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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클래스 - 한국 춤의 새로운 결 윤혜정, 꿈의 무대 국립무용단에 서다
등록일 : 2026-05-27 11:43:53.0
조회수 : 250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이가연입니다.
-이가연 아나운서 반갑습니다.
지난 3월에 아리랑이라는 앨범으로 컴백한 BTS가 엄청 화제가 됐었잖아요.
그 아리랑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를 담은 앨범인데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게 진짜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요즘 뭐 K-컬처의 위력이 엄청난 거 같아요.
-그러니까요.
K-팝, K-컬처의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면서 이제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K-팝, K-푸드. 여성분들의 K-뷰티.
-맞아요, K-뷰티 엄청나죠.
-한국화장품 이런 거 엄청나잖아요. 거기에 더해서 이제 K-무용까지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중심에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 서 있다고 합니다.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 계신 분입니다. 서울시무용단의 윤혜정 단장님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장님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단장님.
-먼저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좀 부탁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일단 탑클래스 이런 프로그램에 초대받게 돼서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서울시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 윤혜정입니다.
-반갑습니다. 무용이라고 하면 사실 굉장히 저는 접근이 좀 어려워요. 어, 무용?
생각도 못해 봤던 직업의 장르였어 가지고. 무용과 인연이 오래되셨겠어요?
또 무용학원의 1호 수강생이었다, 이런 이야기도 저희가 들었는데요.
-네, 저는 강원도 속초가 고향입니다.
-정말요?
-속초 어디예요?
-속초 중앙동 사람인데요.
-중앙동에 계시는군요.
-아시나요, 중앙동?
-저는 조양동 쪽에 있습니다.
-그러세요?
-네, 왔다 갔다 합니다.
-저번 주도 속초 다녀오셨다고?
-갔다 왔어요.
-너무 반갑네요.
-그러네요.
-근데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이렇게 무용을 하셨다는 게 또 특히 취미가 아니고 전공이셨잖아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제가 5살 되던 해에 저희 동네에 무용학원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께서 무용학원이 오픈하자마자 저를 그냥 손잡고 가서 등록을 시켜버리셨어요.
그래서 5살 때 처음 무용을 접하게 된 것 같아요.
-무용학원이 속초에 있었던 거예요?
-네, 처음 생겼죠.
-당시에 비행기 타고 학원 다니셨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어떤 일이에요?
-입시 때요.
-입시 때?
-속초에서 속초여고까지 다녔는데 사실은 속초 무용학원 선생님께서 속초에서 대학 서울로 가기에는
그냥 배워서 조금 곤란하니까 서울로 레슨을 다니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저희 아버지한테 조금 조언을 해 주셨는데
저희 아버지는 그때 예중, 예고 저희는 이런 정보도 하나도 없을 때예요.
-그때는 그랬죠.
-그때는 저희가 듣는 예고는 안양예고밖에 없었던 시절이에요. 그래서 예고?
근데 저희 아버지 또 속초 분, 옛날분 좀 고지식하시잖아요.
그리고 제가 첫딸이라 고등학생 첫 아이를 서울로 보내서 혼자 기숙생활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요.
그래서 안 된다. 예고는 절대 안 된다.
다른 건 다 지원해 줘도 예고 가는 것만큼 내가 안 된다라고 딱 강경하게 반대를 하셔 가지고 이제 제가 딜을 했죠.
그럼 예고 안 되는 대신 서울로 레슨 받으러 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건 들어주셔서 토요일까지 그때는 학교 수업이었거든요. 요즘은 토요일날 수업 안 하잖아요, 고등학생들.
근데 저희는 그때 토요일까지 12시 수업을 끝나면 아버지가 저 연습복 가방을 가지고
학교 앞에 오시고 저는 연습복 가방과 무용 가방을 바꿔 메고 속초공항으로 갔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시절 88년, 89년 그때는 속초공항이 있던 시절이에요.
그래서 마침 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서울까지 학원으로?
-네, 학원으로. 근데 그것도 사실은 처음부터 비행기를 해 주시려는 거는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같이 저랑 서울로 레슨을 한 번 가기 위해서 대관령을 뚫고 5시간, 6시간을 꼬불꼬불 막 하면서 서울 도착했죠.
근데 어릴 때 제가 또 멀미가 심해가지고 버스만 타면 계속 이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완전 지친 상태에서 서울에 도착해서 레슨 받고 또 다시 버스를 타고 5, 6시간 이제 집으로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그 모습을 한두 번 겪더니 너는 몸이 재산이고
무용이라는 거는 몸이 무기인데 그렇게 지쳐서 다녀서 연습이 되겠냐, 실력을 쌓겠냐.
그래서 아버지가 결정 내리신 거예요. 비행기 타고 다녀라.
-일단 기본적으로 열정이 엄청나시고 그때 당시에 서울과 속초를 왔다 갔다 하려면 진짜 말씀하셨지만 5시간, 6시간은 걸려야 되고.
그리고 어린 나이에 그렇게 서울을 왔다 갔다 한다는 것도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는 시기였고.
또 주말에 가셨다고 했는데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었어요.
-맞아요.
-그래서 오전 수업만 끝나고 다녀오신 거라.
-그럼 언제 내려오신 거예요? 일요일에?
-하고 일요일 저녁에 내려와요. 1박 2일 배우고 내려왔어요.
-특히 아버님의 도움이 진짜 엄청나셨네요.
-도움도 있겠지만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그때.
-행복하셨군요.
-그래서 토요일만 되면 막 흥분돼서.
-새로운 걸 또 배우고.
-속초공항 도착하면 벌써 대한항공 직원분들이 잘 갔다 와. 막 이렇게. 제 얼굴을 너무 잘 아는 거죠.
고등학생이 쟤 무용하겠다고 저렇게 주말마다 서울 가.
그게 이제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서도 너무 가족같이 저를 막 잘 다녀오라고 또 응원해 주시고 그랬던 그런 고3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노력도 있고 본인의 노력도.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고.
그 모든 게 복합이 돼서 지금의 이 자리에 계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학교 다니실 때도 거의 뭐 장학금을 빼놓지 않고 다 받으셨다는 얘기도 있어요.
-제가 아버지 말씀을 되게 잘 듣는 착한 딸이었나 봐요.
-겸손하시기까지.
-저희 아버지는 공부 안 하면 무용학원 가지 마라, 그게 조건이었었어요. 너 무용하고 싶으면 성적 떨어지면 안 돼.
-무용을 정말 사랑하셨군요.
-아버지는 공부가 굉장히 중요하신 분이셨고 그렇다고 무용한다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하는 거를 용납을 안 하셨던 거죠.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도 조금 그냥 인문계 다니면서 학업을 좀 잡고 있다 보니까 대학을 가니까
예중, 예고 나온 친구들 숲에 제가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촌뜨기가 부끄러웠어요.
그들은 이미 다 세련되게 예중, 예고 친구들은 다 가꿔진 상태에서
대학을 딱 왔는데 저는 속초에서 약간 시골물이 뚝뚝 흐르는 상태에서 갔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있던 차에 첫 시험을 딱 보니까,
중간고사를 보니까 제가 1등을 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아, 이렇게 하면 1등 하는구나 그 경험치가 그걸 안 놓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그냥 하던 대로 뭘 더 잘하려고 보다도 그냥 내가 하던 대로 계속하자 그랬더니
4년간 모든 학기를 다 전액 장학으로 1등을 하게 되는 그게 그냥 이어졌던 거 같아요.
-노력도 있으셨지만 재능도 있으셨죠, 그전부터?
-춤에 대해서요? 그러게요,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은 조금 남다르다는 얘기를 좀 많이 해 주셨어요.
그래서 너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하는구나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분도 계셨었고.
스승님들의 복도 제가 많았던 것 같고 또 저를 가르쳐주신 분들이 그런 평을 또 많이 해 주셨고.
고맙게 감사하게 잘 배웠던 것 같아요.
-저는 평생의 소원이에요, 그런 말 들어보는 게.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방송도 하나로 하시면 열 가지를 진행하시잖아요. 잘하고 계신데요.
-여기까지 딴소리하고.
-근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까 사실 예전에는 몸 쓰는 일을 하면 공부 안 해도 된다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 있었는데 그걸 뛰어넘으셔서 공부까지 하셔서 대학교 생활 동안
장학금을 받으셨다는 건 엄청난 노력이 있으셨다라는 얘기잖아요.
-대학 때까지는 교수가 조금 꿈이었던 것 같아요.
-학점도 중요하셨군요.
-그래서 아버지도 교수가 되는.
저는 이런 무용계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문외한 상태에서 춤을 췄던 속초 아이였기 때문에 대학을 가면 그 대학이 끝이었고
대학에 있는 교수님이 끝이었고 무용세계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약간 적토마처럼. 말의 해지만.
그렇게 살았던 게 제 삶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그때도 교수 되는 게 오로지 그냥 유일한 꿈.
그래서 교수 되기 위해서 공부 열심히 하고 춤 열심히 추고 교수님과 열심히 작업하는 거에 같이 따라다니고
이런 것이 저의 전부였던 것이 아닌가 그랬는데 이렇게 단체로 오리라고는 제가 또 생각지도 못한 길이 열린 것 같아요.
-그렇죠, 누구나 목표로 하는 곳에 점을 찍어놓고 있지만 한 번에 가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많은 점들이 생기잖아요.
이렇게 그 길을 가면서.
-또 대학을 졸업하신 뒤에는 국립무용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셨다고 들었는데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우리 시청자분들께 한번. 감이 잘 안 오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맞아요. 국립무용단이라는 무용단 이름 자체도 흔치 않게 들리실 건데요.
-나라에서 운영하는 거잖아요.
-국가대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국가대표잖아요, 맞아요.
-여러분 축구 국가대표 있잖아요. 저희 무용에서는 국가대표가 국립무용단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의 주역이라고 그러면 우리가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 리스트들 있잖아요.
그런 금메달 리스트들감이 주역 무용수가 아닌가 이렇게 비교를 하면 조금 감이 오실까요?
-국가대표이고 일단 인원도 많이 안 뽑잖아요. 몇 명 정도 국립무용단에 있는 겁니까?
-지금은 이제 한 40-50명 정도가 국립무용단의 정예단원으로 있는데요. 매년 TO가 있어야 뽑힙니다.
-근데 TO도 없잖아요?
-잘 없습니다. 나가주시거나 비는 자리가 있어야 그 인원만큼 채워지는 거라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거죠.
-근데 단장님 이전까지는 입단 10년 차가 되지 않으면 주역 무용수가 될 수 없다라는 룰이 있었대요.
-진짜요?
-근데 그 고정관념을 윤혜정 단장님이 깨셨다고 합니다. 맞습니까?
-그것도 참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던 것 같아요. 처음 시도된 건데요.
저희가 들어가면 거의 불문율처럼 한 10년 정도는 무용단 생활해야 짬밥이라고 하잖아요.
그 정도 돼야 주역 정도 하는 거야. 이게 보이지 않는 룰이었어요.
그래서 입단하고 뭐 10년은 이러고 살아야 되나 보다 했는데 제가 3년 차 되던 해에
정말 이것을 부수는 오디션을 주시는 단장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국수 단장님이라고 그분께서 제가 3년 차 되던 해에
신단원부터 모든 단원들이 다 주역에 도전하라라는 오디션을 열어주셨어요.
-굉장히 파격적이네요.
-파격적이었어요. 굉장히 파격적이어서.
-그게 몇 년도입니까?
-제가 94년도에 입단했는데 96년도.
-그러니까요. 그때 당시에는 이건 선배들의 항의도 엄청났을 것 같은데요.
-근데 그걸 강단 있게 추진해 주셨어요.
그래서 해 볼까 하고 도전을 했는데 어떻게 또 여자 주인공이 돼서 기회를 잡게 된 거 같아요.
