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클래스
화요일 오전 11시
TV
방영중

다시보기

탑클래스 - 한옥의 미래 신지용, 고인돌이 부른 한옥학교

등록일 : 2026-04-22 10:12:20.0
조회수 : 133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이가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 요즘 엄청 많잖아요.
중국 분들도 많으시고 일본 분들도 많이 오시고 그러는데 그런데 이분들이 오시면 한 번쯤은 꼭 찾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어디인 것 같아요?
-당연히 서촌, 북촌이겠죠. 한국의 미가 뿜뿜 나는 동네잖아요.
-한옥마을 많이 요즘 찾아간다고 그러더라고요.
-정말 사진들 많이 찍으시더라고요. 한복 입으시고.
아무래도 한옥이 우리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또 외국분들에게는 좀 특별한 건축물로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전 세계 유일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한옥.
한옥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한옥의 가치를 지키고
또 현대의 삶 속에서도 살아 숨 쉬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옥과 문화의 신지용 대표님 모셔보고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대표님,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한 말씀 좀 부탁드릴까요?
-저는 한옥과 문화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신지용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우리 한옥에 대한 모든 걸 소개하는 기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한옥과 문화가 어떤 기업인지 한번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가 한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사업을 하는데요.
한옥을 기획해서 설계하고 그리고 시공하는 것까지 하고요.
컨설팅 사업을 합니다. 그리고 전문 인력 양성을 하는 게 원래는 목적 사업이었어요.
그래서 전문 인력 양성 사업을 한 몇 년 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그거를 뒤로 하고 일반인을 향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지금 준비 중입니다.
-그렇군요. 대표님께서 한옥학교를 개교하시면서 그 계기로 홍천과 인연을 맺으신 걸로 알아요.
-맞습니다.
-홍천이라는 곳을 한옥과 연결시키는 뭔가 좀 계기가 있거나 이유가 있으신 건가요?
-저희가 가족들과 여러 선생님들의 지지를 받아서 이 회사를 시작하는데 교육청에 가서 폐교 리스트를 받았어요.
폐교 리스트를 받아서 막 다녔는데 한참 다니고 있는데 남편이 와서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고인돌 조사를 하러 한 학교를 갔는데 그 학교가 비어 있던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보라 해서 가보니까 멀지도 않고 또 굉장히 따뜻한 느낌이었다고 해야 될까요?
그 학교 들어가는데. 그래서 여기서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학교를 하게 됐습니다.
-되게 묘한 인연이네요.
-그러니까요. 대개 그런 게 인연인가 봐요.
-고인들이 우리를 부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고인돌은 한옥 더 이전이잖아요. 역사가 이어주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고인돌이 또. 홍천에 가셨을 때 어떠셨어요? 고인돌이 막 컴온 컴온 부르는 것 같았어요?
-일단 저희는 고인돌이 불렀다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저희는 전통을 공부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저 녀석들이 들어오면 날 잘 모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저희는 지금도 그 분이 그 땅의 진짜 주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항상 세시풍속에 따라서
이제 여러 가지 행사 때 또 여러 고사도 드리고 여러 가지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고인돌이 우리를 엄청 환영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을 해요.
-의미가 엄청 있네요.
-멋진 말씀이세요. 고인돌이 이 땅의 주인이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너희들쯤이면 나를 잘 관리할 수 있겠어라고 해서 나를 불러준 것이다. 대표님을 또 불러준 것이다.
-고인돌의 픽 대표님.
-그러네요. 이 폐교를 한옥 교육 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이 이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폐교는 워낙 또 외진 곳에 요즘에 있고 좀 뭔가 한옥으로 바꾼다는 것도
왜냐하면 폐교라고 하면 우리가 학교 하면 떠오르는 그 모양 있잖아요.
아스팔트의 네모 반듯한 곳에 앞에 운동장이 넓게 펼쳐진 곳.
그렇다 보니까 처음 학교를 만들 때 좀 어려운 점이 있으실 것 같은데 어떠셨습니까?
-일단은 워낙 오래된 건축물이었어요.
그래서 그거를 다시 사람들이 저희가 교육을 하는 공간으로 바꾸는 것 자체가 좀 혼란스럽긴 했어요.
그전에 임대했던 분들이 본인들의 목적에 맞게 또 막 쓰면서 여러 가지로 현상이 변경되어 있는 상황이라
그걸 다시 잡는 데 좀 힘이 들었고 그리고 저희가 한옥 교육을 하다 보니
교육으로 1년간 교육을 받고 그 하반기 정도에는 집을 한 채 짓는 과정이었어요.
그래서 학교 내에 목수 정사도 생기고 정자도 생기고 기숙사도 생기고.
그리고 저희가 실제로 작업하는 공장도 생기고 이러다 보니까 그 공간이 차근차근 만들어졌어요.
-그럼 다 한옥인 건가요?
