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탑클래스 - 자개에 나만의 색을 담다 김영준, 마이웨이로 완성한 나전 예술
등록일 : 2026-06-18 13:35:12.0
조회수 : 206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탑클래스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신아림입니다.
-신아림 아나운서.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하면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르잖아요.
그래서인지 우리의 성공을 떠올릴 때도 남들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올라선 그런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 프로그램명도 탑클래스잖아요.
-그렇죠.
-계속해서 또 많은 분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시고 또 힘들게 얻은 자리인 만큼 쉽게 내려오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내려오는 게 사실 더 어려운 거거든요.
근데 오늘 만날 주인공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안정적인 자리 한가운데서 과감히 내려오는 선택을 이게 진짜 어려운 거거든요.
내려오는 선택을 하셨다고 해요.
-또 남들이 아깝다고 말할 자리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길을 내려놓고 전혀 새로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숫자와 분석의 세계를 떠나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분입니다.
나전칠기 명장으로 불리는 김영준 작가님 모셔보고 오늘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 오늘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먼저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한번 좀 부탁드려볼까요? 카메라 보시고 한 말씀해 주십시오.
-안녕하세요.
저는 나전칠기를 가지고 기존의 가구 장롱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회화로 도전하고 있는 나전칠기 작가 김영준입니다.
만나봬서 반갑습니다.
-(같이) 반갑습니다.
-나전칠기 예전부터 우리가 많이 들었던 내용이고.
또 저희 집에도 예전에 자개장이라고 해 가지고 그게 다 나전칠기의 작품들이죠.
-옛날 부잣집들은 혼수할 때 자개장롱을 갖고 시집가는 게 꿈이었죠.
-부잣집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때 당시에는 이상하게 다 자개장들이 많았어요.
집집 곳곳마다. 그런 기억들이 얼핏 나는데 다 오래됐다고 해서 버리고 그래서 좀 아쉬웠던 기억이 있는데.
우리 전통 자개공예라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나전칠기가 무엇인지 좀 짧게 한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전 하면 나는 이제 소라, 전복이거든요. 소라, 전복, 진주를 나라고 그래요.
소라 라 자. 그걸 갖고 저는 그걸 꾸미는 거란 말이에요.
칠은 옻칠이고 기는 기물이거든요. 그러니까 장롱 그다음에 무슨 반닫이 이런 가구 있잖아요.
그거에다가 옻칠을 해서 자개를 거기다 수놓은 거. 그래서 옛날에는 다 가구를 많이 만들었죠, 나전 장롱.
-장이었죠.
-그래서 그걸 나전칠기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다 나전칠기다라고 총칭했던 거군요?
-그렇죠, 자개하고 옻칠을 같이 해서 가구 만든 거. 그걸 나천칠기라고 했죠.
-나전칠기를 하신 지는 몇 년 정도 되셨어요?
-지금 33년 됐어요.
-33년 동안요.
-제가 증권회사에서 84년에 입사해서 94년에 나와서 그 퇴직금 갖고,
퇴직금하고 주식을 팔아서 한 6억 갖고 시작한 거예요. 근데 몇 년 만에 다 날렸어.
-그럼 8~90년대가 애널리스트로 활동하신 시기인 거잖아요.
-네, 84년부터 94년까지.
-애널리스트로도 활동하셨어요?
-제가 동서증권하고 동서경제연구소에서 투자상담사 자격증도 있고 분석가 자격증도 있어서 그때 제가 좀 날렸었어요.
-그러시군요.
-이름을 날리신 거죠?
-MBC에서 제가 뉴스데스크도 나가고 출발 라디오 행진이라는 걸 한 3년간 진행하면서 그만뒀어요, 제가.
그만두고도 10월에 그만뒀는데 내년 3월까지는 해 줬어요, 방송을.
그리고 끝나고 이거 했습니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름을 날리시고 또 탄탄대로를 걷고 계셨잖아요. 근데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그게 제 뜻이 아니고요. 제가 사실 간단하게는 ROTC 제대하면서 국제그룹의 동서증권에 입사를 했어요, 84년에.
-또 ROTC까지?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데요.
-제가 9월 1일에 입사했는데 84년 9월 1일 잊어먹지도 않아,
6월 30일 제대해 가지고. 9월 1일에 입사했는데 85년 2월 12일이 총선거였어요.
2월 13일에 동서증권이 해체된 거야, 그룹이. 그래 가지고 그때 당시
정인용 총리가 텔레비전에서 국제그룹 해체 이래 가지고 국제그룹에 들어간 지 한 6개월 됐는데 그룹이 해체가 된 거예요.
동서증권이 나중에 극동건설로 넘어갔거든요.
그때 이제 증권이 붐이 돼가지고 그때 많이 컸어요.
제가 자본금이 200억일 때 들어갔는데 나올 때 2400억인데.
그때 제가 조사부에 있으니까 연구소에 책을 많이 읽고. 인생 이모작이란 책을 제가 읽고 감명을 받았어요.
일본 사람이 쓴 건데 그때 일본 사람이 수명이 제일 길잖아요.
근데 육십에 정년퇴직하면 앞으로 2~30년 뭐 할 거냐. 지금부터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라, 이모작을.
그런 걸 감명 받고. 그때 제가 모시던 분이 사실은 손병두 전경련 회장님이셨어요.
동서경제 사장님이신데 이분이 동서증권 사장으로 가시려고 그러다가 못 가셨어요.
그래서 전경련으로 가시면서 그만두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때 지점으로 발령 나서 이게 그만두라는 모양이구나 하고 그때 그만뒀어요.
그 두 가지 이유로. 제가 모시던 분이 사장으로 못 가시고 전경련을 가셔서
저도 좀 그 라인이 있잖아요. 그다음에 또 인생의 이모작을 앞으로 뭐 할까?
증권이 그리고 제가 조사부에 있었으니까 연구소에. 그래프가 꼭 쌍봉인 것 같아.
이게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딱 드는 거야.
-전문용어 나왔습니다.
-쌍봉.
-촉으로. 제가 그래프를 많이 그렸거든요.
그래서 딱 끝날 것 같아서 여기서 그만두라는가 보다 하늘이. 그래서 종로지점 발령 딱 나서 하루 갔다가 그다음부터 안 나갔어요.
-말씀을 들어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인생 이모작이라는 좋은 책도 읽으셨고 이게 인생이 영원한 것은 없다.
계속 배우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현업에서도 이런저런 일이 있으셨겠지만 다른 뭔가를 하기 위해서 내 인생을 끝까지 뭔가 하기 위해서
한쪽 일을 좀 접으셨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퇴사 결심하시고 처음에 미술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럼 이전부터, 지금 약간 좀 퍼즐을 맞춰보는데 ROTC 하셨고 증권회사 계셨고 애널리스트셨는데. 미술을 다시 한다?
이거 좀 안 맞는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학창시절에 미술에 대한 꿈이 있으셨던 겁니까?
-제가 초등학교 때는 미술을 잘 그렸어요. 글씨도 잘 쓰고.
그래서 중학교 때도 미술 선생님이 미대 갔으면 좋겠다고 그러는데 강원도 시골에서 미대 간다는 게 그건 너무 어려운 거고.
-또 강원도 출신이시군요?
-네. 그러니 뭐 어떻게 미대를 가?
미대 가려면 진짜 지금도 돈 많이 들지만 그때는 레슨받아야 됐어요, 교수님들한테.
그래서 미대 가는 건 생각 못했는데. 근데 그림 그리는 거, 글씨 쓰는 거 되게 좋아해요, 지금도.
그래서 조사부도 가고 거기서 글도 많이 썼는데.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게 뭘까.
또 이 사회에 좀 뭔가 남기고 싶은 게 뭘까. 증권회사에서 제가 강의도 많이 했잖아요.
지금도 생활신조가 남들이 가는 반대편에 꽃길이 있다예요.
남의 길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거야. 저는 제 길을 가겠다는 거거든요.
마이웨이죠.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고. 그래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데
왜 나전칠기를 했냐면 제가 조사부 출신이니까 분석을 잘 하잖아요.
미대 나오고 서울대 나오고 다 좋은 대학 나오고 외국 유학 갔다 온 미술 화가들이 너무 많아.
-나의 경쟁력은 뭘까?
-내가 거기랑 해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
그럼 도자기도 생각하고 가죽공예 다 생각했어요.
근데 그분들도 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다 명문대 나오고 그렇게 오래한 사람하고 저하고 해서 되겠어요?
-비교가 안 된다.
-안 되는 거지.
-그래서 내가 잘 하는 건 무엇인가를 고민하셨군요?
-그래서 남들이 안 하는 게 뭘까? 나전칠기는 그때 다 떠날 때예요. 가구들 다.
-맞아요, 그 시기가 맞아요.
-94년도에 거의 다 떠났어요.
-그때 우리 엄마가 그거 버렸어요.
-그렇죠? 버리는 걸 내가 봤어.
-맞아요, 맞아요.
-어머님이 어려서부터 제가 중학교 때 자개장을 보면서 그렇게 예뻐하셨어 닦고.
그걸 보면서 저 자개가 지금 버려지는데 저걸 내가 해야겠다, 아무도 안 하니까.
이건 아무도 안 하니까 내가 해야겠다는 거야, 버리니까.
-저점 매수 아닌가요?
-그러니까 주식을 하시는 분이라 확실히. 남들이 떠날 때 나는 들어간다. 이거 아닙니까?
모두가 축제를 외치고 있을 때는 안 들어가고. 그러니까 모두가 축제를 하는 현대미술 이런 건 난 그걸 안 해.
-자신도 없어, 해 봐야 내가.
-다 버릴 때 자개 버릴 때,이때 저점. 이때 들어가신 거군요.
-남들 버릴 때, 안 할 때 안 하니까.
또 미술은 다 대학 나오고 이런 사람들이 그리는데 여기는 다 장인들밖에 없잖아요.
작가가 없었단 말이야. 장롱 만드는 거. 이 사람들이 나이들이 다 드셔서 떠나니까
내가 이걸 한번 새롭게 해 보겠다. 남 안 하니까.
그래서 증권회사 다녔기 때문에 제가 자개를 한 거예요. 남들 안 한 걸.
-그러셨군요. 근데 아시겠지만 그렇게 남들이 떠날 때 시작을 하시면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죠.
-엄청 걸리고 실패를 많이 했죠.
-이건 누구한테 배우신 것도 아니라면서요, 독학하셨다면서요?
-그때는 왜냐하면 장롱밖에 안 했잖아요. 장롱 하는 사람들 제가 처음에 가구 했다고 그랬죠.
그런 사람들 내가 3명 같이 썼어. 그래서 만들었어.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 다 알아. 아는데 그 디자인을 벗어나질 못해, 이분들이. 그거밖에 못해.
-새로운 걸 못한다?
-못하는 거야. 그건 안 해 봤다는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해?
내가 답답하니까 내가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계속 연구를 한 거예요.
연구를 해서 또 컬러도 만들고. 제가 사실은 우리나라 옻칠 정제 특허도 제가 갖고 있어요.
갖고 있고. 컬러 옻칠 만드는 특허도 제가 갖고 있고. 그때 미쳐 가지고 막 그냥 특허도 냈어요.
그래서 새롭게 많이 했는데. 그래서 가구도 좀 바꿨지만 가구 자체가 안 되는 거라서
그걸 벗어나서 다시 또 실패해서 회화로 이제 바꾼 거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이전까지 배운 것들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냥 내가 나의 길을 개척하겠다 해서 새로운 시도도 하고 특허도 많이 내시고
도구도 만드시고. 새로운 방법을 계속 연구하신 거네요. 대단하십니다.
-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생각이 드는 게 보통 나전칠기 하면 국내에서 연구를 하고
또 독학을 하실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유학을 가셨다고.
어쩌다가 또 유학을 선택하시게 된 거예요?
-제가 이게 뭐냐 하면 디자인이 문제라고 봤거든요. 디자인이.
그때 막 디자인, 디자인할 때예요. 이게 디자인이 가구 하니까 안 되니까.
이게 그림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되냐?
제가 최초로 이런 걸 하니까. 디자인을 이게 우주거든요, 코스모스라고.
-우주요?
-이 작품 말씀하시는 거죠?
-네.
-저는 사람 옆모습인 줄 알았어요.
-이 밑에 거는 저거고 이 위에 거는.
