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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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지도 -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된 이것? (송지청 / 대구한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등록일 : 2025-05-21 14:05:36.0
조회수 : 136
-보물이 되는 지식을 찾아 떠납니다. 펼쳐라.
-(함께) 보물지도.
-오늘 또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이 왔습니다.
그웬 씨와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번에 그웬 씨가 한 번 출연해 주셨잖아요.
그때 이후에 나머지 두 사람보다 한국말 더 잘한다.
그웬이 더 한국인 같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표정 좀 안 좋으신데요.
-그때 이후로 자꾸 날 놀리더라고. 그웬이 더 똑똑하다고.
-맞아, 맞아.
-아닙니다.
-인욱 씨, 0개 국어 맞다, 이러면서.
-0개 국어.
-저희끼리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 두 분에게 똑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두 분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품 하면 어떤 게 먼저 떠오르시는지요?
-현 자동차로 하겠습니다.
-자동차.
-우리나라의 H 자동차. 자랑스러운 우리의 수출품이죠.
-그렇죠.
-인욱 씨 한번 말해봐요.
-저요? 저는 제가 쓰고 있는 것.
-뭔데요?
-휴대전화.
-S.
-S 전자.
-S 휴대전화.
-그렇죠. 제가 있던 곳이었던 데였고.
-왜 갑자기 쓸쓸하게 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말까지 더듬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품 이렇게 많지만요.
지금 카메라 뒤에 서 계시는 저분께서는 다른 대답을 좀 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모셔보도록 할게요. 선장님.
-(함께) 나와주세요.
-안녕하십니까?
-선장님, 저희의 대화 들으셨죠?
-네.
-선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품. 어떤 거가 있을까요?
-질문 자체가 전반적인 수출품을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전공하고 있는 한의학을 국한해서 본다면 아무래도 가장 인기가 많은 인삼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인삼.
-인삼. 사실 인삼은 우리나라 수출품 역사로서도 굉장히 길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특히 외국인들 만나면 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인삼을 진생으로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죠?
-맞아요.
-왜 인삼이 진생일까요?
-왜 진생이에요?
-왜 진생이에요?
-모르겠어요.
-대답해 주세요, 그웬.
-한국분들이 저보고 인삼이... 모르겠습니다.
-인삼이라는 거를 우리가 고려 시대 때부터 이슬람인들의 교역품으로도 되게
유명했고 또 조선 시대 들어와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또 많이
우리나라에서 주요한 교역품이 또 됐어요.
예전에 상도라는 드라마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상도요? 상두야 학교 가자?
-아니요, 아니요.
-다른 겁니다.
-조선 시대 때 청나라에 인삼을 팔러 다녔던 상인들의 이야기예요.
거기서도 고려 인삼이라고 하는 것이 주요 수출품이었던 거죠.
왜 인삼이 주요 교역품이냐 하면 한국의 인삼이 좋기도 하고요.
아주 좋죠. 품질은 세계 최고입니다.
또 하나 뭐냐 하면 크기가 굉장히 작은데 고가예요.
근데 물건을 뭔가 외국에다 팔 때 반도체 굉장히 크기가 작잖아요.
고부가가치이니까 배에다 실어도 물류비가 적고 팔 때는 또 비싸게 팔고, 그렇죠?
예전에 인삼이 그런 측면도 있었던 거예요.
근데 이 인삼이라는 거를 학명을 만들 때 누가 만들었냐 하면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때 만들었어요.
인삼을 일본어로 읽으면 진생이라고 한다 그래요.
그래서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했을 때 아마도 그 학명을 만들면서 진생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외국 사람들을 만날 때 진생 그러면 다 알지만 제가 부연 설명을 합니다.
인삼이라고 불러 달라. INSAM으로 불러 달라.
-그러면 외국 사람들 주목하라. 이제부터 인삼이다.
-진생이 아니라.
-인삼이다.
-인삼이다.
-우리 선장님이 말씀해 주시는 우리나라 대표 수출품은.
-(함께) 인삼.
-인삼이다.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그러면 선장님과 함께하는 K-메디 이야기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주제가 K-메디, 실크로드 이런 주제로 삼았습니다.
근데 실크로드는 워낙 잘 아실 거예요, 그렇죠?
어떤 게 실크로드, 뭐가 실크로드죠?
갑자기 조용해지시네요.
-실크로드요? 무역을 했던 길이요.
-그렇죠. 실크를 교역을 했던 길을 실크로드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실크로드를 검색해서 정의를 살펴보면 중국의 당나라.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 지금의 서안이거든요.
실크를 수출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서안을 가 보시면 사막 기후에 되게 근접해 있어요.
서안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더 넘어가면 타클라마칸 사막 지대가 나오거든요.
여러분, 서유기의 화염산이라고 혹시 들어보셨을까요?