-아니요, 이제 지금 말씀드린 정자, 목수 정사, 기숙사는 한옥이에요. 학생들이 직접 지은 거죠. 교육을 통해서.
-그 공간에 이렇게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이런 공장 개념의 역할을 하는 곳도 있고 그 앞에 직접 실습을 해서 한옥을 짓는 과정들.
다 한 곳에 있는, 학교 안에 있는 시설들이겠네요.
-그렇죠.
-정말 소중한.
-이제 좀 그림이 그려집니다.
-또 한옥을 배우고 집을 짓는 장인을 키우는 한옥학교.
그런데 이런 교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 것 같고 또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저희가 아버님이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왜 우리나라 대학은 건축학과에서 왜 우리 걸 안 가르치냐라고 굉장히 답답해 하셨어요.
그런데 건축 관련 저희 한옥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답답함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럼 우리가 한번 대학원, 대학처럼 만들어 보자.
그래서 이론도 알고 또 기술도 알아서 이제 내가 어떤 집을 짓는지를 아는 그런 사람들을 교육해서
양성해 보자라는 목적 사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하게 됐고요.
-그런데 이런 일을 하신 계기를 또 살펴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까 고인돌이 부르셨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또 대표님의 아버님께서 또 부르신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대표님의 부친이신 고 신영훈 선생님 이야기도 좀 들었으면 좋겠는데 신영훈 선생님은 잘 아시죠?
-우리 숭례문도.
-숭례문을 직접 복원해 주셨고 우리나라 한옥과 또 문화재의 보수 쪽에서는 대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시잖아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희 아버님이 예전에 문화재관리국이라고 지금의 문화유산청의 전신이죠.
거기에 문화재 관리위원으로 계셨고 그러다 보니 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주요 문화재들을 수리하기 시작해요.
-오래됐군요, 생각보다.
-숭례문, 석굴암, 불국사 이런 것들이 다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기 위해서 중수 공사를 대부분 다 했습니다, 큰 문화재들이.
이제 그 건축물들을 중수할 때 감독으로 가 계시거나 아니면 지원 역할을 하시거나 이러다 보니 10여 년?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그 일을 계속 하셨어요, 문화재관리국에서.
그래서 중수도 하지만 또 조사도 하셔야 되고 문화재 발굴도 해야 되고 당시의 에피소드 굉장히 재미있는 게 많아요.
저 밭에 저기 어디 가면 뭐 있는데? 그래서 가서 보면 탑이 하나 이렇게 있고.
어디 가 저기 어디 가면 뭐가 있어 그래서 가보면 불상이 있고.
옛날에는 약간 인디아나 존스처럼 다니는 재미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탐험처럼.
-그걸 직접 다니시면서 찾으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니까 조사를 하러 다니다 보면 주변에 계시는 분들이 알려주시는 거죠.
그래서 묻혀 있던 것들을 발굴해내는 그런 일들도 하시고.
-그럼 하나의 이야기와 문화가 계속 발견되는 거네요, 어떻게 보면.
-그 당시에는 선생님들은 다 그렇게 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건축하고 미술, 역사, 이런 것들이 다 혼재되어서 공부를 하시고 일을 하셨던 것 같아요.
-매일매일이 보물찾기실 거 같다는.
-너무 재미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 선생님 때에는.
-그 모습을 처음 찾아내시는 거잖아요.
-그렇죠.
-거기에 존재하고 그 예전부터 있었던 그 모습을 보존돼 있는 것을 처음 딱 봤을 때의 일을
그리고 복원했을 때의 그 일들을 하시는 거라 굉장히 좀 기억 남는 사례가 많으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가장 어렸을 때 뭐 들으셨던 기억 남는 사례가 좀 있으세요?
-그 아버님이 두고두고 마음에 짐을 갖고 계신 것이 있었는데 서산마애불.
그거 할 때 보호각을 지으셨는데 거기에 보호각이 있는 게 맞았던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셨어요.
이게 서산마애불 본전이 계시고. 옆에 보살상들이 계시는데 항상 웃는 얼굴이셨대요.
근데 그 집을 씌우는 순간 웃음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 빛의 문제였던 거죠.
-그림자가 져서.
-그래서 그 안에 조명이 생기고 그래서 그것들을 다시 조정하는 기간을 거치기로 했는데
이제 그런 어떤 자료나 이런 것들이 없으니까 그때그때 판단을 하고 그 현장 속에서 뭐라고 그러죠?
중수 공사나 이런 보존 수리를 하는데 그런 실수들이 생길 때가 있는 거죠.
그래서 내가 저 집을 짓지를 말았어야 되는데 이런 얘기를.
그런 에피소드들이 있어요.
-숭례문 외에도 아버님들 남기신 대표적인 작품들 좀 있잖아요. 보존하셨던.
-동대문, 불국사, 석굴암, 금산사. 이런 석굴암에는 저희 오빠는 거기서 자랐어요, 아기 때.