-저는 팽이인 줄 알았어요, 팽이. 약간 이게 보는 사람마다 다르네요. 우주를 형상화한 거거든요.
-어떤 사람은 괭이라고 괭, 꽹과리 같기도 하고.
-징, 괭? 그러네요.
-저는 코스모스를만든 거예요, 우주를.
우주를 조각조각 내서 만든 건데. 그래서 이런 회화로다가 바꾸면서도 실패를 계속했죠.
남 안 한 거 하니까. 제가 해야 되니까.
근데 실패 속에서 배웠어요, 하나씩. 그럼 실패는 또 안 해.
근데 하다 보면 다음엔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해야지가 자꾸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걸 제가 느껴요.
근데 지금도 실패를 해요. 또 새로운 걸 하려고 그러니까.
-다들 실패가 두려워서 안 한단 말이죠. 근데 그런 게 전혀 없으셨네요?
-근데 이 길 아니면 이제 갈 길이 없으니까 그냥 계속해서 가는 수밖에 없죠. 엎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또 가고.
-유학도 한 곳이 아니라면서요? 여러 군데를 좀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하셨다면서요?
-처음에 미국에 와서 가구했고.
-처음에 미국 가서 가구를 공부하셨고.
-디자인 공부하고 와서 가구를 현대화했고.
실패해서 이탈리아 도무스 가서 다시 또 디자인 공부해서 이렇게 회화를 했고.
-그때 미술 공부를 하신 거죠?
-네. 그다음에 옻칠 있잖아요.
옻칠을 또 일본 가나자와 가서 또 배웠고. 거기서 이제 배워서 컬러 옻칠도 제가 내고 특허도 내고 그랬고.
국내 대학원 서울과기대에서도 디자인대학원도 다녔고. 공부를 계속했어요.
-지금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연세가 한 120세 정도 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좀 들기도 해요.
그러니까 이런 많은 일들을 그렇게 단시간 안에 얼마나 오랫동안 하셨는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열심히 사셨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열심히 살았어요.
-대단하십니다.
-이거밖에 몰랐어요.
-열정이 정말.
-하루에 20시간 한 적도 있어.
-하루에 20시간이나 뭔가에 빠져서 몰입했던 시간. 많은 걸 배웁니다.
사실 몰입도 선택과 집중을 해서 몰입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어렵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그럼 또 작가님이 워낙 많은 곳에 유학을 다니셨잖아요.
그럼 우리 전통의 나전칠기 제작 방식이랑 조금 다른 작가님만의 방식이 또 따로 생겼나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있잖아요. 어떤 문양이 있잖아요.
그럼 종이에 붙여가지고 똑같은 문양을 20개, 30개 만들었어요, 장롱이.
그래서 한 군데에서 만드는 거는 한 작품 갖고 한 30개, 40개씩 만들었잖아요, 똑같은 문양으로.
근데 이거는 자개도 다 다르지만 하나에 하나씩밖에 못 만들어요.
-그렇죠, 하나의 모양만 나오죠.
-똑같이 저도 이걸 못 만들어요. 이 컬러하고 자개가 똑같은 거 없고.
-딱 하나?
-네,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걸 제가 지금 보고 있네요?
-이거 저도 만들래도 못 만들어요.
이런 자개도 없어요. 그러니까 자개를 골라서. 이건 30년 된 전복 자연산인데 그 빛이 묘하거든요, 볼 때마다.
그래서 제가 하는 건 기존 거하고 달리 하나에 하나밖에 없다.
-이게 빛이 이쪽에서 볼 때랑 이쪽이랑 볼 때랑 또 달라요.
-매일 달라요, 볼 때마다.
-매일 다릅니까?
-볼 때마다 달라요.
-진짜 묘하네요. 진짜 우주 같네요.
-저도 이 빛에 빠져서 자개를 하게 된 거예요. 제가 이걸 친다, 안 한다 이런 의식이 없더라고요.
한 5분 이상 하다 보면 몰입이 돼서 계속 저도 모르게 이게 나가요, 저도 모르게 빛이라는 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런 뜻으로 얘기를 하죠. 저는 기존 건 안 하거든요. 왜냐하면 안 하는 걸 하니까.
-작가님께서 사용하신 이 재료가 이게 나전칠기도 재료가 있잖아요, 꽤?
-그렇죠.
-굴 껍데기 가지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전복도 있고 어떤 조개. 강에서만 나는 조개하고 바다에서 나는 거 하시는데.
저는 굉장히 좀 다양하게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근데 꼭 자연산 전복만 사용하신다고?
-이건 전복하고.
-이유가 있는 겁니까?
-전복 빛이 예쁘더라고요. 전복도 종류가 여러 가지예요.
한 가지가 아니고. 멕시코에서 난 거 그다음에 뉴질랜드에서 난 거 색이 다 달라요.
한국에서 난 거. 그래서 저는 국산 전복을 많이 쓰는데. 요즘에는 채취를 안 해요.
-잘 안 나오죠.
-양식밖에 안 하니까 빚이 또 옛날만 못해요. 그래서 되게 안타까운 거죠.
-양식은 좀 빛이 안 좋은 건가요?
-이거보다는 빛이 안 좋아요, 자연산보다는.
-안 좋다라는 게 빛이 덜 난다라는 얘기예요?
-조금 하여튼 묘하게 제가 볼 때는 좀 덜해요.
-덜 고급진 느낌?
-그건 또 오래한 거하고 또 이건 양식은 몇 년 안 하잖아요.
그러니까 빛이 좀 덜 아물었다고 그럴까? 빛이 나긴 나는데 저는 그걸 볼 수 있죠.
-그렇군요. 그래서 무려 20년 전부터 자연산 전복 껍데기를 사들이고 계셨다는 얘기도 저희가 들었어요.
그게 맞아요?
-그게 옛날 한경 창간 50주년 기념하면서 제가 전시를 했어요. 근데 한경에 이렇게 신문에 난 거잖아요.
나전칠기 김영준 작가 전시. 그러니까 그걸 보고 사람이 온 거야, 어떤 사람이.
-전복을 주겠다고요?
-네, 그래서 나한테 와가지고 혹시 이 전복 껍데기 필요하냐? 그래서 필요하다. 저는 알았지.
이제 한국에서 못 만드니까, 가구를 안 하니까.
근데 이분들이 가공을 했는데 팔 데가 없는 거야.
자개장롱이 다 없어지니까. 근데 귀한 건 알지 이분들이. 그래서 몇 년을 갖고 있었어.
-자연산 전복 껍데기를?
-껍데기를 갖고 있는 걸 저보고 가져와서 이거 사겠냐는 거야.
그래서 얼마냐 그러니까. 뭐 얼마래. 그래서 제가 사겠다고. 제가 가격을 알잖아요.
그러니까 한 반값 부르더라고. 그래서 제가 샀어, 그거 보냈어.
그때는 돈이 좀 있을 때라. 근데 이분이 자기 아는 사람들한테 다 얘기를 한 거예요.
그 김영준 작가가 이거 사주더라. 그러니까 이거 다 가져온 거예요.
-처치가 곤란하니까 그분들은.
-그 사람들은 버리기에는 아깝고 쓰질 못하니까.
-고객을 찾았네요.
-싸게 넘기니까.
-그래서 제가 한 1억 원어치 샀어요, 그때.
-껍데기만요?
-네, 죽을 때까지 쓰겠다고. 근데 지금 한 반 쓴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쓸지 모르겠어요.
-아니 그것도 엄청. 보관을 어떻게 합니까?
-보관은 이거는요. 그대로 놔두잖아요, 안 썩어.
-변화가 없군요. 곰팡이가 핀다거나?
-없어 없어.
-전혀 없어요?
-네. 진짜 자연산 이런 빛이 그대로야.
-그럼 얘도 안 변하겠네요?
-안 변하죠.
-그걸로 만든 얘도?
-안 변하죠.
-얘도 그 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형이 안 되는. 그래서 전복 껍데기, 자연산 전복 껍데기만 사용하시는 거군요?
-네.
-진짜 재밌네요. 미래를 예측하시고 어떻게 보면 20년 전에 전복 껍데기를 많이 사놓으셨기 때문에.
-제가 증권회사 다녔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거예요.
-지금은 안 나온다라는 거죠?
-자금은 없어. 돈 주고도 못 사요. 가격도 없어.
-그럼 나머지 반 남은 거 다 쓰시면 작품 활동 안 하시는?
-이제 못 하죠, 끝이죠.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 겁니까?
-그런 작품은 안 나오는 거야, 이런 빛은. 지금은 한국에서도 가공도 안 하잖아요.
가격이 비싸니까. 누가 가공해요?
사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베트남 이런 나라에 가서 판으로 만들어오는 거야.
그걸로 쓰니까 빛이 안 나는 거야.
-그건 또 색깔이 다르군요?
-다르죠. 그래서 제 걸 아는 고객들은 김영준 작가 작품은 빛이 다르다라고 아는 분들은 와서 제 걸 또 구입하고.
-그럼 지금 작가님이 또 주력하시는 작품이 이런 회화인가요?
-요즘은 거의 다 회화예요.
근데 또 선물용으로 VIP들 회사라든가 이렇게 높은 데서 주문할 때는 그런 작품을 만들죠.
근데 거의 이제 회화를 하죠.
-보면 너무 정교하거든요. 이거 자개 하나하나 직접 이렇게 조각 내서 붙이시는 거잖아요.
진짜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보통 얼마 정도 걸려요, 하나 완성하는 데?
-이런 거 하려면 몇 달은 걸려요.
-몇 달이요?
-하나 하는데. 그러니까 제가 큰 장롱한 거는 4년 6개월 걸린 게 있어요.
-이거 하다가 그러신 적은 없어요. 사람이다 보니까 이렇게 하다가 아유, 안 해.
-그런 적도 있죠, 힘들 때도 있고. 여러 가지 마음으로. 아, 이게 뭐냐?
지금 이 좋은 세상 날씨 좋은데. 앉아서 이거 쫀쫀하게 이만한 걸 자르고 있으니까.
-계속 붙이셔야 하잖아요.
-눈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몸도 무척 아팠었어요.
-그걸 이렇게 하면서 결과물이 나오면 모든 걸 다 이겨내는 거잖아요.
-그러면서도 항상 아쉬움이 있어요, 저는. 이걸 보면서 더 좀.
그래서 이거 하나 봐. 이게 좀 부족해요, 저는. 그러니까 다음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또 하면 또 부족해요. 지금까지 계속 부족해요.
-그래서 작품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시고.
아, 다음에는 이렇게 좀 해 봐야지라는 생각도 하시고.
-그러니까 설렘이 있고 아직까지 좀 떨려요.
뭐 새로 한다고 그러면. 근데 하고 나면 뭔가 또 부족해. 이번에 보완해야지 하면
또 다른 게 부족한 면이 생기고. 작가가 만족은 없나 봐요.
남들은 멋있다 이러는데 저는 보면 아, 저게 좀 아쉬운데? 이런 게 항상 있어요.
-계속 그래서 발전해 나가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 2007년에 이런 기회가 또 오셨다고 그래요. 프랑스 문화부 장관 초청으로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했는데. 파리에서 전시회를 연 거면 문화와 예술의 이런 작품에
거의 최고점에 있는 곳 아닙니까?
거기서 작품회를 열었으면 엄청 기분이 좋으셨을 것 같아요.
그때 상황 좀 설명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가구에다가 이걸로 했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이걸 계속해 가지고 국내 전시를 나갔어요.
근데 나전칠기인데도 특이하긴 특이한데 관심은 있는데 잘 구매를 안 하는 거예요.
국내 전시를 해 보니까 잘 안 팔려요.
그래서 국내가 아니고 해외다. 그래서 이탈리아, 프랑스 이런 쪽으로 1년에 한 서너 번씩 나갔어요.
한 번 나가는데 한 3~4000만 원 들어요. 1년에 1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거야.
-자비로 나가야 되는 거군요?
-내 돈으로 가야지. 이름이 있어, 뭐가 있어?
돈 내고 가니까. 그리고 전시를 갔는데 하나도 안 팔린 적도 있고 하나 팔린 적도 있고 그래요.
그래도 계속 나갔어. 포기하지 않고. 그랬는데 2006년도 메종앤오브제 파리라는 데가 있거든요.
전 세계 사람들이 오는데 거기 이제 나갔어요.
