 기준으로 여성 법조인이 한 33% 정도 지금 돼 있고 아직 50%는 시간의 문제지 금방 될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여성 변호사가 많지 않았던 만큼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을 것 같아요.
-있었죠, 많이 있었죠.
-예를 들어서 시험 패스는 하지만 그 이후에 고위직으로 올라간다거나 이런 건 제한이 좀 있었다거나 그런 것도 있었나요?
-기본적으로 파트너가 되려면 많은 중요한 사건들도 해봐야 되고 또 경험도 많아야 되고 성장을 해야 되는 부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연차 변호사였을 때 클라이언트들이 험한 사건, 어려운 사건
이거를 여자 변호사가 맡는 거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파트너 변호사님이 이 사건에 우리 이영희 변호사가 투입될 겁니다라고 인사 싹 드리고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러고 가면 클라이언트가 열심히 해주십시오 하고서는 파트너 변호사님한테 전화해서 남자 변호사님은 없으신가 봐요.
그런 식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험한 사건 이런 거에서 많이 좀 배제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조금 각 로펌에서도 여자 변호사님들이 파트너로 성장하기 어려운 그런 경우 중에 하나가
그런 어떤 사건의 처리 경험이나 이런 것들이 약간 좀 남자 변호사님들보다는 조금 기회가 적었던 이유도 좀 있었던 것 같고요.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오히려 여자 변호사님을, 그러니까 여자 변호사님이라기보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남녀인지 구별하지 않고 저분한테 맡겨주세요, 이렇게 하는 걸로 시대가 조금 많이 바뀌기는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좀 어렵고 힘든 일은 남자가 더 잘하겠지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있었던 그런 시대였고.
여자 변호사는 좀 쉽고 그냥 깔끔하게 할 수 있는 일 몇 개 주고 이렇게 되면 좀 기회가 확실히 없었던.
기회를 더, 그러니까 나의 경력을 나의 커리어를 쌓기에 좀 불리했던 시기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일을 겪으셨을 때는 어떻게 정면 돌파하셨습니까?
-사실 속으로는 내가 더 잘하는데 클라이언트 선택이 틀렸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또 파트너 변호사님한테 가서 드러나지 않게 내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또는 제가 배정받지 못하면 그 배정받은 친구한테 가서 어떤 사건인지 열심히 듣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사실 예전에는 규모가 저희 법인이 그렇게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같이 식사를 하면서 그 식사하는 동안에 진행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쟁점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토론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식사 자리에서 되게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렇게 정면돌파를 해내시는데 지금 대표가 되신 로펌이 아예 시작을 거기서 하신 건가요?
-제가 아까 공채 1기로 말씀드렸죠. 저희 법인이 3년 차 때 제가 들어왔고요.
설립한 지 3년 차 때 제가 공채 1기로 들어와서 지금 27년째 있는 거니까.
-완전 키우신 거네요.
-제가 맨날 얘기합니다. 들어온 순서대로 하면 나 넘버4다.
-어쨌든 그런 모든 과정들을 뚫고 대형 로펌, 그러니까 사실 처음에는 대형이 아니었잖아요.
대형으로 가는 그 길목에서 노력을 해서 법인 자체도 대형 로펌으로 키우시고 그 대형 로펌의 대표가 되신 거 아니겠습니까?
처음부터 이렇게 대표가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하셨을 것 같아요.
-전혀 못했죠.
-내가 이 회사의 대표를? 이런 생각 안 하셨을 것 같아요.
-공채 1기 신입사원이고 위에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 계시기 때문에 전혀 여기서 끝까지 파트너로
잘 살아남아야겠다, 이런 생각은 했지만 대표가 될 거라는 거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대표 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처음에는 감사하고 기쁘다. 내가 그래도 이 많은 파트너들한테 인정을 받았구나 그런 것 때문에 되게 기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여성 변호사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 사건의 배정의 어려움도 있고 클라이언트들의 편견.
그리고 제가 대표 됐을 때도 많은 파트너 분들이 반신반의했던 부분이 많은데
그래도 맡겨주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사람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또 있지 않겠습니까?
어렸을 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듯이. 그래서 되게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처음에 소식을 그 대표가 됐을 때는 되게 기뻤습니다.
-부담도 좀 되셨습니까?
-그러나 딱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분들이 축하 전화를 해 주셨어요.
특히 여자 변호사님들 그러니까 여성변호사회 회장님이나 여러 분들이 축하 전화를 해 주셨고
그때 말씀하신 게 저도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여성 대표가 된 건 나의 능력은 아니거든요.
