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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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지도 - 우즈벡을 휩쓴 한의학 열풍 (송영일 / 우즈베키스탄 현지 활동 한의사)

등록일 : 2025-02-26 13:41:13.0
조회수 : 388
-보물이 되는 지식을 찾아 떠납니다. 펼쳐라.
-(함께) 보물지도.
-새로운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개척자라고 부릅니다.
두 분은 개척자 하면 어떤 분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지식이 참 짧기 때문에 신대륙 발견한 사람밖에.
-그 사람이 누구인가요?
-지식이 있네.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여기까지.
-혹시 콜럼버스?
-맞는 것 같아요. 들어봤어.
-들어봤어.
-보물지도 할 만하다, 이거.
-할 만하다.
-저는 아무래도 제가 또 버스킹을 하다 보니까 정말 새로운 장소에서 예정되지 않은 공연을 막 하는
이 세계의 버스커들이 다 개척자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고로 나도 개척자다.
-저도 일종의 그런 활동을 했는데.
-내 자랑이다.
-그런 건 아니고.
-남들이 한 데서 하는 건 개척자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사실 지금 우리가 보물지도에서 여러 지식을 또 항해하고 있잖아요.
이걸 보는 여러분이 진정한 개척자입니다.
-갑자기요? 갑자기요?
-이럴 때는 와 해야지.
-(함께) 와.
-알겠습니다.
이런 분들 말고도 개척자 하면 새로운 영역에서 멋진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이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K-메디를 널리 알리고 계신 오늘의 선장님 모셔보겠습니다.
-K-메디.
-선장님.
-(함께) 나와 주세요.
-나와 주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가 듣기로는 우리 선장님께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허준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우즈베크 허준이다. 맞나요?
-그건 정말 과찬의 말씀이고요.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하지만 허준의 후예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러면 우즈베키스탄에서 활동을 하신 거예요?
-제가 처음 우즈베키스탄하고 인연을 맺은 게 벌써 지금으로부터 거의 18년 이전에 2007년도 5월 11일입니다.
제가 그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제가 그날 첫 우즈베키스탄에 방문했을 때 저희 집사람을 만났습니다. 뭐랄까요.
저희 집사람도 그쪽 우즈베키스탄에서 봉사 활동하던 봉사 단원이었는데
제가 신규 단원으로 갔을 때 있던 단원들이 맞이해 주는데 거기서 처음 만나서 딱 보고 결혼하자 해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가셨는데 5월 11일 아닌 거 아니야? 5월 12일이고, 막.
-그러면 또 큰일 납니다. 알겠습니다.
우리 선장님과 함께하는 우즈베키스탄 한의학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한 한의사고요. 제가 2003년도에 한의사 면허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23년 됐는데 그런데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사로 활동하기가 벌써 12년이거든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한의사로 산 그런 날들보다 제가 우즈베크에서 한의사로 활동한
그런 기간이 훨씬 더 많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한국의 준정부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국제협력단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외국으로 한의사나 의사들을 파견시켜서 그쪽 나라인 의사들한테 여러 가지 한국의 의료 기술을 알려주는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벌써 총 합치면 12년 동안 근무하고 있고요.
여기서 보시다시피 우즈베키스탄이 한국하고 거의 600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6000km면 하루에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기간이 30km라고 한다면 거의 200일 정도를.
-잠도 안 자고.
-조금씩 잠은 자고. 그런데 그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실크로드 다 아시죠.
-실크로드.
-그러한 실크로드에 대한 역사 유물이나 이런 걸 보면 신라나 이러한 역사 박물관에 가서 보시면
이때 당시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쭉 있었던 역사 유물들이나 이런 게 다 나오고 있거든요.
보면 그때 당시에도 200일 동안의 시간을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유물이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이런 걸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계속 교류가 있었다는 거죠.
-그렇죠.
-사마르칸트라고 하는 도시에는 굉장히 독특하게 우리 한국하고 굉장히 연관된 유물이 하나 있습니다.
아프라시압이라고 하는 유적에서 나온 벽화인데 저 끝에 있는 사람들이
약간 모양이 그때 시대에 살았던 한국인들이 아니겠느냐.
-한국인 느낌.
-고려, 고려인.
-뭔가 한국인 느낌이 납니다.
-이게 벽화가 그려진 게 거의 6, 7세기로 보고 있기 때문에 고려 이전에 주몽이 살았던 고구려이지 않을까.
-주몽.
-고구려.
-아는 분 나왔다.
-그렇게 일단 추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즈베크에 많이 오시는 분들이 아니다, 이것은 백제 사람이다, 이거 신라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우리가 다 나눌 필요 없이 이전부터 한국하고 우즈베키스탄이 있었던 하나의 국가와 계속 연관이 있었구나.
그렇게 왔다 갔다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하고 그러한 일들이 굉장히 많았구나.
그래서 이렇게 유물에 있는 그런 것도 다 나와 있구나.
그래서 저는 이걸 보고 나도 이런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닐까.
왜 내가 한국에서의 한의사 생활을 굳이 마다하고 우즈베크까지 와서 내가 여기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어떻게 보면 하나의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이전서부터 있었던 똑같은 역사의 반복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많은 국가들이 서로 합치고 교류하고 서로서로 나누고 문화를 나누고 의술을 나누고 하는
그런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님들이 하던 걸 지금 그냥.
-이어서 하는.
-후배님이 하고 계시는 거군요.
-그렇게라도 어떻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의식을 가지고 간 건 아니고요.