-엄청난 시기와 질투와 뒤에서의 험담과.
-어떻게 잘 아세요?
-저도 경험해 봤던 일들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저희도 개그맨 때 신인이 그 코너의 주인공이 되면 난리 났었거든요.
1년 차, 2년 차가 자기 코너를 한다라는 게 쉽지 않았던 때라 근데 그걸 했다면 엄청나게 시기, 질투 많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지나고 나면 이 또한 나에게 도움되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국립무용단의 주역 무용수로 또 개인 무용단에서의 창작을 거쳐서 대학에서 강의도 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 많은 경험 가운데 지금의 단장님을 만든 선배들의 뭐가, 뒤에서의 그런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무용단에 들어가서 또 뭔가를 창작하고 만들어내고 이렇게 많은 경험들이 있으실 거예요.
가장 핵심적으로 단장님의 지금의 자리를 만든 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국립무용단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립무용단의 경험. 왜 그렇죠?
-제가 지금 있는 곳이 프로단체이기 때문에 어떤 프로단체의 생리를 안다거나
프로단체를 경험했다라는 거는 엄청난 그 노하우가 경험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 있는 프로단체의 가장 적격인 것은 제가 프로단체 경험이 있어서
무용수로서의 활동도 했고 또 그때 프로 무용단의 단장님들이 해 왔던 그런 업무들,
그런 것들을 눈여겨봐왔던 그런 것이 지금 많이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처음에 그때 국립무용단 했을 때 많이 힘드셨을 거잖아요.
근데 그걸 이겨내신 거잖아요. 많은 분들이 그러잖아요.
처음에 뭔가를 의도하고 그 일을 진행해 나갈 때 처음부터 잘 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처음부터 잘 되셨습니까? 저는 그게 좀 궁금해요.
-그냥 별로 계산을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일단 그냥 하셨군요.
-힘들다, 괴롭다 이런 어떤 부정적인 단어보다는 그냥 일단 저한테 주어진 게
너무 감사하고 너무 지금 하는 게 행복하고 그렇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생각 별로 안 하고 단순하게. 다른 생각은 별로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일단 하자. 일단 해 보고 나서 결정해 보자, 그런 마인드로 접근을 하셨던 거네요.
-그리고 춤추는 순간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부수적인 그런 괴로움과 힘듦이
내가 지금 추는 순간에 행복함으로 다 씻기고 잊혀지는 것 같았어요.
-춤추는 것 자체가 너무...
-너무 멋있으시다.
-너무 좋았죠.
-타고난 무용수이시네요. 저는 코미디 하는 게 되게 힘들었거든요.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힘들어서 처음에 하자마자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을 했는데
벽에 부딪히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단장님은 어떠셨는지 좀 궁금했어요.
-근데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수없는 헝그리 시간들이 있죠. 국립무용단 있을 때는 그래도 안락했어요.
모든 것들이 다 갖춰지고 또 국립이라는 국립무용단 자체로 인정해 주는 타이틀들이나
주변의 여건들이 저를 굉장히 안락하게 하잖아요. 금전적인 것도 그렇고.
-중요하죠.
-명예도 그렇고.
-그럼요.
그런데 제가 국립무용단을 딱 6년 차 하고 사표를 쓰고 나와서 개인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한 10년을,
오히려 10년을 밖에서 정말 제야에서 힘들게 전전긍긍 살았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때가 전국구로 다니면서 대학 강의를 하고 보따리 장수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운전을 거의 그냥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운전하고 다닐 정도로
그렇게 강의하고 다니고 작업하고 다니고 그런 세월이 한 10년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10년 동안은 내가 교수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것보다 일단 매일매일을 도장 깨기 하듯이 오늘도 잘 살았어. 일주일 잘 살았어.
한 달 잘 살았어. 1년 잘 살았구나. 그냥 그렇게 하면서 10년을 살았던 것 같아요.
-10년이 짧지 않은 시간인데.
-그게 포기가 안 되고 왔다라는 게 가장 큰 무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따뜻한 온실에 계셨다가 야생으로 나오셨군요.
-맞아요.
-현실에 부딪히는 모습도 그때 많이 느끼셨을 거고 그런 생각이 좀 들기도 하네요.
-또 현재는 서울시무용단에 지금 단장을 맡고 계시지만
또 많은 분들은 강원도립무용단에서의 단장님을 기억하고 계실 것 같아요, 그렇죠?
-또 강원도립에 올 수 있었던 게 2016년에 제가 임용이 됐는데요.
그때 임용될 때만 해도 저는 일단 강원도립에 온다는 것 자체가 트라이한다는 것 자체가 저는 그냥 고향을 오는 기분이었어요.
제가 정말 서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또 다양한 역할을 해 보고
이제는 그런 역할들을 다 축적해서 우리 고향을 위해서 내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가 사람들이 사실 서울에서 활동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떤 쉬운 판단은 아니잖아요. 계속 서울에 존재하기를 원하고.
-내가 뒤처지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기도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죠.
-내가 다시 돌아가는 게 맞나라는 생각도 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저는 왠지 그때만 해도 교수가 꿈이었지만 교수가 지금 당장 되지 않을 바에는
일단 고향 가서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고향을 위해서 한번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런 마음에 도전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침 오니까 정말 따뜻해요.
-진짜 고향으로 왔군요.
-저는 이제 그거 잘 몰랐는데 정말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 더 느끼게 되나 봐요.
고향을 생각하고 애향심이 생긴다는 게 나이가 들수록 더 짙어지는 것 같은데.
제가 그때 왔을 때도 뭔가 강원도립의 어떤 다른 목적보다도
내가 고향을 와서 우리 고향의 무용단을 누구도 부럽지 않은 무용단으로 한번 확 끌어올려 버리고 싶다, 그런 욕심이 불끈 솟더라고요.
그래서 오자마자 제가 국립무용단 때 생활했던 모든 생각을 다시 리마인드 다 끌어올리는 거예요.
-전수해 주고 싶어가지고.
-그래서 강원도립을 완전 국립무용단처럼 만들고 싶어. 그런 생각으로 8년을 생활했던 것 같아요.
-약간 그 감정이 달랐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속초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학원을, 그러니까 무용학원을 다녔을 때.
서울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녔을 때
그리고 나라에서 하는 국가대표 같은 무용단에 들어갔을 때를 거쳐서 이제 고향으로 온 거잖아요.
그럼 단장의 마음인 거잖아요,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단장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해요.
이게 어떻게 보면 야구로 따지면 야구 선수로 뛰다가 야구 감독이 됐을 때와 같은 느낌인가?
막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왔을 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애향심이 더 컸었어요.
그래서 단장이라는 것보다 저는 이거 단장이라는 완장 떼고 생활했어요.
오히려 나 댄서다. 나 다시 댄서로 돌아간 느낌으로.
-나 무용수다.
-내가 아직 국립무용단원인 마인드로 단원들하고 같이 뛰었어요. 처음에는 강원도립 와서
-그럼 단원들이 싫어하지 않아요?
-연습은 같이 하고 무대는 안 올라가요, 제가.
무대는 단원들에게 다 기회를 주고 저는 절대 무대 안 올라가고 대신 연습실에서
같이 무용수가 된 기분으로 같이 땀 흘리고 같이 움직이고 같이 해 주니까 그 에너지가 단원들이
아, 프로 무용단은 이렇게 움직여야 되는 거야? 프로 무용수면 저 정도 가야 되는 거야?
이 정도 에너지가 있어야 되는 거야를 연습실에서 간접적으로 저를 통해서 좀 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너무 좋은데요.
-그러니까 단순히 너 가서 연습하고 이가연 아나운서, 가서 저기 대본 좀 보고 와, 말 좀 하고. 그런데 안 해 나는.
같이 대본 보면서 이건 이렇게 해야 되고 저건 저렇게 하고.
-그럼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죠.
-그렇죠, 그런 거죠. 그런데 말로만 하는 사람보다 같이 옆에서 움직여주는 단장님이라면
단원들이 굉장히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또 재직하셨을 당시에 정말 좋은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들었거든요.
강원도를 넘어서 전국에서 주목받는 또 단체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애정이 강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 백호 수호랑이 있잖아요.
그 백호 수호랑이를 모티브로 해서 강호라는 작품, 강원도 호랑이라는 강호라는 작품을
제가 2018년도에 만들었는데 그것이 이제 그다음에 청소년 동계올림픽 2024
또 청소년 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해서 저희가 그 강호라는 작품을 가지고 투어를 해야 하는 목적이 생겼었어요.
근데 저는 투어를 하더라도 서울 중심에 가서 하자. 꿈에 그리는 국립극장에 서자.
제가 또 그 목표를 가지고 국립극장을 계속 노크를 한 거죠. 그래서 결국.
-열렸습니까?
-열렸습니다.
그래서 저희 강원도립 무용단원들과 같이 국립극장을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대관을 해서
전석을 매진시키면서 강원도립무용단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보세요, 너무나 자랑스럽게.
그렇게 해서 보시고 다른 무용단원들도 그렇고 다른 직업단체들 또 서울에 있는
많은 관객들도 보시더니 강원도립무용단의 실력을 보고 깜짝 놀라하셨어요.
-얼마 전에 왕과 사는 남자가 이제 단종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거잖아요.
근데 알고 보니까 단종 이야기를 장항준 감독님보다 먼저 무대 위에.
이렇게 비교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무대 위에 세우셨다고. 그때 이야기도 좀 한번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게 또 코로나 시절하고 또 맞아떨어지는 건데요.
-코로나 시절에 또.
-우리가 코로나 때 극장 공연을 거의 못 했잖아요. 그리고 사람 접촉이 안 되잖아요.
-행사 무슨 공연, 콘서트 이런 거 다.
-다 멈춤.
-올스톱.
-그 상황에서 올스톱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렇다고 저희가 놉니까? 그럴 수 없어서 저는 그때.
-공연하셨어요? 어떻게 무대를?
-온라인으로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공연하셨어요?
-네, 저희는 영상을 찍었어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 했냐면 그 코로나 시절 2년 동안을 저는 강원도 전역을 돌아다녔어요. 오히려.
그러니까 연습실에서 연습할 수도 없고 마스크 끼고 단원들이 힘들 때 강원도 18개 시군을 다니면서
그 지역의 문화가 뭔지 그 지역의 역사가 뭔지 그 지역의 또 명소가 뭔지 그걸 하나 하나씩 찾았어요.
그래서 각 지역의 춤을 만들어야 되겠다.
그래서 이걸 우리가 직접 공연장 가서는 못 보더라도 온라인상으로 강원 춤 여행을 만들자.
그때 여행도 금지된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강원도에 이런 명소가 있고 이런 문화가 있고 이런 역사가 있고
이런 인물이 존재해라는 걸 온라인으로 다 만들어서 강원 춤 여행투어를 온라인으로 만든 게 코로나 시절이었어요.
그때 제가 영월에 갔을 때 단종을 보고 청령포도 가고 그 유배지도 보고
단종의 그 묘도 보면서 단종의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저는 지금 이제 왕과 사는 남자는 엄흥도를 포인트로 그 시각을,
그쪽 시각으로 영화를 만드셨지만 저는 사육신의 시각으로 만들었어요. 단종을 향한 충절의 길을 걸었던 사육신.
왜 그러냐면 저희 무용단에는 단종같이 어린 단원이 없어요. 10대 누구 무용수를 구할 수가 없죠.
그를 객원으로 주인공을 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면 단종이 아닌 단종을 상기시킬 수 있는 어른들의 모습들은 어떤 사람들이 존재했을까.
그렇다면 우리 무용수 중에 남자 무용수들을 사육신 역할을 시키자.