그동안에 많은 여성 변호사회나 변호사님들이 왜 로펌에는 여성 변호사 경영진이 아무도 없느냐.
왜 대형 로펌에는 전부 정관 출신의 남자 변호사님밖에 없느냐라는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셨습니다.
그다음에 로펌의 업무 실태 이런 걸 하고 10대 로펌에서도 여성 경영 대표가 나와야 된다라는 이런 발언들을 되게 많이 해 주셨거든요.
그 가운데서 저희 법인이 사실 고민하던 끝에.
물론 제가 들어온 순서로 넘버4이기 때문은 아니지만 대표로 선정해 주셔서 축하전화를 받으면서 문득 그런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존에 그냥 남자 변호사님들이 경영 대표를 할 때는 약간의 실수는 그냥 실수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실수는 그냥 실수가 되지는 않고 거봐, 여자 변호사니까 저런 일이 발생하는 거야.
여자 변호사니까 저렇게 결정하네, 이런 부분들이 사실 그렇게 되면
제가 제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게 되는 거니까 그런 부담이 되게 컸고
그래서 많은 주변의 분들한테 그런 부분을 잘 넘길 수 있고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고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했고요.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렇겠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대형 로펌 분들은 다 남자분이시고 혼자 여성 대형 로펌의 대표시면
다른 분들이 하는 실수들은 그냥 대형 로펌들이 하는 실수 중의 하나지만
대표님이 하는 거는 여성 최초의 로펌 대표가 하는 실수이기 때문에 모든 여성의 실수인 것처럼 보여졌겠네요.
-그렇죠. 그게 좀 가장 부담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실수가 나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게 미치는 파장이 사실상 되게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조금 많이 부담감을 느꼈죠.
-변호사로 한참 활동하실 때는 요즘 변호사분들도 각자의 영역이 있잖아요.
이혼 전문 변호사도 있고 형사사건 전문으로 하시는 분도 계시고.
아니면 다른 회사의 회계와 관련된 사건만 따로 하시는 분들 계신데 대표님은 전문 분야가 어떤 분야였습니까?
-참 난감한 질문입니다. 많은 클라이언트가 저한테 우리 대표님은 전문 분야가 무엇일까요, 이런 말을 묻는데.
제가 생각해 보면 제가 아까 공채 1기였고 제가 저희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전체 인원이 12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변호사만 280명이 넘습니다.
그때는 그러니까 신입사원이 적었기 때문에 많은 파트너분들이 하시는 모든 일에 투입이 됐습니다.
그래서 민사, 형사, 가사 사건, 상사 중재 사건부터 그다음에 검찰의 변호인으로서 참여하는 사건 등
다양한 사건을 해서 정말 많은 사건을 다 해봤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전문 영역을 많이 묻는데 저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다,
이렇게 설명을 드리고 한 마디 이렇게 가려서 얘기합니다.
돈 되는 사건은 뭐든지 다 합니다.
-그럼 전공 분야는 돈이었네요.
-그렇습니다. 정확히 집으시는데 예리하십니다. 어떻게 속마음을 이렇게 한 번에.
-아닙니다. 맞아요, 예전 변호사 선배님들 이야기를 좀 들어보면 다 하셨더라고요, 다.
왜냐하면 그때는 뭐 가리고 이럴 처지가 아니어서 되는 거 일단 다 하고
그다음에 그 이후에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지금처럼 저는 이 분야만 합니다,
이런 케이스가 거의 없었다고 하시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거의 모든 분야를 경험하신 만큼 정말 많은 사건을 보셨잖아요. 그런데 혹시 기억에 남는 사건 있으세요?
-그러니까요. 기억에 남으시는 거 있으실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사건들은 되게 많죠. 27년 동안 제가 또 변호사 활동을 했으니까.
그런데 저의 가장 큰 장점이 공감 능력이고 가급적 이 클라이언트한테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이 과연 판결을 받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만약에 판결로 받는 것이 이분한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설득하기 시작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가 15년 전에 맡았던 사건이고 연세가 한 70세 중반 정도 되시는 어르신이 그러니까 본처이십니다.
그리고 아들이 하나 계셨는데 남편분께서 집을 나가셔서 따로 살림을 차리셨죠. 그래서 거기에 자녀분 세 분이 있었죠.