제가 마침 졸업했을 때 병역을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이거 하면
조금 3년 동안 재밌게 보낼 수 있겠다 해서 그렇게 해서 지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 가서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고 한국국제협력단에서도 훈련받고 해서
우즈베키스탄으로 파견이 돼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또 마침 거기에는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이라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만들어 준 어떻게 보면 선물 같은 병원이었는데.
-한방병원.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는 그러한 병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병원에 제가 파견돼서 저도 같이 거기에서 환자분들을 진료하고 한의학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의사들에게
한의학에 대해서 다 알려주고 이러한 역할을 그때 3년 동안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1년에 저희 병원에 오시는 우즈베키스탄 국민분들이 거의 3만 명 정도였습니다.
-3만 명이요?
-줄을 서시오, 해야 하는데.
-저기 보시면 제가 줄을 세우고 있는 모습도 있는데 제가 제일 말단이었을 때 제가 하는 역할은.
-(함께) 줄 세우기.
-3만 명 환자분들을 다 줄을 세우고 이름 적고.
-임현식 선생님, 역할.
-그렇죠. 이런 역할을 제가 했었고요.
이게 환자분이 3만 명이기 때문에 1년에 200일 일한다고 치면 하루에 150명의 환자가 오거든요.
150명의 환자들이 물밀듯이 몰려와서 아침부터.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선장님. 고려인분들 말고도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분들도 한의학 진료를 받으시는 거잖아요.
-그럼요. 굉장히 호기심을 가지고 많이 바라봅니다. 그래서 한번 가서.
-진료 볼까?
-진료를 받아보고 싶다 하시는 문의 전화도 굉장히 많고 아니면 뇌물을 써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
-그 정도로 인기예요?
-그렇게 인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분들이랑 대화는 러시아어로 하세요?
-주로 그분들하고 러시아어나 우즈베크어.
-우즈베크어도 하세요?
-그렇게 합니다. 그거 어렵지 않고요. 왜냐하면 저 같은 사람은 하는 말이 맨날 똑같습니다.
어디가 아프세요? 그럼 치료 받으셔야 되겠네요.
-한정되어 용어가 있네요.
-그렇죠. 똑같은 말을 하니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 그거 우즈베크어로 한번 해 주시면 안 돼요?
-어디가 아프세요?
-처음 만나면 무조건 인사부터 해야 하니까 아살롬 알레이쿰.
-아살롬 알레이쿰.
-(우즈베크어) 그러면 당신한테 무슨 문제가 있느냐.
-여기가 아파요.
-(우즈베크어) 이렇게 물어보면 목이 아프세요? 물어보면. 오케이.
이렇게 물어보고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항상 쓰는 말이 똑같아서 똑같이 그냥 얘기합니다.
얘기하고 저도 똑같이 알아듣는데 약간 특수한 경우가 있으면 잘 안 되면 종이에 쓴다든지 뭘 말씀하시는 걸.
그런데 굉장히 이분들이 어떻게 보면 진료에 대해 적극적이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한테
거기서 직접 전화를 해서 스피커폰으로 네가 이것 좀 통역 좀 해줘.
선생님하고 말이 안 통해 지금 이렇게 통역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진료하는데 정말 크게 어렵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환자분들이 다 적극적으로.
-그렇긴 하겠다.
-어떻게 하면 진료를 잘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시고 그분들끼리 적극적으로 진료에 임하셔서 굉장히.
-저도 선수 할 때 허리에도 침 맞고 해서 효능이 좋은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이따만한 침 보면 겁나거든요.
-맞아. 날 관통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
-여기다 넣으려고 그러고 이러니까. 그런데 그쪽 우즈베크에서 침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없나.
-그런데 약간은 저는 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의 하나는 제가 침 치료를 할 때 우즈베크 사람들이 물어보는 거예요.
그게 혹시 일회용 침이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당연히 일회용 침이지 무슨 이상한 걸 물어보냐고 그랬더니 알고 봤더니 우즈베크는 잘 안 쓰는 거예요, 일회용 침을.
-쓰던 거 또 쓰고?
-그런 경우가 실제로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열악하다 보니까.
-절대 그러면 안 되잖아요. 항상 맨 처음 학생들한테 수업할 때 무조건 일회용 침을 쓴다 너희들.
이거 잘못된 거다. 이거 아주 안 좋은 것이고 범죄다, 범죄. 하면 안 된다.
무조건 일회용 침으로 해야 한다고 얘기를 하는데 사실 그거 말고는 침 자체에 대해서 저걸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거나 저걸 맞으면 큰일 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짜요?
-그런데 약간 종교가 이슬람이기 때문에 남자 의사가 여자를 치료하는 거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남자, 남자.
-내외해야 한다.
-남자, 남자, 여자, 여자 이렇게 나누어서 치료받길 원하시는.
그런데 그런 거 말고는 침이 아주 큰 거라고 하더라도 특히 엉덩이라든지 이런 데는 살이 많기 때문에 작은 침으로 안 되거든요.
장침이 필요한데 그런 거를 제가 해 드리면 한국의 할머니들하고 반응이 똑같아요.
앓는 소리 하시다가 시원하다. 이렇게 하신다든지. 한국 할머니들처럼.
어떻게 보면 우즈베크에서 활동하지만 한국에 있는 것처럼 할머니들의 반응은 똑같구나.
나이 들면 다 똑같구나.
그렇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고 또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봉사 활동이라든지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한 지역에서만 할 수 없고 여러 군데에서 많이 우리 한의학 봉사 활동 좀 해달라고 요청이 많으셔서
제가 직접 거기에 가서 환자분들한테 같이 진료해 드리고 시골로 다 내려가서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이때는 BTS가 아직 없던 시대인데요.