삼장법사가 서역으로 가면서 굉장히 고난을 겪었던 지역 중의 하나로
나오는데 거기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사막을 지나면, 살아서 그 사막을 넘어가면 중앙아시아가 나오고 거기에 오아시스가 등장해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지역이 되고 이제 거기서 좀
쉬었다가 서쪽으로 더 넘어가면 유럽이 되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을 가보거나 또는 터키, 튀르키예를 가 보면 비단 관련된 산업들이 있습니다.
또 남쪽으로도 이 비단이 전파가 됐던 유적지들이 좀 나와요.
스리랑카에 가면 수도 콜롬보에서 차로 4시간, 5시간 정도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시기리야라는 곳이 나옵니다.
이 시기리야가 평원 지대인데 시기리야 록이라고 평원 한가운데 우뚝 솟은 돌산이 하나 있어요.
깎아지른 절벽으로 두른 산이 있는데 이 돌산 위에 궁전을 지었어요, 궁전을.
스리랑카 역사를 보면 왕자끼리 다툼이 있어서 왕자 한 명이 도망을 쳐서 거기에 왕궁을 만들고 요새를 만든 거죠.
그런데 그 요새 주변에 벽화가 남아있는데 그 벽화를 보면 실크를 입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벽화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그러면 그 실크가 남쪽 심지어 바다 건너 스리랑카까지도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실크는 역시 아까 인삼이 작은 크기인데 고가로 판매가 됐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실크도 아마 그런 게 있었을 거예요.
되게 품질도 좋고 또 보관도 용이하고 들고 가기도 편하고, 그런데 실크가 과연 중국에서 있었을까요?
중국에서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아니잖아요, 그렇죠? 어디에도 있었죠?
-코리아.
-그렇죠.
-코리아.
-한국도 유명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잠실, 잠실도 누에와 관련한 또 비단을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한 그런 지명, 뽕나무 밭이었던, 그래서 잠실이잖아요.
-나 잠실이라 그래서 서울 잠실 이야기하시는 줄.
-맞아요.
-서울 잠실 맞아요.
-그거예요?
-네.
-저는 잠실 스타디움.
-잠실 하면 야구장밖에 생각 안 나시죠?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요.
-그래서 실크가 한국에서 유명하죠?
그래서 실크를 누가 먼저 만들었냐를 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실크로드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시작했다고 저는 주장하고 싶지만 어쨌든 동쪽 끝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래서 동쪽 끝이 한국이었을 것이고 서쪽 끝은 유럽이었을 것이니까
실크로드는 생각보다 길고 또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지역은 동서 문화의 충돌지였던 것 같아요.
투르크 계열들, 투르크는 돌궐이거든요.
우리 역사에서 돌궐족 이야기 많이 들었을 텐데 이게 서쪽으로 가서 투르크인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제가 작년 11월에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이 하필이면 투르크연합 국가 수장들 회의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르메니아 또 튀르키예,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투르크 연합체 국가 수장들이 매년 한 번씩 회의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돌궐의 후예들임을 스스로.
-돌궐의 후예?
-네, 투르크.
-돌궐이에요?
-네.
-몰랐습니다.
-시작은 북방 이민족들이 이렇게 세력을 펼치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곳이니까 이렇게 동서 교역은 정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1000년 전부터 수천 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아까 실크로드를 보면 동쪽 끝은 아마도 한국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역사적인 유물로도 남아있습니다.
지금 자료 화면을 보시면 경주의 괘릉이라고 하는 원성왕의 유적인데요.
보면 우리나라 사람 같지 않죠?
-네.
-서역인입니다. 아마 페르시아인들일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으로 따지면 서아시아, 서남아시아 이쪽의 사람들이겠죠.
저 사람들이 왕릉을 지키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석상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 그웬 씨가 한국에 와 있어서 한국말 잘하시는 것들 때문에
대단하시다고 생각이 들지만 1000년 전, 1500년 전에 서역인들이 한국말을 몰랐을까요?
와서 한국말도 잘하고 또 발자취도 남기니까 저런 석상들도 만들어지고 그랬겠죠.
-저처럼 생존을 위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 사람들이 왔을 때는 목적이 있었을 거예요.
뭘 배우러 왔든지 아니면 교역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거나
아니면 순수하게 여행을 왔다거나 또는 탐험가의 마음으로 왔다거나 했을 텐데
어쨌든 경주에 보면 이런 중앙아시아나 서아시아인들의 발자취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렇듯이 서역과의 교역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있었을 것이고 이
의학이 이렇게 서역에서 들어와서 역신이 되었던 게 사실이라면 의학의
실크로드도 이미 1000년 전부터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선생님, 저 궁금한 거 있는데요. 그러면 실크로드의 이스트 앤딩 포인트가 지금 현대 어떤, 어디인가요?
