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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지도 제29권 - 현대미술 항해 (이정민 /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등록일 : 2024-01-19 10:07:57.0
조회수 : 922
-보물이 되는 지식을 찾아 떠납니다. 펼쳐라.
-(함께) 보물지도.
-오늘 저희가 장소를 옮겨봤습니다. 바로 대구 미술관으로 나와봤는데요.
사실 대구 미술관 좋은 작품 관람하러는 자주 왔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멋진 작품에 둘러싸여서 작품과 같은 강의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두 분은 오늘 저희가 여기에 왜 왔는지 아시겠어요?
-잘은 몰라도 오늘 뭔가 미술 관련한 것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보물지도 하더니 이렇게 똑똑해졌다고요?
-이게...
-그거 추리할 수 있었어요?
-이게 또 경력이 쌓이다 보니까 이 정도는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놀라는 거 아니에요?
여기 왔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바보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두 분을 약간.
-과소평가했다.
-죄송합니다.
정답이에요.
오늘 주제가 미술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현대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사실 현대 미술의 메카 하면 또 대구거든요. 또 대구의 예술 보고가 이 대구 미술관이기 때문에 특별히 장소를 옮겨봤는데요.
그러면 현대 미술에 관해서 자세한 재미있는 이야기 나눠 줄 선장님 바로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장님.
-(함께) 나와주세요!
-반갑습니다.
-저희가 왠지 이렇게 멋진 작품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왠지 박수도 조용히 쳐야 할 것 같고.
-신나게 치셔도 됩니다.
-신나게 쳐도 됩니까?
-여기 뭔가 목소리랑 박수 소리랑 다 울려서.
-그렇죠.
-조금 조심스럽...
-조심하지 마시고.
-괜찮아요?
-네, 즐겁게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강의 듣다가 너무 신나면 춤춰도 됩니까?
-춤추셔도 돼요.
-사실.
-같이, 같이 춤춰주십니까?
-춤은 저는 추지는 않겠습니다. 감상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앞에 대구가 현대 미술의 메카다, 이렇게 소개했는데 제가 맞는 말을 했나요?
-대구 하면 사실 근대 미술의 요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현대 미술이 태동한 아주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1970년대 대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미술제라는 게 개최가 됐어요.
보통 미술제라고 하면 실내에서 뭔가 전시를 보고 했는데 대구 현대미술제를 통해서 실외, 밖으로 나가서 설치하고 퍼포먼스도 하고 지금의 강정에 있는 현대미술제가 대구 현대 미술의 어떤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거죠.
-그러면 진짜 오늘 이야기할 거리가 넘쳐날 것 같은데 기대가 됩니다.
오늘 현대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거죠?
-첫 번째 이야기는 현대 미술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의 성지, 세 도시를 여행하려고 합니다.
제가 예술가 도시를 테마로 정한 이유는 어떤 예술이 부응하게 되는 그런 도시의 환경이나 도시의 철학, 이런 것들을 살펴보면 어떨까?
큐레이터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렇게 한번 제가 여행을 이끌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튜브처럼 생긴 이게 뭐냐 하면 런던에 있는 지하철 로고예요.
Underground라고 하는데 제가 첫 배낭여행을 런던에 도착해서 히드로 공항을 나와서 런던 중심가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하잖아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도착했는데 지하철이 의외로 너무 작고 많이 낡고 지저분하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예술의 성지를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왜 지하철 이야기냐 할 수 있는데 런던의 지하철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이거든요.
-오래된.
-그래서 올해 나이가 160살입니다.
-160살이요?
-네.
-그러면 160년 전이라는 말씀이잖아요.
-그렇죠. 18세기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이룬 이 영국의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하게 돼요.
-그때는 사실 저희는 조선시대쯤이잖아요.
-조선인데.
-그렇죠, 조선 후기 시대죠. 19세기 중반의 영국 런던은 세계 최강국의 수도였잖아요. 그러니까 인구가 엄청나게 도시로 많이 유입됐겠죠.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다 보니까 당연히 교통이나 오염도 심해지고 전염병도 돌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마차가 끄는 말이 똥을 너무 길에다가 많이 싸는 거예요.
-그렇죠, 그렇죠. 바닥 더러웠다고.
-맞아요. 또 양도 많아요, 말은 응가가요.
-그렇죠. 그래서 주 이동 수단인 이 마차가 지나가면 조금 런던의 도시가 정말 많이 오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똥 밭이 됐겠네요.
-그렇죠.
-그래요, 똥 밭이지.
-그러다 보니까 찰스 피어슨이라는 법무관이 아이디어를 냈는데 땅 밑으로 다니는 기차를 만들어야 하겠다,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때.
-그런데 그게 이웃집에 그 정원에 두더지 한 마리가 땅을 파서 엉망으로 해 놓은 그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던 거죠.
-그러면 지하철 다니는 데는 두더지가 판 거예요?
-두더지에서부터 시작이 된 거죠. 그러니까 인간의 어떤 발명품에 자연이 굉장히 많은 영감을 주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그 두더지가 땅을 파는 그 모습을 보고 땅으로 다닐 수 있게 우리도 해 보자, 그렇게 발상을 해서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에 런던의 최초의 지하철, 세계 최초의 지하철을 살펴봤는데 사실 19세기라고 하면 우리가 감이 와닿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미술에 있어서는 당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사실 오늘 1863년 저 숫자가 굉장히 뒤에도 나올 거고 중요한 해입니다.