근데 스포트라이트가 저한테 온 거야, 언론이. 르몽드지 이런 데 있죠.
저한테 인터뷰를 이렇게 우리 아나운서 같은 분이 와서 인터뷰해 가지고.
그러니까 그다음 날 프랑스 문화부 장관, 파리시장 이런 사람들이 왔어.
비서가 오더니 내년에 전시 한 번 해 주겠다.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에서. 그때는 제가 처음으로 많이 팔렸어요.
언론의 힘이 굉장히 무서워. 그러니까 호텔 주인들, CEO들이 제 작품을 많이 사가지고.
너무 재밌는 게 여기 한국까지 왔어요,
그 비서가. 그래서 만나가지고 그럼 내가 메종앤오브제 파리를 이번에 나가니까
그거 끝나고 3일 있다가 하자, 그렇게 됐어요.
여기는 준비를 많이 했어요, 많이 했고. 여기는 그냥 대충 준비를 안 했단 말이야, 초청이니까.
여기는 이제 잘 팔렸으니까 올해. 근데 이게 안 팔리는 거야.
작년에는 그렇게 다 팔렸는데.
-오히려 신경을 더 많이 썼구나?
-더 많이 썼는데 안 팔리는 거야, 힘을 줬는데.
초충도하고 코스모스 이런 작품들이 안 팔려, 그전에는 잘 팔렸는데.
그래서 그대로 그걸 거기 가지고 간 거예요.
-프랑스 파리로 가는 거죠?
-파리에서 전시하고 문화부 장관이 초청한 파크하얏트호텔밴덤에서 전시를 한 거야, 가지고 가서.
그때 팔렸으면 전시할 게 없었어, 몇 개. 그래서 소품밖에 없었는데 안 팔려 가지고 거기 전시했는데
거기서 빌게이츠가 이거 두 점하고 초충도 두 점을 산 거야.
-(같이) 빌게이츠요?
-빌게이츠가 그 호텔에서 묵으면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그 빌게이츠요?
-그 빌게이츠가 사면서 제가.
-동명이인 아니고 빌게이츠.
-돈도 없어, 빌게이츠. 형, 캐시하니까 지갑에.
-전 세계에서 빌게이츠 돈 없다고 한 최초의 선생님.
-안에 1000불하고 1000유로 있어.
-현금은 안 가지고 다니니까.
-돈을 안 갖고 다녀. 근데 작품은 자기가 가지고 가겠대 지금. 달라. 돈을 안 내고 가지고 가겠대.
-돈 안 내고?
-돈은 1000유로 받고 자기가 지금 가지고 가겠대. 네 점을 들고.
-그냥 본인을 담보로?
-닮으신 분 아니에요? 어떻게 된 겁니까, 이거?
-돈 받으신 거 맞죠?
-제가 증권회사 다녔기 때문에 외상을 줬는데.
-너훈아 이런 분들이 계시잖아요. 나훈아의 약간.
-그 호텔의 하루에 3000만 원짜리 방이거든 거기서 자는데.
제가 들고 갖다주겠다니까 자기가 가지고 간대. 그래서 가져가더니 그다음 날 내일 돈 주겠대.
아침에 비서가 오더니 달러로 가져다주더라고요.
-현금으로?
-현찰로.
-캐시로?
-네. 그걸로 끝난 거 아니에요. 돈 이렇게 주더니 걔네가 명함을 줬는데 빌게이츠야.
빌게이츠 비서가. 그래서 제 명함 달라 해서 팸플릿에 제 메일이 있잖아요.
그리고 끝났는데. 그게 9월이거든요.
2007년 9월이야, 정확히. 근데 12월에 메일이 왔어.
OO박스 있죠, 게임기. 거기에다 자개를 붙일 수 있냐는 거야, 나보고.
그래서 플라스틱에는 붙여본 적이 없잖아요,
저 나무만 붙여보고. OO전자랑 내가 냉장고를 하면서 플라스틱에 붙이는 걸 기술을 배웠어.
그래서 파서블,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걸 붙여달라는 거야.
-게임기에?
-네, 게임기.
그래서 내가 거기다가 그때 OO냉장고 디자인할 때 하면서 매화하고 나비를 붙였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전통 매화하고. 매화에는 원래 나비가 없어요, 사실은. 작가니까 엉뚱해.
매화는 이른 봄, 겨울에 피잖아요.
근데 거기 나비가 없지. 근데 작가의 상상력으로 나비를 넣은 거예요.
나비는 자유롭고. 매화의 그걸 견뎌서 자유롭게 좀 날고 번영하라는 뜻으로 놓는데
빌게이츠가 여기 한국에 와서 잠깐 있었어. 7시간인가 있었어요.
근데 청와대 가는 건 난 몰랐어. 근데 빌게이츠가 청와대 간다는 소문은 있잖아.
그래서 마주쳤는데 그날 청와대에 그걸 줬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그걸 어떻게 알고 나를 취재를 한 거야.
-그 게임기를 대통령에게 선물로 준, 자개를 한 게임기를?
-그걸 만족해 가지고.
그러니까 한국 대통령이 줘야 되는데 저는 빌게이츠는 천재 중에 천재라고 봐요.
OO박스에 자개를 붙일 생각을 했다는 게 아무도 못한 거야.
근데 그분은 한국 대통령한테 한국 전통 자개를 붙인 걸 선물로 준 거야.
-게임기를요?
-게임기를.
-대통령이 게임 안 할 텐데요.
-뭐 게임하겠어요?
-자녀분이 할 수도 있죠.
-아니 그게 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었잖아요?
저도 기억나는데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안 하셨을 것 같은데 게임을.
-그걸 대통령이 갖고 있는 게 아니고 나라에 넣는 거야.
OO박스라는 거에 자개가 붙인 걸 영원히 갖고 있는 거야, 그건. 개인을 주는 게 아니고.
대통령기념관 거기에 있는데.
근데 그걸 생각하는 자체가 플라스틱에다가 게임기 젊은 애들의 한국 전통 나전칠기를 붙인다?
그런 생각이 가능해요? 저는 그래서 천재라고 보는 거예요.
그 사람이 그게 조선일보에서 크게 나가지고 한 주에 전면도 나고 두 번 나니까
그다음에 빌게이츠가 주문을 좀 더 해 가서 다른 디자인으로. 그건 똑같은 거 아니고.
그래서 잡스를 하나 줬나 봐. 잡스한테 연락이 온 거야.
-애플의 스티븐 잡스요?
-잠깐만, 이거 지금.
-약간 친구분 얘기하시는 것 같지 않아요? 지인분.
-아니 지금 술 한잔하시고 뒷얘기 듣는 것 같은데. 이게 뭐 그냥 술술 나오네요.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
-저는 상상 못한 사람들인데.
-이런 유명한 분들이 다 관심을 가지시니까.
-그분이 그때는 OO폰 처음 나올 때예요. 정확히 그게.
-2008년, 2009년.
-2009년이야.
빌게이츠가 2007년도 해서 2008년 5월에 대통령 만났고. 잡스가 2009년도에 OO폰 출시할 때
제가 가죽으로다가 만들어준 거예요.
-케이스를요?
-케이스를.
나비 딱 붙여가지고 하나. 근데 너무 웃긴 게 디자인이 그 당시 제가 작업하다가 나비를 그때 막 좋아했거든요.
빌게이츠에도 나비를 붙였고 초충도 이런 데다 나비를 붙였다고, 나비를 좋아해가지고.
근데 나비가 작업하다가 좀 큰 게 있어. 그래서 디자인을 2개를 해달랬는데 제가 디자인한 거는
바둑판처럼 된 이런 거예요, 현대적인 디자인이지. 그걸 했는데 이게 좀 부족한 것 같아.
그래서 나비가 하나 있어서 나비를 뚝 대보니까 나비가 커, 안 맞아. 다시 잘라서 하긴 좀 그렇고.
그걸 이렇게 꺾었어, 내가 옆으로. 근데 그게 좋다는 거야.
디자인도 말이에요. 힘 준 게 또 안 되는 거야.
-왜냐하면 그분이 또 사과 한 입 먹는 디자인이잖아요.
-꺾인 게 좋다는 거야.
-나비 날개 하나 꺾어야 되는 거죠.
-커서 꺾었어, 옆으로. 그게 좋대. 나보고 기가 막히다는 거야.
-그도 디자인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으시거든요.
-그러니까 그걸 100개를 주문해서 오케이 해 가지고 파는 게 아니야, 그 사람들은.
자기 지인들에 선물하는 거지. 다 못 주고 돌아가셨을 거야 아마.
-야, 이거 참.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뒷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때 빌게이츠를 만나고 나서 그 이후에 이렇게 일이 커질 줄도 모르셨을 것 같고.
프랑스 가서도 원래 기대는 거기에서 발표회 때 많이 팔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다른 곳에 가서 거기서 빌게이츠 만났고, 빌게이츠가 주문했고 그게 대통령 선물로 들어가고.
잡스한테도 선물을 줬는데 그게 또 많은 분들한테도 알려지고.
-그리고 조선일보 전면 나오고 그때 TV 나오니까 돈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더라고. 작품 사가려고 현찰로.
-그걸 왜 조용히 얘기하시는 거예요?
-누구라고 얘기 못 하고.
-비밀처럼 얘기하십니까?
-근데 너무 웃긴 게 있어. 제가 작업하다가 마음에 안 든 게 있잖아요.
옆에 이렇게 내놨어. 근데 이렇게 보더니 이건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
저건 뭐냬?
그래서 제가 뭐 하긴 했는데 마음에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그냥 걸지 않고 놔놨습니다 했더니 좀 볼 수 있냬.
그래서 보시라고. 이렇게 꺼내서 보더니 그분들은 말씀하시는 것도 참 고급스러워.
제가 구입할 수 있어요? 그렇게 물어봐.
-누가요?
-손님이.
-손님이, 손님이? 또 빌게이츠 말씀하시는 줄 알고.
-제가 구입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고민하다가 좀 저한테는 부족한데, 저한테는 부족한데 그 사람은 그게 마음에 드나 봐.
그럼 뭐 팔아야지 어떻게 해, 돈도 없는데, 그걸 하나 처음에 사신 분이 그걸 하나 산 게
인연이 돼 가지고 지금까지 사.
-그럼 몇 년 전. 20년 된 거 아닌가요?
-지금까지 사. 어떻게 돈 떨어지는 걸 아나 봐. 이번에도 사고.
-되게 재밌게 얘기해 주시는 거 같아요.
-너무 유쾌하시다.
-그러니까 그런 한 번의 일들.
이 모든 것은 작가님이 내 돈 몇천만 원을 그때 당시에 굉장히 큰돈이었을 텐데 들여서
해외로 나가서 작품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잖아요.
전혀 없는 일이잖아요.
-도전했기 때문에.
그것도 빵 찼는데 또 간 거고, 또 간 거고. 그래서 빌게이츠도 만난 거고 프랑스에 초청돼 전시한 거고.
-이게 국내에서 안 팔린다고 해서 그것도 해외 나가면 더 안 좋아하겠지.
그냥 여기서 만들다 끝내자고 계속 한국에서만 만들고 있었으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죠.
-그럼 저는 이거 못 하고 지금 절에 가 있든지.
-그리고 또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도 같은 일이 또 있었어요? 작품 제작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것도 참 사람이 있잖아요.
제가 그때 이대 교수 할 때예요. 근데 신문을 하나 보고 또 인생이 바뀐 거야.
책을 하나 보고서 제가 인생 바뀌었잖아요.
신문을 봤는데 화요일아침예술학교라고 홍문택 신부가 옛날 김수환 추기경 있을 때 비서실장 하신 분이고
교황 요한 바오로 오셨을 때 사회도 보신 아주 그쪽에서. 유명하신 분이에요.
근데 이분이 추기경이 바뀌니까 은퇴를 하셨어.
은퇴한 게 아니라 그만두시고 학교를 만들었어, 연천에. 연천에 화요일아침예술학교를 만들었어.
예술을 좋아하시는 분이거든. 근데 조선일보에 이렇게 글을 쓰셨어.
디자인 어쩌고저쩌고. 디자인라서 제가 봤죠.
근데 거기 어느 한 학생을 쓴 거야.
이 학생이 집에 가도 되는데 애들 데려다주고 가고 앞으로 인생이. 그래서 제가 또 호기심이 있잖아요.