-석굴암 때요?
-거기서 공사를 하시니까 엄마랑 다 가서 거기서 놀고.
-석굴암이 놀이터였네.
-그렇죠. 저도 방학 때면 동생 손 잡고 어딘가에 가 있었어요, 항상.
그래서 현장이 그냥 놀이터 같이 그렇게 저는 컸던 것 같아요.
-근데 아무래도 대표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 한옥을 자주 접하셔서 엄청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우리 아버지가 정말 대단한 분이구나 이렇게 느끼셨던 순간이 있으시죠?
-저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장면에서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대단하셨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하나는 그 시기만 해도 그 집은 그냥 우리나라 문화재였어요.
근데 그거를 깨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모 신문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강연을 했어요.
강연을 하시는데 그 신문사 강당에 한가득 찼었어요. 그리고 그분들한테 우리 한옥의 미학 그리고 과학.
그리고 그때만 해도 우리 집은 중국집하고 같다, 이런 얘기들 되게 많이 하셨거든요.
-그런 중국 집.
-그래서 우리 집이 중국 집이나 일본 집과는 전혀 다른 집이고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같이 함께 적응하면서 만들어진 집이다라는 설명을 하시면 그 청중들이 너무 그거에 기뻐, 감동하시고.
그래서 그런 거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그렇게 강당에서 강연이 되니까 이것이 전국 답사로 이어지고 그래서
정말 버스가 한 10여 대씩 몰려다니면서 아버님 현장 강의를 들으러 모이기도 하고 이랬었어요.
그러면서 나중에는 일본에 역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가서 그 일본에 있는 문화재에서 우리 건축물을 보는 그런 교육을 하기도 하셨죠.
그래서 일관되게 우리 건축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게 저는 굉장히 아버님의 중요한 소임이지 않았나.
그리고 또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고요.
-한옥 지킴이, 아버님 진짜.
-그런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다시 한옥이 살림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라고 생각을 하고요.
-대단하시네요.
-또 하나는 보탑사라는 절이 있어요, 진천에.
모든 집을 지을 때 항상 그렇게 하기는 하셨는데 진천에 있는 보탑사는 3층 목탑이에요.
3층 목탑이 남아 있는 목탑이 없잖아요.
-목탑은 보존이 힘들죠, 사실.
-그런데 여기를 사람이 올라가는 목탑을 3층, 그러니까 법당을 만드신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하기 위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건축주, 설계하는 건축가 그리고 시공사 대표
이렇게 해서 계속 공부하시고 다니시면서 벤치마킹하시고 이러면서 끝내 만들어 내셨어요.
그 준공식 할 때 정말 저도 우리 아버지 참 대단하시다 했습니다.
-아버님께서 그 예전부터 우리나라 한옥, 우리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역사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그때부터 정립해 나가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렇게 스토리가 있는 그 답사도 말씀하셨지만
그런 여행이 정말 기억에 많이 남고 그런 스토리가 전해주는 감동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런 문화재들이 잘 보존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좀 들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작업이 대표님의 삶과 진로에도 굉장히 큰 영향이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옥의 지금은 어떤 부분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겁니까?
-한옥은 굉장히 편한 집이라는 생각을 항상 해요.
-자연과 공존하는.
-자연과 함께 순응하고 자연을 충분히 활용하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발전한 집이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고 저는 그래서 한옥이 항상 따뜻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요. 저는 어렸을 때 한옥에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 아직도 한옥이시거든요.
-진짜요?
-따뜻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좀 추워가지고.
-정말요?
-너무.
-춥죠.
-지글지글 온돌 이런 거 아니에요?
-방은 따뜻한데. 이거 잘 모르시네요. 마루가 있어요, 마루. 옛날에는.
-대청마루.
-그렇죠, 지금은 거실이라고 해서 그 밑에가 다 온돌이 들어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마루였어요. 그냥 마룻바닥.
-그렇죠.
-그냥 나무 마루.
-걸으면 삐그덕 소리나. 밤에 물 마시러 나가면 이렇게 나가야 돼요.
삐그덕 삐그덕 거려가지고 엄마, 아빠 깨실까 봐, 할아버지 할머니.
막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 드라마에서 보면 막 이렇게 살금살금 갈 때 삑삑 이런 거군요.
-맞아요, 맞아요. 진짜 그래서 그 마루가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건 그래요. 마루는 통풍이 되는 곳이고 전혀 난방이 안 되는 곳이니까 겨울 되면 정말 발 시려워요.
-온돌 그 지글지글 장작 태워가지고 막 문 열면 바로 이렇게 솥뚜껑 있고 그런 것도 한옥이 있죠?
-거기에다가 불 때면 그 연기가 나가면서 따뜻해지는 게 한옥의 기본적인 설계구조 아니겠습니까.
-구들 이런 거.
-구들장,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옥 문화인 것도 맞고. 그러니까 그걸로 구분한다면서요.