-한의학에서 관련한 교역로를 한번 살펴본다면 다음 그림을 한번 보면 좀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그림은 지금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압 궁전의 벽화예요.
지금 보시면 오른쪽 두 사람이 머리에 깃털이 달려 있고 앞에 칼을 차고 서 있는데요.
이 복장과 모습은 고구려인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신이 이 아프라시압에 가서 그 왕에게 사절단으로 갔을 텐데 물론 이
그림에는 두 사람만 있지만 이 사람, 두 사람만 출발했을 것은 아니고 사신으로
갔을 때 여러 명의 사신단이 꾸려졌을 것이고 그 사신단에는 의사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사 안에는 당연히 약재라든지 치료 도구도 이미 교역은 됐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도착하니 두 명만 남은 건가요?
-그런 것은 아니고 저 그림에.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신단을 꾸려서 20명, 50명이 간다 하더라도 기념사진 찍을 때는.
-그렇죠.
-대표자 몇 명만 찍을 거잖아요.
-중요한 분들 모셔서 찍고.
-그렇죠. 요리사도 따라가고 하는데 주치의도 따라가고 하는데 다 사진 찍지는 않았을 테니까.
-다행입니다.
-그런 것은 내가 해야 하는데 내 것 뺏어가면 어떻게 해.
-미안합니다.
-이 아프라시압은 굉장히 유명했던 왕국이었어요.
그래서 여러분 잘 아시죠? 알렉산더 대왕.
북마케도니아 출신인데 기원전 4세기 때 활약했던 인물이에요.
동쪽으로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해 나가죠.
하면서 큰 도시의 이름을 알렉산드리아라고 명칭을 해요.
그래서 이집트 카이로에도 당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도 만들고 학자들도 불러모으고.
그래서 곳곳에 알렉산드리아를 만들거든요.
그런데 동쪽으로, 동쪽으로 계속 움직이다가 인도하고 맞붙게 돼요.
인도군하고 맞붙게 되는데 인도군이 뭘 끌고 나왔냐 하면 코끼리 부대를 끌고 나와요.
-코끼리 부대요?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부대랑 싸우다가 이기지 못해요.
계속 동쪽으로 거침없는데 인도하고 접경에서 결국은 패하고 방향을 북쪽으로 옮깁니다.
-코끼리 때문에.
-그래서 북쪽으로 옮겨서 어디까지 가냐 하면 지금의 사마르칸트까지 가요.
그래서 지금 아프라시압 궁전 근처에 아프라시압 평원이라고 지금 유지가 남아
있는데 거기를 발굴하다 보면 알렉산더의 은화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저 지역까지 우리 의학이나 우리의 문화가 연결됐다면 또 마찬가지로
서쪽으로 기록에 남아 있지는 않겠지만 유럽까지도 연결됐을 것이다라고 저는 추정을 해봅니다.
그런 실크로드의 역사 또 실크로드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데 실크로드의 길에는 한의학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오늘 주제를 K-메디 실크로드하고 잡아봤습니다.
-실크로드를 따라따라 한의학도 왔다 갔다, 왔가 갔다하면서 교류를 했군요.
-그렇죠.
-궁금합니다.
-고려는 고구려의 정신을 많이 이어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고려는 굉장히 침술로 유명했습니다.
-침술.
-굉장히 유명했던 게 여러 가지로 알 수 있는데 중국에서 한나라 때 지금으로부터
한 2000년 전에 굉장히 유명한 의서가 저술이 돼요.
황제내경이라고 하는 책이 만들어집니다.
황제내경이라는 책은 전통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들여다
보고 살펴보고 하는 책인데 이게 책이 두 편으로 나누어 있어요.
하나는 소문경이라고 하는 게 있고 또 하나는 영추경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소문경은 황제내경 소문은 의학의 기본적인 이론을 담고 있는 책이고
영추경은 침술에 관한 내용이 주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게 두 개가 만들어졌는데 이 책이 그대로 이렇게 전수가 된 게 아니라 중간에 책을 소실하는 거죠.
잃어버린 것 같아요. 특히 뭘 잃어버렸냐 하면 영추경을 잃어버렸어요.
-어떻게.
-송나라 때 들어와서 송나라 때는 문치주의를 숭상하던 국가였기 때문에
출판 인쇄술이 발달이 되면서 청나라 때 책을 이제부터 책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책을 찍자. 의서만 전문가적으로 찍어낸 기구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교정의서국이라고 하는 기구를 만드는데 그 기구에서 책을 다 찍어요.
그런데 황제내경이라는 책이 굉장히 중요한 책인데 소문은 찍었는데 영추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송나라 조정이 고려 조정한테 너희가 갖고 있는 책 목록을 조금 보내봐 봐.