1863년에 사실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로 잠깐 가 볼게요.
사실은 그때 프랑스가 여전히 예술의 중심이었던 도시였어요.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로 꼽히는 게 바로 낙선전이라는 전시예요.
-떨어진 작품들을 모아놨다?
-그렇죠. 그래서 말 그대로 낙선전이에요.
-낙선전.
-그러면 화가, 그 당시 화가들은 낙선전에 나가면 기분이 좋았나요, 별로였나요?
-원래는 살롱전에 본인의 작품이 들어가야 하는데 내 그림이 왜 떨어져, 이렇게 여론이나 이런 불만이 굉장히 많았대요.
그래서 그걸 본 나폴레옹 3세가 그러면 낙선전을 만들어줄게 해서 살롱전 옆에 낙선전을 열게 됩니다.
-바로 옆에서.
-그렇죠. 그런데 그 낙선전이 우리가 오늘날 현대 미술이라고 하는 미술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가 된 거예요.
-왜죠?
-바로 이 논쟁적인 작가 때문입니다. 에두아르 마네라는.
-마네.
-작가예요. 그런데 1863년에 그해 욕을 제일 많이 먹은 작가가 바로 마네가 아닌가. 왜냐하면 낙선전에 출품한 이 작품이.
-비하해요?
-이슈가 많은 거예요.
지금 보시면 풀밭 위의 점심 그다음에 그 옆에 올랭피아라는 같은 해 1863년, 그해에 두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낙선전에 출품한 저 풀밭 위의 점심이 뭔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나체를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서 그런 것 아닐까요?
-맞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나체로 있지만 남성은 옷을 다 입고 있죠.
-남자만 옷 입고 있고.
-그래서 또 저 뒤쪽에 있는 여인은 물가에서 이렇게 씻는 것 같은 그런 포즈를 취하고 있고 당시에 미술이라고 하면 어떻게 그려야 한다, 또 흔히 어떤 걸 주제로 삼아야 한다, 아름다운 미의 기준이라는 게 정해져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 마네는 그런 전통을 깨부수고 싶은 거예요.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지금 어떤 장면을 그린 거라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냐면 그 당시에 파리에 부르주아들이 낮에 직업여성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는 그 장면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사회 고발 그림이군요.
-그렇죠. 그래서.
-그러면 말 많겠네.
-이 그림을 본 부르주아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겠죠?
그리고 더군다나 이 여성이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장면이잖아요.
그래서 뭔가 이거 내 이야기 같은데 하면서 결국 그 마네를 엄청나게 비난하게 돼요.
이거는 그림도 아니야. 게다가 형태나 색감이나 이런 것도 기존에 보던 어떤 눈에 익은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 거죠.
그래서 뭔가 덜 그린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 논쟁적이었던 문제...
문제라기보다 탈이 많았던 저 작품이 실은 우리가 오늘날 현대 미술이라고 하는 현대 미술의 가장 시초가 되는 작품입니다.
-마네하면 사실 인상주의로 유명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세 번째로 볼 게 이 인상주의.
정확하게 말씀하셨어요.
예전에는 그냥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면 이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 풍경에 대한 어떤 인상, 자기의 감각 그러니까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 거죠.
-주관적으로.
-그러면서 어떤 자유가 생긴 거예요, 작가한테.
이걸 내 마음대로 내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거죠.
그림은 어떠해야 한다는 어떤 법칙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룰을 깬 게 바로 이 인상주의 현대 미술의 시작점이 되는 미술 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은 이때 어떤 일이.
-이때 대한독립 만세하고.
-한국은...
-이제...
-아니다.
-만세 하기 조금 전이죠.
-조선 후기니까.
-조선 후기에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이.
-고종 때.
-이 해 즉위하는데 그보다 2년 전에 철종 12년 너무나 우리가 알고 있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에 초판이 1861년에 나오게 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대동여지도도 그림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렇죠.
굉장히 과학적이면서도 체계적이고 그래서 전국을 22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그걸 16만 분의 1로 만든 게 대동여지도라고 해요.
서양이 그때 이런 일이 있었고 동양 한국에는 이런 지도가 편찬이 된 거죠.
-서양에는 인상주의가 싹트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도 사실 가장 훌륭한 지도라고 평가하죠. 최근에 국보 850호로 지정이 되었어요.
-최근에.
-제가 지하철, 런던의 지하철을 시작으로 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도 이렇게 들여다보면서 느낀 게 19세기는.
물론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서양을 막론해서 네트워크 어떤 소통, 연결 그런 시대가 아닌가.
그렇게 한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이제 우리가 과거의 런던을 봤다면 이제는 현대의 런던을 보시겠습니다.
저희가 테이트 모던이라는 사실 전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현대 미술관입니다.
-저기 어디라고요?
-런던에 테이트 모던이에요.
세계 2차대전 이후에 런던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육중한 건물에 발전소를 만들었는데 이제 시대가 변하고 더 이상 발전소가 흉물이 된 거예요, 한마디로.
쓰임새가 없어진 거죠.
-지금은 안 쓰겠네요, 그러면?
-그래서 방치해둔 이 건물이 세계 최고의 현대 미술관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잘 만들었네.