그래서 전화를 한 거야. 거기서 제가 나전칠기 좀 가르칠 수 있느냐?
교감 선생님이 받더니 그다음 날 홍문택 교장 신부님이 우리 공방에 오셨어.
제가 포천에 있었고 거긴 연천에 있어서 멀지 않아요.
아침에 오시더니 자기도 이걸 하려고 했었는데 전통문화 하는 내 얘기를 들었대.
이렇게 전해 줘서 바로 오시더라고 그다음 날. 그래서 자기 학교에 가재, 갔어.
갔는데 건물 지어놓은 거 이런 거가 너무 저한테는 예술적으로 보여요.
화장실에 있잖아요. 요강을 달아놨어.
난 그게 천재 같아. 여자 화장실에 여자 요강을 딱 달아놓은 거야.
그런 상상을 하겠냐고. 그래서 내가 예술가로 연애하는 것 같아서. 저보다 연배이신데 형님인데.
그렇게 서로 대화하고 또 우리 이대 대학원 학생들을 제가 소개해서 학생 가르치고
그리고 전시도 하고 애들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분이 내년에 교황님 오신다 이거야.
저는 모르잖아요, 가톨릭 신부도 아니고. 그래서 교황님 의자를 만들자는 거야.
-자개 나전칠기로?
-의자를 만들재. 그래서 저는 아무 저거 없이 형님 만드시면 만들어요.
만들어드릴게요, 그랬어요. 돈 받고 만든 거야 제가. 만드니까 돈도 주시더라고.
-돈이 되게 좀 중요하신가 봐요?
-나는 돈을 안 받으라고 그랬어. 주셔 그냥, 받으래.
-중요하죠.
-나는 돈 달라는 얘기는 안 했어. 그땐 여유도 있어서. 근데 주더라고.
그래서 만들어가지고 옻칠을 하고 그랬는데.
교황청에서 누구 한 명을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공개했는데.
제 게 잘 만들진 않았어요.
제가 봐도 다른 사람 게 디자인 좋은데 선정한 이유가 교황님의 품성하고 맞대.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좀 검소하고. 옻칠에다가 그것만 딱 했거든.
자개는 조금만 쓰고.
-검소하고 심플하면서 교황이 너무 화려해도 안 되고.
그런 품성과 맞다, 이미지와 맞다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겠네요.
-그 인연으로 제가 교황님이랑 만난 거예요.
-만나셨어요?
-만났죠. 명동성당에서 포옹해 줬지.
-의자 이렇게 앉으시고.
-앉으셔 가지고 저를 이렇게 만져주면서 포옹해 주고.
지금도 떨리죠, 가슴이. 그 생각하면. 그래서 그런 축복을 제가 받았고.
제가 그때 두 개 만들어서 하나는 교황님이 가져가시고 하나는 우리 미술관에 있죠.
-미술관에 지금 있군요.
-어떤 사람이 팔라고 그러는 사람도 있는데 제가 안 팔았어요.
-그거는 안 파셨군요.
-여기서 많은 사람이 보고 또 예쁨도 받더라고.
-누군가가 한 10배 줄 테니 팔아라라고 하면 혹시?
-그런 사람이 좀 있었는데 제가 안 팔았어요.
-확실히 돈에 움직이시는 분은 아니신 거고.
-돈하고 하려면 지금이라도 이거 안 해야지.
-못 하죠.
-이거라도 안 해야 되는데 재밌어요, 근데 이게.
-이렇게 문화와 예술로 각양각층의 대단한 분들과 만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소통 창구 같은 거잖아요.
-그렇죠. 제가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요.
여기서도 이렇게 또. 이거 안 했으면 누가 불러주겠어요? 우리 또 유명한 코미디언님.
-황현희 MC님.
-말씀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아우, 저는 너무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교황과 만날 수 있는, 그게 아무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제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잘해서 잘나서 그런 게 아니고 운이라 그럴까?
하늘에서 이렇게 인연이란 게 연결이 되니까 한 거지 제가 잘나서 그런 건 진짜 아니에요.
-근데 또 운도 실력이라고 하잖아요.
-도전하고 시도하셨기 때문에.
-끊임없이 도전을 했어요.
그것만은 제가. 남들이 안 하는 건 했어요.
그건 맞아. 근데 잘한다 이건 모르겠어요, 솔직히.
-그리고 또 나전칠기가 점점 더 작가님 때문에 세계로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 감정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 그 한복판에 계시기 때문에 그 감정이 좀 어떠신지
한 말씀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걸 선택한 것도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고 제 뜻대로 이루어진 건 없는 것 같아요.
근데 흐름이 그리 가게 만들더라고요, 흐름이. 제가 뭐 잘나서 이거 해야지, 성공해야지 이 생각은 안 했고.
흐름이 그냥 가는 거예요, 물처럼. 그래서 할 수밖에 없었고.
제가 처음에 증권회사 들어갈 때 그게 망할 줄 누가 알았어요?
들어가자마자. 흐름이 그래서 가게 됐고. 또 끝나고 나서 IMF 될 줄 누가 알았냐고요?
아무도 모르는 건데 이 흐름이 물 흐르듯이 저를 누가 인도하는 것 같아요, 하늘에서.
우주가,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 흐름대로 그냥 순응해서 감사하게 작업하는 거예요.
근데 작업하는 시간이 즐거워요, 지금도.
-많은 청년분들한테 좀 힘이 되는 말씀인 것 같아요.
어떠한 목표를 잡고 거기까지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봐야 돼요.
그거 어떻게 달성해서 갑니까?
가다가 좀 쉴 수도 있고 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을 선택할 수가 있고.
또 좀 엎어질 수도 있고 뒤로 좀 백할 수도 있지만 결국에 하고자 하는 길로 가고 있는 길이다라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작가님도 그 길을 지속적으로 가셨던 것이고요.
-그렇죠.
제가 어디서 강의 좀 해 달라고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분들한테 얘기하는 게, 젊은 분들도 있고.
당신을 좀 알아라.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그래서 그걸 해야지 남 따라가 가지고 되겠냐. 사람이 다 다르잖아요.
저 자개 보고 빚이 다 달라요. 사람도 다 다르고 고객들도 좋아하는 게 다 달라,
사는 게.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걸 사는 사람도 있고. 좋다 그러면 또 안 사고.
아무도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너 자신을 좀 알아서 당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거 그다음에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고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 길을 없는 길이라도 자기가 만들어서 가야 된다.
실패는 많다.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역경을 이겨내면 경력이 된다.
-두음법칙 활용하신 거네요.
-역경을 이겨내면 경력이 된다. 시련을 이겨내면 실력이 된다. 이런 말을 제가 합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좀 잘 알아야 되고.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가 뭘 잘하는 사람인지 이런 거에 대한 충분한 생각을
좀 해 봤으면 좋겠다라고 많은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시는 거군요.
뭘 잘하시는 분이세요?
-저요? 저는 방송.
-방송. 다음 진행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작가님이 또 모아둔 조개 껍데기의 절반을 쓰실 만큼 꾸준하게 지금 활동을 해 오고 계시잖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 남은 조개 껍데기 다 쓰는 거 말고 어떤 계획이 또 있으실까요?
-저는 천 년을 이은 나전칠기에 기존에 있는 나전칠기를 깨가지고 새롭게 변신했거든요.
기존에는 까만 것만 있었잖아요.
그걸 컬러도 하면서 회화로도 했는데. 이걸 다시 한번 또 깨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깨고 싶은, 또 새로운 작품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새로 나온 거예요.
이게 장철 작가하고 같이 컬래버해서 만든 거예요, 회화 작가랑.
-이게 회화 작가님이 그리신 그림이고 이게 작가님께서 그리신 거고.
-그래서 같이 컬래버를 좀 하고 도자 작가랑도 컬래버하고 한지 작가랑도 컬래버하고 같이 컬래버를 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좀 기존 이미지를 또. 깨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하나는 2년 전에 우리 미술관에 장애학교 있잖아요.
학교에서 한 열 분이 오셨어, 장애우들이. 근데 자폐아인가 봐.
근데 한 30살 정도 된 앳된 소녀 같은데 제 손을 꼭 잡고 선생님, 나 이거 배우고 싶어요 그래.
-나전칠기하는 걸요?
-그래서 그게 지금도 가슴에 아직도 있어요. 제 가슴을 울려요.
그래서 제가 사회에 나와서 요즘에 작업하는 게 제 작품을 보면서 미술관에서
여러분이 이걸 보고 행복하고 그 빛을 옆에 있는 사람한테 좀 나눠주고.
여자분들 오면 좀 남편한테 잘해 주라고 제가 그래요.
이 빛을 보고 남편한테 좀 잘해 주고.
-이 좋은 빛을 보고.
-남편들도 좀 아내한테 잘해 주고 이웃 사람한테 사랑을 줘라. 빛이 사랑이잖아요.
그래서 얘기하는데. 그 젊은 30살 된 앳된 소녀가 손을 잡고 한 게 아직도 뭉클해서
제가 일반적인 사람들은 많이 가르쳐봤지만 끝까지 배우질 못해. 요즘에 이걸 안 해.
한 5년, 10년 해야 이렇게 좀 올라가는데 그게 안 되니까.
-거기까지 가기도 힘들군요?
-어렵죠. 힘든 거 안 하려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 자폐아 이런 사람들은 한 번 하면 꾸준히 할 것 같아요, 제 느낌에.
물어봤어요, 전문가들하고. 이 사람들은 집중하면 재밌으면 한다.
그래서 가슴에 와닿기 때문에 제가 자폐아들을 좀 가르쳐서 또 봉급도 주려고 제가.
봉급도 주면서 가르치고 그들을 세계적인 작가로 저보다 더 이름나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그걸 만들어주는 게 제 소원이에요.
-그러니까 많은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힘든 친구들에게
좀 더 많은 희망과 기회를 줘보는 게 또 작가님의 꿈이시군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행복하게.
-그분들도 행복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나도 더 행복하고.
-꿈과 희망을 같이 만들어가는.
-그거 하고 싶은 거예요.
-너무 좋은 말씀을 마지막까지 해 주시네요.
오늘 대화 너무 즐거웠고. 대표님, 작가님을 통해서 이런 얘기를 들어보니까
과연 다음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계속 저 스스로 질문하게 됐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조차도 지금 일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자, 그럼 나는 이다음은 무엇일까라는 거를
순간적으로 좀 여러 번 생각했던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마지막 질문 한번 드리겠습니다.
작가님에게 있어 나전칠기란 무엇인지 한번 짧게 한 말씀만 좀 부탁드릴게요.
-이것은 사실 제 인생의 스토리예요. 자개의 빛이 제 인생을 만든 거거든요.
인간은 소우주라고 봐요.
대우주가 있으니까. 그럼 이게 소우주, 소우주 조그만 조각 조각이 뭉쳐서 큰 대우주를 만든 거거든요, 이게.
그래서 코스모스란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들도 어떤 인연이 있어서 만나고 못 만나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소우주, 소우주가 서로 사랑, 딱 한마디 사랑이야.
사랑해서 큰 우주를 만들어서 큰 빛을 만들자라는 뜻이 있는 거예요, 이 작품이.
그래서 제 작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느끼고 남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서
자기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해 주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게 제 작품 하면서.
또 나전은 그거다 이거예요. 사랑이다, 빛이다. 그다음에 저의 스토리다.
제가 생각했던 영적인 그런 감을 이 빛으로 표현을 한 거죠.
-알겠습니다.
오늘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게 그림이 왔을 때 팽이야 뭐야 막 이랬다가 그랬던 제가 마지막에 부끄러워지네요.
-저도 반성하게 되네요.
-무슨 말씀을.
-오늘 대화 너무 즐거웠고요. 오늘 이야기를 또 나누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생의 진짜 전성기는 어쩌면 가장 나답게, 나다운 길을 어떻게 가느냐.
이런 길을 선택했을 때 시작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게 되네요.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작가님이 처음에 또 증권맨 포기하셨을 때 모두가 안정적인 길을 포기했다고 말하기는 했겠지만
대신에 또 꿈을 얻으셨고 결국 그 꿈을 이뤄낸 그런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조각, 한 조각 이어붙인 이 자개처럼 용기와 시간이 만들어내준 김영준 작가님만의 작품 세계.
정말 앞으로 더욱 많이 기대가 됩니다.