-그러게요.
-그때는 굉장히 우즈베크에 인기 많았었던 건 이영애 배우님이 나오신.
-대장금.
-대장금이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사실 그걸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와서 야, 대장금이다 여기는. 그런데 너는 왜 남자냐. 그래서.
-정말 단순하게.
-제가 그래서 그게 아니고 대장금은 저의 선배님, 어머님 같은 분이고 저는 여기서 후배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해 주고 그랬던 게 있습니다.
그분들이 다 하시는 말씀이 한국에서 이렇게 무료 병원을 만들어주고 또 우리 한국에 있는 한의사들을 불러서
한의학 진료를 해 주는 게 너무나도 고맙고 한국 넘버원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게
굉장히 많아서 굉장히 뜻깊은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을 굉장히 사랑해 주고 3년 동안 여러 많은 환자분들이 너무 한의학을 사랑해 주시고
또 그거와 더불어서 한국도 많이 사랑해 주시고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생각에 많이 남아서 수기로 작성해서
경험담이라고 해서 제가 이러한 책을 한 권 만들기도 하고 해서.
-작가님이 또.
-여러 가지로 굉장히 좋은 기억을 안고 한국에 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한방병원에서도 근무하고 또 여기 한국에서 한의사로서의 생활도 하고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수업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2016년에 갑자기 한국국제협력단에서 또다시 한의사를 한 명 파견시킬 거다 이런 얘기가 있었어요.
-2016년에요?
-제가 미련 없이.
-이건 기회다.
-한국보다는 우즈베크지.
-그렇죠.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다 내버리고.
-우즈베크가 더 편해.
-그런데 그때 당시에 지원자가 50명이었어요. 한 명 모집하는데 50명 지원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많은 우리 젊은 한의사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한의사분들 아무튼 50명이 한꺼번에 한 자리를 목표로.
-50:1.
-그렇죠. 50:1로 왔는데 제가 그중에 1등 했습니다. 뭐 아무래도 그 전에 제가.
-수상 이력도 있고.
-그중에 해서.
-오디션을 치르셨습니까?
-그때 면접 보고 하는데 제가 뭐 한 가지 힌트를 말씀드리면 면접에서 마지막에 영어나 아니면
당신이 알고 있는 외국어로 자기 소개를 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이렇게 보니까 영어는 다 아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러시아어로 그냥 했거든요. 그랬더니 우리가 못 알아듣는다고 그냥 막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거는 아니고요. 제가 열심히 잘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좋아요.
그러면서 합격을 시켜 주셔서 그런데 2016년에 한 가지 약간 다시 해외로 나가고
우즈벡으로 다시 뽑혀서 나가는데 약간 두려움이 있었어요. 뭐냐 하면 제가 그때 아기가 셋이었어요. 6년 동안.
-애국자시다.
-능력자인데요.
-애국자, 애국자라고 저를 표현하고 싶은데 제가 아이를 그때 6년 사이에 애를 셋이나 낳아서.
-혹시 그래서 더 떠나고 싶으셨나요, 우즈벡으로?
-아닙니다.
-그거는 아닙니까?
-꼭 그렇게까지는 아니고요. 그런데 약간 그런 거는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우리 아이들한테 너의 엄마, 아빠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아니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었는지는 한번 꼭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아이들과 다 같이 가신 거예요.
-그렇죠.
-놔두고 가면 큰일 나죠.
-큰일 나죠, 놔두고 가면. 그래서 무지하게 가방이 많았습니다.
가방 막 그때 애들이 어려서 자기 가방 못 메니까 다 메고 지고 해서 그때 비행기에서 승무원 선생님이
저 보고 어디 이렇게 멀리 가시나 봐요. 이민 가시나 봐요. 이민은 아니고요. 파견 근무하러 갑니다.
그래서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이고 지고 우즈벡으로 갔는데 한 가지 또 문제가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제가 6년 만에 갔을 때는 이전 생각을 하고 가서 똑같이 병원이 있고 무료 병원이 있고 많은 환자가 있겠지.
환자분한테 한의학 봉사 활동하는 큰 문제없겠지라고 약간 뭐라고 할까요.
약간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막상 갔더니 그 병원이 없어졌어요.
그 병원이 없어지고 한국지원단하고 우즈베키스탄 정부하고 이야기를 한 거는 송영일 선생을
전통 의학 환자 진료를 하는 조그마한 한국으로 치면 보건소 같은 데에 보내서 활동을 하게 해라, 그렇게 돼서.
-그러면 군 생활할 때 있었던 한방병원이 없는 상태로.
-그 병원 자체가 다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 알았던 사람들 그때 당시 병원에서 같이 오랜 시간 동안 근무했었던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없는 상태로.
-다 다른 데로 가고.
-다시 맨땅으로.
-그렇죠. 완전 진짜 맨땅에 헤딩하는. 그래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가 제가 여기에서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한 번 헤어진 여자하고는 다시 만나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우즈벡이랑 한 번 헤어지고 그냥 거기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뭐랄까요 좋은 추억을 가지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끝냈어야 했는데 다시 갔더니 너무 힘든 거예요.
-후회했겠네요. 후회했겠어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병원이 왜 없어졌나요?
-이게 어떻게 보면 무료 병원이기 때문에 뭐랄까 예산을 계속해서 거기에 투자할 수 없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 상태이고 우리나라 사람도 지금 무료로 다 못 해주는데 어떻게 무료로 해줄 거며 그런 여러 가지 그래서
그런 문제가 있어서 조그마한 진료실을 줄 테니까 거기에서 환자를 보시고 하시라.
그래서 이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죠.