이게 한국의 약간 사람들이 어디에 살고 있었나를 그걸로 구들장으로 구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방식인 거예요.
그러니까 여름의 방식과 겨울의 온돌과 이게 접합된 게 딱 한옥의 특징인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집 짓고 살기 진짜 힘들어요. 사계절이 있잖아요.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고.
-옷도 계속 바꿔 입어야 하잖아요. 계속 여름이면 여름 옷 입으면 되는데 돈 들어갈 데가 너무 많죠.
겨울 옷 사야 되죠. 봄 준비해야 되죠. 가을 트렌치코트 사야 되죠.
-그거 꼭 사야 됩니까?
-그러니까 그만큼 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한옥이 있었던 거는 자연을 정말 잘 활용한 거예요.
황현희 님 댁 할머님 댁은 꽤 오래된 집이잖아요.
-오래됐어요. 1900년대 초반에 지은 집이에요.
-그러니 안 추울 수가 없죠. 안 추울 수가 없고 지금 아파트에 적응된 우리한테는 정말 살기 힘든 집 중에 하나죠.
-그래서 한옥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한옥이 너무 좀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어요.
-너무 운치 있고 예쁘고 좋잖아요.
-로망이 있거든요.
-맞아요, 한옥 가서 하루. 요즘에 또 촌캉스라고 해서 한옥 가서 하루 지내고 오기 이런 것도 유행이거든요.
-솥뚜껑에 삼겹살 구워 먹고. 제가 사실 촌캉스를 지금 계획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런 걸 알아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한옥 종류도 되게 많더라고요.
-한옥스테이 하는 곳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어요.
-또 가마솥에다 통닭 한 마리 튀겨 먹어보고 싶은 그런 로망이 있잖아요.
-솥뚜껑에 이렇게 해서.
-그래서 좀 보고 와야 될 것 같습니다. 영상 보고 다시 이야기 나눠보시죠. 저 마루.
-저기서 고구마랑 옥식이 먹고 싶어요. 옥식이 아시죠? 강원도 옥수수 사투리.
-이 집도 굉장 오래됐는데.
-여기는 집무 공간이고요. 보통 사람들이 집하고 정자 이렇게 알고 있는데 일종의 별채예요.
그래서 남자들이 손님도 만나고 공부도 하고 그랬던 옛날 공간인데요.
이건 정사라고 해요, 정자가 아니고. 그래서 이 바람이 들어가는 것들을 막아주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영상에 힘을 많이 줬네요, 오늘.
-감사합니다.
-진짜.
-지금 작업실인 거죠?
-공장인데 지금은 목수 양성을 안 하고 있어서 중장비를 다 뺐어요.
-여기는 저희 아버님 서재를 그대로 옮겨 왔어요.
한옥 같은 경우에 지붕 같은 경우 특히나 자연과 함께 만들어지는 집이고 하늘이 내려주는 집이라고 저희가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어느 지역에 가면 그 뒷산하고 그 집의 지붕 모양이 똑같은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살고 있는 그곳의 산천을 닮게 짓는 집이 우리 한옥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하늘이 내린 선이고 3차원의 선이고 굉장히 복합적인 공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은 좀 지켜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한옥의 매력을 사실 한국 분들도 그렇지만 외국인 분들이 더 좋아하시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제 아는 외국인 친구가 미국에서 왔는데 한옥이 너무 좋아서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한옥에서 살더라고요. 그런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기서 책 읽으면 참 진짜 책 잘 읽히겠다, 이런 생각도 좀 들기도 하고요.
아까 잠깐 화면에서 봤는데 아버님이 한옥에 관련돼서 남기신 굉장히 좀 자료가 방대해 보이더라고요.
그런 기록들을 보존하시기도 쉽지 않으실 것 같아요. 어떠십니까?
-쉽지 않은 작업인 것 같아요. 제가 아버지한테 숙제를 많이 받았다, 이런 얘기되게 많이 하는데.
일단 그 기록물들을 다 이렇게 정리하는 작업이 기본은 아버님이 다 해 놓으셨어요. 자료광이기도 하고 그리고 정리광이기도 하셨어요.
본인이 공부하실 때 너무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자료의 소중함을 아셔서 뭘 하든 기록을 하시고 항상 정리하시고 이랬거든요.
그래서 슬라이드 하나하나에 지역 그리고 어느 어느 어느 공간에 어디.
그리고 이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이런 것까지 다 써놓으시면서 정리를 다 하셨어요. 그 많은 사진들과 슬라이드에.
그럴 만큼 그거를 정리를 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거를 잘 분류하고 상하지 않게 하는 게
제 작업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이거를 몇 년 동안 계속 국토교통부의 지원을 받아서 계속 디지털화하기는 했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이거를 썩히지 않고 잘 돌려서 보고 이걸 대중들한테 공개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볼 때
디지털 박물관을, 자료 박물관을 해야겠다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원본이 가진 힘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원본들을 보러 와서 공부하고
이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또 제가 해야 되는 일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대개는 좀 어떤 재료들인가요? 설계도가 좀 많은 편인가요? 어떻습니까?