그래서 단종의 어전을 무대에 딱 이렇게 세트로 세우고 그 앞에서 단종을 향해서 예를 지키고
자기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했던 사육신, 그 춤을 만들었었던 거죠.
-그게 원래 춤이 있었던 게 아니라 창작을 하신 거죠?
-네.
-새롭게 만드신 거잖아요?
-그 스토리와 함께. 근데 작품에 지역색이랑 지역 이야기를 많이 담아내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 그런 이유가 있으세요, 단장님?
-저는 강원도 도립무용단이 존재하는 이유가 강원도민들을 위해서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술가들이 자기 작업하고 싶어 하면 그냥 나가서 민간으로 프리랜서하면 돼요.
공공단체에 왔으면 저는 공익에 우선해야 된다라는 게 마음이 크기 때문에
강원도민들을 위해서 우리 무용을 통해서 어떤 프라이드를 우리가 전달해 드릴 수 있을까.
문화적 향유? 문화적 향유는 예술을 느끼고 안 느끼고는 개인의 자유예요.
다만 그 작품이 존재해서 강원도가 이렇게 문화적으로 수준 있는 곳이구나.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이렇게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곳이구나.
그걸 우리가 남겨주는 게 우리 예술가들의, 강원도립무용단의 몫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서
그래서 그런 쪽으로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이런 목소리들을 또 서울에서 들으셨나 봐요. 이렇게 새롭게 도전하시고 만들어내시고.
남들은 손 놓고 있었을 시기에도 우리는 뭔가 해야 된다라는 의미에서 또 새로운 걸 만들어내시고 또 단원들을 독려하시고.
이게 서울에까지 귀에 들어간 거죠. 스카우트 제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발탁이 되셨다라고, 뽑히신 거죠?
-네.
-서울시무용단의 명성이야 엄청나게 자자하죠.
많은 분들이 서울시무용단에 도전도 하시고 많이 가고 싶어 하기도 하고 그런 것 자체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이고.
역시 가셔서도 좋은 작품들로 주목을 많이 받으셨다라고 해요.
특히 지난해 초연 당시에 전 석, 전 회차 매진을 이어갔던 스피드라는 공연이 있잖아요.
어떤 작품인지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서울시무용단 와서 첫 작품을 할 때 서울시무용단이 그동안 대형 작품을 굉장히 많이 만들었어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스케일 있는 대형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거기의 단점을 한번 제가 찾아보니까 이게 유통이 잘 안 돼요.
너무 스케일이 크니까 이 작품을 어디 가서 담아낼 장소가 세종문화회관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방투어를 가고 그 작품 너무 좋아. 근데 우리 지방 와서 해 줄 수 있을까?
그 작품 너무 좋아. 우리 해외에서 해 줄 수 있을까? 이렇게 접촉이 오면 못 가요가 결론이었어요.
이거 이래서 안 됩니다, 저래서 안 되고. 금전적인 것도 그렇고 사이즈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해서.
그렇다면 이렇게 훌륭한 서울시무용단과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컴팩트하게 만들자.
경량 있게 만들어서.
-라이트한 버전이군요?
-네, 그런 작품으로 한번 도전을 해서 제가 있는 동안 그런 작품을 조금 남겨서
다양성을 좀 있게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으로 스피드를 소극장에서 시도를 했는데
엄청나게 의외로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어요.
소극장 바닥을 LED로 다 깔았었거든요. 그러니까 대극장에서는 LED 바닥 다 깔 수가, 예산적으로도 그렇고 불가능하고.
-LED 엄청 비싸요.
-그걸 바닥 전체를 깔았어요.
-엄청난 거죠.
-그래서 소극장이니까 그게 가능했고.
그러면서 이제 아레나 형식으로 위에서 내려보는 관객들의 그 시각이 너무나 춤하고 잘 맞아떨어졌던 거죠.
그래서 이런 시도는 또 한국무용에서는 처음이다.
그리고 그런 국공립단체에서 이렇게까지 도전한다고라는 게 약간 조금 언론에 이슈가 됐었던 것 같아요.
-또 취임 후에 첫 작품이셨던 만큼 부담이 또 되셨을 것 같아요?
-네, 그래서 제가 작년에는 그렇게 규모를 작게 하면서 스피드하고 미메시스
두 가지 작품을 다른 성격으로 보여줄 욕심을 또 냈었어요.
규모는 작지만 전혀 다른 성격으로 우리 서울시무용단의 역량이 이 정도입니다라는 걸 저는 또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피드는 완전 컨템포러리하게 모던하고 창작적인 걸로 갔다면
미메시스는 우리 전통을 베이스로 완전 한국무용이 우리는 전공자다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래서 이 두 가지를 한 해에, 한 해에 다 보여줬어요.
그러니까 이건 변신을 해야지 될 수 있는 영역인데 그걸 단원들이
한 해에 이걸 상반기, 하반기 다 하면서 이 모든 공연 다 전 석, 전 매진 두 작품 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래서 이게 서울시무용단 창단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축하드립니다.
-엄청난 기록 아닙니까? 올해 어떻게 해야 될까. 작년에 너무 잘해가지고.
-첫 번째 스피드라는 공연은 저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는데
미메시스라는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 설명 좀 해 주셔야 될 것 같아요.
-미메시스는 전통인데요.
우리가 보통 전통공연은 레퍼토리들을 쫙 나열해서 하는 것이 일상적이에요.
근데 저는 이 레퍼토리를 선정함에 있어서도 미메시스라는 제목을 타이틀로 걸었던 건 모방을 통한 재현이거든요.
우리 전통이 모방 없이 그냥 뚝딱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방을 통해서 창조가 되긴 했는데 그럼 어떻게 모방할 것이냐.
우리 모방할 겁니다. 그럼 어떡해라는 방법이 있잖아요.
그걸 저는 그 레퍼토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매칭을 시켰어요.
우리의 전통의 레퍼토리가 그냥 교방무, 한량무, 소고춤, 살풀이 이런 것들이 그냥 생긴 춤인 걸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자연과 매칭되고 사람의 직업군과 매칭을 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우리 레퍼토리 안에 우리 한국의 민속춤 안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직업군이 다 들어 있는 거예요.
태평무는 왕과 왕비예요.
하물며 왕부터 저 농민까지의 모든 춤이 우리 한국 민속의 전통의 레퍼토리 안에 다 존재한다라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우리의 삶이 다 들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참 우리 삶과 직결돼 있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거기서 다 소재가 파생되어 왔다.
그래서 그것을 자연의 이치와 다 연결시킨 것이 바로 미메시스 작품인데.
요즘 분들이 보시고 너무 공감을 해 주셨어요.
전통이 지루하고 느리고 촌스럽고 좀 그럴 줄 알았는데 너무 세련되고 너무 고급지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라는 평가가 또 미메시스가 너무 좋아 가지고 지금 초청과 해외투어가 다 예정돼 있어요.
-진짜요?
-네.
-가장 한국적인 춤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네요, 진짜.
-또 이 다양한 춤을 소화하셔야 하잖아요, 단원분들이. 힘들어하셨을 것 같은데 이게 가능한 건가요?
-저 단장님 보통 아니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원들이 엄청 힘들어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연습을 그만큼 많이 해야 되니까요. 새로운 작품을 전 회, 전 석 또 매진시키려면 새로운 도전이다.
웬만해선 만족 못하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전통도 기존에 했던 순서를 그대로 춘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단원들이 사실은 전통을 다 기본으로 배운 전공자들이에요.
그냥 일반적인 전통공연 했으면 다 아는 순서라 그냥 뚝딱뚝딱하면 되는데
제가 모든 전통을 다 새롭게 만들어놓으니까 이 새로운 순서를 다 익히고
또 그걸 익숙해지게 다 훈련을 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됐어 가지고.
-내 걸로 만들어야 되는 과정이.
-내 걸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단원들이 또 끝나고 나서 그래요. 오랜만에 진짜 춤을 춘 것 같아요라는 얘기를 해요.
-너무 멋있다.
-너무 행복했대요.
-너무 멋진 말 아닙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팔다리만 움직이는 춤이 아니라 정말 내가 혼과 정신과 내 마음을 다해서
내가 찐춤을 춘 거 같아요라는 얘기를 해서 저 또 감사하더라고요.
-무용수로서는 최고의 느낌 아닙니까. 최고의 만족이죠.
-그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맞아요. 단장님이 생각하시는 전통춤의 매력은 뭘까요?
그러니까 무용수분들이 현대무용도 있고 전통 한국무용도 있고 많이 있잖아요.
근데 한국무용은, 전통춤은 또 다를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전통춤은 저는 유연함이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유연함이요?
-유연해요.
-몸이 유연 아니죠?
-몸도 물론.
-몸도 유연해야겠죠.
-몸은 그냥 우리가 움직이다 보니까 유연할 수 있지만 저는 이 사고의 유연함.
-사고의 유연함?
-다 유연하시겠죠. 다리찢기 다 되시죠?
-무용하시는 분은 유연해야죠.
-저는 이 전통춤처럼 사고가 유연한 게 없어요.
-어떻게 해석해야 되죠? 잘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있거든요.
-우리 MBTI T하고 F. MBTI 하니까 반짝하시는데 우리 아나운서님.
-MBTI 맹신자거든요.
-그러세요?
-저는 이름도 안 물어봐요. MBTI 뭐세요, 먼저 물어봐요.
-T하고 F하고 완전 다른 거 아시죠? 한국무용이 F예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잘 맞는 것 같아.
-현대무용이나 모던한 어떤 춤들은 T에 가까워요.
-저는 현대무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시구나.
-근데 왜 모던한 춤은 T에 잘 맞아요, 선생님?
-굉장히 뭐라고 그럴까요? 그들은 표현하는 게 조금 단편적일 수 있어요. 그리고 되게 쿨할 수 있어요.
그리고 굳이 그렇게 표현을 노골적으로 많이 안 해도 좋아요.
그런 것들이 약간 현대무용의 영역이라면 우리는 모든 정서를 정말 찐으로 계속 담아내려고 노력해요.
-이건 이거다, 이건 내가 지금 이렇게 표현하는 거야, 이런 느낌인 거죠?
-그렇죠, 그러데 그것이 또 강요하지 않아요.
내가 이런 느낌이야라고 했으면 이 무용수가 그런 느낌이야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이런 느낌의 나는 이런 쪽이에요라고 얘기해 주는 것이 훨씬 더 정답이에요.
-그게 더 고급지게.
-그래서 전통은 한 가지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순서는 똑같을지언정.
-그게 모이고 모여서 진짜 이 무대에서의 그런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거네요.
-그렇군요. 사실 춤이라는 걸 제가 잘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 말씀을 들어보니까
굉장히 그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한국무용 같은 경우에는 막 한이라는 단어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이런 건 현대무용에서 해석이 불가능하겠네요, 어떻게 보면.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 담고 있는 정서, 그것이 바로 우리 한국 전통춤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 관객의 입장에서 우리 춤을 잘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저는 관객분들이 이해하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받아들여요? 그냥 필.
-필.
-좋은 말씀이신 거 같아요.
-머리로 해석하고 머리로 이해하려고 공부하듯이 접근하면 저희 건 해석이 안 돼요.
그래서 마음이 가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리고 무용은 종합예술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복식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또 세트가 가지고 있는 웅장함, 조명이 주는 신비감.
이런 모든 것들을 내가 꽂히는 어떤 코드에서 내가 뭘 느꼈다면 그것이 제일 좋은 감상인 것 같아요.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이 또 다를 거 아니에요. 손끝에서 나오는 그런 것도 다를 거고.
사람마다 이 사람은 똑같은 춤을 추는데 조금 슬프게 추는 단원이 있을 거고
또 이걸 슬픔을 약간 좀 기쁘게 표현하는 게 또 있을 거 같고. 모르시겠죠?
-저는 전혀 몰라요.