그래서 너무 힘들었으니까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2년이 끝나면 한국으로 그냥 돌아갈까 그랬었는데
제가 이렇게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니까 제가 우즈벡에서 여러 분을 많이 만나고 하면서
조금 마음에 많이 어떻게 보면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지금 합니다.
그때가 아마 2017년이었을 건데 더운 여름 날이었어요.
그런데 우즈벡은 한낮에 온도가 거의 40도, 50도가 그냥 넘어가거든요. 무지하게 더워요.
거기가 사막이기 때문에 무지하게 덥고 그런데 아침에 거의 7시쯤에 아침에 일어나서 이따가 가서
또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니까 쉬고 있어야지 하고 누워 있었는데 아침에 전화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받았는데 러시아어로 뭐랄까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너 오늘 일 해, 안 해, 딱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냥 러시아어로.
네, 제가 오늘 일합니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오케이 하고 전화를 그냥 끊는 거예요.
이거 그래서 전화를 받고 굉장히 무례한 전화다. 아침 일찍 7시에.
전화를 해서 9시에 가서 출근해서 환자를 보는데 나한테 전화한 사람이 올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진료하는 데 안 오셨어요.
아침에 왜 전화를 한 거야, 이상한 사람이네 하고 다음 날은 제가 휴진이어서 학생들한테 수업할 그거를
제가 스스로 공부하고 오후에 수업하려고 한참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할아버지 한 분이 이렇게 들어오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자기가 어제 전화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제?
-어제 전화하셨으면 어제 오셨어야지. 오늘은 내가 휴진일인데 왜 지금 오늘 오셨어요, 그랬더니.
-아침 7시에 전화하셨던 분이죠.
-자기가 누크스 그러니까 1200km 떨어진 데에서 저한테 전화를 하고 택시에 앉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13시간 동안 택시를 타고 저를 만나러 오신 거예요, 1박 2일 동안. 그래서 내가 아니, 저를 왜요?
제가 뭐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소 경을 눈 뜨게 하는 그런 사람인가요?
-제가 뭐라고.
-제가 뭐라고 저한테 오셨어요, 할아버지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나도 성이 김 씨입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그때 뭔가 찡한 게 있는 거죠. 그 말은 뭐냐 하면 나도 한국 사람이다.
내가 어디에서 소문을 들어보니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한국의 한의사가 와서 진료한다는데
자기가 한국 사람이니까 나는 너를 만나러 왔다.
그런데 그냥 편하게 1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게 아니라 13시간 동안 택시 타고
1박 2일 동안 택시 타고 와서 저를 만나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할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그때부터 할아버지하고 사이 좋게 돼서 할아버지 성함도 알게 되고 전화번호도 알게 돼서
제가 할아버지한테는 언제든지 전화 하시라고.
전화하시고 오시면 제가 언제든지 있겠다고 하셨는데 그분이 계속 오셨어요. 주기별로 오시고.
-1박 2일 동안 택시를 계속 타시고.
-택시 타고.
-그런데 1박 2일 동안 그렇게 주기적으로 계속 택시 타고 오시면 없던 병도 생기실 것 같은데.
-그러니까요.
-너무 힘드실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약간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온 재미교포들은
약간 높게 보고 고려인이라든지 아니면 조선족, 이런 사람들은 좀 이렇게 약간 별로 안 좋아하고.
-소수 취급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때 아주 강하게 느꼈어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고 이게 똑같이 이게 영어로 쓰면 KOREAN. 코리안이거든요.
-코리안이죠.
-미국에 살아도 코리안이고 우즈벡에 살아도 코리안이고. 중국에 살아도 똑같이 다 영어로 쓰는 똑같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거를 차별하고 이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분들한테 좀 뭐라도 이렇게 해드려야겠다.
그런데 이분들이 대부분 65세 넘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분들만 보면
우즈베키스탄에 많이 남아 계시고 그분들의 자제분들은 많이 한국에 오시거나 아니면 러시아나 그런 데 가서 일을 하시죠.
그래서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뭐랄까.
자제분들도 가끔가다 오시고 몸도 많이 불편한데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그러면 주말마다 오셔서 한번 진료를 받아보시고
우리가 그렇게 한국에서 온 한의사를 예뻐하시니 제가 그런 한민족 한마음 한의학 진료소를 만들어서
그래서 여러분한테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해서 한민족 한마음 한의약 진료소를 만들었습니다.
저것을 만든 것은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고려인 문화의 집이 있어요.
고려인 문화의 집에서 고려인 회장님께서 특별하게 방을 하나 내주시고 송 선생님이 여기서 항상 진료하세요라고
방도 만들어주시고 하셔서 거기서 환자분들한테 진료도 해드리고 같이 이야기도 듣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갔을 때 고려인 분들이 그분들만의 특별한 사투리가 있어요.
뭐라고 하시냐면 할머니, 요즘 좀 어떠세요 그러면 일 없어, 일 없어. 다니기가 조금 바빠, 이래요.
그러면 일이 없다. 구직을 하셔야 하는데,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이 없나 보다.
또 왔다 갔다 다니시는 게 더 바쁘신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괜찮다는 거예요?
-괜찮다, 괜찮다. 그런데 조금 걸어갈 때 약간 다리가 아프다.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처음에 그 말을 듣고는 왜 자꾸 일이 없다고 하시지. 그래서 저한테 한국에 보내달라는 이야기예요?
그랬더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아프지 않다고. 크게 아프지 않다고.
오케이, 오케이라는 말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북한 말이나 연변 말처럼 약간의 일종의 사투리 느낌이네요.