-도면이 몇 백 점 있고요. 왜냐하면 60년대 숭례문부터 시작해서 수리를 하는 데 참여하셨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는 전부 펜이나 연필로 다 도면을 치던 시점이잖아요.
그래서 그것들이 그대로 있고 또 당시의 회의록 그리고 공사 일지 이런 것들이 다 있어요.
그래서 그런 고문들이 있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렇게 조사 다니면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자료들.
이런 것들이 다 있는데 이런 것들을 잘 보존해야 나중에 혹시 그 공사는 어떻게 했던가를 찾아봐야 할 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자료가 되겠죠.
-처음 만들었을 때 설계도는 사실 거의 남아 있지 않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거를 어떻게 수리를 하고 미래에 또 어떻게 전해지느냐에 대한
도면은 또 잘 보존된다면 더욱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한옥에 또 특히 관심이 많으신데 처음으로 한옥에 관심 갖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셨습니까?
-어렸을 때는 그냥 놀이터였고요. 대학을 갔는데 사학과를 가게 됐어요.
-로맨틱하시다.
-저는 사실은 사학과는 안 가고 싶었어요. 재미있는 놀 수 있는 과를 가고 싶었는데 사학과를 가라.
그래서 어쨌든 사학과를 갔는데 그러면서 들어가자마자 그때 당시에 민학회라는 학회를 운영하고 계셨어요.
전국을 같이 문화계 인사들이나 이런 분들이 모여서 한 달에 한 번씩 답사를 다녔는데
그때 답사를 다니면서 우리 문화가 이런 거구나라면서 그때부터 훅 빠지게 된 것 같아요.
-맞아요, 그 답사가.
-주는 의미가 대단하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잖아요.
-진짜요?
-맞아요. 답사를 많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가봐야겠어요.
-청년분들이나 이런 분들은 답사 같은 거 있으시면 꼭 한번 가셨으면 좋겠고 그때가 그러면 몇 년도 정도 되시는 거예요?
-84년도에 제가 대학을 들어갔으니까 84년부터.
-그러니까 그때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옥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을 때예요.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 사는 집이에요, 그때는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을 때였어요.
-진짜요?
-먹고살기가 더 중요할 때.
-하긴 그때가 88올림픽 전이었으니까 더 그렇겠네요.
요즘은 북촌 이쪽에 가보니까 새롭게 지어진 한옥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카페, 레스토랑, 와인바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다 한옥이더라고요.
-현대 문화와 기술과 많이 접목이 된 것이죠.
-지금 예전에는 한옥이 액티브 하우스였어요.
그러니까 바람도 흡수하고 태양도 흡수하고 자연과 순응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거의 패시브 하우스예요.
그러니까 단열 기준을 맞춰야만 돼요, 이제 한옥도.
-맞아요, 추워요.
-예전처럼 한지 이렇게 해서 문을 달거나 이거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그런 기민성도 뛰어나지고.
그러니까 현대 건축에서 차용할 수 있는 거는 다 차용을 해서 한옥의 형태를 구성을 하고 있죠.
-외국에 나가 보면 특히 유럽 쪽에 가보면 예전의 집들이나 이런 문화재들이 잘 보존돼 있어요.
그 이유가 어떻게 보면 대리석 문화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고 우리나라는 집을 지을 때 목재로 짓잖아요.
그렇다면 목재는 부식도 많이 되고 썩기도 많이 하고 불태워진 경우도 좀 많았을 것 같아서 그런 부분들이 좀 아쉽더라고요.
이렇게 오랫동안 보존되지 못한 소재를 써서 좀 많이 사라진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좀 들고요. 어떻습니까?
-목재가 오래 보존되지 못한다는 거는 조금...
-다른 의미인가요?
-다른 의미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목재로 지어진 집이 지금 고려시대 말기 건축물들도 여전히 있잖아요.
다만 사람이 살지는 않았지만.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목조 건축물들이 환경에 계속 순응을 하기 때문에 아시잖아요.
여름 되면 문이 뻑뻑해서 안 열리다가 겨울 되면.
-습기를 먹으니까.
-겨울에는 막 헐렁헐렁했다가.
-이 문이요?
-그냥 일반 한옥에 있는 문들이요.
-바닥도 그래요, 바닥도.
-바닥도 그게 줄었다 늘었다 이래요.
-정말로 살아 숨쉬네요.
-이 바닥 봐요, 이거. 다 안 맞잖아요, 지금 이거 봐봐.
이게 지금 겨울이잖아요. 작아진 거예요. 여름 되면 이렇게 커요, 이거.
올라옵니다. 멀리 가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숨을 쉬고 이 자연에 있기 때문에 송진은 100년이 지나도 나와요.