왜냐하면 자기한테는 없는 것도 있으니까 그랬나 봐요.
그래서 고려 조정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책 목록을 보냈는데 거기에 고려침경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고려침경이 봤더니 자기한테 사라졌던 영추경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책을 가져다 영추경을 다시 복원합니다.
그래서 지금 학계에서는 정설로 되어 있어요.
고려침경 때문에 영추경이 복원됐고 그 영추경에 있는 내용이 지금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에서 배우는 모든 침구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텍스트.
-엄청 중요한 자료를 잃어버릴 뻔했네요.
-고려의 역할이었죠. 그리고 또 하나는 고려에 설경성이라는 인물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침술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누구의 주치의가
되냐 하면 원나라 세조의 주치의가 됩니다.
원나라 세조는 누구냐 하면 쿠빌라이 칸이거든요.
쿠빌라이 칸은 징기즈칸의 손자입니다.
원나라가 굉장히 통일제국으로 명성을 떨쳤을 때 황제의 주치의를 고려인을 데려다가 썼다는 거예요.
침을 잘 놓기로 유명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록에 보면 설경성이라는 사람은 주치의로써 활약하고 세조하고 바둑도 두고.
그러다가 고향이 너무 그리워서 집에 보내달라고 막 간청도 해요.
황제가 그래 갔다와라. 다만 꼭 돌아와야 한다.
갔다가 또 돌아오고.
-돌아왔네요. 돌아왔어.
-왔다 갔다합니다.
-난 안 돌아가.
-안 돌아가는데.
-우리가 K-메디 실크로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중국의 본초서, 약재들을 설명하고 있는 그러한 책들이 있을 거잖아요.
거기에 한반도의 약재들을 많이 언급해요.
몇 개만 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닭고기도 사실은 한약재로 쓰이거든요.
-닭고기가요?
-한약이 좋은 점이 안정성이 꽤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음식으로써도 먹는 거니까.
물론 한약재 중에 독성이 되게 강한 것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도 한약재로 쓸 수 있어요.
심지어는 여러분도 잘 아실걸요.
고깃집에 가면 동의보감에 뭐라고 쓰여 있는데 뭐가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주로 동물성 약재들도 많이 언급되고요.
양, 아시죠? 양, 양.
양고기 말고.
-양고기 말고.
-양고기 말고 양이요?
-소의. 소의 위죠.
-그것도 맛있죠.
-맛있지.
-한약재로는 우두라고 이야기를 해요. 밥통 두 자 써서 소의 밥통, 약재로 쓰입니다.
그래서 양을 파는 곳에 가면 동의보감에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쓰여 있는데.
동물성 약재들도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냐 하면 11세기에 쓰여진 증류본초에 보면
우리나라 것이 굉장히 좋다, 이렇게 표현을 해놨어요.
그다음에 다시마, 동해산이 굉장히 좋고 그래서 한국산 다시마 되게 유명하죠.
한국산 김도 되게 유명하죠, 그렇죠.
김을 굉장히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소비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아직도 외국인분들 오시면 김 선물로 많이 사 가세요.
-맞습니다. 위성사진으로 찍으면 남해 바다 어디에 시꺼먼 줄기가 있다면서요?
김 양식장. 김도 그렇고 국화도 그렇고.
-(함께) 국화.
-우리나라 것이 아주 좋다. 이렇게 되어 있고요. 대마자. 삼 아시죠?
-삼계탕 할 때 그 삼.
-그 삼 말고.
-그 삼 말고.
-그 삼이 이 삼인가?
-이거는 우리 삼베. 베옷 만드는 삼이 있어요.
-그때부터.
-대마.
-대마.
-방송인데요.
-대마, 대마.
-놀라셨어요.
-그게 그거예요.
-그 대마가.
-그 대마가.
대마 말은 좀 그렇지만 대마의 일부분은 안 좋은 목적으로 쓰이는 거고 대마의
원래 줄기 전초는 옷을 만들 때 쓰이는 섬유.
섬유질 가지고 옷을 만들거나 또는 옛날에 베옷이라고 있잖아요.
그걸 만들 때 모시 적삼 같은 거 만들 때 쓰는 거.
-몰랐어요. 그렇게도 쓰일지.
-씨앗, 대마자라고 하는 대마의 씨앗은 약재로도 많이 쓰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우리나라 것이 좋다고 해요.
물론 인삼은 기록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아 있죠.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인삼이 외국분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어때요?
-저 사실 미국에 있을 때 못 먹어봤지만 이제 미국 사람들 대부분 써서 잘 못
먹기도 한데 미국에도 많이 관심이 있고 또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서울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을 때 저희 한의원 근처가 주재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였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제가 영어 진료가 된다고 소문이 나서 주재원들이 제
한의원에 찾아왔는데 한약을 먹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죠.