-그런 사투리인 것 같습니다. 또 환자분들이 다 진료를 마치시고 나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 숨차요.
-아 숨차요.
-아 숨차요.
-저는 처음에 숨차다고 하는 줄 알고.
-아 숨차요, 숨차요.
-심장에 문제가 있나 보다. 큰일 났다. 119 불러야 하나.
그게 아니라 이렇게 진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말을.
-아 숨차요.
-아 숨차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숨차요.
-저도 그 말을 배워서 할머니, 요즘 일 없죠? 그래, 일 없어.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저도 나갈 때 아 숨차요라고 같이 말씀드리고 그래서.
-그러면 거기서는 우리나라 말과 우즈베키스탄어를 같이 혼용하나요?
-그래서 특히 고려인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은 저한테 오셔서 항상 제가 러시아어로만 말씀드리면
러시아어 하지 말고 한국어로 해달라고.
왜냐하면 자기 한국말 듣고 싶다고. 자기가 한국말을 잘 못 하지만.
-슬퍼.
-당시에 하는 한국말을 좀 듣고 나도.
-너무 슬퍼요.
-그렇게 말씀하셔서 약간 좀 찡한 그런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저한테 쭉 진료를 받으시고 편지를 하나 적어주셨는데
할머니는 한국어를 잘 못 하셔서 손녀분한테 부탁해서 당신이 이렇게 와서 봉사활동을 해주시고
그런 게 감사하고 고맙다, 아 숨차요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제가 굉장히 마음의 용기를 얻고 한국에 지금 바로 가면 안 되겠다.
이분들을 위해서 조금 더 활동을 할 필요가 있겠다.
-이 맛에 또 머무는 거죠.
-그렇죠.
-환경에 열악하지만 저런 편지 받으시면 또 의료 봉사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시겠어요.
-맞습니다. 어떤 큰 선물보다 저런 편지 하나 적어주시면
정말 두고두고 제가 계속 보면서 이렇게 하시는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너무 느꼈던 그것을 좀 많은 분하고 같이 나누고 싶어서 제가 그것에 대해서 수기를 썼습니다.
그래서 수기를 써서 재외동포문화공모전 그런 데에 체험 수기를 제가 냈어요.
그래서 그게 대상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가 우즈베키스탄 의사들이 한의학을 배우려고 많이 합니다.
여기가 학생들을 제가 같이 사진 찍은 건데요.
이번 여름에 전국에 있는 학생들을 모아서 한 달 동안 같이 교육하고
한의학에 대해서 수료증과 자격증도 주고 하는 그러한 수업이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저 스스로 뜻깊게 생각하고요.
왜냐하면 멀리에서 누쿠스에서 온 학생들도 있는데 학생들한테 물어보니까
나중에 다 끝나고 너는 갈 때 누쿠스 갈 때 어떻게 가냐 그랬더니 저는 버스 타고 갑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버스가 있어?
그랬더니 버스로 1박 2일 간다고 그럴 정도로 그러니까 그렇게 멀리서 이렇게 와서 공부하겠다고 와서 한 달 동안.
-배우려는 열정이.
-한국에 와서 어떻게 보면 유학이라든지 이런 것들 굉장히 하고 싶어 하고요.
석사 과정, 박사 과정 이 전통 의학을 자기네들이 해서 다시 우즈베크로 가서 거기서 선생님이 된다든지
교수가 된다든지 이런 것도 많이 꿈꾸고 있습니다.
특히 제자 중의 한 명이 아주 똑똑한 제자가 있어요.
그래서 지크릴로라는 이름인데요. 굉장히 열심히 공부하고 굉장히 적극적이에요.
이 친구가 사는 데가 수도가 아니라 수도에서 거의 한 450km 떨어진 페르가나라고 하는 데서 계속 와서
공부하고 제가 하는 거에 대해서 어떤 진료에 대해서 공부하고 하면서 자기가 굉장히 많이 성장했어요.
성장해서 한국에도 거의 한 네 번 정도 와서 한의학에 대한 연수도 받고 그래서
이 친구가 저한테 공부를 해서 크게 병원을 만들었는데 병원의 이름이 아리랑 우즈베크 메디컬 센터예요.
-아리랑.
-페르가나에 가시면 아리랑이라고 하는 글자가 적혀 있는 뭐랄까 한방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병원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친구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저런 걸 만들어서 우리가 아리랑 글로 아리랑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게 참 뜻깊은 그러한 일이었습니다.
이게 코로나가 끝나고 아마 2022년인가 그때 만들어서 쭉 봤는데.
이 친구가 저기 잘 보시면 병원 앞에 제 사진을 크게 만들어놨어요.
-뒤에 저기.
-굉장히 부끄러운.
-그런데 두 분이 계시는데.
-한 분은 손영일 원장님이라고 한국에서 교육을 담당하셨던 분.
저 지크릴로가 우즈베크에서는 저한테 공부하고 한국에 가서는 우리가 한국에서 송영일 원장님이라고 하는 분한테서
공부를 해서 우리가 아리랑 우즈베크 메디컬 센터라고 하는 걸 만들어서
하루에 환자를 100명 이상씩 보고 여기도 외국에서도 환자가 많이 옵니다.
지금 러시아라든지 옆나라인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니면 저기 두바이 이런 데서도 환자들 올 정도로
아주 문정성시 이루면서 그래서 제가 항상 보고 그럽니다.
너는 참 나보다 낫다. 네가 확실히 나보다 낫고 그런데 네가 있어서 참 나는 여기 어떻게 보면
우즈베크에 있기를 잘한 것 같다.