그래서 이 본처 되시는 분은 본인이 열심히 돈을 모아서 남편 명의로 건물을 하나 해서
거기서 운영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계속 그 경제적인 걸 누리셨는데 그러다가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속인이 누가 되냐. 그러면 이 어르신, 어르신이 남편분과 낳은 아들.
그다음에 바깥에 있는 3명의 자녀들 하면 우리 상속 지분이 부인은 1.5, 나머지 1, 1, 1, 1,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다 보면 저쪽은 3이 되고 저희는 2.5가 되는 거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계속 싸우고 또 사이가 좋겠습니까?
서면들에서 오고 가는 말들이 참 험악한 일들이 많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저는 그 사건을 맡았을 때 이거 판결로 가면 그때가 1심이었는데
1심도 지금 몇 년째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분이 대법원까지 가서 이 판결 받으면 중간에 돌아가실 수도 있는 거고
남은 인생을 남들이, 상대방이 뱉는 험한 말을 계속 보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그분께 말씀드렸어요. 가장 갖고 싶은 거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게 뭡니까라고 여쭤봤더니 그 건물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만들었고 실질적으로는. 다 자기가 운영한 건데.
그래서 그 부분을 가지고 상대방 변호사님하고 계속 협상을 했습니다.
협상을 해서 건물을 안겨주고 다른 부분을 좀 양보하시는 걸로 해서 딱 설득한 게 그거였어요.
어르신, 이렇게 많은 재산과 이렇게 많은 걸 못 쓰시고 가시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여기서 약간 이만큼을 이만큼 본인이 생각하는 금액을 포기하는 것으로 인생을 사셨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지금부터 맛난 음식 드시고 연애도 하시고 좋은 장소 가시더라도 그 값으로 생각을 하시고 이 부분을 내주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해서 여러 차례 설득을 했고 본인이 한참 고민하셔서 그걸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1심에서 그냥 잘 끝났고요. 재판부가 물론 제일 좋아했죠.
판결문 쓰기 되게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이었는데.
그런데 그분께서 5년 후에 다시 저희 사무실에 사건을 맡기러 오셨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하신 말이 그때 이 변호사 얘기 듣기를 잘했어.
아주 즐겁게 지금은 그렇죠.
그 건물을 운영하기 위해서 쪽방에, 1평 남짓한 방에 평생을 사시는 것보다는
거기서 나오셔서 우리나라 경기가 얼마나 좋은 곳이 많습니까?
산수를 보고 그거 다 돈으로 사신 겁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때 자기가 가장 잘한 일 중에 거기서 소송을 멈춘 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단순히 법조인으로서가 아니라 옆에 있는 친구로서 그다음에 이렇게 이해를 시키고
공감할 수 있는 같이 공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의 역할도 같이 해주는 게 변호사라고 봐야겠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검사와 판사와 달리 변호사는 약간 카운셀러의 기능도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그 사건의 쟁점을 들여다 보고 문제의 근원이 어디서 발생했는지를 알려면 많이 들어야 합니다.
살아온 인생 다 듣고 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게 뭐냐고 저는 항상 물어보거든요.
그래서 정말 원하시는 게 뭡니까라고 얘기하면 그 원하는 것을 저희가 드리면 나머지는 양보를 하셔야 되는 부분들이 꽤 있는 거거든요.
사실 그렇게 해서 되게 어려운 소송들을 끝낸 것들이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대표님이 왜 여성 최초로 대형 로펌의 대표님이 되셨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공감대와 상대방이 어떤 얘기를 하는 걸 듣는지가 그 부분이 핵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네요.
-듣는 데서 시작합니다. 변호사의 업무는.
-요즘은 사실 공감 능력이 제일 정말 큰 화두로 떠오르잖아요.
-그렇습니다. 정말 타고난 변호사신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혹시 변호사로서 이영희 대표님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이영희 대표님이 또 어떨지
개인적으로 좀 궁금해서 그래서 간단하게 밸런스 게임을 한번 해볼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게임을 합니까?
-간단하게 한번 해볼까요?
-제가 간단한 질문을 드릴 텐데요. 깊이 생각하시면 안 되고요, 대표님.
그냥 떠오르는 대로 바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질문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긴장하시고요.
-떨립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판사 오어 변호사.
-변호사.
-바로 대답하시네요.
-바로 드릴게요.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법전 읽기 또는 맛집 탐방.
-당연히 맛집 탕방이죠.
-법전 읽기는 뭐야.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요.
-답을 정해 주신 거 아닙니까?
-어려운 질문 좀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입니다. 내가 더 무서워하는 것은? 의뢰인의 컴플레인 또는 퇴근 후 집안일.