그런데 권해요. 치료해야 하지 않느냐.
정말 다시 경험하지 못할 맛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되게 익숙하지 않은.
-알약 같은 것만 먹다가.
-그런 맛이에요.
-그런데 먹고 효과는 또 좋으니까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줘요.
지독한 약을 먹게 되겠지만 치료는 잘 된다.
-한 3, 4번 먹으면 이런 맛이다 하고 계속 먹을 수 있는데.
-정말 이 맛은 상상할 수 없었던 맛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궁금한 게 사실 인삼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만 나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맞아요.
-그런데 유독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고 우리나라 인삼이 최고로 치는지 우선 궁금해요.
-그게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땅의 기운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진짜.
그게 별거 아닌지는 몰라도.
왜냐하면 제가 어떤 이야기를 들었냐 하면 이제 일본에 오래 거주하신 교포분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왜요?
뭐가 이상해요 그랬더니 배추를 심지어 한국에서 갖고 오고 소금도 한국에서
가져오고 고춧가루를 한국에서 가져와서 일본에서 김치를 만드는데 그 맛이 안 나고 쉽게 상한다는 거예요.
-물까지 가져갔어야지.
-그렇죠.
-물을.
-뭐든지.
-그 차이점인 거예요.
-그리고 제가 그래서 예전에 미얀마에 갔을 때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의료
봉사하시는 부부를 만났는데 이게 그래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한국에서 배추, 다 갖고 와서 해도 맛이 안 난다.
그래서 제가 힌트를 그때 일본의 그 사람에게 듣고서 생수를, 한국산 생수를 갖고 한번 만들어 봐라.
그렇게 해봐라 이야기를 하는데 그만큼 물이라든가 토양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되게 크게 좌지우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교육품들을 보면 일찍이는 5세기 때 또는 최근에는 17세기.
11세기, 12세기. 이렇게 되는데요.
17세기에 그러니까 1600년대에 우리나라에 특이한 시장이 하나 생깁니다. 특히 대구에.
-대구에요?
-대구에?
-뭐예요?
-어디인지 알 것 같아요.
-어디예요?
-어디?
-약령시.
-맞아요.
-어떻게 알아, 그거를.
-거기에 6년근, 그 긴.
-거기에서 만났어요?
-기나긴 거기가. 거기 봤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약령시가 대구에 생깁니다. 이게...
-약령시 들어본 적도 없는데 이거 어떻게 알고 있는.
-약재는 예전부터 귀했기 때문에 국가에 다 진상해야 하는 국가 전매품이었던 것 같고요.
그러다가 개인 상업 활동이 허용되면서 약령시가 만들어진 거예요.
약령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개인 간 약재 거래한 가능해졌다는 이야기거든요.
-우리나라 최초가 대구에 생겼다는 거죠.
-그렇죠. 600년 전에 저게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중의학에서도 또 중국에서도 우리나라 전통 의학을
예전부터 관심 있게 봤구나라고 느꼈던 게 동의보감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우리나라의 자랑. 동의보감이 중국에서 그 당시에도 베스트셀러였다고.
-맞습니다.
-하더라고요.
-이 동의보감은 정말 독특한 책인데요. 우리가 허준이 썼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엄밀히 말하면 허준의 글도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허준 선생이
당시에 수많은 책들을 참고하면서 이것들을 잘 정리했어요.
찾아보기 쉽게. 편제가 굉장히 독특해요.
그리고 굉장히 입체적으로 되어 있어서 예를 들면 A라는 파트를 보다가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저 뒤에 Z라는 파트하고 연결되는 것들을 다 표기해 놓았어요.
그래서 이거를 보다가도 저쪽을 참고해야 하고 또 저쪽을 보다가도 여기를 참고해야 하고.
이게 책이 그냥 단순히 처방만 나열돼 있다든지 이런 게 아니라 얘는 이 병증과 참조할 것.
또 이 병증은 이것하고 참조할 것.
이런 것들도 다 표기해 놓고 또 모든 책의 인용처를 그대로 다 밝혀왔어요.
-그때부터요?
-네.
-그 시절 인용처 다 밝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죠, 쉽지 않죠. 제가 중국 사람들하고 자주 만나는데 저한테 공격적으로 그러죠.
중국 책들이 다수 들어가 있는데 그러면
중국의 내용들이 훨씬 더 많은 게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지만 중국인 어떤 누구도 이와 같은 책을 만들어 낸 역사는 없지 않느냐.
-맞아, 그럼 너희가 만들던가.
-모든, 그렇죠.
모든 책들을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묶어서 출간한 적은 있지만
필요한 내용만 딱딱 끄집어내서 새로 편을 만들고 그것이 또 다른 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렇게 입체적으로 구성해서 보기 편하게 되어 있는 책은 없지 않느냐.