너 같은 제자가 있으니까 갈 때마다 굉장히 뿌듯하고 앞에 보면 딱 아리랑 이름이 적혀 있고
이러면 사람들이 물어본다고 그래요. 아리랑이 뭐예요?
그쪽 나라 사람들 아리랑 뭐예요, 그러면 아리랑은 한국의 유명한 노래인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면서 특히 어떻게 보면 한국이라고 하는 대표할 수 있는 그런.
-그렇죠.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아리랑 한 소절도 가르쳐 주시지 그랬어요.
-아리랑은 제가 못 알려줬습니다. 노래는 잘 못 해서. 노래가 또 너무 슬프고 그런 게 있어서.
-혹시 또 필요하시면 여기 전문가 있습니다. 아리랑 잘 알려줄 수 있습니다.
-제 옆에 아리랑이 많아서.
-우즈베크에서 한번 거기서 버스킹 해 주시면.
-좋다.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우즈베크에서까지.
-우리가 또 한국이라고 하면 또 한글, 한국어 이게 또 빠지면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고유한 언어를.
그래서 제가 이렇게 쭉 알아보니까 학생들이 대부분 다 중국에서 나온 책들을 공부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럴 필요가 뭐가 있느냐? 이것을 한국어로 다 바꿔야 되겠다.
그래서 거기에 나온 책에 있어서 한국어와 한글을 다 병기해서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글을 바탕으로 해서
한의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제가 그렇게 책을 만들었습니다.
-한글로 해 놓으면 훨씬 읽기가 수월하니까.
-또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게 뭐지 하면서 또 한국어도 더 많이 공부하려고 하고.
-자연스럽게 또 하게 되고.
-맞아.
-한국어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도 많이 가지고, 이렇게.
그런데 쭉 이렇게 7개의 교과서를 만들었고 이번에 한 권이 또 나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 8개의 교과서를, 한국 한의학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어서 각 학교에 무료 배포해서
학생들이 잘 받아보고 읽어보고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학생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고요.
이 책 자체를 구하려고 인쇄하고 출판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제가 거기에 있으면서 그전에는 한국의 한의학을 알리는 먼저 사람으로서
계속 한국의 한의학에 대해서만 관심을 많이 가지다가 우즈베키스탄 전통 의학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의학의 어떻게 보면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아브 알리 이븐 시나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980년에 이분이 태어나서 1037년까지 활동하시면서 의학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아주 방대한 저술을 하셨어요.
그런데 특징적인 거는 이분이 쓰신 방대한 저술이 유럽으로 넘어가서 유럽의 현대 의학, 서양 의학의 바탕이 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전통 의학이라고 하는 게 그냥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이 서로 순환적으로,
상보적으로 발전하는 그런 아주 중요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아브 알리 이븐 시나를 굉장히 높은 사람으로 보고,
성인으로 거의 추앙을 하고.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그런데 지금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브 알리 이븐 시나를 어떻게 보면 우즈베키스탄 전통 의학의 아버지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은 따로따로 아니냐?
그런데 저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이 따로가 아니다.
너희가 소중하게 여기는 지금 아브 알리 이븐 시나를 봐라.
그 사람의 12세기에 나온 그 책이 유럽으로 가서 현대 의학을 발전시키지 않았느냐?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전체적으로 보면 의학은 하나다.
전통이고 현대고 나눌 것 없이 계속해서 발전해 오면서 인간이 어떤 하나의 새로 의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통 의학이라고 하는 그러한 탄탄한 바탕 위에서 다시 또 과학이 발전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지.
서양 의학 따로 있고 전통 의학이 따로 있고 이렇게 나눠지지 않는다.
-별개가 아니다.
-별개가 아니다. 제가 항상 그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마침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통령께서 그분이 2018년도에 앞으로 우즈베키스탄도 전통 의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는 법안을 발의하셔서
이게 대통령께서 법안을 발의하니까 그 밑에 있는, 산하에 있는 보건복지부, 교육부,
이런 데에서 전통 의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대통령의 명령이 내려왔어!
그러니까 막 학과를 만들고 병원을 만들고, 교육을 시키고 막 그러한 붐이 일어난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붐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온 전문가는 저 하나잖아요.
제가 그러니까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학교마다 강의를 하고 특강을 하고 학생들한테 소개를 하고 교수들을 만나서
한국의 한의학은 이렇게, 이런 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도 이런 부분을 많이 중점을 두고 하십시오.
이런 것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를 해 주고 하면서 굉장히 어떻게 보면 몸값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몸값이.
-희소성이 있으니까.
-그렇죠, 희소성 때문에 돈을 받지는 않지만 서로서로 오라고.
이번 주말을 이용해서 누쿠스 한번 와주시면 안 되냐고. 페르가나, 부아라, 사마라칸트. 제가 안 가본 데가 없어요.
그래서 다 가서 거기에 있는 학교마다 교수들을 만나서 이게 전통 의학이 발전하려면 뭐를 해야 하고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고 대통령께서 이러한 명령을 내렸으니까 앞으로 뭐를 더 중점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데.
-저는 들으면서 이제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전통 의학을 다시 부활시키자 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궁금한 게 그럼 우리 한의학과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의학과 비슷한 점,
그리고 이거는 정말 다르다 하는 부분이 또 현지에서 일을 하셨으니까 잘 아실 것 같아요. 궁금해요.