근데 제가 너의 인생에서 가장 못 하는 게 뭐야라고 저한테 한번 물어보신다면
저는 춤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일 정도로.
너가 가장 못 하는 게 뭐야 그러면 난 춤은 정말 남 앞에서 한 번도 춰본 적이 없고.
-저번에 추셨잖아요?
-언제 췄죠, 제가?
-저번에 아닌가. 오늘이 날인가요?
-제가 언제 춤을 췄어요? 저도 좀 예전에 뭐. 저희 세대는 각기 이런 거. 이런 거 좀 하죠.
-선배님 진짜 잘하신다.
-손목 꺾기 뭐 이런 거. 이거 연습하고 그랬어요. 근데 저는 좀 궁금한 게 단장님한테.
이건 개인적인 질문이긴 한데 이렇게 단장님 정도 되면 딱 보면 알잖아요.
저 친구가 춤을 어떻게 춘다, 이런 걸.
근데 아까 무용을 좋아하고 춤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딱 보실 때는 어떠세요?
-저는 스포츠댄스를 췄었거든요, 어렸을 때. 근데 이게 성격에도 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살사 이런 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바차타, 살사, 자이브 그런 거 어렸을 때 했었는데. 사실 한국무용이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그래서 많이 해 보고 싶은데 사실 배울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셨대잖아요.
-요즘 취발 아시죠? 욕하는 거 아니고. 취발러가 요즘 많아요.
-취발러가 뭐예요?
-취미 발레하는, 취발하시는 분들. 근데 저는 취한도 좋을 것 같아요. 취미 한국무용.
-일단 한국무용6 은 조금 우리 어르신들이 많이 하시긴 해요.
그러니까 발레 같은 경우는 조금 우리 젊은 친구들도 이렇게 사회인들도 약간 본인의 로망처럼 좀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발레를 취미로.
근데 한국무용은 약간 조금 연세 있는 분들이 몸은 움직이고 싶은데
많이 과격한 동작이 안 되는데 그 호흡하고 선의 아름다움 이런 걸 즐기시더라고요.
-한복 입고 또 많이들 하시고 그러는데. 저는 북 치고 장구 치고가 로망이거든요. 아시죠?
-네.
-로망이 많군요. 여러 가지 로망이. 근데 단장님께서는 또 창작하시잖아요.
작품을 새로 만드시고 그런데 전통춤은 완벽한 창작은 아니죠.
근데 또 창작무용 사이에서 괴리감 이런 거 좀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요한 원칙 같은 게 있으십니까, 뭔가를 지켜내시는 데?
-지금 서울시무용단이 아마 그것을 추구하는 단체가 된다라고 생각을 해요.
저희의 정체성이 없는 창작은 저희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완전 단장님 명언 제조기세요.
-저희가 2000년도에 사실 창작이 막 붐을 일으킬 때였어요. 2000년도가 한국무용이.
그래서 신무용을 넘어서면서 창작을 막 시도하는데 우리가 창작 동작의 한계를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들이 어떤 시도를 했냐 하면 현대무용을 카피하기 시작했어요. 현대무용 테크닉을.
그랬더니 현대무용 전공하시는 분들은 쟤네 맨날 짝퉁 현대무용 하고 있어.
쟤네 되지도 않게 다리는 왜 저렇게 포인도 안 되면서 왜 저렇게 킥을 해?
이런 평가를 받으면서 저희가 약간은 그런 과도기를 거쳤는데 지금은 그런 테크닉을 가지고 와서 수세월이 지나서
이제는 우리만의 독특한 한국무용의 창작기법들이 완성된 시기에 왔어요.
그래서 그 과정, 과정이 힘들고 약간 손가락은 받았을지언정
이제는 우리만의 한국무용의 테크닉을, 한국무용의 베이스를 가지고 창작할 수 있는 동작을
이제는 우리가 구축한 시대에 왔구나라는 게 너무 뿌듯한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예술 쪽에 너무 등한시하고 살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말씀만 들어도 굉장히 뭔가 새로운 시도라는 게 그 에너지로 느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많이 발전했습니다.
-꼭 한번 진짜 공연을 봐야겠습니다.
-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국무용 하면 되게 한국적이고 단아한데 거기서 뿜어나오는 파워풀한 또 에너지가 있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고 정말 한번 한국무용을 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장구춤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많이 아시네요.
-많이 아는 거예요?
제 친구가 사실 한번 그 공연을 이렇게 했었는데 매력이 다르더라고요. 장구춤을 추고 그리고 사실 신발도 다르잖아요.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는 신발 다르고 옷도 평소에 우리가 입는 현대 옷이랑 또 다르니까.
-한복을 입고 하겠죠.
-그래서 우리가 옷깃이 이렇게 날릴 때 이게 이렇게 빛을 받아서 아름다울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이런 걸 아마 궁이나 야외에서 하면 정말 해외분들에게 사랑 많이 받겠구나.
저는 약간 춤 같은 것도 외국인들 시각에서 보게 되더라고요. 조금 이제 세계화가 되면서.
그래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관람 포인트가 아주 훌륭하시네요.
-그래요?
-무용 쪽으로도 도전 한번 해 보세요. 요즘 무용 이런 학원, 다이어트학원도 되게 많잖아요.
-다 늙어서요?
-뭐가 늙어요.
-무용을 하기에는 솔직히 늙은 나이가 맞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럼요.
-아까 취발러라고 본인이 얘기해 놓고는.
-취발러가 요즘 진짜 많은데. 저는 그런 무용도 취미가 많이 또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활동은 이어가실 생각이시잖아요.
앞으로 새로운 작품이 들어오는 거 말고도 혹시 야, 이건 내가 한번 획적인데 아무 데도 얘기 안 한 게 좀 있는데
이런 거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하는 게 혹시 단장님한테 있을까요?
-히든카드.
-히든카드로. 이런 거 하면 진짜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하고 계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조금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싶은 게 이제는 우리 K-댄스가 그냥 우리나라에서 멈추지 말고 조금 더 컬래버가 돼서
교류하는 작업들을 저는 하면 더 재밌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유럽이든 어디든 어떤 무용단과 우리의 프로 무용단과 같이 컬래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쪽 단에 가서 그쪽 무용수들에게 안무를 해주고
또 그쪽 단장님과 감독이 우리 무용단원들을 데리고 안무를 하셔서
이것이 서로 컬래버가 됐을 때 어떤 시너지가 이루어질까 되게 궁금하고 좀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이걸 한 무대에서 더블 빌로 보는 그런 기회가 있으면 이게 실현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상상만 합니다.
재밌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네요. 도시와 도시 사이의 문화끼리 만나는 것도 재밌겠네요.
-그렇죠, 우리나라 안에서 단체, 단체끼리 이것이 아니라 외국에 있는 단체하고 이제 우리 무용단원들이 한번 한 무대에서.
-라틴댄스와 K-한국무용의 만남이라든지.
-라쿠카라차와.
-라쿠카라차 라쿠카 이거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다양한 문화의 혼합이,믹싱이 이루어지는 그런 무대를 꿈꾸고 계시는군요. 기대가 됩니다.
-근데 그냥 꿈입니다. 상상만 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걸 다 현실로 이뤄셨잖아요. 이번 것도 현실로 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참 재밌을 것 같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지금 무용을 하고 있는 후배들 있을 텐데 단장님을 보면서 꿈을 키우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 같거든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있으세요?
-참 어려운 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후배들이. 녹록지 않아요.
뭔가 다 이룬 것 같은 분들만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다 이룰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되잖아요.
근데 그건 꿈이고 또 현실이 그렇지 않을 때 오는 그런 괴리감 때문에 포기하고 주저앉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끝까지 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그 끝까지 하는 거에는 정말 중요한 건 좋아해야 돼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춤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무용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걸까?
그걸 자기 자신한테 꼭 물어보라고 하고 싶어요. 내가 정말 이거 없으면 안 되나?
내가 이거 없으면 나 못 살까? 나 이거 없이도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못 살아라고 대답할 수 있는 친구는 끝까지 갈 거예요.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잘하고 못하고는 정말 우리 말하잖아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잘하고 못하고는. 그리고 그 친구가 천재냐 아니냐도 종이 한 장 차이예요.
근데 정말 끝까지 그걸 포기하지 않고 가 있는 친구가 결국은 천재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 진정성이 진짜. 진정성을 제일 언급하신 것 같아요. 진심과 진정.
-그것도 있고 언론 매체나 이런 방송이나, 이런 곳에서 나오는 인터넷이나
이런 데서 나오는 건 성공한 사람의 오늘만 보여주잖아요.
근데 이 오늘이 있기 위해서는 그 수많은 어제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있었던 건데
이 오늘만 보니 쉬워 보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굉장히 큰 노력이 뒷받침이 돼야 된다라는 말씀도 덧붙여서 해 주신 것 같고.
근데 그 힘듦에 있어서 그걸 덮고 떠나면 끝나는 거잖아요.
근데 지속해서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면서 여기를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에 승리를 한다,
성공을 한다라는 것도 덧붙여서 말씀해 주시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워렌 버핏이 전 세계적인 부자잖아요. 근데 그의 부가 시작된 건 60대 이후부터라고 해요.
-진짜요?
-네, 그동안의 노력들의 복리가 쌓여서 60대 이후에 그 부가 이루어진 거라고 하는데 근데 거기서 만약에 덮고 떠났어 봐요.
그럼 이 사람은 부자가 될 수가 없었던 결과를 마주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끝까지 노력하고 이어가는 끈기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또 말씀해 주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 질문드리켔습니다.
단장님에게 있어서 춤이란 무엇입니까?
-저에게 춤은 질문입니다.
-질문. 굉장히 예술적인 답변이네요.
-오늘 완전 제 스타일.
-엄청 좋아하실 것 같아요, 진짜.
-코드가 되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오늘 의상도 컬러 되게. 약속도 안 했는데 이렇게 코디 같이.
-그럼 두 분이 춤 한 번 추세요. 질문이라는 뜻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됩니까?
-저는 제가 대학까지, 5살부터 대학까지 공부를 쭉 하면서 선생님들이 주신 춤
그리고 이미 순서가 되어 있는 춤을 우리는 답습하잖아요.
답습하고 배우면서 저는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신 순서가 답이고 주는 방법이 답이었고 그 답을 잘 실행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간은 배우는 기간이잖아요. 배우는 기간은 그게 맞습니다.
근데 국립무용단 들어오면서부터 제가 생각이 바뀐 거는 춤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더라고요.
계속 이렇게 하는 게 맞아? 너 팔다리 왜 움직이니?
이것도 질문이에요. 너 팔 그거 왜 들었을까? 이것도 질문인 거고.
여기서 우리가 왜 뛰지? 이것도 질문이에요.
그냥그냥 순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는 과정, 과정이 다 질문에
내가 대답할 수 있고 내가 그 대답이 완벽해야 관객은 조금 이해해요.
근데 내 질문에 내가 답도 없이 움직이고 있을 때 관객은 감동하지 않는 것 같아요.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내가 수없이 나에게 질문하는 거,
그렇게 다져진 춤이 결국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영원히 제 춤은 답이 없는 질문일 것 같아요.
-내면에서 계속 질문하고 그걸 밖으로 표현하고.
-너무 멋진 말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까지 내가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춤도 같은 의미의 말씀이신 것 같아요.
나한테 과연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다른 사람은 나한테 무슨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
이가연 아나운서는 나에게 무슨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
계속해서 질문해 보는 하루가 돼 보는 것이 정말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바로 이 춤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좀 들기도 하고.
-그리고 사실 설명이 없어도 감동이 전해지는 게 춤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습니다. 우리 관객을 넘어서 이제는 세계 관객의 마음까지 움직이고 있는 우리의 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계신 윤혜정 단장님의 앞으로 펼쳐질 무대도
저희 탑클래스에서 계속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탑클래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이가연입니다.
