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1교시 - 우리가 몰랐던 중국, 중국인 (이욱연 / 중국문화전문가)
등록일 : 2021-09-27 14:03:15.0
조회수 : 593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강연
최강 1교시에서 강연을 맡은 중국문화
전문가 이욱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지난 강연에서는 G2 시대 강국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인 이야기입니다.
중국인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특히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우리 한국인들 하고 어떤
점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지 이게
중국인들을 이해하는 데 되게 중요한
지점이거든요.
그래서 중국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우리가 몰랐던 중국,
중국인입니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 사람들,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는
시대, 중국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중국이 지금 너무 강국이 되고 있고
그것도 굉장히 빠르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게는 굉장히 위기
상황입니다.
왜 그럴까?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가 직면했던 위기의
경험을 살펴보면 이 시기가 굉장히
치명적인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그야말로 나라를
빼앗기거나 병자호란처럼 치욕을 당했을
때는 동아시아판이 흔들릴 때였어요.
그러니까 동아시아가 지각변동이 일어난
겁니다.
과거에 강자 패권 국가가 흔들리고
동아시아의 신흥 강자가 부상하면서
기존의 세력판이 흔들릴 때 우리는 잘
대응을 못 했어요.
그리고 다시 그러한 일들이,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의
시대입니다.
동아시아의 판이 흔들리고 우리가 위기를
맞는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부상입니다.
많은 한국인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초조해요, 왜요?
중국이 저렇게 가다가는 우리를 추월해서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 우리보다
훨씬 강한 나라가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보세요.
근대 이후에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훨씬
앞선 나라였지 않습니까?
이제 역전당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초조하죠, 쫓기고 있으니까
초조하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중국이 너무 큰 나라인데
힘까지 세지고 그리고 생각이나 행동하는
것 그러니까 체제나 중국이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이 우리하고
완전히 달라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와 비슷한 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성장을 해도
우리에게 공포를 줄 수 있는데 우리하고
완전히 다른 나라가 자꾸 힘이 세지고,
강해지고, 커지니까 공포감이 드는
거죠.
옆에 누가 저보다 훨씬 힘도 세고, 키도
크고, 덩치고 큰 사람이 서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나는 괜찮아, 나는 너를
때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하더라도
옆에 있는 작은 사람은 겁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는 위기감이 듭니다.
저렇게 군사력도 강해지고, 경제력도
강해지다 보면 이제 우리나라가
과거처럼 다시 속국이 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지켜왔고 어떻게 발전시킨
대한민국인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이런 위기감이 솔직하게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G2 시대에 중국의 부상을
보는 마음이 굉장히 착잡하고 복잡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웃집은 바꿀 수 있어도 이웃 나라는
바꿀 수 없다.
그렇죠, 이웃집이 싫으면 이웃집이
이사 가는 게 제일 좋겠죠.
이웃집이 이사 가지 않으면 내가 이사
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는 바꿀 수가 없지
않습니까?
나라를 들고 어디로 갈 수가
없잖아요.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대, 그 사람을 모르면
무섭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알면 저 사람은 팔
길이가 얼마야, 주먹의 강도가 이래.
원래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행동해.
이것을 우리가 알게 되면 우리가 중국에
잘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중국에 적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 중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중국을 열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중국 공부 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러면 왜 중국 공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까요?
잘 안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뭐하러 중국 공부해?
다 잘 아는데.
내가 삼국지 갖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중국 사람보다 더 잘 알고 논어, 맹자도
내가 중국인들보다 훨씬 잘 알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잘 아니까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공부할 가치가
없어.
내가 그걸 뭐하러 공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중국은 배울 가치가
없다고 비하하는 거죠.
비하의 대상은 굳이 배울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보다 더 낫고, 잘나고 우리가 배울
만한 어떤 것이 있어야 공부할 가치가
있는데 중국은 그런 가치가 없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더군다나 그런 가치도 없는데 곧 무너질
거야,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수능에서 어떤 특정한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 곧 없어져.
그러면 뭐 하러 공부하겠어요?
공부할 필요가 없잖아요.
여러분 중에 아마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중국이 무너질 거고, 중국은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에 곧 무너질 거니까
굳이 뭐하러 중국 공부하고, 분석하고
우리가 힘을 뺄 필요가 있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중국을 공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겁니다.