-의뢰인의 컴플레인.
-그러시군요.
-하나하나 이렇게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아까 변호사를 선택하셨죠.
-그런데 법조인. 그러니까 사법고시를 패스하시고 지금은 로스쿨 나오죠.
그런데 검사나 판사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꽤 많고 성적이 또 굉장히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변호사를 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변호사를 해보면 그러니까 하기 전에는 우리가 연수원에서 진로에 대해서 성적순으로 판검사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거는 가보지 않은 길이고 남들이 선호하는, 부모님들이 선호하는 직업이거든요.
그런데 변호사를 해보면 자유로움, 그다음에 클라이언트와의 공감대 형성.
그리고 사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변호사는 클라이언트 돈으로 공부를 합니다.
수많은 사건, 수많은 내용의 제가 전문가는 아니면 그때부터 저희는 그 분야를 보고 그 사건의 관련 법률이
어떻게 되는지를 다시 보고 또 그 분야의 전문가의 의견들을 많이 듣는데 제 돈으로 하는 건 아니고요.
다 클라이언트 돈으로 하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많은 영역을 배우게 됩니다.
정말 많은 삶을, 정말 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법정에서 할 수 없는 얘기
그다음에 남들이 듣지 않는 얘기 듣게 되는 것은 저한테는 인생을 여러 각도에서 보시는
그 시각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고 또 어떤 사건을 접하면서 그 분야의 전문 영역까지도 많이 보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검사나 판사는 공직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게 되게 제한적이지 않겠습니까?
예전에는 검찰이나 법원의 판사님들이 많이 바깥 사람들을 만나고 바깥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래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기준이라는 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문이 닫히니까 그 안에서만 생각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는 다양한 그리고 또 다양한 분들을 아무 제약 없이 만날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좀 더 자유롭군요.
-자유롭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많은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변호사가 훨씬 낫다.
-훨씬 자유롭습니다.
-모험가, 탐험가의 느낌이 좀 있으신 것 같아요.
-맞아요. 그 느낌이 좀 있었어요.
-저는 정말 매번 클라이언트한테 많은 걸 배웁니다.
-어디 공무원 사회에 이렇게 갇혀 있으시면 못 견디실 것 같은.
-제가 말했지만 답답해서 못 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까 내가 더 무서워하는 것은 의뢰인의 컴플레인, 퇴근 후 집안일이라고 질문을 하셨는데.
이거는 의뢰인의 컴플레인을 선택하셨는데 집안일 거의 안 하시죠?
-네. 저 집안일 안 하기 때문에.
-그때 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돈을 써서 시간을 벌 수 있는 일은 돈을 써서 하는 게 맞아요.
-솔직하셔서 너무 좋습니다.
-진짜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시원시원하고 너무 좋네요.
시대가 변하면서 변호를 하시게 되는 사건들도 계속 좀 달라지실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사회가 변하고 현상이 변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변할 수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과거에 비해서 최근에 좀 달라진 사건들 좀 생각나시는 게 있으실까요?
뭐가 어떻게 달라지고 변화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아날로그 세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는 과정에서 디지털상에서 이루어지는 사건 사고가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디지털도 있고 또 보이스피싱, 예전에 없었던.
-보이스피싱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제가 그것 때문에 사칭.
그러니까 저를 사칭한 사기 사건이 너무 많아서 지금 인터뷰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그랬었던 일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게 너무 많아졌던 것 같아요.
-그게 아마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딥페이크라고 하고 목소리 변조나 이렇게 돼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나날이 또 발전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들도 있고 그다음에 최근에도 있었지만 개인정보 해킹 사건이,
해킹 사건이 아무래도 모든 게 디지털로 관리가 되다 보니까 해킹이 한 번 일어나면 엄청난 큰 손해도 되고
그다음에 바이러스를 심어서 내가 풀어주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건들이고 이제 또 AI가 발전되면
또 어떤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이런 거 좀 대응을 할 수 있는 변호사님이 주실 팁이 좀 있을까요?
-제가 아무래도 송무 분야를 많이 하다 보니까 모든 거는 증거의 채집, 기록이 제일 중요합니다.
말은 아무리 해도 내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하더라도 증명할 수 없으면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게 되는 게 법원에서 보는 시각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증거 채집하고 기록이 되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특히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범죄는 금방 삭제를 해버리거나 계정을 없애버리면 끝나기 때문에
바로 딱 발견했을 때 캡처를 한 다음에 그걸 보관을 해두고 그런 식으로 나중에 그 증거를 마련하는 게 제일 중요한데.