-이가연 아나운서 반갑습니다.
지난 3월에 아리랑이라는 앨범으로 컴백한 BTS가 엄청 화제가 됐었잖아요.
그 아리랑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를 담은 앨범인데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게 진짜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요즘 뭐 K-컬처의 위력이 엄청난 거 같아요.
-그러니까요.
K-팝, K-컬처의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면서 이제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K-팝, K-푸드. 여성분들의 K-뷰티.
-맞아요, K-뷰티 엄청나죠.
-한국화장품 이런 거 엄청나잖아요. 거기에 더해서 이제 K-무용까지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중심에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 서 있다고 합니다.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 계신 분입니다. 서울시무용단의 윤혜정 단장님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장님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단장님.
-먼저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좀 부탁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일단 탑클래스 이런 프로그램에 초대받게 돼서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서울시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 윤혜정입니다.
-반갑습니다. 무용이라고 하면 사실 굉장히 저는 접근이 좀 어려워요. 어, 무용?
생각도 못해 봤던 직업의 장르였어 가지고. 무용과 인연이 오래되셨겠어요?
또 무용학원의 1호 수강생이었다, 이런 이야기도 저희가 들었는데요.
-네, 저는 강원도 속초가 고향입니다.
-정말요?
-속초 어디예요?
-속초 중앙동 사람인데요.
-중앙동에 계시는군요.
-아시나요, 중앙동?
-저는 조양동 쪽에 있습니다.
-그러세요?
-네, 왔다 갔다 합니다.
-저번 주도 속초 다녀오셨다고?
-갔다 왔어요.
-너무 반갑네요.
-그러네요.
-근데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이렇게 무용을 하셨다는 게 또 특히 취미가 아니고 전공이셨잖아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제가 5살 되던 해에 저희 동네에 무용학원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께서 무용학원이 오픈하자마자 저를 그냥 손잡고 가서 등록을 시켜버리셨어요.
그래서 5살 때 처음 무용을 접하게 된 것 같아요.
-무용학원이 속초에 있었던 거예요?
-네, 처음 생겼죠.
-당시에 비행기 타고 학원 다니셨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어떤 일이에요?
-입시 때요.
-입시 때?
-속초에서 속초여고까지 다녔는데 사실은 속초 무용학원 선생님께서 속초에서 대학 서울로 가기에는
그냥 배워서 조금 곤란하니까 서울로 레슨을 다니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저희 아버지한테 조금 조언을 해 주셨는데
저희 아버지는 그때 예중, 예고 저희는 이런 정보도 하나도 없을 때예요.
-그때는 그랬죠.
-그때는 저희가 듣는 예고는 안양예고밖에 없었던 시절이에요. 그래서 예고?
근데 저희 아버지 또 속초 분, 옛날분 좀 고지식하시잖아요.
그리고 제가 첫딸이라 고등학생 첫 아이를 서울로 보내서 혼자 기숙생활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요.
그래서 안 된다. 예고는 절대 안 된다.
다른 건 다 지원해 줘도 예고 가는 것만큼 내가 안 된다라고 딱 강경하게 반대를 하셔 가지고 이제 제가 딜을 했죠.
그럼 예고 안 되는 대신 서울로 레슨 받으러 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건 들어주셔서 토요일까지 그때는 학교 수업이었거든요. 요즘은 토요일날 수업 안 하잖아요, 고등학생들.
근데 저희는 그때 토요일까지 12시 수업을 끝나면 아버지가 저 연습복 가방을 가지고
학교 앞에 오시고 저는 연습복 가방과 무용 가방을 바꿔 메고 속초공항으로 갔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시절 88년, 89년 그때는 속초공항이 있던 시절이에요.
그래서 마침 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서울까지 학원으로?
-네, 학원으로. 근데 그것도 사실은 처음부터 비행기를 해 주시려는 거는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같이 저랑 서울로 레슨을 한 번 가기 위해서 대관령을 뚫고 5시간, 6시간을 꼬불꼬불 막 하면서 서울 도착했죠.
근데 어릴 때 제가 또 멀미가 심해가지고 버스만 타면 계속 이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완전 지친 상태에서 서울에 도착해서 레슨 받고 또 다시 버스를 타고 5, 6시간 이제 집으로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그 모습을 한두 번 겪더니 너는 몸이 재산이고
무용이라는 거는 몸이 무기인데 그렇게 지쳐서 다녀서 연습이 되겠냐, 실력을 쌓겠냐.
그래서 아버지가 결정 내리신 거예요. 비행기 타고 다녀라.
-일단 기본적으로 열정이 엄청나시고 그때 당시에 서울과 속초를 왔다 갔다 하려면 진짜 말씀하셨지만 5시간, 6시간은 걸려야 되고.
그리고 어린 나이에 그렇게 서울을 왔다 갔다 한다는 것도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는 시기였고.
또 주말에 가셨다고 했는데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었어요.
-맞아요.
-그래서 오전 수업만 끝나고 다녀오신 거라.
-그럼 언제 내려오신 거예요? 일요일에?
-하고 일요일 저녁에 내려와요. 1박 2일 배우고 내려왔어요.
-특히 아버님의 도움이 진짜 엄청나셨네요.
-도움도 있겠지만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그때.
-행복하셨군요.
-그래서 토요일만 되면 막 흥분돼서.
-새로운 걸 또 배우고.
-속초공항 도착하면 벌써 대한항공 직원분들이 잘 갔다 와. 막 이렇게. 제 얼굴을 너무 잘 아는 거죠.
고등학생이 쟤 무용하겠다고 저렇게 주말마다 서울 가.
그게 이제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서도 너무 가족같이 저를 막 잘 다녀오라고 또 응원해 주시고 그랬던 그런 고3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노력도 있고 본인의 노력도.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고.
그 모든 게 복합이 돼서 지금의 이 자리에 계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학교 다니실 때도 거의 뭐 장학금을 빼놓지 않고 다 받으셨다는 얘기도 있어요.
-제가 아버지 말씀을 되게 잘 듣는 착한 딸이었나 봐요.
-겸손하시기까지.
-저희 아버지는 공부 안 하면 무용학원 가지 마라, 그게 조건이었었어요. 너 무용하고 싶으면 성적 떨어지면 안 돼.
-무용을 정말 사랑하셨군요.
-아버지는 공부가 굉장히 중요하신 분이셨고 그렇다고 무용한다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하는 거를 용납을 안 하셨던 거죠.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도 조금 그냥 인문계 다니면서 학업을 좀 잡고 있다 보니까 대학을 가니까
예중, 예고 나온 친구들 숲에 제가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촌뜨기가 부끄러웠어요.
그들은 이미 다 세련되게 예중, 예고 친구들은 다 가꿔진 상태에서
대학을 딱 왔는데 저는 속초에서 약간 시골물이 뚝뚝 흐르는 상태에서 갔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있던 차에 첫 시험을 딱 보니까,
중간고사를 보니까 제가 1등을 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아, 이렇게 하면 1등 하는구나 그 경험치가 그걸 안 놓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그냥 하던 대로 뭘 더 잘하려고 보다도 그냥 내가 하던 대로 계속하자 그랬더니
4년간 모든 학기를 다 전액 장학으로 1등을 하게 되는 그게 그냥 이어졌던 거 같아요.
-노력도 있으셨지만 재능도 있으셨죠, 그전부터?
-춤에 대해서요? 그러게요,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은 조금 남다르다는 얘기를 좀 많이 해 주셨어요.
그래서 너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하는구나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분도 계셨었고.
스승님들의 복도 제가 많았던 것 같고 또 저를 가르쳐주신 분들이 그런 평을 또 많이 해 주셨고.
고맙게 감사하게 잘 배웠던 것 같아요.
-저는 평생의 소원이에요, 그런 말 들어보는 게.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방송도 하나로 하시면 열 가지를 진행하시잖아요. 잘하고 계신데요.
-여기까지 딴소리하고.
-근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까 사실 예전에는 몸 쓰는 일을 하면 공부 안 해도 된다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 있었는데 그걸 뛰어넘으셔서 공부까지 하셔서 대학교 생활 동안
장학금을 받으셨다는 건 엄청난 노력이 있으셨다라는 얘기잖아요.
-대학 때까지는 교수가 조금 꿈이었던 것 같아요.
-학점도 중요하셨군요.
-그래서 아버지도 교수가 되는.
저는 이런 무용계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문외한 상태에서 춤을 췄던 속초 아이였기 때문에 대학을 가면 그 대학이 끝이었고
대학에 있는 교수님이 끝이었고 무용세계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약간 적토마처럼. 말의 해지만.
그렇게 살았던 게 제 삶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그때도 교수 되는 게 오로지 그냥 유일한 꿈.
그래서 교수 되기 위해서 공부 열심히 하고 춤 열심히 추고 교수님과 열심히 작업하는 거에 같이 따라다니고
이런 것이 저의 전부였던 것이 아닌가 그랬는데 이렇게 단체로 오리라고는 제가 또 생각지도 못한 길이 열린 것 같아요.
-그렇죠, 누구나 목표로 하는 곳에 점을 찍어놓고 있지만 한 번에 가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많은 점들이 생기잖아요.
이렇게 그 길을 가면서.
-또 대학을 졸업하신 뒤에는 국립무용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셨다고 들었는데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우리 시청자분들께 한번. 감이 잘 안 오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맞아요. 국립무용단이라는 무용단 이름 자체도 흔치 않게 들리실 건데요.
-나라에서 운영하는 거잖아요.
-국가대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국가대표잖아요, 맞아요.
-여러분 축구 국가대표 있잖아요. 저희 무용에서는 국가대표가 국립무용단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의 주역이라고 그러면 우리가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 리스트들 있잖아요.
그런 금메달 리스트들감이 주역 무용수가 아닌가 이렇게 비교를 하면 조금 감이 오실까요?
-국가대표이고 일단 인원도 많이 안 뽑잖아요. 몇 명 정도 국립무용단에 있는 겁니까?
-지금은 이제 한 40-50명 정도가 국립무용단의 정예단원으로 있는데요. 매년 TO가 있어야 뽑힙니다.
-근데 TO도 없잖아요?
-잘 없습니다. 나가주시거나 비는 자리가 있어야 그 인원만큼 채워지는 거라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거죠.
-근데 단장님 이전까지는 입단 10년 차가 되지 않으면 주역 무용수가 될 수 없다라는 룰이 있었대요.
-진짜요?
-근데 그 고정관념을 윤혜정 단장님이 깨셨다고 합니다. 맞습니까?
-그것도 참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던 것 같아요. 처음 시도된 건데요.
저희가 들어가면 거의 불문율처럼 한 10년 정도는 무용단 생활해야 짬밥이라고 하잖아요.
그 정도 돼야 주역 정도 하는 거야. 이게 보이지 않는 룰이었어요.
그래서 입단하고 뭐 10년은 이러고 살아야 되나 보다 했는데 제가 3년 차 되던 해에
정말 이것을 부수는 오디션을 주시는 단장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국수 단장님이라고 그분께서 제가 3년 차 되던 해에
신단원부터 모든 단원들이 다 주역에 도전하라라는 오디션을 열어주셨어요.
-굉장히 파격적이네요.
-파격적이었어요. 굉장히 파격적이어서.
-그게 몇 년도입니까?
-제가 94년도에 입단했는데 96년도.
-그러니까요. 그때 당시에는 이건 선배들의 항의도 엄청났을 것 같은데요.
-근데 그걸 강단 있게 추진해 주셨어요.
그래서 해 볼까 하고 도전을 했는데 어떻게 또 여자 주인공이 돼서 기회를 잡게 된 거 같아요.
-엄청난 시기와 질투와 뒤에서의 험담과.