-아브 알리 이븐 시나 같은 경우에는 종교 자체가 이슬람이었고
그것에 대해서 굉장히 무슬림적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슬람 의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하게 차이가 있다면 아브 알리 이븐 시나는 침 치료라든지 그런 거를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 부분은 항상 한국이나 중국한테서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의사들이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 이제 중국보다 한 발이 앞서 나가서 교육을 하고 있는 게,
이걸 어차피 공부해야 하니까 자기들의 어떤 전통 의학 바탕에는 침 치료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공부해야 하는 건데 한국에서 굉장히 과학적으로, 그리고 그러한 부분들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을 제1파트너로 생각하고 많이 교육을 받고 있는 거죠.
-그렇구나.
-어차피 우즈베키스탄이 환자분들 중에 주로 심장 문제라든지 아니면 뇌에 중풍 환자분들이 되게 많으세요.
그런데 그분들이 중풍을 앓고 나서 재활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잘 안되시는 경우들이 아주 많이 있어서
중풍 재활물리치료실을 만들어되겠다고 해서 한국국제협력단의 그런 지원을 받아서 중풍 재활치료실을 만들어서
환자분들이 치료받으실 수 있게. 그래서 환자분들의 만족도도 굉장히 높아지고.
지금 이제 이 분야에 대해서 보면 우즈베키스탄에도 이런 환자분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런 환자분들한테 침 치료를 했을 때
얼마만큼 더 좋아지느냐? 그러한 연구라든지 이런 것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외에도 학생들이나 아니면 우즈벡 의사들한테 굉장히 교육을 시키고 있고.
제가 생각했을 때는 굉장히 이게 또 뜻깊은 것은 이러한 교육 자체가 그냥 하는 교육이 아니라
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교육입니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보건부에서 또 학생들한테 한국에서 온 한의사인
송 선생이 하는 수업을 받게 되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자격증을 준다.
이렇게 해서 공문서를 받아서 각 학교마다 다 보내서 쭉 이렇게 다 수업도 받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습니다.
지금 중국이라든지 아니면 인도라든지 이런 국가가 특별히 그렇게 하거나 하지 않거든요?
-일단 우즈벡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우리 K-메디를 인정한다.
-그렇죠. 한국 한의학.
-그런데 어떤 자격증을 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운전면허증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것처럼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한의학 진료를 할 수 있는?
-그렇죠.
-그런데 한의학 진료 중에서도 환자를 직접 보고 환자한테 침 시술을 할 수 있느냐, 이 사람은.
그것에 대한 자격증입니다. 그래서 그 자격증이 있어야 환자한테 저기 할 수 있습니다.
-그거 없이 하면 불법이잖아요.
-네.
-그러니까.
-이게 되게 진짜 의미가 있는 게 정말 국가적으로 공식적인 치료라고 인정을 해 주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뿌듯하다.
-그래서 보건부에서는 그렇게 인정을 해서 지금은 많은 우즈벡 의사와 학생들이 계속 교육을 받으려고 다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즈벡에서 저를 이렇게 잡지의 표지 모델로 저를 찍어줬어요.
-선생님이에요?
-네, 이게 여기 보시면 우즈벡이 인구가 3700만이거든요.
그런데 3700만 인구 중에 한국의 한의사를 저 하나니까 굉장히 어떻게 보면 조명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위치에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여기 와서 한국의 한의학과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의학이 서로 교류하면서
동반 성장해서 환자들한테 좋은 영향을 미치면 좋지 않겠느냐.
그러한 인터뷰도 하고 해서 이렇게 표지 모델을 저를 해 줘서 저는 지금 집안의 지금 아주 큰 유물로써 잘 남겨놓고 있습니다.
-엄청 잘됐다, 컬러가.
-이 정도면. 맞아, 우리 선장님, 우즈베키스탄 공항 딱 떨어지시면 블랙핑크 등장한 것처럼 막 난리 나는 거 아닙니까?
-다다다.
-다다다.
-그런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 정도 될 때까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궁금한 게 사실 한의학 하면 침도 있고 뜸도 있고.
-그렇죠.
-그리고 한약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럼요, 그럼요.
-우리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학을 이렇게 알리는 활동하실 때 한약에 대한 것도 거부감이 없으신지.
-생태계가 좀 다르지 않을까요?
-그렇죠. 아무래도 자연환경도 차이가 많이 나는 사막성 기후고 거기에서 자라나는 식물도 전혀 다르거든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은 너무 덥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산삼, 인삼 이런 것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은 자랄 수가 없어요. 그렇다 보니까 인삼, 특히 인삼에 대해서 굉장히 인기가 많죠.
-그럼 수입을 해야 하는.
-그렇죠. 그것은 다 100% 수입하셔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굉장히 기술이 좋아져서 스마트팜을 통해서 앞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인삼을 재배하겠다,
이러한 계획도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키우는.
-그렇죠. 왜냐하면 너무 수입만 하다 보니까 너무나도 비싸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들면
좀 많은 환자가 사용할 수 없게 되니까 그것을 낮춰야 하니까, 가격 자체를.
그래서 한국에 잠깐 갔다 온다 그러면 한국회의에서 인삼 좀 많이 사 달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 것도 있고 또 한의학에 대해서도 여기에 지금 아부 알리 이븐 시나라고 하는 사람 자체가
그러한 약초, 식물에 대한, 약에 대한 저술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이미 그것은 어떻게 보면 국민들이 많이 사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환자분들은 이슬람이기 때문에 돼지고기가 혹시 들어간 거냐 아니면
그런 부분들 때문에 그런 것만 잘 설명을 해드리면 잘 복용하시고 그것에 대해서 효과도 많이 보고 그렇습니다.
-그럼 거기는 젊은 사람들은 혹시 반응이 어떤지 좀 궁금합니다.
-한국은 지금 출산율이 0.7 이렇게 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즈베키스탄은 3이거든요. 1년에 100만 명씩 애들이.