오늘 소중한 이야기 들려주신 김영준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탑클래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
저는 진행을 맡은 황현희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나운서 신아림입니다.
-신아림 아나운서.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하면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르잖아요.
그래서인지 우리의 성공을 떠올릴 때도 남들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올라선 그런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 프로그램명도 탑클래스잖아요.
-그렇죠.
-계속해서 또 많은 분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시고 또 힘들게 얻은 자리인 만큼 쉽게 내려오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내려오는 게 사실 더 어려운 거거든요.
근데 오늘 만날 주인공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안정적인 자리 한가운데서 과감히 내려오는 선택을 이게 진짜 어려운 거거든요.
내려오는 선택을 하셨다고 해요.
-또 남들이 아깝다고 말할 자리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길을 내려놓고 전혀 새로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숫자와 분석의 세계를 떠나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분입니다.
나전칠기 명장으로 불리는 김영준 작가님 모셔보고 오늘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 오늘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먼저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한번 좀 부탁드려볼까요? 카메라 보시고 한 말씀해 주십시오.
-안녕하세요.
저는 나전칠기를 가지고 기존의 가구 장롱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회화로 도전하고 있는 나전칠기 작가 김영준입니다.
만나봬서 반갑습니다.
-(같이) 반갑습니다.
-나전칠기 예전부터 우리가 많이 들었던 내용이고.
또 저희 집에도 예전에 자개장이라고 해 가지고 그게 다 나전칠기의 작품들이죠.
-옛날 부잣집들은 혼수할 때 자개장롱을 갖고 시집가는 게 꿈이었죠.
-부잣집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때 당시에는 이상하게 다 자개장들이 많았어요.
집집 곳곳마다. 그런 기억들이 얼핏 나는데 다 오래됐다고 해서 버리고 그래서 좀 아쉬웠던 기억이 있는데.
우리 전통 자개공예라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나전칠기가 무엇인지 좀 짧게 한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전 하면 나는 이제 소라, 전복이거든요. 소라, 전복, 진주를 나라고 그래요.
소라 라 자. 그걸 갖고 저는 그걸 꾸미는 거란 말이에요.
칠은 옻칠이고 기는 기물이거든요. 그러니까 장롱 그다음에 무슨 반닫이 이런 가구 있잖아요.
그거에다가 옻칠을 해서 자개를 거기다 수놓은 거. 그래서 옛날에는 다 가구를 많이 만들었죠, 나전 장롱.
-장이었죠.
-그래서 그걸 나전칠기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다 나전칠기다라고 총칭했던 거군요?
-그렇죠, 자개하고 옻칠을 같이 해서 가구 만든 거. 그걸 나천칠기라고 했죠.
-나전칠기를 하신 지는 몇 년 정도 되셨어요?
-지금 33년 됐어요.
-33년 동안요.
-제가 증권회사에서 84년에 입사해서 94년에 나와서 그 퇴직금 갖고,
퇴직금하고 주식을 팔아서 한 6억 갖고 시작한 거예요. 근데 몇 년 만에 다 날렸어.
-그럼 8~90년대가 애널리스트로 활동하신 시기인 거잖아요.
-네, 84년부터 94년까지.
-애널리스트로도 활동하셨어요?
-제가 동서증권하고 동서경제연구소에서 투자상담사 자격증도 있고 분석가 자격증도 있어서 그때 제가 좀 날렸었어요.
-그러시군요.
-이름을 날리신 거죠?
-MBC에서 제가 뉴스데스크도 나가고 출발 라디오 행진이라는 걸 한 3년간 진행하면서 그만뒀어요, 제가.
그만두고도 10월에 그만뒀는데 내년 3월까지는 해 줬어요, 방송을.
그리고 끝나고 이거 했습니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름을 날리시고 또 탄탄대로를 걷고 계셨잖아요. 근데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그게 제 뜻이 아니고요. 제가 사실 간단하게는 ROTC 제대하면서 국제그룹의 동서증권에 입사를 했어요, 84년에.
-또 ROTC까지?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데요.
-제가 9월 1일에 입사했는데 84년 9월 1일 잊어먹지도 않아,
6월 30일 제대해 가지고. 9월 1일에 입사했는데 85년 2월 12일이 총선거였어요.
2월 13일에 동서증권이 해체된 거야, 그룹이. 그래 가지고 그때 당시
정인용 총리가 텔레비전에서 국제그룹 해체 이래 가지고 국제그룹에 들어간 지 한 6개월 됐는데 그룹이 해체가 된 거예요.
동서증권이 나중에 극동건설로 넘어갔거든요.
그때 이제 증권이 붐이 돼가지고 그때 많이 컸어요.
제가 자본금이 200억일 때 들어갔는데 나올 때 2400억인데.
그때 제가 조사부에 있으니까 연구소에 책을 많이 읽고. 인생 이모작이란 책을 제가 읽고 감명을 받았어요.
일본 사람이 쓴 건데 그때 일본 사람이 수명이 제일 길잖아요.
근데 육십에 정년퇴직하면 앞으로 2~30년 뭐 할 거냐. 지금부터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라, 이모작을.
그런 걸 감명 받고. 그때 제가 모시던 분이 사실은 손병두 전경련 회장님이셨어요.
동서경제 사장님이신데 이분이 동서증권 사장으로 가시려고 그러다가 못 가셨어요.
그래서 전경련으로 가시면서 그만두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때 지점으로 발령 나서 이게 그만두라는 모양이구나 하고 그때 그만뒀어요.
그 두 가지 이유로. 제가 모시던 분이 사장으로 못 가시고 전경련을 가셔서
저도 좀 그 라인이 있잖아요. 그다음에 또 인생의 이모작을 앞으로 뭐 할까?
증권이 그리고 제가 조사부에 있었으니까 연구소에. 그래프가 꼭 쌍봉인 것 같아.
이게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딱 드는 거야.
-전문용어 나왔습니다.
-쌍봉.
-촉으로. 제가 그래프를 많이 그렸거든요.
그래서 딱 끝날 것 같아서 여기서 그만두라는가 보다 하늘이. 그래서 종로지점 발령 딱 나서 하루 갔다가 그다음부터 안 나갔어요.
-말씀을 들어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인생 이모작이라는 좋은 책도 읽으셨고 이게 인생이 영원한 것은 없다.
계속 배우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현업에서도 이런저런 일이 있으셨겠지만 다른 뭔가를 하기 위해서 내 인생을 끝까지 뭔가 하기 위해서
한쪽 일을 좀 접으셨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퇴사 결심하시고 처음에 미술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럼 이전부터, 지금 약간 좀 퍼즐을 맞춰보는데 ROTC 하셨고 증권회사 계셨고 애널리스트셨는데. 미술을 다시 한다?
이거 좀 안 맞는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학창시절에 미술에 대한 꿈이 있으셨던 겁니까?
-제가 초등학교 때는 미술을 잘 그렸어요. 글씨도 잘 쓰고.
그래서 중학교 때도 미술 선생님이 미대 갔으면 좋겠다고 그러는데 강원도 시골에서 미대 간다는 게 그건 너무 어려운 거고.
-또 강원도 출신이시군요?
-네. 그러니 뭐 어떻게 미대를 가?
미대 가려면 진짜 지금도 돈 많이 들지만 그때는 레슨받아야 됐어요, 교수님들한테.
그래서 미대 가는 건 생각 못했는데. 근데 그림 그리는 거, 글씨 쓰는 거 되게 좋아해요, 지금도.
그래서 조사부도 가고 거기서 글도 많이 썼는데.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게 뭘까.
또 이 사회에 좀 뭔가 남기고 싶은 게 뭘까. 증권회사에서 제가 강의도 많이 했잖아요.
지금도 생활신조가 남들이 가는 반대편에 꽃길이 있다예요.
남의 길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거야. 저는 제 길을 가겠다는 거거든요.
마이웨이죠.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고. 그래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데
왜 나전칠기를 했냐면 제가 조사부 출신이니까 분석을 잘 하잖아요.
미대 나오고 서울대 나오고 다 좋은 대학 나오고 외국 유학 갔다 온 미술 화가들이 너무 많아.
-나의 경쟁력은 뭘까?
-내가 거기랑 해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
그럼 도자기도 생각하고 가죽공예 다 생각했어요.
근데 그분들도 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다 명문대 나오고 그렇게 오래한 사람하고 저하고 해서 되겠어요?
-비교가 안 된다.
-안 되는 거지.
-그래서 내가 잘 하는 건 무엇인가를 고민하셨군요?
-그래서 남들이 안 하는 게 뭘까? 나전칠기는 그때 다 떠날 때예요. 가구들 다.
-맞아요, 그 시기가 맞아요.
-94년도에 거의 다 떠났어요.
-그때 우리 엄마가 그거 버렸어요.
-그렇죠? 버리는 걸 내가 봤어.
-맞아요, 맞아요.
-어머님이 어려서부터 제가 중학교 때 자개장을 보면서 그렇게 예뻐하셨어 닦고.
그걸 보면서 저 자개가 지금 버려지는데 저걸 내가 해야겠다, 아무도 안 하니까.
이건 아무도 안 하니까 내가 해야겠다는 거야, 버리니까.
-저점 매수 아닌가요?
-그러니까 주식을 하시는 분이라 확실히. 남들이 떠날 때 나는 들어간다. 이거 아닙니까?
모두가 축제를 외치고 있을 때는 안 들어가고. 그러니까 모두가 축제를 하는 현대미술 이런 건 난 그걸 안 해.
-자신도 없어, 해 봐야 내가.
-다 버릴 때 자개 버릴 때,이때 저점. 이때 들어가신 거군요.
-남들 버릴 때, 안 할 때 안 하니까.
또 미술은 다 대학 나오고 이런 사람들이 그리는데 여기는 다 장인들밖에 없잖아요.
작가가 없었단 말이야. 장롱 만드는 거. 이 사람들이 나이들이 다 드셔서 떠나니까
내가 이걸 한번 새롭게 해 보겠다. 남 안 하니까.
그래서 증권회사 다녔기 때문에 제가 자개를 한 거예요. 남들 안 한 걸.
-그러셨군요. 근데 아시겠지만 그렇게 남들이 떠날 때 시작을 하시면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죠.
-엄청 걸리고 실패를 많이 했죠.
-이건 누구한테 배우신 것도 아니라면서요, 독학하셨다면서요?
-그때는 왜냐하면 장롱밖에 안 했잖아요. 장롱 하는 사람들 제가 처음에 가구 했다고 그랬죠.
그런 사람들 내가 3명 같이 썼어. 그래서 만들었어.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 다 알아. 아는데 그 디자인을 벗어나질 못해, 이분들이. 그거밖에 못해.
-새로운 걸 못한다?
-못하는 거야. 그건 안 해 봤다는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해?
내가 답답하니까 내가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계속 연구를 한 거예요.
연구를 해서 또 컬러도 만들고. 제가 사실은 우리나라 옻칠 정제 특허도 제가 갖고 있어요.
갖고 있고. 컬러 옻칠 만드는 특허도 제가 갖고 있고. 그때 미쳐 가지고 막 그냥 특허도 냈어요.
그래서 새롭게 많이 했는데. 그래서 가구도 좀 바꿨지만 가구 자체가 안 되는 거라서
그걸 벗어나서 다시 또 실패해서 회화로 이제 바꾼 거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이전까지 배운 것들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냥 내가 나의 길을 개척하겠다 해서 새로운 시도도 하고 특허도 많이 내시고
도구도 만드시고. 새로운 방법을 계속 연구하신 거네요. 대단하십니다.
-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생각이 드는 게 보통 나전칠기 하면 국내에서 연구를 하고
또 독학을 하실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유학을 가셨다고.
어쩌다가 또 유학을 선택하시게 된 거예요?
-제가 이게 뭐냐 하면 디자인이 문제라고 봤거든요. 디자인이.
그때 막 디자인, 디자인할 때예요. 이게 디자인이 가구 하니까 안 되니까.
이게 그림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되냐?
제가 최초로 이런 걸 하니까. 디자인을 이게 우주거든요, 코스모스라고.
-우주요?
-이 작품 말씀하시는 거죠?
-네.
-저는 사람 옆모습인 줄 알았어요.
-이 밑에 거는 저거고 이 위에 거는.
-저는 팽이인 줄 알았어요, 팽이. 약간 이게 보는 사람마다 다르네요. 우주를 형상화한 거거든요.