일단 디지털 범죄가 발생하면 당황하기 때문에 친구랑 상의하고 혼자 고민을 며칠하고.
그다음에 친구랑 상의하고 그러면서 계정 다 폭파되고 그러는 경우들이 있어서
가장 먼저는 증거 채집을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 폭력도 그렇겠죠.
워낙 무서우니까 얘기를 안 하지만 발생한 장소를 정확하게 세밀하게 기록해 두고
그때 누가 있었는지 기록해 두는 것이 나중에라도 좋은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보통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부끄러워하시고 이게 알려지는 거를 막 겁내시고 그러는데 여러분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거는 가해자의 몫입니다.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시면 절대 안 된다라는 것을 좀 말씀해 주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전문기관과 경찰 등에 꼭 도움받으시기를 바라겠고요.
대표님께서는 또 고향에 대한 애정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굉장히 좀 깊으시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언젠가는 그러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실 계획을 좀 하고 계신 겁니까, 어떻습니까?
-아까 말했듯이 13명이 함께 사는 거이기 때문에 저의 단독 의사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족 대이동이 또.
-저희는 나이 들어서도 다 같이 모여 사는 걸로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다만 제가 화천에 있을 때 제가 고등학교 때 대학교 가신 선배님들이 후배들한테 이렇게 너희도 열심히 하면 대학 갈 수 있어.
나는 어떻게 공부했냐면 이런 걸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때 제가 정말 부러운 눈으로 그분들을 바라봤거든요.
나도 하면 저렇게 갈 수 있어, 이런 것들이 또 새로운 어떠한 자극과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저는 그런 부분에 후배들한테, 특히 법조인을 꿈꾸는 후배들한테 많은 강연도 해 주고 싶고
또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여러 가지 나는 이 산골에서 혼자 공부했는데 될 수 있을까
할 때마다 부모님이 해주셨던 격려를 후배들한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래서 가급적 그거는 저희 화천도 마찬가지지만 저희 대학교에 가서
후배들한테도 항상 요청을 하면 시간이 허락되는 한 거의 대부분 가서 저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남과 비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 자신에 충실하고 나를 바라보고 나를 기준이 돼야지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비교하기 시작하면 불행이 시작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남들이 다 얘기 안 하지만 공부하면서 나만 집중이 안 될 거야가 아니라
사실 옆에 있는 친구도 집중 못하고 있는데 말을 안 할 뿐이거든요.
나중에 보면 다 똑같은 거다.
그러니까 당신이 하는 고민 옆에 있는 친구도 하는 거니까 그거에 대해서 너무 좌절하지 말고 그냥 앞으로 쭉 하면서 가면 된다.
나를 봐라라는 메시지가 저는 그 메시지를 듣고 후배들 중에 한두 명이라도
동기부여가 돼서 저처럼 자기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건 제가 여태까지 저를 모르는 선배님들한테 받아왔던 여러 가지 은혜
그리고 또 그분들의 보살핌을 흘려보내는 통로, 그건 의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표님이 그런 강의를 많은 후배분들이나 고향 후배분들 아니면 대학교 후배분들이 하시고
대표님으로 계실 때 그런 학생들도 나올 거예요.
대표님 강의 듣고 저 이 회사 왔습니다.
-있습니다.
-그렇죠, 있으시죠?
-있습니다.
-어떠세요? 그때는 감정이 어떠세요?
-뿌듯하실 것 같아요.
-굉장히 뿌듯하실 것 같은데.
-그렇죠. 그래도 내가 누군가한테 동기부여가 됐구나.
내가 예전에 선배님들한테 동기부여를 받았듯이.
그건 참 남다른 감회더라고요.
-또 새로운 감정이, 복받침이 생기고.
저도 후배가 예전에 선배님 개그를 보고 제가 개그맨으로 데뷔했습니다고 해서 제가 한마디 하고 집에 갔습니다. 뻥치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이렇게 하고 가기는 했는데 그런데 그 돌아서면서 약간 기분이 그래도 굉장히 좋았던 생각이 나네요.
-그렇죠. 그래도 제가 살면서 대가 없이 받은 그런 거에 대한 조금이라도 보답을 했다, 갚았다,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도 목표를 잠깐 이야기해 주신 것 같은데 앞으로가 더 대표님의 모습이 기대가 저는 좀 되거든요.