이렇게 반문하면 더 이상 말을 못 하죠.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잖아요. 동의보감이.
그 가치가 이 책의 아주 독창적인 구조, 이런 것도 물론 있었을 거고 그다음에 이 책이 인류에 공헌한 그런 가치.
이 책이 실제로 민간에서 쓰이고 민간의 질병을 다스리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런 가치.
이런 것들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까지도 쓰이고 있다는 거.
이게 중요한 가치였던 것 같아요.
-생명이 기네요.
-그래서 중국에서 이 동의보감을 중국판 동의보감을 많이 찍어냅니다.
거의 한 30쪽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어요. 지금도 찍어내고 있고요.
-중국판 동의보감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러니까 재밌는 게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뭘 갖고 가고 싶어 했냐 하면
동의보감 전지를 가지고 가고 싶어 했어요.
일본도 우리나라에 사신이 오면 동의보감 전지를 갖고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러니까 책이라는 게 지금은 대량 생산이 되지만 옛날에 목판으로
찍어낸다 하더라도 몇 개 못 만들잖아요.
그래서 그거를 가져가서 똑같이 또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래야 많이 만들어서 쓸 수 있으니까.
일본도 그렇게 하고.
그래서 중국이 알게 모르게 한국의 의학을 되게 좋아했어요.
허임의 침구경험방이라는 책이 있어요.
허준하고 거의 비슷한 시기의 인물인데 이 책에 보면 중간에 병증을 한글로 적어 놓은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책을 중국 사람들이 가져갔어요.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책을 만들어내는데 편제는 동의보감처럼 만들고 내용은 허임의 침구경험방을 가지고 갔어요.
그런데 가져갔는데 한글이 들어가 있잖아요.
어떻게 했을까요?
-그 한글을 어떻게 했을까?
-뺐어.
-내가 만약에 만든다면 한글 빼고 글자를 위로 올려붙여서 만들었을 텐데 한글 부분을 먹칠을 쳤어요.
-성의가 없네.
-한글 부분은 먹칠로 치고 그냥 똑같이 만들어냈어요.
그래서 중국의 침구학에 대해서 굉장히 유명한 학자가 있는데 이 책은 중국의 수치다.
이렇게 평가할 정도로.
-그러면서 뭘 자꾸 잘난 척하고.
-한국의 의학이 굉장히 유명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사실은 K-메디 실크로드를 처음부터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한의학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려보자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하고 싶었고 기회만 되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한의학진흥원에서 한의학 해외
교육 사업을 공모했고 제가 지원해서 한의학 해외 교육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래서 2000년부터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몽골,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이렇게 다니면서 한의학의 우수한 기술, 전통 의학으로서의 의미도 일부 이야기를 하고.
중국에서도 언급하지 않고 일본에서도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나라
한의학에서만 이야기하는 한의학 슬기를 그들에게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꽤 호응이 좋았어요.
전통 의학 그러면 중의학만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인데 중의학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내용들로 강의 구성을 해서 이야기했더니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저 나름대로 21세기의 K-메디 실크로드를 또 만들어보려고 노력해 왔었습니다.
-저는 궁금한 게 몽골이나 베트남, 태국 이런 친구들은 어쨌든 그래도 같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 의학이 덜 낯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프랑스라든지 벨기에 이런 곳에서도 수업을 하셨잖아요.
그런 서양 친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저는 너무 궁금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국이 침구 사교육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벨기에나 프랑스 또 스위스도 마찬가지고 불어권, 유럽의 국가들이
의사들 중심으로 침구 전문 의사 제도를 만들어요.
협회가 있어요.
침구 전문 의사 협회가 있는데 저희가 갔을 때 그런 배경을 알고 있으니까
중국에서 배우지 못했을 법한 그런 내용들만 집중적으로 예를 들면
사상의학과 관련된 내용이라든지 사암침법 또 우리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국의 이론은 있으나 실제로 아무도 모르는 그다음에 저희는 또 그게 있어요.
왜 이 질환에는 이렇게 써야 하는지.
또 이것은 또 왜 이렇게 접근해야 하는지 이렇게 A 질환에는 B 처방, A 질환에 A-A
처방 이렇게 그냥 주입식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을 가지고 많이 접근했어요.
그래서 되게 30년 동안 자기들이 배워왔지만 이런 접근 방법은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새로운 방법, 새로운 접근법, 이런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니까 되게 관심 많아하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올해도 초청한다고 해요. 그래서 가서 또 해야죠.
제가 이것을 하면서 22년부터 실제로 한의학을 배우고 싶은 해외 의대생들이랑
또 전통 의학과 학생들을 우리 학교로 불렀어요.
한국에 되게 오고 싶어 하거든요.