-어떤 사람은 괭이라고 괭, 꽹과리 같기도 하고.
-징, 괭? 그러네요.
-저는 코스모스를만든 거예요, 우주를.
우주를 조각조각 내서 만든 건데. 그래서 이런 회화로다가 바꾸면서도 실패를 계속했죠.
남 안 한 거 하니까. 제가 해야 되니까.
근데 실패 속에서 배웠어요, 하나씩. 그럼 실패는 또 안 해.
근데 하다 보면 다음엔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해야지가 자꾸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걸 제가 느껴요.
근데 지금도 실패를 해요. 또 새로운 걸 하려고 그러니까.
-다들 실패가 두려워서 안 한단 말이죠. 근데 그런 게 전혀 없으셨네요?
-근데 이 길 아니면 이제 갈 길이 없으니까 그냥 계속해서 가는 수밖에 없죠. 엎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또 가고.
-유학도 한 곳이 아니라면서요? 여러 군데를 좀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하셨다면서요?
-처음에 미국에 와서 가구했고.
-처음에 미국 가서 가구를 공부하셨고.
-디자인 공부하고 와서 가구를 현대화했고.
실패해서 이탈리아 도무스 가서 다시 또 디자인 공부해서 이렇게 회화를 했고.
-그때 미술 공부를 하신 거죠?
-네. 그다음에 옻칠 있잖아요.
옻칠을 또 일본 가나자와 가서 또 배웠고. 거기서 이제 배워서 컬러 옻칠도 제가 내고 특허도 내고 그랬고.
국내 대학원 서울과기대에서도 디자인대학원도 다녔고. 공부를 계속했어요.
-지금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연세가 한 120세 정도 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좀 들기도 해요.
그러니까 이런 많은 일들을 그렇게 단시간 안에 얼마나 오랫동안 하셨는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열심히 사셨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열심히 살았어요.
-대단하십니다.
-이거밖에 몰랐어요.
-열정이 정말.
-하루에 20시간 한 적도 있어.
-하루에 20시간이나 뭔가에 빠져서 몰입했던 시간. 많은 걸 배웁니다.
사실 몰입도 선택과 집중을 해서 몰입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어렵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그럼 또 작가님이 워낙 많은 곳에 유학을 다니셨잖아요.
그럼 우리 전통의 나전칠기 제작 방식이랑 조금 다른 작가님만의 방식이 또 따로 생겼나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있잖아요. 어떤 문양이 있잖아요.
그럼 종이에 붙여가지고 똑같은 문양을 20개, 30개 만들었어요, 장롱이.
그래서 한 군데에서 만드는 거는 한 작품 갖고 한 30개, 40개씩 만들었잖아요, 똑같은 문양으로.
근데 이거는 자개도 다 다르지만 하나에 하나씩밖에 못 만들어요.
-그렇죠, 하나의 모양만 나오죠.
-똑같이 저도 이걸 못 만들어요. 이 컬러하고 자개가 똑같은 거 없고.
-딱 하나?
-네,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걸 제가 지금 보고 있네요?
-이거 저도 만들래도 못 만들어요.
이런 자개도 없어요. 그러니까 자개를 골라서. 이건 30년 된 전복 자연산인데 그 빛이 묘하거든요, 볼 때마다.
그래서 제가 하는 건 기존 거하고 달리 하나에 하나밖에 없다.
-이게 빛이 이쪽에서 볼 때랑 이쪽이랑 볼 때랑 또 달라요.
-매일 달라요, 볼 때마다.
-매일 다릅니까?
-볼 때마다 달라요.
-진짜 묘하네요. 진짜 우주 같네요.
-저도 이 빛에 빠져서 자개를 하게 된 거예요. 제가 이걸 친다, 안 한다 이런 의식이 없더라고요.
한 5분 이상 하다 보면 몰입이 돼서 계속 저도 모르게 이게 나가요, 저도 모르게 빛이라는 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런 뜻으로 얘기를 하죠. 저는 기존 건 안 하거든요. 왜냐하면 안 하는 걸 하니까.
-작가님께서 사용하신 이 재료가 이게 나전칠기도 재료가 있잖아요, 꽤?
-그렇죠.
-굴 껍데기 가지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전복도 있고 어떤 조개. 강에서만 나는 조개하고 바다에서 나는 거 하시는데.
저는 굉장히 좀 다양하게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근데 꼭 자연산 전복만 사용하신다고?
-이건 전복하고.
-이유가 있는 겁니까?
-전복 빛이 예쁘더라고요. 전복도 종류가 여러 가지예요.
한 가지가 아니고. 멕시코에서 난 거 그다음에 뉴질랜드에서 난 거 색이 다 달라요.
한국에서 난 거. 그래서 저는 국산 전복을 많이 쓰는데. 요즘에는 채취를 안 해요.
-잘 안 나오죠.
-양식밖에 안 하니까 빚이 또 옛날만 못해요. 그래서 되게 안타까운 거죠.
-양식은 좀 빛이 안 좋은 건가요?
-이거보다는 빛이 안 좋아요, 자연산보다는.
-안 좋다라는 게 빛이 덜 난다라는 얘기예요?
-조금 하여튼 묘하게 제가 볼 때는 좀 덜해요.
-덜 고급진 느낌?
-그건 또 오래한 거하고 또 이건 양식은 몇 년 안 하잖아요.
그러니까 빛이 좀 덜 아물었다고 그럴까? 빛이 나긴 나는데 저는 그걸 볼 수 있죠.
-그렇군요. 그래서 무려 20년 전부터 자연산 전복 껍데기를 사들이고 계셨다는 얘기도 저희가 들었어요.
그게 맞아요?
-그게 옛날 한경 창간 50주년 기념하면서 제가 전시를 했어요. 근데 한경에 이렇게 신문에 난 거잖아요.
나전칠기 김영준 작가 전시. 그러니까 그걸 보고 사람이 온 거야, 어떤 사람이.
-전복을 주겠다고요?
-네, 그래서 나한테 와가지고 혹시 이 전복 껍데기 필요하냐? 그래서 필요하다. 저는 알았지.
이제 한국에서 못 만드니까, 가구를 안 하니까.
근데 이분들이 가공을 했는데 팔 데가 없는 거야.
자개장롱이 다 없어지니까. 근데 귀한 건 알지 이분들이. 그래서 몇 년을 갖고 있었어.
-자연산 전복 껍데기를?
-껍데기를 갖고 있는 걸 저보고 가져와서 이거 사겠냐는 거야.
그래서 얼마냐 그러니까. 뭐 얼마래. 그래서 제가 사겠다고. 제가 가격을 알잖아요.
그러니까 한 반값 부르더라고. 그래서 제가 샀어, 그거 보냈어.
그때는 돈이 좀 있을 때라. 근데 이분이 자기 아는 사람들한테 다 얘기를 한 거예요.
그 김영준 작가가 이거 사주더라. 그러니까 이거 다 가져온 거예요.
-처치가 곤란하니까 그분들은.
-그 사람들은 버리기에는 아깝고 쓰질 못하니까.
-고객을 찾았네요.
-싸게 넘기니까.
-그래서 제가 한 1억 원어치 샀어요, 그때.
-껍데기만요?
-네, 죽을 때까지 쓰겠다고. 근데 지금 한 반 쓴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쓸지 모르겠어요.
-아니 그것도 엄청. 보관을 어떻게 합니까?
-보관은 이거는요. 그대로 놔두잖아요, 안 썩어.
-변화가 없군요. 곰팡이가 핀다거나?
-없어 없어.
-전혀 없어요?
-네. 진짜 자연산 이런 빛이 그대로야.
-그럼 얘도 안 변하겠네요?
-안 변하죠.
-그걸로 만든 얘도?
-안 변하죠.
-얘도 그 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형이 안 되는. 그래서 전복 껍데기, 자연산 전복 껍데기만 사용하시는 거군요?
-네.
-진짜 재밌네요. 미래를 예측하시고 어떻게 보면 20년 전에 전복 껍데기를 많이 사놓으셨기 때문에.
-제가 증권회사 다녔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거예요.
-지금은 안 나온다라는 거죠?
-자금은 없어. 돈 주고도 못 사요. 가격도 없어.
-그럼 나머지 반 남은 거 다 쓰시면 작품 활동 안 하시는?
-이제 못 하죠, 끝이죠.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 겁니까?
-그런 작품은 안 나오는 거야, 이런 빛은. 지금은 한국에서도 가공도 안 하잖아요.
가격이 비싸니까. 누가 가공해요?
사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베트남 이런 나라에 가서 판으로 만들어오는 거야.
그걸로 쓰니까 빛이 안 나는 거야.
-그건 또 색깔이 다르군요?
-다르죠. 그래서 제 걸 아는 고객들은 김영준 작가 작품은 빛이 다르다라고 아는 분들은 와서 제 걸 또 구입하고.
-그럼 지금 작가님이 또 주력하시는 작품이 이런 회화인가요?
-요즘은 거의 다 회화예요.
근데 또 선물용으로 VIP들 회사라든가 이렇게 높은 데서 주문할 때는 그런 작품을 만들죠.
근데 거의 이제 회화를 하죠.
-보면 너무 정교하거든요. 이거 자개 하나하나 직접 이렇게 조각 내서 붙이시는 거잖아요.
진짜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보통 얼마 정도 걸려요, 하나 완성하는 데?
-이런 거 하려면 몇 달은 걸려요.
-몇 달이요?
-하나 하는데. 그러니까 제가 큰 장롱한 거는 4년 6개월 걸린 게 있어요.
-이거 하다가 그러신 적은 없어요. 사람이다 보니까 이렇게 하다가 아유, 안 해.
-그런 적도 있죠, 힘들 때도 있고. 여러 가지 마음으로. 아, 이게 뭐냐?
지금 이 좋은 세상 날씨 좋은데. 앉아서 이거 쫀쫀하게 이만한 걸 자르고 있으니까.
-계속 붙이셔야 하잖아요.
-눈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몸도 무척 아팠었어요.
-그걸 이렇게 하면서 결과물이 나오면 모든 걸 다 이겨내는 거잖아요.
-그러면서도 항상 아쉬움이 있어요, 저는. 이걸 보면서 더 좀.
그래서 이거 하나 봐. 이게 좀 부족해요, 저는. 그러니까 다음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또 하면 또 부족해요. 지금까지 계속 부족해요.
-그래서 작품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시고.
아, 다음에는 이렇게 좀 해 봐야지라는 생각도 하시고.
-그러니까 설렘이 있고 아직까지 좀 떨려요.
뭐 새로 한다고 그러면. 근데 하고 나면 뭔가 또 부족해. 이번에 보완해야지 하면
또 다른 게 부족한 면이 생기고. 작가가 만족은 없나 봐요.
남들은 멋있다 이러는데 저는 보면 아, 저게 좀 아쉬운데? 이런 게 항상 있어요.
-계속 그래서 발전해 나가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 2007년에 이런 기회가 또 오셨다고 그래요. 프랑스 문화부 장관 초청으로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했는데. 파리에서 전시회를 연 거면 문화와 예술의 이런 작품에
거의 최고점에 있는 곳 아닙니까?
거기서 작품회를 열었으면 엄청 기분이 좋으셨을 것 같아요.
그때 상황 좀 설명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가구에다가 이걸로 했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이걸 계속해 가지고 국내 전시를 나갔어요.
근데 나전칠기인데도 특이하긴 특이한데 관심은 있는데 잘 구매를 안 하는 거예요.
국내 전시를 해 보니까 잘 안 팔려요.
그래서 국내가 아니고 해외다. 그래서 이탈리아, 프랑스 이런 쪽으로 1년에 한 서너 번씩 나갔어요.
한 번 나가는데 한 3~4000만 원 들어요. 1년에 1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거야.
-자비로 나가야 되는 거군요?
-내 돈으로 가야지. 이름이 있어, 뭐가 있어?
돈 내고 가니까. 그리고 전시를 갔는데 하나도 안 팔린 적도 있고 하나 팔린 적도 있고 그래요.
그래도 계속 나갔어. 포기하지 않고. 그랬는데 2006년도 메종앤오브제 파리라는 데가 있거든요.
전 세계 사람들이 오는데 거기 이제 나갔어요.
근데 스포트라이트가 저한테 온 거야, 언론이. 르몽드지 이런 데 있죠.