어떤 목표를 가지고 또 어떤 계획을 가지고 대표님으로서의 인생을 좀 나아가실지 한번 여쭤봐도 될까요?
-경영 대표이니까 아무래도 회사와 관련된 목표가 있습니다.
회사가 좀 더 성장하고 또 구성원들이 회사에 있으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그런 신뢰받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조금 더 노력을 해야 되겠다.
그러면 어느 부분을 해야 되느냐, 이게 지금 가장 큰 고민이고 나름 실천하려고 여러 대안들을 논의하고 있고요.
그건 이제 경영 대표로서 목표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제 6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71년생입니다. 이제 56세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모든 것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고 제 뒤에 있는 후배들이 삶의 주인공이 돼야 되는 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실 저도 성장해 올 때 많은 분들이 아무 대가 없이 저를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고 이끌어 주신 분들이 계시거든요.
이제 어느덧 제 나이가 제가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후배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조연 역할을 하는 그런 게 아름다운 퇴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역할을 멋있는 조연을 하기 위해서 내가 후배들한테 뭘 해주면 될까 이런 생각을 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정말 많은 이야기 나눠봤고 인생에 있어서 제가 또 뭐랄까요?
좀 감명을 받은 그런 이야기도 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좀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오늘 완전 대표님 팬이 돼 가지고 입담도 너무 좋으시고 솔직하시고
저도 나중에 이렇게 되고 싶다, 이런 생각 오늘 많이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절대 저의 본질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남들이 로펌 대표라고 하면 거만하고 뭐하고 다 있는 척하고 하는데 언니, 제발.
그런데 사람 성격을 바꿀 수가 없어요.
-너무 매력적이세요, 대표님.
-오늘 저도 참 즐거웠습니다.
이번 기회에 인생을 한번 더 돌아보게 되고 그래도 참 감사한 인생을 살고 있고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 되나 그런 사회적 책임, 개인적인 책임 이런 것들을 좀 더 묵직하게 느끼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멋지시네요.
-말씀을 잘해 주셔서 아주 편안하게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탑클래스 공식 질문이 있습니다, 대표님. 오직 우리 이영희 대표님에게 있어서 법이란 무엇일까요?
-저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어렵죠.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서 한참 생각하고 챗GPT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거를 딱 짧은 단어로 뭐라고 하면 될까라고 딱 했는데 거기서 한마디 얘기해 주더라고요.
공정과 상식의 기준. 그렇게 아주 멋있는 단어로 줄여서 얘기해 주더라고요. 제가 여기서 설명을 하면 좀 깁니다, 이제.
왜냐하면 저는 법은 그게 지위고하, 권력이 있건 말건 그 사람이 누구이건 상관없이 똑같이 적용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법이라고 생각하고 그건 일반인의 상식과도 부합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법이 사람에 따라서, 그러니까 그 사람이 무슨 행동을 했느냐라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가 기준이 돼서 평가를 하는 것이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깨지면 법이 아닌 거죠.
그래서 저희는 그 공정과 상식의 법이 잘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법인 것 같습니다. 제일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이거 진짜 어려운 질문이에요. 이거 제대로 얘기하려면 3일 밤 새야 합니다.
법과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정말 한 일주일 정도 이야기를 나눠야 돼서.
-사실은 저희가 보면 대법원이나 무슨 모든 드라마에 나오지 않습니까?
눈을 가리고 천칭을 들고 있거든요. 어느 한쪽에 기울지 말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사실 법이 지향하는 거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서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눈을 가린 거 아니겠습니까?
똑같은 행위와 똑같은 거에 대해서는 똑같은 잣대와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이 법이고 그게 지켜지는 것이 사회 규범인 거거든요.
법은 사회 규범이기 때문에 저는 공정과 상식의 기준이 되는 게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까지 드려봤고. 오늘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대표님과 이야기하면서 역시 세상에 정말 멋있고 좋은 자리에 계신 분들
그냥 보기에는 참 좋고 부럽다라고 하지만 그 안으로 한번 현미경을 갖다 들여다보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노력하고 뭔가를 하기 위해서 부딪히고 또 도전하고
이런 모습들을 엿볼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시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늘 또 하나 얻었습니다.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것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이죠.
-그러니까요.
-오늘 대표님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좀 드네요.
-최초라는 이름 아래 누구보다 먼저 길을 여시고 또 그 험한 길을 닦아서 후배들의 앞날을 열어준 이영희 대표님.
그 마중물이 또 다른 소녀들의 꿈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영희 대표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리겠고 탑클래스는 오늘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여러분들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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