왜냐하면 가서 제가 수업도 하지만 너희 기회 되면 우리 학교 와서 직접 수업도 듣고 한국도 느껴봐라.
한국 되게 오고 싶어 해요.
그래서 학생이다 보니까 거기도 부모님이 너 한국에 놀러 간다고 하면 또 잘 안 보내주잖아요.
한국에 교육 받으러 간다. 그런 것도 많이 도와주실 테니까.
그래서 매년 여름에 2주씩 한의학 교육을 합니다.
그래서 첫해는 코로나 끝난 직후라 그때는 몽골하고 우즈베키스탄 사람들만 20명 정도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도에서도 오고 중국에서도 오고 또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이런 사람들이 왔는데 아마 올해 여름에도 또 하겠죠.
그때는 더 많은 국가와 학생들이 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되게 좋아해요.
나가서 하는 교육은 교수가 저 포함해서 몇 명 안 되는데 들어오면 여러 교수님이
들어와서 수업을 나눠서 하니까 다양한 수업도 듣고 아니면 추나도 있고 침술도
다양하니까 이런 것들도 배우게 되고 하니까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실크로드는 우리나라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경험을 미래에 자기의 슬기에 또 밑바탕으로 쓸 테니까.
-우즈베키스탄 친구들은 단골이네요.
-송영일 원장님과 관련 있어요.
송영일 원장님과 제가 친해지면서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전통 의학의 역사가 긴데
이게 학문적으로 자리 잡은 게 얼마 안 됐어요.
그래서 뭔가 초창기와 같은 느낌이라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베트남은 월의학, 우리로 치면 월남이니까 베트남의 전통 의학이 굉장히
잘 발달해 있고 또 몽골도 잘 발달해 있어요.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은 욕구는 되게 많은데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고요.
-선장님 같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겠네요.
-그래서 자주 가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 가지로 K-메디 실크로드 그러면서 한약재 수출 역사 속에서
한약재 수출이나 역사 유물을 통해서 K-메디 실크로드와 연결될 수 있는 것들
이야기를 했고 또 K-메디 실크로드는 교육과 교육을 통해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실크로드는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끝나지 않는.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어요.
-너무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들으면서 특히 약재 이야기도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그중에서 혹시 이렇게 왜 증상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한약을 받아오잖아요.
미묘하게 맛도 다르기도 하잖아요.
덜 쓴 게 있고 진짜 쓴 게 있고.
-그렇죠.
-약재 중에 이거 들어가면 정말 정말 쓰다 하는 거 있나요?
-쓸 고 자가 들어가 있는 고삼.
-고삼. 고삼차 쓰잖아요.
-그건 진짜 씁니다.
-그거 빼달라고 하면 되나요?
-그거 못 먹는다고.
-그런데 그거는 필요하니까 넣은 거죠.
그다음에 열을 치료하는 약재들이 있어요. 황백이라든지 그다음에.
-황백?
-누를 황 자가 들어가는 약재들이 있거든요.
-삼계탕에 들어가는 황기?
-황기 말고. 황기는 말고.
-그러면 삼계탕이 쓰겠죠. 삼계탕이 쓰겠지.
-긁적긁적.
-치료약들이 맛이 되게 써요.
-그런데 아주 일차원적인 질문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약재의 세계화를 위해서 한약을 달달하게 만들어 주실 생각은 없으세요?
-그러니까 그런 노력도 필요해요. 왜냐하면 비타민 아시죠, 비타민. 비타민은 무슨 맛이에요?
-상큼한 맛이요.
-그렇죠. 비타민 원래 씁니다. 그런데 그거를 먹으면요.
혀가 갈라질 정도로 굉장히 써요.
그런데 못 먹으니까 거기에 달콤한 거를 씌우는 거예요.
그래서 고단위 비타민 있잖아요.
그거를 혓바닥에 놓고 한번 녹여서 드셔보세요.
혀가 갈라질 거예요. 깨물어서 드시면 안 돼요.
비타민 그러면 과일 이러니까 과일 향을 묻히고 과일 맛이 나게끔 하는 거잖아요.
신문에도 한번 났죠. 약국에서 어린이 비타민 대부분 설탕이다.
-그래서 맛있었구나.
-실제로 비타민은 맛이 그렇게 달콤하거나 그러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약도 당의정이라고 해서 목 넘김이 좋게 이렇게 코팅해요.
설탕을 코팅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작업도 일정 정도는 필요하지는 몰라요.
-맞아.
-그래서 실제로 많은 한의사들이 한약 복용의 편리성을 위해서 제형 변화를 많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환 이런 거 있잖아요.
-환도 있고요.
그다음에 분말처럼 만들어서, 그러니까 끓인 약재를 다시 농축해서 분말 해서 털어서 넣을 수 있게.