-미술관으로.
-그래서 저 굴뚝도 예전에는 연기가 나오던 굴뚝을 그대로 유지를 한 거예요.
그래서 이 미술관이 2000년 5월에 개장을 했어요.
-그러면 갔다 와보셨어요?
-갔다 왔습니다.
그래서.
-성지인데 당연히.
-현대 미술 일알못이던 제가 저기에 설치된 작품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에요.
-저게 뭐예요?
-저게 나팔인가요?
-맞아요.
-맞아요?
-마르시아스라는 나팔 모양의 설치 미술이에요.
이 작품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테이트 모던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공간이 바로 이 터빈홀인데.
-터빈홀.
-지금 예전에 터빈홀이 있던 자리예요.
그 자리를 그대로 유지를 해서 미술관 어떤 특별 공간으로 만든 건데.
사실 어떤 영국을 대표하는 건물이기는 하지만 사실 저걸 미술관으로 채택하기 전까지는 많은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공모를 한 거죠. 국제 공모를 해서 어떤 사람이 당선이 됐냐 하면.
그 당시에 스위스 출신의 젊은 듀오 건축가예요. 헤르조그, 드 뫼롱이라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선정이 된 이유는 그 외형을 유지하면서 그 당시에 화력 발전소의 쓰임이나 재료, 어떤 역사적인 특징들을 유지하면서 내부를 현대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미술관입니다.
그래서 2700억이 들었다고 해요.
-2700억이요?
-그 2700억 원을 가지고 사실 새로 하나 짓는 게 더 낫지 않냐, 그런 의견도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은 2700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은 역사적인 역사성을 보존하고 그걸 그대로 가지고 가는 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역사를 지킨다는 게 얼마나 한 국가에서 예술을 위해서 건물을 유지한다는 게 되게 멋있는 발상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영국에서도 그만한 가치 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거네요.
-그렇죠.
-사실 저걸 보면서 느낀 게 진짜 도시 재생 사업의 진짜 모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저기도 지금 저 하나 박물관을 미술관을 보려고 전 세계인들이 방문을 하게 됐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사실 밀레니엄이 도래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그 도시의 밀레니엄 재생 산업들이 활발하게 일어났는데 런던이 아마 대표적인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중심에 저희가 봤던 테이트 모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술관이 이런 작품을.
-뭐야.
-실현한다는 게 사실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보통 일이 아니죠.
지금 저희가 보고 있는 것도 작품이죠.
-그럼요.
-그러면 여기서 하나 묻고 싶습니다. 인욱 씨.
저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우리가 너무 현대미술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느낌대로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럼요.
-태양이 너무 가깝게 떠서 사람이 다 녹아 죽고 있어요.
-너무 무서운데.
-그런데 약간 의미가 있어요.
-약간 디스토피아적이긴 한데. 그 태양을 표현한 건 맞습니다.
-그러면 지금 밑에 널브러져 있는 건 사람인가요?
-사람이에요.
-사람.
-관람객이죠,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이에요?
-관람객입니다.
-작품을 보러 왔다가 너무 뜨거워서 쓰러지고 있는.
-이게 2003년도에 날씨 프로젝트라는 설치 작품인데 지금 저 동그란 달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200개의 전구를 반원에 촘촘하게 설치를 하고 그다음에 천장에 거울을 이렇게 설치를 했어요.
그러면 그 반구가.
-원이 되겠네요.
-이렇게 원이 되는 거죠. 그래서 뭔가 더 아른한 그래서 태양을 만들고.
그런데 영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예로부터.
-태양이 없는 나라예요.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흐린 나라.
-그런데 태양이 없는 나라가 맞긴 해요. 왜냐하면.
-비가 많이 오잖아요.
-그렇죠.
-흐린 날이 많지.
-그래서 가을에서 그다음에 봄으로 넘어가는 이 계절이 정말 혹독하리만큼 태양을 보기는 힘든.
그래서 제가 유럽에서 봤던 흥미로운 광경 중의 하나가 겨울에 잠깐 해가 비치면 이렇게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이렇게 가만히 서서 이렇게 해를.
그래서 일조량이 적은 이 영국 런던의 겨울을 이렇게 비추는 따뜻한 태양 주변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았어요.
-그런데 왜 누워있어요?
-일광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누워서 잠을 자는 사람도 있고 책을 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면 이거는 진짜 태양은 아니고 전구로.
-그렇죠, 인공 태양인 거죠.
-연출한 거라는 거잖아요.
-연출된 인공 태양입니다.
-이거는 설명 안 들었으면 진짜 모를 뻔했어요.
-그런데 어떤 자연에 있는 인공 태양이지만 자연을 미술관 안으로 가져온 거죠.
우리는 저게 가짜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태양이 떠 있고 우리가 너무 보고 싶은 그 반가운 태양이 저렇게 떠 있고 그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걸 그냥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편하게.
-사실 말 안 해주면 진짜인 줄 알 뻔했어요.
-우리도 여기 있잖아, 태양.
-저희도 여기.
-조명처럼.
-태양이 있습니다.
-여기도 태양이 있습니다.
-2개, 2개의 작은 태양이 있습니다.
-2개가 더 있어요.
-그래서 일명 날씨 프로젝트라고 하는 올라퍼 엘리아슨.