저한테 인터뷰를 이렇게 우리 아나운서 같은 분이 와서 인터뷰해 가지고.
그러니까 그다음 날 프랑스 문화부 장관, 파리시장 이런 사람들이 왔어.
비서가 오더니 내년에 전시 한 번 해 주겠다.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에서. 그때는 제가 처음으로 많이 팔렸어요.
언론의 힘이 굉장히 무서워. 그러니까 호텔 주인들, CEO들이 제 작품을 많이 사가지고.
너무 재밌는 게 여기 한국까지 왔어요,
그 비서가. 그래서 만나가지고 그럼 내가 메종앤오브제 파리를 이번에 나가니까
그거 끝나고 3일 있다가 하자, 그렇게 됐어요.
여기는 준비를 많이 했어요, 많이 했고. 여기는 그냥 대충 준비를 안 했단 말이야, 초청이니까.
여기는 이제 잘 팔렸으니까 올해. 근데 이게 안 팔리는 거야.
작년에는 그렇게 다 팔렸는데.
-오히려 신경을 더 많이 썼구나?
-더 많이 썼는데 안 팔리는 거야, 힘을 줬는데.
초충도하고 코스모스 이런 작품들이 안 팔려, 그전에는 잘 팔렸는데.
그래서 그대로 그걸 거기 가지고 간 거예요.
-프랑스 파리로 가는 거죠?
-파리에서 전시하고 문화부 장관이 초청한 파크하얏트호텔밴덤에서 전시를 한 거야, 가지고 가서.
그때 팔렸으면 전시할 게 없었어, 몇 개. 그래서 소품밖에 없었는데 안 팔려 가지고 거기 전시했는데
거기서 빌게이츠가 이거 두 점하고 초충도 두 점을 산 거야.
-(같이) 빌게이츠요?
-빌게이츠가 그 호텔에서 묵으면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그 빌게이츠요?
-그 빌게이츠가 사면서 제가.
-동명이인 아니고 빌게이츠.
-돈도 없어, 빌게이츠. 형, 캐시하니까 지갑에.
-전 세계에서 빌게이츠 돈 없다고 한 최초의 선생님.
-안에 1000불하고 1000유로 있어.
-현금은 안 가지고 다니니까.
-돈을 안 갖고 다녀. 근데 작품은 자기가 가지고 가겠대 지금. 달라. 돈을 안 내고 가지고 가겠대.
-돈 안 내고?
-돈은 1000유로 받고 자기가 지금 가지고 가겠대. 네 점을 들고.
-그냥 본인을 담보로?
-닮으신 분 아니에요? 어떻게 된 겁니까, 이거?
-돈 받으신 거 맞죠?
-제가 증권회사 다녔기 때문에 외상을 줬는데.
-너훈아 이런 분들이 계시잖아요. 나훈아의 약간.
-그 호텔의 하루에 3000만 원짜리 방이거든 거기서 자는데.
제가 들고 갖다주겠다니까 자기가 가지고 간대. 그래서 가져가더니 그다음 날 내일 돈 주겠대.
아침에 비서가 오더니 달러로 가져다주더라고요.
-현금으로?
-현찰로.
-캐시로?
-네. 그걸로 끝난 거 아니에요. 돈 이렇게 주더니 걔네가 명함을 줬는데 빌게이츠야.
빌게이츠 비서가. 그래서 제 명함 달라 해서 팸플릿에 제 메일이 있잖아요.
그리고 끝났는데. 그게 9월이거든요.
2007년 9월이야, 정확히. 근데 12월에 메일이 왔어.
OO박스 있죠, 게임기. 거기에다 자개를 붙일 수 있냐는 거야, 나보고.
그래서 플라스틱에는 붙여본 적이 없잖아요,
저 나무만 붙여보고. OO전자랑 내가 냉장고를 하면서 플라스틱에 붙이는 걸 기술을 배웠어.
그래서 파서블,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걸 붙여달라는 거야.
-게임기에?
-네, 게임기.
그래서 내가 거기다가 그때 OO냉장고 디자인할 때 하면서 매화하고 나비를 붙였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전통 매화하고. 매화에는 원래 나비가 없어요, 사실은. 작가니까 엉뚱해.
매화는 이른 봄, 겨울에 피잖아요.
근데 거기 나비가 없지. 근데 작가의 상상력으로 나비를 넣은 거예요.
나비는 자유롭고. 매화의 그걸 견뎌서 자유롭게 좀 날고 번영하라는 뜻으로 놓는데
빌게이츠가 여기 한국에 와서 잠깐 있었어. 7시간인가 있었어요.
근데 청와대 가는 건 난 몰랐어. 근데 빌게이츠가 청와대 간다는 소문은 있잖아.
그래서 마주쳤는데 그날 청와대에 그걸 줬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그걸 어떻게 알고 나를 취재를 한 거야.
-그 게임기를 대통령에게 선물로 준, 자개를 한 게임기를?
-그걸 만족해 가지고.
그러니까 한국 대통령이 줘야 되는데 저는 빌게이츠는 천재 중에 천재라고 봐요.
OO박스에 자개를 붙일 생각을 했다는 게 아무도 못한 거야.
근데 그분은 한국 대통령한테 한국 전통 자개를 붙인 걸 선물로 준 거야.
-게임기를요?
-게임기를.
-대통령이 게임 안 할 텐데요.
-뭐 게임하겠어요?
-자녀분이 할 수도 있죠.
-아니 그게 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었잖아요?
저도 기억나는데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안 하셨을 것 같은데 게임을.
-그걸 대통령이 갖고 있는 게 아니고 나라에 넣는 거야.
OO박스라는 거에 자개가 붙인 걸 영원히 갖고 있는 거야, 그건. 개인을 주는 게 아니고.
대통령기념관 거기에 있는데.
근데 그걸 생각하는 자체가 플라스틱에다가 게임기 젊은 애들의 한국 전통 나전칠기를 붙인다?
그런 생각이 가능해요? 저는 그래서 천재라고 보는 거예요.
그 사람이 그게 조선일보에서 크게 나가지고 한 주에 전면도 나고 두 번 나니까
그다음에 빌게이츠가 주문을 좀 더 해 가서 다른 디자인으로. 그건 똑같은 거 아니고.
그래서 잡스를 하나 줬나 봐. 잡스한테 연락이 온 거야.
-애플의 스티븐 잡스요?
-잠깐만, 이거 지금.
-약간 친구분 얘기하시는 것 같지 않아요? 지인분.
-아니 지금 술 한잔하시고 뒷얘기 듣는 것 같은데. 이게 뭐 그냥 술술 나오네요.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
-저는 상상 못한 사람들인데.
-이런 유명한 분들이 다 관심을 가지시니까.
-그분이 그때는 OO폰 처음 나올 때예요. 정확히 그게.
-2008년, 2009년.
-2009년이야.
빌게이츠가 2007년도 해서 2008년 5월에 대통령 만났고. 잡스가 2009년도에 OO폰 출시할 때
제가 가죽으로다가 만들어준 거예요.
-케이스를요?
-케이스를.
나비 딱 붙여가지고 하나. 근데 너무 웃긴 게 디자인이 그 당시 제가 작업하다가 나비를 그때 막 좋아했거든요.
빌게이츠에도 나비를 붙였고 초충도 이런 데다 나비를 붙였다고, 나비를 좋아해가지고.
근데 나비가 작업하다가 좀 큰 게 있어. 그래서 디자인을 2개를 해달랬는데 제가 디자인한 거는
바둑판처럼 된 이런 거예요, 현대적인 디자인이지. 그걸 했는데 이게 좀 부족한 것 같아.
그래서 나비가 하나 있어서 나비를 뚝 대보니까 나비가 커, 안 맞아. 다시 잘라서 하긴 좀 그렇고.
그걸 이렇게 꺾었어, 내가 옆으로. 근데 그게 좋다는 거야.
디자인도 말이에요. 힘 준 게 또 안 되는 거야.
-왜냐하면 그분이 또 사과 한 입 먹는 디자인이잖아요.
-꺾인 게 좋다는 거야.
-나비 날개 하나 꺾어야 되는 거죠.
-커서 꺾었어, 옆으로. 그게 좋대. 나보고 기가 막히다는 거야.
-그도 디자인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으시거든요.
-그러니까 그걸 100개를 주문해서 오케이 해 가지고 파는 게 아니야, 그 사람들은.
자기 지인들에 선물하는 거지. 다 못 주고 돌아가셨을 거야 아마.
-야, 이거 참.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뒷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때 빌게이츠를 만나고 나서 그 이후에 이렇게 일이 커질 줄도 모르셨을 것 같고.
프랑스 가서도 원래 기대는 거기에서 발표회 때 많이 팔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다른 곳에 가서 거기서 빌게이츠 만났고, 빌게이츠가 주문했고 그게 대통령 선물로 들어가고.
잡스한테도 선물을 줬는데 그게 또 많은 분들한테도 알려지고.
-그리고 조선일보 전면 나오고 그때 TV 나오니까 돈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더라고. 작품 사가려고 현찰로.
-그걸 왜 조용히 얘기하시는 거예요?
-누구라고 얘기 못 하고.
-비밀처럼 얘기하십니까?
-근데 너무 웃긴 게 있어. 제가 작업하다가 마음에 안 든 게 있잖아요.
옆에 이렇게 내놨어. 근데 이렇게 보더니 이건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
저건 뭐냬?
그래서 제가 뭐 하긴 했는데 마음에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그냥 걸지 않고 놔놨습니다 했더니 좀 볼 수 있냬.
그래서 보시라고. 이렇게 꺼내서 보더니 그분들은 말씀하시는 것도 참 고급스러워.
제가 구입할 수 있어요? 그렇게 물어봐.
-누가요?
-손님이.
-손님이, 손님이? 또 빌게이츠 말씀하시는 줄 알고.
-제가 구입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고민하다가 좀 저한테는 부족한데, 저한테는 부족한데 그 사람은 그게 마음에 드나 봐.
그럼 뭐 팔아야지 어떻게 해, 돈도 없는데, 그걸 하나 처음에 사신 분이 그걸 하나 산 게
인연이 돼 가지고 지금까지 사.
-그럼 몇 년 전. 20년 된 거 아닌가요?
-지금까지 사. 어떻게 돈 떨어지는 걸 아나 봐. 이번에도 사고.
-되게 재밌게 얘기해 주시는 거 같아요.
-너무 유쾌하시다.
-그러니까 그런 한 번의 일들.
이 모든 것은 작가님이 내 돈 몇천만 원을 그때 당시에 굉장히 큰돈이었을 텐데 들여서
해외로 나가서 작품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잖아요.
전혀 없는 일이잖아요.
-도전했기 때문에.
그것도 빵 찼는데 또 간 거고, 또 간 거고. 그래서 빌게이츠도 만난 거고 프랑스에 초청돼 전시한 거고.
-이게 국내에서 안 팔린다고 해서 그것도 해외 나가면 더 안 좋아하겠지.
그냥 여기서 만들다 끝내자고 계속 한국에서만 만들고 있었으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죠.
-그럼 저는 이거 못 하고 지금 절에 가 있든지.
-그리고 또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도 같은 일이 또 있었어요? 작품 제작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것도 참 사람이 있잖아요.
제가 그때 이대 교수 할 때예요. 근데 신문을 하나 보고 또 인생이 바뀐 거야.
책을 하나 보고서 제가 인생 바뀌었잖아요.
신문을 봤는데 화요일아침예술학교라고 홍문택 신부가 옛날 김수환 추기경 있을 때 비서실장 하신 분이고
교황 요한 바오로 오셨을 때 사회도 보신 아주 그쪽에서. 유명하신 분이에요.
근데 이분이 추기경이 바뀌니까 은퇴를 하셨어.
은퇴한 게 아니라 그만두시고 학교를 만들었어, 연천에. 연천에 화요일아침예술학교를 만들었어.
예술을 좋아하시는 분이거든. 근데 조선일보에 이렇게 글을 쓰셨어.
디자인 어쩌고저쩌고. 디자인라서 제가 봤죠.
근데 거기 어느 한 학생을 쓴 거야.
이 학생이 집에 가도 되는데 애들 데려다주고 가고 앞으로 인생이. 그래서 제가 또 호기심이 있잖아요.
그래서 전화를 한 거야. 거기서 제가 나전칠기 좀 가르칠 수 있느냐?