-어떻게 잘 아세요?
-저도 경험해 봤던 일들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저희도 개그맨 때 신인이 그 코너의 주인공이 되면 난리 났었거든요.
1년 차, 2년 차가 자기 코너를 한다라는 게 쉽지 않았던 때라 근데 그걸 했다면 엄청나게 시기, 질투 많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지나고 나면 이 또한 나에게 도움되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국립무용단의 주역 무용수로 또 개인 무용단에서의 창작을 거쳐서 대학에서 강의도 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 많은 경험 가운데 지금의 단장님을 만든 선배들의 뭐가, 뒤에서의 그런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무용단에 들어가서 또 뭔가를 창작하고 만들어내고 이렇게 많은 경험들이 있으실 거예요.
가장 핵심적으로 단장님의 지금의 자리를 만든 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국립무용단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립무용단의 경험. 왜 그렇죠?
-제가 지금 있는 곳이 프로단체이기 때문에 어떤 프로단체의 생리를 안다거나
프로단체를 경험했다라는 거는 엄청난 그 노하우가 경험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 있는 프로단체의 가장 적격인 것은 제가 프로단체 경험이 있어서
무용수로서의 활동도 했고 또 그때 프로 무용단의 단장님들이 해 왔던 그런 업무들,
그런 것들을 눈여겨봐왔던 그런 것이 지금 많이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처음에 그때 국립무용단 했을 때 많이 힘드셨을 거잖아요.
근데 그걸 이겨내신 거잖아요. 많은 분들이 그러잖아요.
처음에 뭔가를 의도하고 그 일을 진행해 나갈 때 처음부터 잘 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처음부터 잘 되셨습니까? 저는 그게 좀 궁금해요.
-그냥 별로 계산을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일단 그냥 하셨군요.
-힘들다, 괴롭다 이런 어떤 부정적인 단어보다는 그냥 일단 저한테 주어진 게
너무 감사하고 너무 지금 하는 게 행복하고 그렇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생각 별로 안 하고 단순하게. 다른 생각은 별로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일단 하자. 일단 해 보고 나서 결정해 보자, 그런 마인드로 접근을 하셨던 거네요.
-그리고 춤추는 순간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부수적인 그런 괴로움과 힘듦이
내가 지금 추는 순간에 행복함으로 다 씻기고 잊혀지는 것 같았어요.
-춤추는 것 자체가 너무...
-너무 멋있으시다.
-너무 좋았죠.
-타고난 무용수이시네요. 저는 코미디 하는 게 되게 힘들었거든요.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힘들어서 처음에 하자마자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을 했는데
벽에 부딪히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단장님은 어떠셨는지 좀 궁금했어요.
-근데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수없는 헝그리 시간들이 있죠. 국립무용단 있을 때는 그래도 안락했어요.
모든 것들이 다 갖춰지고 또 국립이라는 국립무용단 자체로 인정해 주는 타이틀들이나
주변의 여건들이 저를 굉장히 안락하게 하잖아요. 금전적인 것도 그렇고.
-중요하죠.
-명예도 그렇고.
-그럼요.
그런데 제가 국립무용단을 딱 6년 차 하고 사표를 쓰고 나와서 개인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한 10년을,
오히려 10년을 밖에서 정말 제야에서 힘들게 전전긍긍 살았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때가 전국구로 다니면서 대학 강의를 하고 보따리 장수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운전을 거의 그냥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운전하고 다닐 정도로
그렇게 강의하고 다니고 작업하고 다니고 그런 세월이 한 10년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10년 동안은 내가 교수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것보다 일단 매일매일을 도장 깨기 하듯이 오늘도 잘 살았어. 일주일 잘 살았어.
한 달 잘 살았어. 1년 잘 살았구나. 그냥 그렇게 하면서 10년을 살았던 것 같아요.
-10년이 짧지 않은 시간인데.
-그게 포기가 안 되고 왔다라는 게 가장 큰 무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따뜻한 온실에 계셨다가 야생으로 나오셨군요.
-맞아요.
-현실에 부딪히는 모습도 그때 많이 느끼셨을 거고 그런 생각이 좀 들기도 하네요.
-또 현재는 서울시무용단에 지금 단장을 맡고 계시지만
또 많은 분들은 강원도립무용단에서의 단장님을 기억하고 계실 것 같아요, 그렇죠?
-또 강원도립에 올 수 있었던 게 2016년에 제가 임용이 됐는데요.
그때 임용될 때만 해도 저는 일단 강원도립에 온다는 것 자체가 트라이한다는 것 자체가 저는 그냥 고향을 오는 기분이었어요.
제가 정말 서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또 다양한 역할을 해 보고
이제는 그런 역할들을 다 축적해서 우리 고향을 위해서 내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가 사람들이 사실 서울에서 활동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떤 쉬운 판단은 아니잖아요. 계속 서울에 존재하기를 원하고.
-내가 뒤처지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기도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죠.
-내가 다시 돌아가는 게 맞나라는 생각도 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저는 왠지 그때만 해도 교수가 꿈이었지만 교수가 지금 당장 되지 않을 바에는
일단 고향 가서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고향을 위해서 한번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런 마음에 도전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침 오니까 정말 따뜻해요.
-진짜 고향으로 왔군요.
-저는 이제 그거 잘 몰랐는데 정말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 더 느끼게 되나 봐요.
고향을 생각하고 애향심이 생긴다는 게 나이가 들수록 더 짙어지는 것 같은데.
제가 그때 왔을 때도 뭔가 강원도립의 어떤 다른 목적보다도
내가 고향을 와서 우리 고향의 무용단을 누구도 부럽지 않은 무용단으로 한번 확 끌어올려 버리고 싶다, 그런 욕심이 불끈 솟더라고요.
그래서 오자마자 제가 국립무용단 때 생활했던 모든 생각을 다시 리마인드 다 끌어올리는 거예요.
-전수해 주고 싶어가지고.
-그래서 강원도립을 완전 국립무용단처럼 만들고 싶어. 그런 생각으로 8년을 생활했던 것 같아요.
-약간 그 감정이 달랐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속초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학원을, 그러니까 무용학원을 다녔을 때.
서울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녔을 때
그리고 나라에서 하는 국가대표 같은 무용단에 들어갔을 때를 거쳐서 이제 고향으로 온 거잖아요.
그럼 단장의 마음인 거잖아요,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단장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해요.
이게 어떻게 보면 야구로 따지면 야구 선수로 뛰다가 야구 감독이 됐을 때와 같은 느낌인가?
막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왔을 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애향심이 더 컸었어요.
그래서 단장이라는 것보다 저는 이거 단장이라는 완장 떼고 생활했어요.
오히려 나 댄서다. 나 다시 댄서로 돌아간 느낌으로.
-나 무용수다.
-내가 아직 국립무용단원인 마인드로 단원들하고 같이 뛰었어요. 처음에는 강원도립 와서
-그럼 단원들이 싫어하지 않아요?
-연습은 같이 하고 무대는 안 올라가요, 제가.
무대는 단원들에게 다 기회를 주고 저는 절대 무대 안 올라가고 대신 연습실에서
같이 무용수가 된 기분으로 같이 땀 흘리고 같이 움직이고 같이 해 주니까 그 에너지가 단원들이
아, 프로 무용단은 이렇게 움직여야 되는 거야? 프로 무용수면 저 정도 가야 되는 거야?
이 정도 에너지가 있어야 되는 거야를 연습실에서 간접적으로 저를 통해서 좀 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너무 좋은데요.
-그러니까 단순히 너 가서 연습하고 이가연 아나운서, 가서 저기 대본 좀 보고 와, 말 좀 하고. 그런데 안 해 나는.
같이 대본 보면서 이건 이렇게 해야 되고 저건 저렇게 하고.
-그럼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죠.
-그렇죠, 그런 거죠. 그런데 말로만 하는 사람보다 같이 옆에서 움직여주는 단장님이라면
단원들이 굉장히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또 재직하셨을 당시에 정말 좋은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들었거든요.
강원도를 넘어서 전국에서 주목받는 또 단체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애정이 강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 백호 수호랑이 있잖아요.
그 백호 수호랑이를 모티브로 해서 강호라는 작품, 강원도 호랑이라는 강호라는 작품을
제가 2018년도에 만들었는데 그것이 이제 그다음에 청소년 동계올림픽 2024
또 청소년 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해서 저희가 그 강호라는 작품을 가지고 투어를 해야 하는 목적이 생겼었어요.
근데 저는 투어를 하더라도 서울 중심에 가서 하자. 꿈에 그리는 국립극장에 서자.
제가 또 그 목표를 가지고 국립극장을 계속 노크를 한 거죠. 그래서 결국.
-열렸습니까?
-열렸습니다.
그래서 저희 강원도립 무용단원들과 같이 국립극장을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대관을 해서
전석을 매진시키면서 강원도립무용단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보세요, 너무나 자랑스럽게.
그렇게 해서 보시고 다른 무용단원들도 그렇고 다른 직업단체들 또 서울에 있는
많은 관객들도 보시더니 강원도립무용단의 실력을 보고 깜짝 놀라하셨어요.
-얼마 전에 왕과 사는 남자가 이제 단종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거잖아요.
근데 알고 보니까 단종 이야기를 장항준 감독님보다 먼저 무대 위에.
이렇게 비교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무대 위에 세우셨다고. 그때 이야기도 좀 한번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게 또 코로나 시절하고 또 맞아떨어지는 건데요.
-코로나 시절에 또.
-우리가 코로나 때 극장 공연을 거의 못 했잖아요. 그리고 사람 접촉이 안 되잖아요.
-행사 무슨 공연, 콘서트 이런 거 다.
-다 멈춤.
-올스톱.
-그 상황에서 올스톱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렇다고 저희가 놉니까? 그럴 수 없어서 저는 그때.
-공연하셨어요? 어떻게 무대를?
-온라인으로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공연하셨어요?
-네, 저희는 영상을 찍었어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 했냐면 그 코로나 시절 2년 동안을 저는 강원도 전역을 돌아다녔어요. 오히려.
그러니까 연습실에서 연습할 수도 없고 마스크 끼고 단원들이 힘들 때 강원도 18개 시군을 다니면서
그 지역의 문화가 뭔지 그 지역의 역사가 뭔지 그 지역의 또 명소가 뭔지 그걸 하나 하나씩 찾았어요.
그래서 각 지역의 춤을 만들어야 되겠다.
그래서 이걸 우리가 직접 공연장 가서는 못 보더라도 온라인상으로 강원 춤 여행을 만들자.
그때 여행도 금지된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강원도에 이런 명소가 있고 이런 문화가 있고 이런 역사가 있고
이런 인물이 존재해라는 걸 온라인으로 다 만들어서 강원 춤 여행투어를 온라인으로 만든 게 코로나 시절이었어요.
그때 제가 영월에 갔을 때 단종을 보고 청령포도 가고 그 유배지도 보고
단종의 그 묘도 보면서 단종의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저는 지금 이제 왕과 사는 남자는 엄흥도를 포인트로 그 시각을,
그쪽 시각으로 영화를 만드셨지만 저는 사육신의 시각으로 만들었어요. 단종을 향한 충절의 길을 걸었던 사육신.
왜 그러냐면 저희 무용단에는 단종같이 어린 단원이 없어요. 10대 누구 무용수를 구할 수가 없죠.
그를 객원으로 주인공을 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면 단종이 아닌 단종을 상기시킬 수 있는 어른들의 모습들은 어떤 사람들이 존재했을까.
그렇다면 우리 무용수 중에 남자 무용수들을 사육신 역할을 시키자.
그래서 단종의 어전을 무대에 딱 이렇게 세트로 세우고 그 앞에서 단종을 향해서 예를 지키고
자기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했던 사육신, 그 춤을 만들었었던 거죠.