너무 비슷하고, 너무 오랫동안 사귀어
왔고, 교류해 온 것입니다, 싸우기도
하고, 같이 즐겁기도 했고 그런 역사가
너무 긴 겁니다.
3000년 길게는 5000년 동안 그렇게
이웃집에서 나란히 살아왔어요.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같이 손을 잡기도
하고 이런 가운데 지내온 겁니다.
더군다나 이웃 나라일 뿐만 아니라
문화가 비슷합니다.
농경문화죠.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중국과 한국이
비슷한 사회 시스템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교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교류해 왔어요.
그러니까 다 비슷하고 그런데 뭐하러
공부할 필요가 있어?
내가 생각하는 게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거하고 비슷하고, 내가 행동하는 게
중국인들이 행동하는 거 하고
비슷하지.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기도 해요.
중국하고 우리는 굉장히 비슷한 게
많아요.
예를 들어서 결혼 풍속을 잠깐
볼까요?
누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자녀들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또는 아는 사람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결혼식에 가서
우리가 축복해 주는 것은 한 가지
염원입니다.
오랫동안 아주 행복하게 끈끈하게 잘
살라.
이게 결혼식에 가서 우리가 축복해 주는
말 중에 또는 기원해 주는 말 중에 가장
중요한 거겠죠.
중국도 그렇습니다.
중국에서는 결혼식 때 저렇게 하얀
사탕을 나눠줍니다.
꼭 흰 사탕이어야 합니다.
이거를 희당 이렇게 중국에서는
부릅니다.
우리도 폐백 때, 폐백 선물을 보낼 때
엿을 넣어줍니다.
그런데 사실 요새는 엿을 그렇게 잘 안
먹잖아요.
그런데 폐백 단자에 꼭 이렇게 엿을
넣어주죠.
그리고 결혼식에 요즘에는 뭐 갈비탕도
먹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국수를
먹습니다.
그래서 언제 국수 먹여줄 거야?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이거는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똑같습니다.
결혼식에는 하얗고 달고 긴 것을
먹습니다.
이거는 머리가 하얘지도록 아주
끈적끈적하게 사이 좋게 오랫동안 잘
살아라는 염원을 담아서 엿도 나눠 주고
그리고 국수도 먹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똑같아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정말 비슷하죠.
또 하나, 회식 문화도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젊은 직장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게 이 회식 문화죠.
정말 회식 때문에 힘들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같이 밥을 먹는 회식이
중요할까요?
중국인들도 회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중국인들은 우리처럼 그렇게 자주
회식을 하지 않아요.
점심만 먹을 때는 각자 따로 먹고 그냥
회식을 하는 경우만 같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심하죠.
점심 때도 모여 먹고 또 저녁 때
회식이라고 또 모여 먹고 그렇습니다.
이 회식 문화가 왜 그렇게 한국과 중국에
유행을 할까요?
이거는 같이 밥을 먹어야 관계, 그러니까
인간 사이의 네트워크죠.
이게 시작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족끼리는 형제끼리는 어떤
형제가 조금 힘들 때,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또 힘든 상황이 터졌을 때 힘을
보태주고 경제적으로도 도와줍니다.
네 것, 내 것이 별로 없습니다.
왜 그렇게 도와줄까요?
문화적으로 설명하면 그렇습니다.
형제 사이는 같은 어머니의 젖을 먹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같은 것을 먹었어요.
똑같은.
그러니까 너 나 없이 나눠 주는 겁니다.
그러면 같은 마을 사람들은 무엇을 같이
먹었을까요?
한 마을에 있는 우물.
그 우물물을 같이 마신 겁니다.
그래서 같은 동네 사람, 마을 사람끼리는
서로 도와주는 겁니다.
중국은 이런 의식이 굉장히 강하죠.
그러니까 같이 먹는다는 것.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게 인간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출발점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회식이 중요합니다.
이 문화는 중국이나 우리나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문화적으로 보자면 중국이나
우리하고 굉장히 비슷한 게 많아요.
그래서 이제 한국인들이 다 비슷한데 뭐
하러 공부해, 다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점만 보기 때문에
다른 점을 보지 않아요.
실제로 겉을 벗어나서
속으로 한 층 한층
들어가다 보면 우리하고 다른 점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한국인들에 가끔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접해
보니까 너무 다르거든.
그래서 이제 문화적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면 중국과 한국 사이에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요?