정말 그 자연 현상을 예술로 표현하는 정말 획기적인 방식으로 그런 걸 잘하는 작가입니다.
-그런데 진짜 참여하는 사람들도 시민들도 이렇게 찍어놓으니까 작품 속에.
-그렇죠.
-한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렇죠.
그래서 이 작품 속에 들어가야만이 작품이 이제 완성이 되는 거죠.
정말 작가가 의도했던. 그게 정말 현대미술을 즐기는 거죠, 말 그대로. 편하게.
그리고 이제 세 번째 하나 더 소개해 주고 싶은 작품이 바로 이거예요.
-펭귄인가요?
-사람입니다.
-사람이에요? 사람.
-이거는 콜롬비아 작가 도리스 살세도라고 하는 십볼렛이라는 작품이에요.
실제로 미술과 바닥에 166m, 7m에 가까운 균열을 낸 작품입니다.
저 작품은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있는데 저게 십볼렛이라는 게 성서에 구약성서에 나오는 단어예요.
단어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그 구약성서에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길르앗이라는 사람들, 그리고 에브라임이라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전투를 했는데 에브라임 사람들이 죽게 돼요.
그래서 에브라임 사람들은 영토로 돌아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 요단강을 건너려니 길르앗 사람들이 그 길목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
외모를 봐서는 이 사람이 길르앗인지 에브라임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십볼렛이라는 그 단어를 말하게 시켜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도.
-발음을 보고.
-발음이 쌀이 잘 안되는 것처럼 이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이 쉬 발음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sh가 안 되는군요.
-그래서.
-쉬 발음이 안 된다고요.
-그렇죠. 쉬가 안 돼서 십볼릿이라고 하면 에브라임이야. 그래서 죽이는 거예요.
-죽이고.
-그런데 이제 그렇게 죽임을 당한 에브라임 인구가 당시에 4만 2000명이나 된다고 해요.
-4만 2000명이요?
-그래서 이 십볼렛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게 결국은 나와 이렇게 별개로 뭔가 구분하는.
-배척하는.
-배척하는, 그렇죠. 그런 단어인 거예요.
그래서 저 크랙이 결국 그런 것들을 의미를 해요.
어떤 뭔가 배척당하고.
-너와 나를 가르고.
-가르고.
전 세계 언어 중에서 가장 이런 역사성을 좋지 않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이 십볼렛이기도 합니다.
-십볼렛.
-그런데 이게 사실 미술관에 저런 크랙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이겠어요? 쉬운 일이 아니겠죠.
-인위적으로 낸 거예요?
-벽을 실제로 깬 거예요. 그래서.
-그러니까 실제 전시장 바닥에 균열을 낸 거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그런데 그걸 허락을 해줄...
-그런 아이디어를 가능하게 만든 이 미술관.
그래서 당시 관장이 이런 말을 해요. 바닥에 균열이 나고 분명히 상처가 되어서 바닥에 흉터로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 우리가 뭔가 이렇게 기억해야 하는 그런 흉터까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미다.
그래서 이런 어떤 큰 대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미술관 바닥을 이렇게 깬 거죠.
그러니까 현대미술이라는 게 결국 미술의 집이라고 하는 미술관이 또 어떤 작가의 아이디어를 실현해 주기 위해서 대담하게 저런 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예술의 성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그런 거죠.
그래서 이런 것들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일 거예요, 아마.
그래서 도브 비누. 비둘기 걸려 있는.
-도브.
-그 도브 비누를 만드는 회사가 어디일까요?
-도브요.
-도브. 유니레버 대국적 회사입니다.
그래서 유니레버라고 하는 이 기업에서 2000년에서 2012년까지 12년간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서 이런 작품을 6개월
동안 보여줄 수 있게 한 게 바로 유니레버 시리즈.
-유니레버 시리즈.
-아까 저희가 봤던 인공 태양도 그렇고 거대한 나팔.
다 터빈 홀의 유니레버 시리즈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12년까지만 했데요?
-12년까지만 하고 2015년부터 2026년까지는 누가 하느냐. 누군가 하고 있습니다.
-또 있구나.
-누가 할까요?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진짜요?
-그래서 한국의 위상이라는 것도 사실 저렇게 예술에 후원한다는 중요한 임무인 동시에 또 한국을 알리는 그런 계기가 되겠죠.
-현대.
-이렇게 저희가 1863년에서 오늘 현대의 런던을 봤는데 이제 숨을 한번 고르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야 합니다.
-대서양을 건너~
-사실 뉴욕 하면 현대미술의 메카는 또 뉴욕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죠.
그래서 빅 애플, 뉴욕을 칭하는 이런 애칭들이 굉장히 많아요.
고담 시티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 뉴욕 구석구석을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면서 제 나름의 뉴욕은 예술의 생물체다.
-(함께) 예술 생물체.
-그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래서 어떤 미술관에 가야 예술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말 그.
-도시 전체가.
-도시, 도시 전체가.
그걸 가장 크게 와닿게 하는 장소가 바로 이 센트럴 파크예요.
실제로 이제 뉴욕을 여행을 하게 되면 많이 접하게 되는 게 또 센트럴 파크가 아닐까.
왜냐하면 도시 한가운데 정말 거대한 공간이 공원으로 조성이 되어 있어요.
저 공원은 왜 저렇게 도시 한가운데에 있을까요?