-그래요?
-송진이요?
-신기하죠?
-정말 살아있네요.
-그래서 목재가 아주 약한 그런 건축 자재가 아니라는 말씀은 좀 드려보고 싶어요.
-그렇군요.
-그리고 저희가 그런 얘기도 했었는데 사실 아파트도 한옥이다.
왜냐하면 바닥 난방하죠. 그리고 신발 벗고 들어가죠.
서양 아파트하고는 전혀 다르거든요. 그리고 실의 개념도 다르고요.
그래서 어쨌든 우리가 살기 위해서 지은 집이니 한옥이다라고 했는데 한옥이라는 말은 현대 건축물이라고 해야 되나.
서양식 건축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집을 구분해서 분류했어야 해요.
그래서 서양식 집은 양옥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쭉 온 집은 한옥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그냥 한옥이라는 생각을 저희는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외국분들이 한겨울에 우리나라 집에 놀러 오고 집주인이 반팔 입고 나오잖아요.
기겁합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 이렇게 따뜻한 집이 있냐고.
그게 한옥의 위대함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난방 시스템이 수출되기 시작했잖아요.
-그렇죠.
-또 최근에는 한옥이 카페나 숙박시설, 세컨드 하우스 등으로 활용이 되기도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예전에 북촌이나 이런 데 한옥들 다 비어 있었거든요.
그냥 쇠락해 가고 있었어요. 근데 여기에 사람이 들어가야 집은 살거든요.
근데 어떤 모습이든 아니면 어떤 방법이든 그 한옥을 활용하는 건
되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고 다만 너무 지나친 왜곡은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들어요.
한옥스테이입니다 그래서 갔는데 거기 내부는 다 일식 다다미와 이런 게 깔려 있는 집들도 있어요.
-그런 거는 그렇죠.
-그런 거는 좀 아니지 않을까.
-맞아요, 그거는 조금.
-갔는데 왜 그 거실 테이블에 이불 달려 있고 막 그런 거 있잖아요. 일본 전통문화잖아요, 그건 또.
일본은 온돌이 없으니까 추우니까 막 그런데 가면 막 그런 거 돼 있고 그러면 이거 뭐지 약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한옥스테이라고 했는데 가보면 그렇게 구성이 돼서 이걸 한옥이라고 얘기하는 거는 안 맞지 않을까.
-그러게요.
-알겠습니다. 이쯤에서 잠깐 대표님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면 어떨까 싶어서 또 이가연 아나운서께서 준비한 게 있죠.
-제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 대표님을 위해서 준비한 게 바로 밸런스 게임인데요.
-밸런스 게임을요?
-깊이 고민하시면 안 되고.
-균형 게임이라고 하시면 안 됩니까? 한옥을 지키고 계시는데.
-균형 게임.
-밸런스 영어를 또 쓰시네요.
-밸런스 아니고 균형입니다. 그래서 깊이 고민하지 마시고 듣는 그대로 바로 답해 주시면 됩니다.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생각에 한옥은 힐링템, 아니면 로망템. 하나 둘 셋.
-힐링템이요.
-힐링템. 두 번째 바로 갑니다. 대표님 성격은 목수 스타일 또는 예술가 스타일. 하나 둘 셋.
-목수 스타일.
-대표님의 선택은 전통 오어 트렌드, 하나 둘 셋.
-전통인 것 같아요.
-좋습니다. 이렇게 대표님의 스타일을 균형 게임에서 알아봤는데 대표님 생각에 한옥은 힐링템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로망은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로망이고 힐링은 가서 즐길 수 있는 힐링이니까 가서 즐기면서 받을 수 있는 힐링.
-이미 한옥을 갖고 계시다는 거죠.
-한옥 안에서 어떤 걸 하실 때 제일 좋으세요?
-저는 딱히 뭘 안 해도 한옥에서 그냥 창문 열고 저희 앞에 팔봉산이 보이거든요.
그냥 그거 보고 있으면 복잡할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 머릿속이 깨끗해져요.
그게 좋고 차 한 잔 마시면 되게 행복해요.
-저는 그 앞마당을 걸을 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단종 오빠처럼.
-뒷짐 지어야 됩니다. 이리 오너라 하고 네 이놈.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
-대단하십니다.
-이런 걸 하면서 하는 힐링이 아무래도 한옥의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또 대표님의 성격은 목수 스타일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목수 스타일이세요?
-저는 이렇게 자잘한 걸 잘 못해요. 큼직큼직하게 이렇게 딱딱딱 결정 내리거나.
그러니까 차라리 나무 대패질 하는 게 좋지 뭔가 거기다 이렇게 조각하고 이런 건 조금 힘들어요.
-그러니까 본질에 더 이렇게 집중하시는.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막 디자인 예쁘게 이게 아니고 딱딱 정리하고.
-큰 그림을 그려내시는 게.