-그게 원래 춤이 있었던 게 아니라 창작을 하신 거죠?
-네.
-새롭게 만드신 거잖아요?
-그 스토리와 함께. 근데 작품에 지역색이랑 지역 이야기를 많이 담아내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 그런 이유가 있으세요, 단장님?
-저는 강원도 도립무용단이 존재하는 이유가 강원도민들을 위해서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술가들이 자기 작업하고 싶어 하면 그냥 나가서 민간으로 프리랜서하면 돼요.
공공단체에 왔으면 저는 공익에 우선해야 된다라는 게 마음이 크기 때문에
강원도민들을 위해서 우리 무용을 통해서 어떤 프라이드를 우리가 전달해 드릴 수 있을까.
문화적 향유? 문화적 향유는 예술을 느끼고 안 느끼고는 개인의 자유예요.
다만 그 작품이 존재해서 강원도가 이렇게 문화적으로 수준 있는 곳이구나.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이렇게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곳이구나.
그걸 우리가 남겨주는 게 우리 예술가들의, 강원도립무용단의 몫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서
그래서 그런 쪽으로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이런 목소리들을 또 서울에서 들으셨나 봐요. 이렇게 새롭게 도전하시고 만들어내시고.
남들은 손 놓고 있었을 시기에도 우리는 뭔가 해야 된다라는 의미에서 또 새로운 걸 만들어내시고 또 단원들을 독려하시고.
이게 서울에까지 귀에 들어간 거죠. 스카우트 제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발탁이 되셨다라고, 뽑히신 거죠?
-네.
-서울시무용단의 명성이야 엄청나게 자자하죠.
많은 분들이 서울시무용단에 도전도 하시고 많이 가고 싶어 하기도 하고 그런 것 자체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이고.
역시 가셔서도 좋은 작품들로 주목을 많이 받으셨다라고 해요.
특히 지난해 초연 당시에 전 석, 전 회차 매진을 이어갔던 스피드라는 공연이 있잖아요.
어떤 작품인지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서울시무용단 와서 첫 작품을 할 때 서울시무용단이 그동안 대형 작품을 굉장히 많이 만들었어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스케일 있는 대형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거기의 단점을 한번 제가 찾아보니까 이게 유통이 잘 안 돼요.
너무 스케일이 크니까 이 작품을 어디 가서 담아낼 장소가 세종문화회관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방투어를 가고 그 작품 너무 좋아. 근데 우리 지방 와서 해 줄 수 있을까?
그 작품 너무 좋아. 우리 해외에서 해 줄 수 있을까? 이렇게 접촉이 오면 못 가요가 결론이었어요.
이거 이래서 안 됩니다, 저래서 안 되고. 금전적인 것도 그렇고 사이즈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해서.
그렇다면 이렇게 훌륭한 서울시무용단과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컴팩트하게 만들자.
경량 있게 만들어서.
-라이트한 버전이군요?
-네, 그런 작품으로 한번 도전을 해서 제가 있는 동안 그런 작품을 조금 남겨서
다양성을 좀 있게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으로 스피드를 소극장에서 시도를 했는데
엄청나게 의외로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어요.
소극장 바닥을 LED로 다 깔았었거든요. 그러니까 대극장에서는 LED 바닥 다 깔 수가, 예산적으로도 그렇고 불가능하고.
-LED 엄청 비싸요.
-그걸 바닥 전체를 깔았어요.
-엄청난 거죠.
-그래서 소극장이니까 그게 가능했고.
그러면서 이제 아레나 형식으로 위에서 내려보는 관객들의 그 시각이 너무나 춤하고 잘 맞아떨어졌던 거죠.
그래서 이런 시도는 또 한국무용에서는 처음이다.
그리고 그런 국공립단체에서 이렇게까지 도전한다고라는 게 약간 조금 언론에 이슈가 됐었던 것 같아요.
-또 취임 후에 첫 작품이셨던 만큼 부담이 또 되셨을 것 같아요?
-네, 그래서 제가 작년에는 그렇게 규모를 작게 하면서 스피드하고 미메시스
두 가지 작품을 다른 성격으로 보여줄 욕심을 또 냈었어요.
규모는 작지만 전혀 다른 성격으로 우리 서울시무용단의 역량이 이 정도입니다라는 걸 저는 또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피드는 완전 컨템포러리하게 모던하고 창작적인 걸로 갔다면
미메시스는 우리 전통을 베이스로 완전 한국무용이 우리는 전공자다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래서 이 두 가지를 한 해에, 한 해에 다 보여줬어요.
그러니까 이건 변신을 해야지 될 수 있는 영역인데 그걸 단원들이
한 해에 이걸 상반기, 하반기 다 하면서 이 모든 공연 다 전 석, 전 매진 두 작품 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래서 이게 서울시무용단 창단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축하드립니다.
-엄청난 기록 아닙니까? 올해 어떻게 해야 될까. 작년에 너무 잘해가지고.
-첫 번째 스피드라는 공연은 저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는데
미메시스라는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 설명 좀 해 주셔야 될 것 같아요.
-미메시스는 전통인데요.
우리가 보통 전통공연은 레퍼토리들을 쫙 나열해서 하는 것이 일상적이에요.
근데 저는 이 레퍼토리를 선정함에 있어서도 미메시스라는 제목을 타이틀로 걸었던 건 모방을 통한 재현이거든요.
우리 전통이 모방 없이 그냥 뚝딱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방을 통해서 창조가 되긴 했는데 그럼 어떻게 모방할 것이냐.
우리 모방할 겁니다. 그럼 어떡해라는 방법이 있잖아요.
그걸 저는 그 레퍼토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매칭을 시켰어요.
우리의 전통의 레퍼토리가 그냥 교방무, 한량무, 소고춤, 살풀이 이런 것들이 그냥 생긴 춤인 걸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자연과 매칭되고 사람의 직업군과 매칭을 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우리 레퍼토리 안에 우리 한국의 민속춤 안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직업군이 다 들어 있는 거예요.
태평무는 왕과 왕비예요.
하물며 왕부터 저 농민까지의 모든 춤이 우리 한국 민속의 전통의 레퍼토리 안에 다 존재한다라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우리의 삶이 다 들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참 우리 삶과 직결돼 있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거기서 다 소재가 파생되어 왔다.
그래서 그것을 자연의 이치와 다 연결시킨 것이 바로 미메시스 작품인데.
요즘 분들이 보시고 너무 공감을 해 주셨어요.
전통이 지루하고 느리고 촌스럽고 좀 그럴 줄 알았는데 너무 세련되고 너무 고급지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라는 평가가 또 미메시스가 너무 좋아 가지고 지금 초청과 해외투어가 다 예정돼 있어요.
-진짜요?
-네.
-가장 한국적인 춤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네요, 진짜.
-또 이 다양한 춤을 소화하셔야 하잖아요, 단원분들이. 힘들어하셨을 것 같은데 이게 가능한 건가요?
-저 단장님 보통 아니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원들이 엄청 힘들어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연습을 그만큼 많이 해야 되니까요. 새로운 작품을 전 회, 전 석 또 매진시키려면 새로운 도전이다.
웬만해선 만족 못하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전통도 기존에 했던 순서를 그대로 춘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단원들이 사실은 전통을 다 기본으로 배운 전공자들이에요.
그냥 일반적인 전통공연 했으면 다 아는 순서라 그냥 뚝딱뚝딱하면 되는데
제가 모든 전통을 다 새롭게 만들어놓으니까 이 새로운 순서를 다 익히고
또 그걸 익숙해지게 다 훈련을 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됐어 가지고.
-내 걸로 만들어야 되는 과정이.
-내 걸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단원들이 또 끝나고 나서 그래요. 오랜만에 진짜 춤을 춘 것 같아요라는 얘기를 해요.
-너무 멋있다.
-너무 행복했대요.
-너무 멋진 말 아닙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팔다리만 움직이는 춤이 아니라 정말 내가 혼과 정신과 내 마음을 다해서
내가 찐춤을 춘 거 같아요라는 얘기를 해서 저 또 감사하더라고요.
-무용수로서는 최고의 느낌 아닙니까. 최고의 만족이죠.
-그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맞아요. 단장님이 생각하시는 전통춤의 매력은 뭘까요?
그러니까 무용수분들이 현대무용도 있고 전통 한국무용도 있고 많이 있잖아요.
근데 한국무용은, 전통춤은 또 다를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전통춤은 저는 유연함이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유연함이요?
-유연해요.
-몸이 유연 아니죠?
-몸도 물론.
-몸도 유연해야겠죠.
-몸은 그냥 우리가 움직이다 보니까 유연할 수 있지만 저는 이 사고의 유연함.
-사고의 유연함?
-다 유연하시겠죠. 다리찢기 다 되시죠?
-무용하시는 분은 유연해야죠.
-저는 이 전통춤처럼 사고가 유연한 게 없어요.
-어떻게 해석해야 되죠? 잘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있거든요.
-우리 MBTI T하고 F. MBTI 하니까 반짝하시는데 우리 아나운서님.
-MBTI 맹신자거든요.
-그러세요?
-저는 이름도 안 물어봐요. MBTI 뭐세요, 먼저 물어봐요.
-T하고 F하고 완전 다른 거 아시죠? 한국무용이 F예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잘 맞는 것 같아.
-현대무용이나 모던한 어떤 춤들은 T에 가까워요.
-저는 현대무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시구나.
-근데 왜 모던한 춤은 T에 잘 맞아요, 선생님?
-굉장히 뭐라고 그럴까요? 그들은 표현하는 게 조금 단편적일 수 있어요. 그리고 되게 쿨할 수 있어요.
그리고 굳이 그렇게 표현을 노골적으로 많이 안 해도 좋아요.
그런 것들이 약간 현대무용의 영역이라면 우리는 모든 정서를 정말 찐으로 계속 담아내려고 노력해요.
-이건 이거다, 이건 내가 지금 이렇게 표현하는 거야, 이런 느낌인 거죠?
-그렇죠, 그러데 그것이 또 강요하지 않아요.
내가 이런 느낌이야라고 했으면 이 무용수가 그런 느낌이야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이런 느낌의 나는 이런 쪽이에요라고 얘기해 주는 것이 훨씬 더 정답이에요.
-그게 더 고급지게.
-그래서 전통은 한 가지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순서는 똑같을지언정.
-그게 모이고 모여서 진짜 이 무대에서의 그런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거네요.
-그렇군요. 사실 춤이라는 걸 제가 잘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 말씀을 들어보니까
굉장히 그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한국무용 같은 경우에는 막 한이라는 단어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이런 건 현대무용에서 해석이 불가능하겠네요, 어떻게 보면.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 담고 있는 정서, 그것이 바로 우리 한국 전통춤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 관객의 입장에서 우리 춤을 잘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저는 관객분들이 이해하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받아들여요? 그냥 필.
-필.
-좋은 말씀이신 거 같아요.
-머리로 해석하고 머리로 이해하려고 공부하듯이 접근하면 저희 건 해석이 안 돼요.
그래서 마음이 가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리고 무용은 종합예술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복식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또 세트가 가지고 있는 웅장함, 조명이 주는 신비감.
이런 모든 것들을 내가 꽂히는 어떤 코드에서 내가 뭘 느꼈다면 그것이 제일 좋은 감상인 것 같아요.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이 또 다를 거 아니에요. 손끝에서 나오는 그런 것도 다를 거고.
사람마다 이 사람은 똑같은 춤을 추는데 조금 슬프게 추는 단원이 있을 거고
또 이걸 슬픔을 약간 좀 기쁘게 표현하는 게 또 있을 거 같고. 모르시겠죠?
-저는 전혀 몰라요.
근데 제가 너의 인생에서 가장 못 하는 게 뭐야라고 저한테 한번 물어보신다면
저는 춤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일 정도로.