-마치 서울의 한강숲공원처럼 도심 속의 힐링 공간을 계획했을까요, 혹시?
-저희가 아까 런던에서 19세기, 1860년대를 봤잖아요.
비슷한 시기에 1857년에 이 공원을 개원했는데 지금 여기 공원을 짓지 않으면 100년 뒤에는 이거만 한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바로 저 프레데릭 올므스테드라는 조경가입니다.
그래서 도심에서 자연으로의 최단 탈출이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저 센트럴파크예요.
그래서 우리 미국 드라마, 영화 정말 많이 등장하는 맨해튼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허파죠, 허파.
공공복지를 위한 공원을 설립을 한 거예요. 그 옛날에.
이게 없으면 사람들이 다 미쳐버릴 거야. 그래서.
-난 외곽에서부터 건물을 지어 올리다가 남은 공간이라서 내버려둔 줄 알았어요.
-그러면 마치 그린벨트 안에 있는 것처럼 개발 제한...
-골프장.
-재개발해야 하는데 하면서.
-그런데, 맨해튼에 센트럴파크가 있으면 브루클린에는 이게 있어요. 프로스펙트파크.
센트럴파크를 만든 같은 조경사와 건축가가 이 브루클린에 프로스펙트파크를 지었어요.
-그러면 2개가 느낌이 좀 비슷한가요?
-느낌이 정말 신기한 게 같은 사람이 지었는데 조금 느낌이 달라요.
그러니까 센트럴파크는 뭔가 잘 가꾸어진 동산, 그런 느낌이 든다면 프로스펙트파크는 조금 더 야생에 가까운 또 자연에 가까운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야생 동물도 나오는 거 아니야?
-야생 동물도 나오죠.
-나와요?
-네.
-진짜.
-실제로 안에 동물원도 이 공원이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스마트폰 없어서 카메라로 찍으면 저렇게 날짜가 나옵니다.
-진짜 사진기로 찍은.
-감성 있어요. 감성적이에요.
-그러면 뉴욕의 미술에 대해서 볼 건데 2차대전 이후에 1945년 이후에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정말 미국으로 망명을 많이 하고 유럽에서 예술가들이 미국 땅을 밟게 됩니다.
그러면서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뉴욕이 어떤 현대미술의 새로운 주자로 떠오르게 돼요.
그런데 사실 뉴욕의 현대미술.
아주 우리가 모마라고 하는 그런 미술관 또 메트로폴리탄 이런 유명한 미술관도 많지만, 저는 이 뉴욕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현대미술은 바로 이겁니다.
-키스 해링.
-벽화.
-키스 해링 우리가 한 번은. 이 사람 작품을 하나 뽑았습니다.
-너무 유명하고.
-A로 시작하는 그 보드카에 디자인을 이 작품으로 하기도 했었죠. 그래서...
-저는 첫 번째 작품 티셔츠 있어요.
-진짜?
-이 키스 해링이라는 인물이 참 어떻게 보면 80년대 뉴욕의 길거리를 휩쓸고 다닌 예술가입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는 뉴욕 지하철에 광고판이 있었어요.
거기에 분필로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공공 기물 훼손으로 항상 체포되고. 그래서 키스 해링은 항상...
-허가 안 받고 한...
-검색을 해 보면 지하철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랑 저렇게 연행이 되는 사진들 굉장히 많아요.
-이것도 현대 예술, 이것도 현대미술, 그 자체가.
-그럼요, 현대미술.
벽의 낙서에 불과한 이런 하위문화라고 이를테면.
이런 하위문화가 정말 고급문화, 어떤 정말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게 이 키스 해링이라는 작가입니다.
미국 하면 팝아트의 거장, 누구죠?
-앤디 워홀.
-그렇죠.
-앤디 워홀.
-앤디 워홀과 또 만나기도 하고 우정을 쌓고 교류도 해가면서 그렇게 다양한 어떤 대중문화에 기반한 작품들을 이렇게 많이 하게 됩니다.
아이들이랑도 작업을 많이 했는데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에 온 지 100년을 기념하는 그해에 뉴욕시에 있는 1000명의 아이들과 같이 저렇게 자유의 여신상, 새로운 버전의 자유의 여신상을 저렇게 대형 벽화로 그리게 됩니다.
-저게 실제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요?
-27m네요. 27m에 달하는 대형 벽화. 5층짜리 아파트 정도 사이즈가 되겠죠?
-그런데 사실 우리 아이들의 낙서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쉽게 못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의 낙서가 막 다 모여서 저렇게 하나의 작품이 됐네요.
-그렇죠.
그래서 이런 프로젝트를 도시에서 뉴욕에서 했지만, 또 다른 도시에서도 굉장히 아이들과 그런 작업을 많이 한 아티스트가 바로 또 키스 해링이기도 합니다.
-저도 하얀 티셔츠 가지고 학교 가서 애들한테 유성 매직으로 그림 그리라고 시키고 했는데 되게 예쁘게 작품처럼 나와서 예술 작품이라 여기고 입고 다니기도 했어요.
-어떤 그 예술을 일상에서 실현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저한테 조금 더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들어서. 그거 보니까 생각이 나네요.
-다음 녹화 때 한 번 입고 나와도 돼요?
-네, 목이 좀 늘어났는데 입고 올 수 있습니다.