교감 선생님이 받더니 그다음 날 홍문택 교장 신부님이 우리 공방에 오셨어.
제가 포천에 있었고 거긴 연천에 있어서 멀지 않아요.
아침에 오시더니 자기도 이걸 하려고 했었는데 전통문화 하는 내 얘기를 들었대.
이렇게 전해 줘서 바로 오시더라고 그다음 날. 그래서 자기 학교에 가재, 갔어.
갔는데 건물 지어놓은 거 이런 거가 너무 저한테는 예술적으로 보여요.
화장실에 있잖아요. 요강을 달아놨어.
난 그게 천재 같아. 여자 화장실에 여자 요강을 딱 달아놓은 거야.
그런 상상을 하겠냐고. 그래서 내가 예술가로 연애하는 것 같아서. 저보다 연배이신데 형님인데.
그렇게 서로 대화하고 또 우리 이대 대학원 학생들을 제가 소개해서 학생 가르치고
그리고 전시도 하고 애들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분이 내년에 교황님 오신다 이거야.
저는 모르잖아요, 가톨릭 신부도 아니고. 그래서 교황님 의자를 만들자는 거야.
-자개 나전칠기로?
-의자를 만들재. 그래서 저는 아무 저거 없이 형님 만드시면 만들어요.
만들어드릴게요, 그랬어요. 돈 받고 만든 거야 제가. 만드니까 돈도 주시더라고.
-돈이 되게 좀 중요하신가 봐요?
-나는 돈을 안 받으라고 그랬어. 주셔 그냥, 받으래.
-중요하죠.
-나는 돈 달라는 얘기는 안 했어. 그땐 여유도 있어서. 근데 주더라고.
그래서 만들어가지고 옻칠을 하고 그랬는데.
교황청에서 누구 한 명을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공개했는데.
제 게 잘 만들진 않았어요.
제가 봐도 다른 사람 게 디자인 좋은데 선정한 이유가 교황님의 품성하고 맞대.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좀 검소하고. 옻칠에다가 그것만 딱 했거든.
자개는 조금만 쓰고.
-검소하고 심플하면서 교황이 너무 화려해도 안 되고.
그런 품성과 맞다, 이미지와 맞다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겠네요.
-그 인연으로 제가 교황님이랑 만난 거예요.
-만나셨어요?
-만났죠. 명동성당에서 포옹해 줬지.
-의자 이렇게 앉으시고.
-앉으셔 가지고 저를 이렇게 만져주면서 포옹해 주고.
지금도 떨리죠, 가슴이. 그 생각하면. 그래서 그런 축복을 제가 받았고.
제가 그때 두 개 만들어서 하나는 교황님이 가져가시고 하나는 우리 미술관에 있죠.
-미술관에 지금 있군요.
-어떤 사람이 팔라고 그러는 사람도 있는데 제가 안 팔았어요.
-그거는 안 파셨군요.
-여기서 많은 사람이 보고 또 예쁨도 받더라고.
-누군가가 한 10배 줄 테니 팔아라라고 하면 혹시?
-그런 사람이 좀 있었는데 제가 안 팔았어요.
-확실히 돈에 움직이시는 분은 아니신 거고.
-돈하고 하려면 지금이라도 이거 안 해야지.
-못 하죠.
-이거라도 안 해야 되는데 재밌어요, 근데 이게.
-이렇게 문화와 예술로 각양각층의 대단한 분들과 만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소통 창구 같은 거잖아요.
-그렇죠. 제가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요.
여기서도 이렇게 또. 이거 안 했으면 누가 불러주겠어요? 우리 또 유명한 코미디언님.
-황현희 MC님.
-말씀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아우, 저는 너무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교황과 만날 수 있는, 그게 아무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제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잘해서 잘나서 그런 게 아니고 운이라 그럴까?
하늘에서 이렇게 인연이란 게 연결이 되니까 한 거지 제가 잘나서 그런 건 진짜 아니에요.
-근데 또 운도 실력이라고 하잖아요.
-도전하고 시도하셨기 때문에.
-끊임없이 도전을 했어요.
그것만은 제가. 남들이 안 하는 건 했어요.
그건 맞아. 근데 잘한다 이건 모르겠어요, 솔직히.
-그리고 또 나전칠기가 점점 더 작가님 때문에 세계로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 감정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 그 한복판에 계시기 때문에 그 감정이 좀 어떠신지
한 말씀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걸 선택한 것도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고 제 뜻대로 이루어진 건 없는 것 같아요.
근데 흐름이 그리 가게 만들더라고요, 흐름이. 제가 뭐 잘나서 이거 해야지, 성공해야지 이 생각은 안 했고.
흐름이 그냥 가는 거예요, 물처럼. 그래서 할 수밖에 없었고.
제가 처음에 증권회사 들어갈 때 그게 망할 줄 누가 알았어요?
들어가자마자. 흐름이 그래서 가게 됐고. 또 끝나고 나서 IMF 될 줄 누가 알았냐고요?
아무도 모르는 건데 이 흐름이 물 흐르듯이 저를 누가 인도하는 것 같아요, 하늘에서.
우주가,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 흐름대로 그냥 순응해서 감사하게 작업하는 거예요.
근데 작업하는 시간이 즐거워요, 지금도.
-많은 청년분들한테 좀 힘이 되는 말씀인 것 같아요.
어떠한 목표를 잡고 거기까지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봐야 돼요.
그거 어떻게 달성해서 갑니까?
가다가 좀 쉴 수도 있고 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을 선택할 수가 있고.
또 좀 엎어질 수도 있고 뒤로 좀 백할 수도 있지만 결국에 하고자 하는 길로 가고 있는 길이다라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작가님도 그 길을 지속적으로 가셨던 것이고요.
-그렇죠.
제가 어디서 강의 좀 해 달라고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분들한테 얘기하는 게, 젊은 분들도 있고.
당신을 좀 알아라.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그래서 그걸 해야지 남 따라가 가지고 되겠냐. 사람이 다 다르잖아요.
저 자개 보고 빚이 다 달라요. 사람도 다 다르고 고객들도 좋아하는 게 다 달라,
사는 게.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걸 사는 사람도 있고. 좋다 그러면 또 안 사고.
아무도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너 자신을 좀 알아서 당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거 그다음에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고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 길을 없는 길이라도 자기가 만들어서 가야 된다.
실패는 많다.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역경을 이겨내면 경력이 된다.
-두음법칙 활용하신 거네요.
-역경을 이겨내면 경력이 된다. 시련을 이겨내면 실력이 된다. 이런 말을 제가 합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좀 잘 알아야 되고.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가 뭘 잘하는 사람인지 이런 거에 대한 충분한 생각을
좀 해 봤으면 좋겠다라고 많은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시는 거군요.
뭘 잘하시는 분이세요?
-저요? 저는 방송.
-방송. 다음 진행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작가님이 또 모아둔 조개 껍데기의 절반을 쓰실 만큼 꾸준하게 지금 활동을 해 오고 계시잖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 남은 조개 껍데기 다 쓰는 거 말고 어떤 계획이 또 있으실까요?
-저는 천 년을 이은 나전칠기에 기존에 있는 나전칠기를 깨가지고 새롭게 변신했거든요.
기존에는 까만 것만 있었잖아요.
그걸 컬러도 하면서 회화로도 했는데. 이걸 다시 한번 또 깨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깨고 싶은, 또 새로운 작품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새로 나온 거예요.
이게 장철 작가하고 같이 컬래버해서 만든 거예요, 회화 작가랑.
-이게 회화 작가님이 그리신 그림이고 이게 작가님께서 그리신 거고.
-그래서 같이 컬래버를 좀 하고 도자 작가랑도 컬래버하고 한지 작가랑도 컬래버하고 같이 컬래버를 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좀 기존 이미지를 또. 깨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하나는 2년 전에 우리 미술관에 장애학교 있잖아요.
학교에서 한 열 분이 오셨어, 장애우들이. 근데 자폐아인가 봐.
근데 한 30살 정도 된 앳된 소녀 같은데 제 손을 꼭 잡고 선생님, 나 이거 배우고 싶어요 그래.
-나전칠기하는 걸요?
-그래서 그게 지금도 가슴에 아직도 있어요. 제 가슴을 울려요.
그래서 제가 사회에 나와서 요즘에 작업하는 게 제 작품을 보면서 미술관에서
여러분이 이걸 보고 행복하고 그 빛을 옆에 있는 사람한테 좀 나눠주고.
여자분들 오면 좀 남편한테 잘해 주라고 제가 그래요.
이 빛을 보고 남편한테 좀 잘해 주고.
-이 좋은 빛을 보고.
-남편들도 좀 아내한테 잘해 주고 이웃 사람한테 사랑을 줘라. 빛이 사랑이잖아요.
그래서 얘기하는데. 그 젊은 30살 된 앳된 소녀가 손을 잡고 한 게 아직도 뭉클해서
제가 일반적인 사람들은 많이 가르쳐봤지만 끝까지 배우질 못해. 요즘에 이걸 안 해.
한 5년, 10년 해야 이렇게 좀 올라가는데 그게 안 되니까.
-거기까지 가기도 힘들군요?
-어렵죠. 힘든 거 안 하려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 자폐아 이런 사람들은 한 번 하면 꾸준히 할 것 같아요, 제 느낌에.
물어봤어요, 전문가들하고. 이 사람들은 집중하면 재밌으면 한다.
그래서 가슴에 와닿기 때문에 제가 자폐아들을 좀 가르쳐서 또 봉급도 주려고 제가.
봉급도 주면서 가르치고 그들을 세계적인 작가로 저보다 더 이름나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그걸 만들어주는 게 제 소원이에요.
-그러니까 많은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힘든 친구들에게
좀 더 많은 희망과 기회를 줘보는 게 또 작가님의 꿈이시군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행복하게.
-그분들도 행복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나도 더 행복하고.
-꿈과 희망을 같이 만들어가는.
-그거 하고 싶은 거예요.
-너무 좋은 말씀을 마지막까지 해 주시네요.
오늘 대화 너무 즐거웠고. 대표님, 작가님을 통해서 이런 얘기를 들어보니까
과연 다음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계속 저 스스로 질문하게 됐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조차도 지금 일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자, 그럼 나는 이다음은 무엇일까라는 거를
순간적으로 좀 여러 번 생각했던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마지막 질문 한번 드리겠습니다.
작가님에게 있어 나전칠기란 무엇인지 한번 짧게 한 말씀만 좀 부탁드릴게요.
-이것은 사실 제 인생의 스토리예요. 자개의 빛이 제 인생을 만든 거거든요.
인간은 소우주라고 봐요.
대우주가 있으니까. 그럼 이게 소우주, 소우주 조그만 조각 조각이 뭉쳐서 큰 대우주를 만든 거거든요, 이게.
그래서 코스모스란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들도 어떤 인연이 있어서 만나고 못 만나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소우주, 소우주가 서로 사랑, 딱 한마디 사랑이야.
사랑해서 큰 우주를 만들어서 큰 빛을 만들자라는 뜻이 있는 거예요, 이 작품이.
그래서 제 작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느끼고 남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서
자기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해 주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게 제 작품 하면서.
또 나전은 그거다 이거예요. 사랑이다, 빛이다. 그다음에 저의 스토리다.
제가 생각했던 영적인 그런 감을 이 빛으로 표현을 한 거죠.
-알겠습니다.
오늘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게 그림이 왔을 때 팽이야 뭐야 막 이랬다가 그랬던 제가 마지막에 부끄러워지네요.
-저도 반성하게 되네요.
-무슨 말씀을.
-오늘 대화 너무 즐거웠고요. 오늘 이야기를 또 나누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생의 진짜 전성기는 어쩌면 가장 나답게, 나다운 길을 어떻게 가느냐.
이런 길을 선택했을 때 시작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게 되네요.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작가님이 처음에 또 증권맨 포기하셨을 때 모두가 안정적인 길을 포기했다고 말하기는 했겠지만
대신에 또 꿈을 얻으셨고 결국 그 꿈을 이뤄낸 그런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조각, 한 조각 이어붙인 이 자개처럼 용기와 시간이 만들어내준 김영준 작가님만의 작품 세계.
정말 앞으로 더욱 많이 기대가 됩니다.
오늘 소중한 이야기 들려주신 김영준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탑클래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이 시간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