너가 가장 못 하는 게 뭐야 그러면 난 춤은 정말 남 앞에서 한 번도 춰본 적이 없고.
-저번에 추셨잖아요?
-언제 췄죠, 제가?
-저번에 아닌가. 오늘이 날인가요?
-제가 언제 춤을 췄어요? 저도 좀 예전에 뭐. 저희 세대는 각기 이런 거. 이런 거 좀 하죠.
-선배님 진짜 잘하신다.
-손목 꺾기 뭐 이런 거. 이거 연습하고 그랬어요. 근데 저는 좀 궁금한 게 단장님한테.
이건 개인적인 질문이긴 한데 이렇게 단장님 정도 되면 딱 보면 알잖아요.
저 친구가 춤을 어떻게 춘다, 이런 걸.
근데 아까 무용을 좋아하고 춤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딱 보실 때는 어떠세요?
-저는 스포츠댄스를 췄었거든요, 어렸을 때. 근데 이게 성격에도 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살사 이런 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바차타, 살사, 자이브 그런 거 어렸을 때 했었는데. 사실 한국무용이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그래서 많이 해 보고 싶은데 사실 배울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셨대잖아요.
-요즘 취발 아시죠? 욕하는 거 아니고. 취발러가 요즘 많아요.
-취발러가 뭐예요?
-취미 발레하는, 취발하시는 분들. 근데 저는 취한도 좋을 것 같아요. 취미 한국무용.
-일단 한국무용6 은 조금 우리 어르신들이 많이 하시긴 해요.
그러니까 발레 같은 경우는 조금 우리 젊은 친구들도 이렇게 사회인들도 약간 본인의 로망처럼 좀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발레를 취미로.
근데 한국무용은 약간 조금 연세 있는 분들이 몸은 움직이고 싶은데
많이 과격한 동작이 안 되는데 그 호흡하고 선의 아름다움 이런 걸 즐기시더라고요.
-한복 입고 또 많이들 하시고 그러는데. 저는 북 치고 장구 치고가 로망이거든요. 아시죠?
-네.
-로망이 많군요. 여러 가지 로망이. 근데 단장님께서는 또 창작하시잖아요.
작품을 새로 만드시고 그런데 전통춤은 완벽한 창작은 아니죠.
근데 또 창작무용 사이에서 괴리감 이런 거 좀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요한 원칙 같은 게 있으십니까, 뭔가를 지켜내시는 데?
-지금 서울시무용단이 아마 그것을 추구하는 단체가 된다라고 생각을 해요.
저희의 정체성이 없는 창작은 저희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완전 단장님 명언 제조기세요.
-저희가 2000년도에 사실 창작이 막 붐을 일으킬 때였어요. 2000년도가 한국무용이.
그래서 신무용을 넘어서면서 창작을 막 시도하는데 우리가 창작 동작의 한계를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들이 어떤 시도를 했냐 하면 현대무용을 카피하기 시작했어요. 현대무용 테크닉을.
그랬더니 현대무용 전공하시는 분들은 쟤네 맨날 짝퉁 현대무용 하고 있어.
쟤네 되지도 않게 다리는 왜 저렇게 포인도 안 되면서 왜 저렇게 킥을 해?
이런 평가를 받으면서 저희가 약간은 그런 과도기를 거쳤는데 지금은 그런 테크닉을 가지고 와서 수세월이 지나서
이제는 우리만의 독특한 한국무용의 창작기법들이 완성된 시기에 왔어요.
그래서 그 과정, 과정이 힘들고 약간 손가락은 받았을지언정
이제는 우리만의 한국무용의 테크닉을, 한국무용의 베이스를 가지고 창작할 수 있는 동작을
이제는 우리가 구축한 시대에 왔구나라는 게 너무 뿌듯한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예술 쪽에 너무 등한시하고 살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말씀만 들어도 굉장히 뭔가 새로운 시도라는 게 그 에너지로 느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많이 발전했습니다.
-꼭 한번 진짜 공연을 봐야겠습니다.
-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국무용 하면 되게 한국적이고 단아한데 거기서 뿜어나오는 파워풀한 또 에너지가 있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고 정말 한번 한국무용을 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장구춤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많이 아시네요.
-많이 아는 거예요?
제 친구가 사실 한번 그 공연을 이렇게 했었는데 매력이 다르더라고요. 장구춤을 추고 그리고 사실 신발도 다르잖아요.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는 신발 다르고 옷도 평소에 우리가 입는 현대 옷이랑 또 다르니까.
-한복을 입고 하겠죠.
-그래서 우리가 옷깃이 이렇게 날릴 때 이게 이렇게 빛을 받아서 아름다울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이런 걸 아마 궁이나 야외에서 하면 정말 해외분들에게 사랑 많이 받겠구나.
저는 약간 춤 같은 것도 외국인들 시각에서 보게 되더라고요. 조금 이제 세계화가 되면서.
그래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관람 포인트가 아주 훌륭하시네요.
-그래요?
-무용 쪽으로도 도전 한번 해 보세요. 요즘 무용 이런 학원, 다이어트학원도 되게 많잖아요.
-다 늙어서요?
-뭐가 늙어요.
-무용을 하기에는 솔직히 늙은 나이가 맞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럼요.
-아까 취발러라고 본인이 얘기해 놓고는.
-취발러가 요즘 진짜 많은데. 저는 그런 무용도 취미가 많이 또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활동은 이어가실 생각이시잖아요.
앞으로 새로운 작품이 들어오는 거 말고도 혹시 야, 이건 내가 한번 획적인데 아무 데도 얘기 안 한 게 좀 있는데
이런 거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하는 게 혹시 단장님한테 있을까요?
-히든카드.
-히든카드로. 이런 거 하면 진짜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하고 계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조금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싶은 게 이제는 우리 K-댄스가 그냥 우리나라에서 멈추지 말고 조금 더 컬래버가 돼서
교류하는 작업들을 저는 하면 더 재밌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유럽이든 어디든 어떤 무용단과 우리의 프로 무용단과 같이 컬래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쪽 단에 가서 그쪽 무용수들에게 안무를 해주고
또 그쪽 단장님과 감독이 우리 무용단원들을 데리고 안무를 하셔서
이것이 서로 컬래버가 됐을 때 어떤 시너지가 이루어질까 되게 궁금하고 좀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이걸 한 무대에서 더블 빌로 보는 그런 기회가 있으면 이게 실현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상상만 합니다.
재밌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네요. 도시와 도시 사이의 문화끼리 만나는 것도 재밌겠네요.
-그렇죠, 우리나라 안에서 단체, 단체끼리 이것이 아니라 외국에 있는 단체하고 이제 우리 무용단원들이 한번 한 무대에서.
-라틴댄스와 K-한국무용의 만남이라든지.
-라쿠카라차와.
-라쿠카라차 라쿠카 이거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다양한 문화의 혼합이,믹싱이 이루어지는 그런 무대를 꿈꾸고 계시는군요. 기대가 됩니다.
-근데 그냥 꿈입니다. 상상만 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걸 다 현실로 이뤄셨잖아요. 이번 것도 현실로 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참 재밌을 것 같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지금 무용을 하고 있는 후배들 있을 텐데 단장님을 보면서 꿈을 키우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 같거든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있으세요?
-참 어려운 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후배들이. 녹록지 않아요.
뭔가 다 이룬 것 같은 분들만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다 이룰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되잖아요.
근데 그건 꿈이고 또 현실이 그렇지 않을 때 오는 그런 괴리감 때문에 포기하고 주저앉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끝까지 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그 끝까지 하는 거에는 정말 중요한 건 좋아해야 돼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춤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무용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걸까?
그걸 자기 자신한테 꼭 물어보라고 하고 싶어요. 내가 정말 이거 없으면 안 되나?
내가 이거 없으면 나 못 살까? 나 이거 없이도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못 살아라고 대답할 수 있는 친구는 끝까지 갈 거예요.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잘하고 못하고는 정말 우리 말하잖아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잘하고 못하고는. 그리고 그 친구가 천재냐 아니냐도 종이 한 장 차이예요.
근데 정말 끝까지 그걸 포기하지 않고 가 있는 친구가 결국은 천재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 진정성이 진짜. 진정성을 제일 언급하신 것 같아요. 진심과 진정.
-그것도 있고 언론 매체나 이런 방송이나, 이런 곳에서 나오는 인터넷이나
이런 데서 나오는 건 성공한 사람의 오늘만 보여주잖아요.
근데 이 오늘이 있기 위해서는 그 수많은 어제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있었던 건데
이 오늘만 보니 쉬워 보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굉장히 큰 노력이 뒷받침이 돼야 된다라는 말씀도 덧붙여서 해 주신 것 같고.
근데 그 힘듦에 있어서 그걸 덮고 떠나면 끝나는 거잖아요.
근데 지속해서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면서 여기를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에 승리를 한다,
성공을 한다라는 것도 덧붙여서 말씀해 주시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워렌 버핏이 전 세계적인 부자잖아요. 근데 그의 부가 시작된 건 60대 이후부터라고 해요.
-진짜요?
-네, 그동안의 노력들의 복리가 쌓여서 60대 이후에 그 부가 이루어진 거라고 하는데 근데 거기서 만약에 덮고 떠났어 봐요.
그럼 이 사람은 부자가 될 수가 없었던 결과를 마주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끝까지 노력하고 이어가는 끈기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또 말씀해 주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 질문드리켔습니다.
단장님에게 있어서 춤이란 무엇입니까?
-저에게 춤은 질문입니다.
-질문. 굉장히 예술적인 답변이네요.
-오늘 완전 제 스타일.
-엄청 좋아하실 것 같아요, 진짜.
-코드가 되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오늘 의상도 컬러 되게. 약속도 안 했는데 이렇게 코디 같이.
-그럼 두 분이 춤 한 번 추세요. 질문이라는 뜻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됩니까?
-저는 제가 대학까지, 5살부터 대학까지 공부를 쭉 하면서 선생님들이 주신 춤
그리고 이미 순서가 되어 있는 춤을 우리는 답습하잖아요.
답습하고 배우면서 저는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신 순서가 답이고 주는 방법이 답이었고 그 답을 잘 실행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간은 배우는 기간이잖아요. 배우는 기간은 그게 맞습니다.
근데 국립무용단 들어오면서부터 제가 생각이 바뀐 거는 춤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더라고요.
계속 이렇게 하는 게 맞아? 너 팔다리 왜 움직이니?
이것도 질문이에요. 너 팔 그거 왜 들었을까? 이것도 질문인 거고.
여기서 우리가 왜 뛰지? 이것도 질문이에요.
그냥그냥 순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는 과정, 과정이 다 질문에
내가 대답할 수 있고 내가 그 대답이 완벽해야 관객은 조금 이해해요.
근데 내 질문에 내가 답도 없이 움직이고 있을 때 관객은 감동하지 않는 것 같아요.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내가 수없이 나에게 질문하는 거,
그렇게 다져진 춤이 결국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영원히 제 춤은 답이 없는 질문일 것 같아요.
-내면에서 계속 질문하고 그걸 밖으로 표현하고.
-너무 멋진 말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까지 내가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춤도 같은 의미의 말씀이신 것 같아요.
나한테 과연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다른 사람은 나한테 무슨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
이가연 아나운서는 나에게 무슨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
계속해서 질문해 보는 하루가 돼 보는 것이 정말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바로 이 춤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좀 들기도 하고.
-그리고 사실 설명이 없어도 감동이 전해지는 게 춤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습니다. 우리 관객을 넘어서 이제는 세계 관객의 마음까지 움직이고 있는 우리의 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계신 윤혜정 단장님의 앞으로 펼쳐질 무대도
저희 탑클래스에서 계속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탑클래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