-CRACK IS WACK이라는, 마약이 인생을 망친다. 또 뉴욕 하면.
-CRACK WACK.
-또 마약이 지금 현대에서도 참 문제가 되는 이슈죠.
-맞아요.
-그래서 상위 예술, 하위 예술.
그런 경계를 부수고 뭔가 장벽을 깨려고 했던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했던 그게 저는 어떤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뭔가 철학, 철학이라기보다 정신, 그런 게 아닐까.
예술이라는 게 갤러리에 가야 볼 수 있고 미술관에 가야 볼 수 있고 그런.
-인식이 있었네요.
-그런 경계가 거의 80년대부터 좀 이 경계가 무너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베를린으로 뉴욕에서 다시 베를린으로 갈 거예요.
-베를린.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저 표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가난한데요, 독일이.
-독일이 비싼...
-가난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비싼 브랜드가 얼마나 많은데.
-가난한 사람으로서 기분 나쁩니다.
-이게 베를린을 13년 동안 이끈 전 베를린 시장이 2003년에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2000년에 처음 베를린에 갔었고 그 이후에 다시 나중에 베를린에 갔을 때 정말 2000년이랑 그 이후랑 공기부터 다르게 정말 이 도시가 10년 만에 정말 큰 변화를 겪었는데 우리 베를린 하면 떠오르는 게 역사적으로.
-장벽.
-베를린 장벽.
-그렇죠. 그 베를린 장벽이 89년에 무너지면서 어쨌든 이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잖아요.
그리고 세계대전을 2번이나 일으킨 전범 국가의 수도이기도 하고 그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장소는 어떻게 보면 피와 어떤 눈물의 현장이기도 하고 역사적인 짐을 베를린이 안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90년대, 2000년도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현실적으로 뭔가 이렇게 크게 붐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게 본격적으로
이 시장이 베를린을 다시 젊은 도시로 만들겠다라고 하면서 비록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술적이고 젊고 창의적인 그런 도시로 발돋움하겠다라는 그런 어떤 의지를 보인 표현이죠.
제가 베를린에 가서 정말 귀여워서 찍은 사진인데 저게 뭐죠.
-저거 신호등이요.
-신호등.
-신호등. 그렇죠, 신호등이죠?
-선생님, 저희 그 정도는 아닌데요.
-그 정도까지 바보는 아닙니다.
-저희 신호등 볼 줄 아는데요. 빨간불에 멈추고 파란불에 가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여행 가도 있는데, 신호등.
-저게 정말 너무 귀엽지 않아요?
-(함께) 너무 귀여워요.
-귀엽다.
-빨간불, 파란불을 알리는 저 안에 캐릭터가 있네요.
-네, 그 당시에는 사실 기호로 신호등이 있었는데 동독에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61년도에 저 신호등을 뭔가 어린이가 특히나 주의력이 약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린이를 위한 신호등, 아이들도 이렇게 잘 지키는.
-더 주의 깊게 보라고.
-그렇죠.
주의 깊게 볼 수 있는 그런 디자인을 이렇게 고민을 하다가 나온 게 저 암펠만이라는. 암펠은 신호등, 만은 남자, 사람.
그런데 61년도의 동독의 도시의 상징이 됐는데 저게 통일을 하고 나니까 동독이 대부분 서독에 흡수되는 쪽으로 많이 통일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동독에 정말 사랑받던 저 신호등이 없어지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 거예요.
-서독에 맞추다 보니까.
-그래서 이제 바꿔야 한다.
그런 논란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서독인에게도 호응을 얻고 저 디자인을 지켜가자.
그래서 동독의 산물이었던 문화적인 상징이 결국은 독일의 상징이 되는. 독일의 자랑인 거죠.
그래서 저희가 베를린 가면 암펠만 숍이 따로 있어요.
열쇠고리, 티셔츠, 모자. 저 캐릭터들이 다 있는. 사시겠습니까?
-독일 가서 또 사 오겠네 또. 티셔츠.
-독일 가면 또 저런 티셔츠 하나 사 와야지.
-저도 열쇠고리 하나 사 오긴 했습니다.
그래서 베를린은 도시 곳곳이 정말 하나의 미술관 같아요. 또는 박물관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베를린을 역사의 상처나 흔적들을 가장 예술적으로 승화한 도시가 베를린이 아닐까.
이 그림을 보면 이게 한 5층짜리 아파트예요.
-아파트예요?
-아파트인데 지금 저 벽화가 걸려 있죠.
-저거 고기 아니에요, 삼겹살?
-살을 도려내는 아픔. 저기 보면 칼에 1961년에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가 89년이잖아요.
그래서 동서의 분단을 나타내는 저 시기입니다.
-또 아픈 시기였다.
-그렇죠. 도시 곳곳에 저런 것들을 기억하는 어떤 상징물들.
저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는데.
-자극적이네요.
-제가 살던 집 주변의 건물이었어요.
-그런데 저기에, 저런 데 입주를 해요, 사람들이?
-그럼요. 저거는 사실 되게 멋지지 않아요?
-좀 섬뜩한데요.
-섬뜩하긴 하지만 독일이 어떤 나라냐면 정말 자기들이 저질렀던 이런 나치의 반유대주의.
-만행들.
-이런 것들을 정말 기억하기 위해서 도시 곳곳에 저런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대표적인 걸 제가 하나 소개하고 싶은 게 바로 이겁니다.