-만들어 내는 게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러시군요. 사람마다 성향이 좀 다르긴 하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되게 좀 디테일한 거를 잡아내는 걸 좋아하시고
전체적인 그림을 프레임을 짜고 이런 걸 좋아하시는 분이 계시고 대표님이 약간 후자신 것 같습니다.
-그럼 나무를 많이 또 접하시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소나무, 한옥이면 우리나라 소나무로 많이 짓게 되는 거죠?
-우리나라 소나무 많이 쓰려고 하고요.
그리고 요새 나무 가공 방식이 많이 바뀌어서 공장에서 지목해 갖고 와요, 자동으로.
그러면 우리나라 나무보다는 수입목이 많이 들어와요.
-소나무가 이렇게 곧지는 않잖아요. 곧은 것도 있긴 하지만.
그게 굉장히 귀하잖아요, 그런 소나무가. 굉장히 고가 아닙니까?
-굉장히 고가예요.
-그럼 한옥도 비싸겠네요.
-그 목재 사용하니까. 그리고 그 목재를 다룰 줄 아는 기술자들이 있어야 하니까 아무래도.
-대표님의 선택이 트렌드와 전통 중에서는 전통을 선택하셨어요.
-아무래도 전통을 계속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트렌드보다는 전통인데 트렌드도 무시할 수는 없죠.
-전통이 트렌드에 맞게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는 거잖아요.
-네, 네.
-그런 트렌드도 놓치지 않으시려고 좀 노력하고 계십니까?
-노력하죠. 계속 전시 보고 뭔가 일이 생기면 찾아가 보고 또 강연이 있으면 듣기도 하고.
-한옥 전시나 이런 거 있으시면.
-그리고 어디 새로운 집이 지어졌다더라 하면 또 가보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요즘에야 아파트가 전통적인 주거 형식보다는
확실히 대중화된 게 아파트고 많은 분들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것도 맞잖아요.
그런데 1980년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파트 살라고 하면 그 닭장 같은 데서 어떻게 사냐고 그랬어요.
-맞아요.
-그래서 시범 단지들 있잖아요.
여의도 시범단지, 이촌동 시범단지 이런 데들 거기 들어가서 못 산다고 했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 그런 데 들어가서 사냐.
근데 요즘에 한 번 살아보고 나니까 너무 편리하고 그렇다 보니까
관리할 일도 별로 없어지고 그러니까 아파트를 많이 선호하긴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때 아파트를 한옥처럼 짓는 것도 어떨까. 뭐 이런 생각도 한번.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한옥 아파트라는 것도 멋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한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기도 한데. 한 10여 년 전에 LH공사에서
한옥형 평면으로 설계를 하고 한옥형 아파트를 짓자라는 한 번 제안을 한 적이 있었어요.
-계획이 있었군요.
-그래서 아파트지만 실내가 한옥처럼 구획이 되고 한옥의 좋은 장점이
공간을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거든요. 지금 아파트는 문을 탁탁탁 닫으면 그냥 끝이잖아요.
근데 공간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그 공간을 합쳤다 분리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생기고 하는 게 다양한 평면을 가지고 시도를 했었어요.
근데 그게 아무래도 단가 차이일까요?
-현실적인 문제 중요하죠.
-그게 넘어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재비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근데 그렇게 공간을 문을 열었다 젖혔다 하면서 이렇게 넓게 쓰기도 하고 좁게 쓰기도 하고 그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문 우리 예전에 이렇게 문 열어가지고 두 방을 동시에 쓰기고 하고 그랬잖아요.
-들어올리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게 아파트 평면을 수리해서 인테리어 해서 쓰시는 분도 굉장히 많으세요.
-아기 있는 집들은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또 우리 K-컬처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데 한옥의 세계화 가능성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한옥이 어떻게 보면 레고처럼 지어지잖아요. 모듈화가 가능하고.
그래서 캐나다산 주택이 한참 우리나라에 들어왔었잖아요.
그것처럼 우리도 이게 모듈화되고 가서 바로 지을 수 있게 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데
저희 아버님이 프랑스 파리에 이응노 화백이라고 고암서방을 지은 적이 있으세요?
근데 그 집을 지을 때 프랑스 건축법에 당연히 안 맞았겠죠.
돌 위에다가 그냥 나무 하나 뚝 세워서 집을 짓기 시작하고 나무끼리 이렇게 연결해서 하고 이걸 어떻게 할 거냐.
-설명이 안 되죠.
-근데 이제 지진 실험이나 여러 가지 역사성이나 이런 거를 다 우리 건축에 대한 거를 수치로 보여주고 당당히 건축 허가를 받고.
-허가가 났나요?
-그래서 세느강변 위에 있는 집을 지으셨어요, 파리에.
그래서 그 집을 지을 때 건축학과 학생들, 교수님들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이 보고 가셨대요. 대체 이 집이 어떻게 지어지는 건가.