또는 물에 다시 타서 먹기 편하게 이런 경우들도 있고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고요.
-그런데 왜 우리 한의학에서 많이 쓰이는 약재 같은 것들은 있잖아요.
물론 재배를 현대식으로 많이 하고는 있지만 이게 어쨌든 공산품처럼 딱딱, 딱딱 찍어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맞아요.
-이게 수출화를 확 시키고 세계화를 시키려면 그런 방법이 조금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렇죠. 제가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은 약재가 약으로써 약점이 있는 건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사람 몸은 디지털은 아니거든요.
사람 몸 자체가 아날로그인데 한약재는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아날로그, 그러니까 생물이고 아날로그니까 아날로그를 아날로그로 접근했을 때 이게 더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미묘한 차이들은 아날로그인 인체가 그 미묘한 차이를 또 받아들일 수
있는 거기 때문에 이 약재가 치료의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는데 그래서 사실은 이게 참 어려워요.
좋은 한의사가 된다는 게 그래서 어려운 게 뭐냐 하면 약재 상태를 보고 약을 가감을 해요.
이게 약재가 채취 시기에 따라서 약재는 약재별로 채취 시기가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채취 시기에 따라서 증량도 하기도 하고 감량도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거를 산업화하는 데 있어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의사들이 많은 노력들을 해서 표준화 공정을 많이 해요.
그리고 약재는 예전처럼 개인이 수집한 약재를 쓸 수 없어요.
다 인정을 받은 약재들만 쓸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고 또 국제 표준도 만들어지고 있어서 거기에 맞는 약재들을 쓰는 거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이제는 없다고 봐야죠.
-오늘 K-메디 실크로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쭉 나눠봤는데 그렇다면
선장님께서 오늘 강의 한마디로 정리를 해주신다면요?
-수천 년 전부터 지구의 전 지구적인 현상이었던 K-메디 실크로드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렇게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오늘 송지창 선장님과 함께하는 보물지도였는데 사실 주제가
한의학이라서 그웬 씨가 긴장을 많이 했었거든요.
오늘 함께해 봤는데 어땠습니까?
-엄청 좋았습니다.
-그것도 맞히시고.
-맞아요.
-난 뭐 했냐.
-사실 촬영하기 직전에 정인욱 오빠랑 이야기하는데 저희 둘 다 멍때리고
있다가 말 못 하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티키타카를 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고 너무 좋았습니다. 선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좀 쓰지만 아플 때 한약 달여 먹어볼 의사가 있습니까?
-이제 사실 주변에 친구들이 저 조금이라도 기침 나거나 그러면 그
입천장에 붙이는 그런 거 주기도 하고.
-그게 뭘까?
-저한테도 많이 먹이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먹이고.
-많이, 많이 먹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너무 아픈데 계속 치료가 안 된다 했을 때 정말 한약 한번 도전해 보세요.
-좋아요, 좋아요.
-사탕 하나 물고.
-뽀로로 그런 아기 사탕 말고. 설탕 덩어리잖아요.
-설탕 덩어리. 맞아요. 우리 인욱 씨는 오늘 어떻게 들었어요?
-일단 처음에 시작할 때 한국 온 지 6년 됐다고 하고 저 35년 됐다고 했잖아요.
저 3년으로 바꿔주세요. 3년.
그웬 누나 너무 잘하니까 진짜 그래요.
그리고 한약재에 대해서 이렇게 들었는데 저는 사실 한약재라고 하면 전부 다 풀
말려서 그걸 다 끓이는 그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닭이라든지 이런 것들
동물성 이런 것들도 있다고 하셔서 좀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재미있게 새로운 사실도 좀 알고.
-알겠습니다. 세계 전통 의학 시장 규모가요.
2027년쯤이 되면 8000억 달러 규모로 커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큰 시장에서 우리 한의학이 더 크게 활약할 수 있도록 또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보물지도는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다음 주에도 재미있는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찾아라.
-(함께) 보물지도.
-부자가 아니고 싶다 하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실까요?
-제가 투자회사 있은 지가 한 30년이 넘었는데요.
그 경험을 가지고 자산 축적의 올바른 길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을 좀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제 돈 좀 불려주세요.
-여러분이 세금을 절약할 수 있으면 절약하는 금융 상품을 택하는 것이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합니다.
-절세.
-그다음에 잘 아시나.
-잘 모르겠습니다.
-듣긴 들어봤어요.
-그거 하셔야 해요.
조금이라도 지금 자산 관리를 하겠다 하면 무조건 이거를 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나이가 젊으신 분들은 OOO 자산을, 나이가 많을수록 OOO을 가져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하시는 분도 되게 많아요.
-그럼 안 좋습니다. 자본시장의 철칙 중의 하나가 절대 공짜는 없습니다.
-공짜는 없다.
-새겨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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