세계대전, 2차대전 때 유럽에 1100만 명의 유대인 중에 600만 명이 학살을 당했어요.
거의 유대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600만 명?
-네, 600만 명.
-그럼 서울 인구의 거의 3분의 2네요.
-그렇죠.
그래서 엄청난 수의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하게 되는데 그래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2711개의 콘크리트 추모비로 유럽에서 학살을 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공원이에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우리가 다른 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건데 이게 흥미로운 게 뭐냐면 이게 놓여 있는 위치가 굉장히 상징적이에요.
베를린에 가면 그 브란덴부르크라는 평화를 상징하는 문이 있어요.
베를린의 심장이라고 하는 거기서 5분 거리에 소위 말해 역세권이죠.
-노른자 땅.
-도시에 완전히.
-노른자 땅.
-노른자 땅. 이 예술 작품, 공원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독일인들이 자기네들이 저지른 이 역사적 과오를 항상 기억한다는 그런 다짐.
그런 상징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진짜 대단한 게 사실 자랑스러운 역사나 우리가 뽐내고 싶은,
세계인들에게 뽐내고 싶은 그런 기록들이면 또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을 쉽게 할 수는 있지만 사실 반성해야 할 부분인 거잖아요.
-그렇죠.
-저런 부분을 숨기지 않고 저렇게 전시를 하고 예술로 승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배울 점이 큰 것 같아요.
-그렇죠.
-우리나라는 저렇게 못 했을 것 같아요.
-제가 정말 베를린에서 살면서 느꼈던 가장 큰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에요.
그러니까 도시의 어떤 큰 부분에 예술 작품 또는 이런 추모비를 위한 공간을 크게 내어주는 도시.
길을 걷다가 작품을 만나는 것은 정말 일상적일 정도로 베를린을 가면 저런 것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볼 게 가장 작은 추모비가 저게 아닐까.
베를린을 걷다 보면 발밑에 저 손바닥만 한 동판 사각형이 눈에 띄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고 가다가.
-아니요. 저거 못 지나치실 것 같아요. 뭐야?
-금인 줄 알고.
-금인가?
-금이 떨어져 있네 하면서 일단 바닥을 딱 짚고 한 다음에 약간 이렇게, 이렇게 하시는 분이 분명히 있으셨을 거 같아요.
-그럴 뻔했는데 저도.
그런데 어떤 데는 꽃이 놓여 있어요.
나치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추모석이에요.
이걸 누가 했냐 하면 독일의 쿤터 뎀니히라고 하는 예술가가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마지막으로 살던 거주지 앞에 저걸 손바닥만 한 10cm, 10cm의 추모비를 일일히 다 박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게 한두 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 도시 전역에 저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깔려 있어요.
-그러면 베를린에 가서 걷다 보면 걷다가 무심코 탁 바닥을 봤는데 추모비가 있고 그런 우연을 많이 만날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리고 제가 살던 집 바로 밑에는 이렇게 많이 있었어요.
-뭐야, 저거.
-테트리스 같은데요?
-저기 자세히 보면 이 사람의 이름이 있고 그다음에 태어난 해가 있고 마지막에 아우슈비츠에서 죽임을 당하다 그런 글귀가 있잖아요.
-그 수용소 말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삶이 그 손바닥만 한 작은 그 동판에 새겨지는 거죠.
-그러면 이게 바닥에 있으면 사람들이 무심코 혹시나 밟고 갈 수도 있고 그러면 빨리 마모되거나 그러지 않을까요?
-이거는 밟을 수 있는 추모석이에요. 훼손이 되거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동판에 저런 걸 새겨서 보도블록에 단단하게 박아서.
그런데 저게 그래서 이름이 걸림돌이라는 슈톨퍼는 걸려 넘어지다, 슈타인은 돌.
그래서 걸림돌이라는 뭔가 장애물, 걸림돌 프로젝트예요, 말하자면.
망각하지 않게 만드는 걸림돌. 그렇게 해석을 하면 돼요.
-망각에 대해서 걸림돌을 만들었다 이거네.
-그렇죠. 망각하지 마라.
그래서 언제나 바닥에 있는 저런 것들을 보면서 살면서 굉장히 일상적으로 저런 역사를 볼 수가 있는 거죠.
-사실 그런데 저희가 왜 비석이나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신성시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조심스럽...
-소중하게.
-조심스럽고.
-그렇죠.
-이렇게 다뤄야만 할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어쨌든 보도블록 중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그냥 일상에서 뭔가 추모를 하는 것이 너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치가 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가능성을 제일 많이 보여주는 게 바로 또 베를린의 예술이 아닐까.
그래서 이런 작품들을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이 베를린 장벽을 넘는 가장 유명한 사진이에요.
61년부터 아까 팔십몇 년이죠?
-9!
-89
-89!
-맞습니다.
-89!
-그래서 61년에 베를린 장벽을 세우겠다고 발표를 해요.
그리고 이게 이틀 뒤에 동독의 경찰이에요, 국경 경찰.
경찰이 당시에는 철조망밖에 없었는데 저 철조망을 넘는 장면이 극적으로 찍힌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베를린 장벽을 넘은, 최초로 넘은 이 탈출자의 실제 사진입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선장님.