그래서 우리 집이 조금만 더 모듈화되고 그렇게 된다고 한다면 해외로 내보내는 게
크게 문제되지 않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그 이음새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나무끼리 연결되는 거 그거 굉장히 좀 신기해하고 놀라더라고요.
-이음과 맞춤이라고 서로 딱딱딱딱딱 쌓아가니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또 대표님께서는 현재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강원지회장도 맡고 계시잖아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기업인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은 어떤 거예요?
-아무래도 소규모 기업이 많고요. 크게 사업을 잘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강원도 내에 여성 기업들이 소규모예요.
그러다 보니까 판로 개척이나 아니면 자금을 받는다거나
아니면 공공구매 입찰을 해서 그게 판매가 되거나 이런 것들이 좀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기반을 어떻게 잘 잡아서 도움을 드릴 수 있게 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그분들이 창업하는 분들도 진짜 여성 기업으로 다시 이렇게 넘어올 수 있게 잘 넘어와서
기업이 운영될 수 있게 하는 게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협회장으로서 가장 힘을 싣고 싶은 정책이나,
아니면 지원 분야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게 1999년에 여성기업지원법이라는 게 제정이 됐어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공공구매나 이런 것들에 있어서 여성 기업에 우대 정책이 있거든요.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게 실질적으로 실행이 되지를 못하고 있어요.
많은 지자체들에서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저희가 피부로 와닿는 만큼의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실질적으로 와닿게 그것이 시행될 수 있게 계속 홍보하고
저희가 계속 찾아뵙고 노력하는 거 그게 협회에서 하는 일 중에 하나고요.
그리고 판로 개척하고 또 수출을 준비하고 있는 회사들도 많고 또 이미 수출을 나가 있는 회사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원활하게 될 수 있게 후면에서 지원해 주는 것도 저희가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죠.
-알겠습니다. 이렇게 또 사회적인 지원과 도움을 주는 분야에까지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이야기 오늘 잘 들어봤습니다.
이가연 아나운서 어떻게 좀 도전해 보시죠.
-저도 해도 될까요?
-지원해 주실 것 같은데.
-그럼요.
-진짜요? 저는 꼭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사업하고 싶으신데요?
-저요?
-저희 협회에 MC 하시는 분들도 있으세요?
-진짜요?
-그래요?
-엔터테인먼트.
-저는 어떠세요?
-엔터테인먼트 사업이시잖아요.
-그렇죠, 엔터테이먼트 사업.
-그렇죠, 저도 강원도 사람이어서. 이거는, 네.
-강원도 사람인 거 다 알잖아요.
-너무 많이 말해가지고.
-알겠습니다. 어떤 사업을 또 계획하고 계실지 나중에 한 번 이야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대표님에게 마지막으로 탑클래스의 공식 질문 좀 드려보겠습니다.
신지용 대표님에게 있어서 한옥이란 무엇인지 한말씀해 주실까요?
-한옥은 제 삶인 것 같아요. 전체 인생을 관통하면서 거기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어요.
-한옥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으십니까?
-한옥 집에서 살고 있진 못했지만 그 일에서 벗어난 적은 없어요. 근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삶이라는 것 같아요.
-그러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길 돌아다니시다가 예쁜 모양을 보시거나 이러면 다 한옥이랑 좀 연관시켜서 생각하실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감성과 그런 아름다운 미학이라고 해야 되나요?
많은 분들에게 좀 전달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해요.
한옥이라는 게 사실 그런 의미인 거잖아요.
-맞습니다.
-어떤 한옥이든 고향 같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뭔가 좀 깊게 사색할 수 있는 듯한
그런 분위기와 느낌, 그런 한옥의 모습들 많이 전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불어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실 것 같은데 그런 목표도 한 말씀해 주시죠.
-지금 준비하고 있는 그 박물관 잘 설립해서 일반인들한테 이 한옥에 관한 거를 조금 더 재미있게 콘텐츠로 다가가고 싶고요.
그리고 또 집 짓는 것도 포기할 수는 없어요.
그게 건축주하고 의논해서 집을 어떻게 안 지을 것이며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이며를 의논해서 집을 딱 만들었을 때 그 기쁨이 뭐하고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요.
-도면으로 봤을 때와 실제로 봤을 때의 그 느낌. 감동적일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느껴본 감정은 아니지만 정말 한번 느껴보고 싶은 감동이다라는 생각이 좀 듭니다.
오늘 이야기 들으면서 한옥이 단순히 그냥 전통, 과거의 건축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는 우리들만의 집의 스토리다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사실 저는 한옥이 저한테는 로망이거든요. 근데 이 로망이 저의 생활에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매일 접할 수 있고 매일 내가 가는 카페가 한옥이었으면 좋겠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옥의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 신지용 대표님.
대표님이 계신 만큼 앞으로 한옥의 미래도 더욱더 기대가 된 하루였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탑클래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여러분들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