-증가하고 있네요.
-증가한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젊은 인구 비율이 높고요.
지금 평균 연령이 70세 정도기 때문에 한국보다 10년 정도 짧은 상태죠.
어떻게 보면 노동이나 이런 일들을 많이 하는 경우도 있고 해서 굉장히 한약에 대해서 호감을 많이 가지고
또 그분들도 많이 생각해요.
왜냐하면 약이라든지 이런 것을 먹다 보면 부작용이나 이런 것 때문에 굉장히 힘든 경우가 있는데
이제 그러한 약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느냐.
그럴 때 그 부분에 대해서 침 치료라든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도움이 된다 그러면
그러한 치료 방법을 많이 선택하시고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오늘 쭉 선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진짜 우리나라 한의학을 우즈베키스탄에 알리는 데
정말 개척자라는 단어가 우리 선장님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선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더 궁금해집니다.
-제가 벌써 12년인데 여러분은 12년 하면 어떤 영화가 생각나세요?
-12년 영화.
-영화요?
-네. 보면 영화에 노예 12년이 있죠.
그런데 제가 물론 노예는 아니지만 그 긴 세월을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물론 어려움도 많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그런 생각도 하고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도둑도 저한테 들어서 돈도 잃어버린 적도 있고 물건도 잃어버린 적도 있고 힘들고 어려운 적도 많았지만
하지만 처음으로 하는 일이고 저 말고는 아무도 없고 제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아직 할 사람이 없고 하는
그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일을 조금 더 앞으로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에 면접 볼 때 거기에서 교수님이 물어보시는데 앞으로 10년 후에
당신의 모습은 무엇입니까라고 저한테 물어봤습니다.
제가 그때 뭐라고 했냐 하면 중국의 중의학이 한국의 한의학을 넘지 못하도록
탄탄한 성벽을 세우는 것이 제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했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역할을 제가 함으로써 우즈베키스탄이 전통 의학의 항상 제1 파트너는 한국이 될 수 있도록
그러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우즈베키스탄을 넘어서 더 많은 나라에 우리의 전통 의학, 한의학을 알리실 선장님의 활약이 더욱더 기대되는데요.
그럼 오늘 강의 한마디로 정의를 해주신다면요?
-이제 앞으로 저는 한의사기 때문에 하는 말씀이 아니고 새로운 한류는 한의학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다 아시는 실크로드 아시잖아요.
-실크로드.
-그런데 이게 보시면 육상 실크로드가 있고 바다 실크로드가 있거든요, 해상 실크로드.
그런데 다들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류가 굉장히 많이 끼친 곳들입니다.
육상도 그렇고 한류도 그렇고.
한국의 어떤 인기가 많은 그러한 국가들이 많은데 이러한 국가들을 이제까지는 노래 아니면
한글, 한국어 이런 것뿐만 아니라 그런 어떤 여러 가지 한국적인 게 있는데 우리가 한의학으로서
이것을 또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한의학이 한국에서만의 한의학이 아니고 전 세계의 전통 의학이 될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실크로드를 K-메디 로드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많이 도와주셔야 한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K-메디 로드로 만들어 가는 데 우리도 일조합시다.
-그럼요.
-두 분은 오늘 어떻게 들으셨는지도 궁금해요.
-오랜만에 침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듣다 보니 허리도 아픈 것 같고 침을 한번 맞으러 가야 하나.
항상 모든 강사분들 오시면 열심히 듣고 있는데 오늘 특히 조금 더 멋지신 것 같아서.
외국에 혼자 나가셔서 막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신 것부터 시작해서 한의학을 많이 알리시려고 하시는 것 같고
아까도 아리랑 저것도.
-아리랑 너무 멋있어.
-이제 제자들까지, 되게 멋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새로운 분야, 안 해본 분야에 하면 이전에 있었던 것을 조금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그 기회가 없고 내가 다 새로 파야 하잖아요.
그게 진짜 에너지 소모가 엄청난 건데. 이런 말 써도 되나?
정말 국뽕이 저절로 차는 느낌이에요. 국뽕을 오늘 저절로 한 사발 들이킨 것 같아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관심도 더 생기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꼭 한번 놀러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사실 흔히 한류라고 하면 드라마나 영화 정도만 생각했었는데요.
우리의 전통 의학 기술이 또 다른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기분 좋아지는 소식인데요.
앞으로도 이 K-메디가 조금 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한테 인기를 얻는 의술이 되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지식 항해는 여기까지고요. 다음 이 시간 더 흥미로운 주제로 찾아옵니다.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K-메디.
-집 안에 곰팡이가 피었다. 어떻게 생각 드세요?
-그냥 부정적인 느낌이 바로.
-그렇죠. 버려지는 빵이 있는데 이 빵에 곰팡이를 줘서 그 곰팡이로 가죽을 만들어 보자.
-그 썩은 빵에서 가죽이 나올 수도 있나요?
-또 하나 중요한 거 하나 있어요. 스티로폼을 대체할 수 있어요.
-스티로폼이요?
-네.
-곰팡이가요?
-또 다른 아이디어가 뭐냐 하면 야, 우리 곰팡이로 한번 벽돌 같은 거 만들어 보자.
-곰팡이 벽돌.
-엄청나죠?
-곰팡이만 있어도 해결되는 게 너무 많은데요.
-미래에는 진짜 우리가 곰팡이 집에서 곰팡이 옷을 입고 버섯을 먹으며 버섯 의자에 앉아서 살 수도 있겠구나.
-쓸모가 너무 많아.
-곰팡이가 중요하다. 되게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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