굉장히 정말 말씀처럼 극적이게 탁 순간 포착이 된 거잖아요.
혹시 여러 번 넘고 찍으신 건 아닙니까?
-NG 해서.
-NG, 발 닿였어, 다시.
-다시.
-이게 그렇게 여유가 있는 그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분단을 위해서 장벽을 세우겠다. 어떤 살벌한 그런 와중이었겠죠.
그래서 더군다나 동독 경찰이 국경을 넘는 거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고 더 자유를 상징하는 사진이 됐는데 이 장소가 바로 그 장소예요.
-벽화에 지금 그려져 있는 건가요?
-그렇죠.
그러니까 실제 사진이 저렇게 재현되어 있는 거고 제가 저 바로 옆에 그 사각 아파트 집에 제가 1년 동안 살았어요.
-저기서요?
-그래서 저는 베를린 장벽이 바로 보이는 곳에서 1년을 살다 보니.
-그러면 전세로 한 거예요? 월세로?
-대구시에서 보내줘서 감사하게도 유학했습니다.
-지원받고.
-그래서 1년간 저기서 지내면서 굉장히 분단의 어떤 현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잖아요. 이제 그런 게.
-그렇죠, 우리도 분단국가니까.
-정말 남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언젠가는.
-레전드네. 벽화까지 우리 라이온즈파크의 승엽 선배처럼 벽화.
-그러네요.
-그런데 저 사람이 굉장히 어떻게 보면 자유의 상징이 된 첫 번째 탈출자이긴 하지만.
-자살하셨죠.
-맞아요. 자기를 찾으러 올 거라는 그런 어떤 불안감.
-맞아요.
-우울증 이런 것들에 굉장히 시달리면서 그리고 동독으로 89년도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에 가족을 찾아서 갔어요.
그런데 가족도 반응이 좀 냉담한 거예요.
-맞아, 맞아.
-가족을 버리고 혼자 나왔으니까.
그래서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됐는데 본인은 다시 이제 다시 넘어오게 됩니다.
가족을 떠나서 그리고는 밀레니엄을 못 보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 아주 좀 어떻게 보면 자유의 상징이지만 불운한 한 사람의 일생이기도 하죠.
-슬프네요.
-저는 사실 좀 더 슬펐던 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안타까운 선택을 하셨더라고요.
-맞아요.
-그게 저는 뭔가 더 슬펐어요.
-그렇죠, 그렇죠.
-오히려 장벽은 무너졌지만 이분은 더 불안했나 봐요, 어떤 것들이.
-그렇죠.
-그렇죠?
-그리고 어떤 동독인들 자신들과 알고 지내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어떤 눈총 그런 배신자로 낙인찍힌 거죠.
그것이 가장 괴롭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장벽이 무너지고 이 조각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보존되어 있기도 하고 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기도 하고 또 조각조각 나서 팔리기도 했어요.
-무료 나눔.
-무료 나눔은 잘 모르겠는데 베를린에 가면 그 사기꾼들 조심해야 해요.
돌 깔고 앉아서 이게 베를린 장벽이야 하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대요.
-사실 저는 그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돌조각 가지고 이 베를린 장벽 조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위험한 분이네. 벌써 생각하고 계셨네요.
-나만 생각한 게 아니구나.
-선생님, 선생님.
-제가 런던에서 시작해서 뉴욕을 거쳐 다시 대서양을 건너 베를린으로 왔습니다.
-많이 돌아다니셨네요.
-긴 항해였는데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아니요.
-선장님이라고 할 만합니다.
-정말. 사실 오늘 쭉 들으면서 느꼈던 게 뉴욕 하면 MoMA나 이렇게 흔히 알 수 있는 유명한 미술관도 많잖아요.
그런데 그 외적인 부분도 많이 이야기해 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현대 미술의 정수라고 하면 결국은 뭔가 불만의 감정에서 자유를 향해 나가는 그런 것들이 아닐까.
정말 도시가 지향하는 어떤 철학이라고 하나.
그런 것들이 정말 예술적으로 예술을 부흥하게 만드는 그런 환경들이 저는 뉴욕이 가지고 있는 큰 공원 그런 것들이
아닐까.
그다음에 거리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공공 미술, 그라피티 이런 것들이 정말 예술적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꼭 한 번 다시 느껴보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굉장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예술적 가치를 몸으로 느껴보는 것도.
-맞아요.
-또 다른 여행의 매력이 될 수 있으니까 저도 여행 가면 꼭 한 번 그 마음으로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두 분은 더 궁금한 거 없어요?
-저는 지금 이 세 곳을 말씀해 주셨는데 세 곳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신다면.
-딱딱딱 이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일단 런던은 세계 미술관의 어떤 표본.
-표본.
-미래의 미술관을 우리가 테이트 모던에서 볼 수 있었고 뉴욕은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또 몰리는 도시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정말 그 자체로 예술 생명체 이렇게 제가 표현하고 싶고 베를린은 역사의 어떤 상흔을 가장 예술적으로 간직하는 기억의 도시가 아닐까.
그렇게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세 도시와 함께 재미있는 현대 미술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현대 미술 어려운 거 아니었구나.
많은 분이 저희처럼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1편으로 끝나긴 아쉬워서 저희가 다음 편도 준비했습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현대 미술 이야기 기대해 주시고요.
다 같이 외치면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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