중국인들의 생각과 한국인들의 생각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흔히 한국인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국에 가봤더니 중국은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사회주의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 같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사람들인 것 같아,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중국인들 특유의 능력주의가 여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능력이 다르면 다른 대우 받아야지.
능력이 다른 데 왜 똑같은 대우를
받으려고 해?
능력이 훌륭한 사람, 능력이 좋은
사람은.
보다 더 좋은 대우 받을 자격이 있어,
이게 당연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국 대학생들하고 중국 대학생들을 모아
놓고 여론 조사를 했습니다.
장학금을 어떻게 나누어 주는 게
좋을까요?
이렇게 여론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적게 주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게 좋다.
이렇게 응답한 비율이 56%.
한쪽에서는 우수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나눠 주라.
이렇게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65%였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느 쪽이 한국이고
어느 쪽이 중국 사람일까요?
적게 주더라도 나눠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한국인이고.
소수의 우수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중국인입니다.
거의 반대 되는.
왜 이런 생각, 이런 차이가 나게
됐을까요?
사실 중국은요.
능력주의 사회의 원조입니다.
중국이 가만 보면요.
우리가 지금 우리 체제를, 또는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신자유주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중국이 정말 뼛속까지 신자유주의적인
원리를 지니고 있는 사회입니다.
굉장히 능력주의 사회예요.
이 능력주의 사회의 원조, 그 국가가
바로 중국인데.
중국이 그러면 왜 그렇게 능력주의
사회로 바뀌었느냐.
굉장히 역사가 오래됩니다.
그 기원은 과거제 때문입니다.
과거제는 시험을 통해서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인과 관료를 뽑는 제도입니다.
신분이 아니라 시험 성적.
그러니까 능력에 따라서 관료를
선발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깁니다.
능력주의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 과거제를 왜
도입했을까요?
귀족 특권을 없애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귀족들이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가 어떤
관직을 맡으면 계속해서 세습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능력 없는 사람도 집안을 잘
만나서,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만나서.
계속해서 고위 관직에 나가는 겁니다.
이거는 안 되겠다.
그래서 능력제를 하자.
그래서 시험을 만들었습니다.
이거는 귀족제도, 이 특권층을 해체하고
황제의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수나라 때부터 과거제도가
도입 되는 거죠.
이 과거제가 도입이 되니까 누가
반대했겠습니까?
당연히 귀족들은 반대합니다.
자기 특권이 없어지잖아요.
권력층들이 다 반대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수나라 때 시행을 했는데 당나라
때까지도 이게 정착이 안 돼요.
기득권층이 당연히 반발하겠죠.
그래서 송나라 때 접어든 이후에야
비로소 이 과거제가 정착이 됩니다.
송나라 때는 우리 고려 때거든요.
그때 이미 과거제도가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이 과거제도를 통해서 신분은
따지지 않는다.
오직 실력만 보겠다.
그 실력을 바탕으로 선발하겠다.
나라를 통치할 사람.
정치를 이끌어갈 사람을 통치하겠다.
이런 원리가 보급되기 시작을 합니다.
이때부터 이제 신분 사회는
없어집니다.
세습하는 사람은 오직 황제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양민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지금 자본주의, 근대
자본주의 사회처럼 이렇게 바뀐
거예요.
이게 송나라 때부터 그랬어요.
물론 중국에도 천민이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천민은 아주 극악한 범죄를 지닌
소수, 아주 소수 사람들뿐이었어요.
그리고 특정 기간이 지나면 양민으로
다시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양민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오늘날 자본주의와 같은 그런
사회가 송나라 때부터.
능력주의 사회가 송나라 때부터 있었던
겁니다.
굉장히 역사, 오랜 역사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그러면
고려 때 우리가 과거제를 도입해서 조선
시대부터 과거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을
하죠.
그러면 조선도 그랬는데 그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여기에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뭐냐 하면 중국 송나라의 경우에는
귀족층, 그러니까 양반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양반이라는 걸 둔 채로
과거제도를 실시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과거제라는 게
능력주의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양반이라는 세습 기득권 층을 강화하는
수단 도구로 전락한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능력주의,
능력주의, 계속 외치는 것은 우리 사회에
그런 부분이 여전히 조선 시대와 같은
그런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능력주의는 성공의 실패는 개인의
능력 탓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는?
사회는?
무엇을 제공해 줍니까?
기회의 평등만 제공해 줍니다.
출발선이 비슷하게 설정이 됐다라면 당신
능력에 따라 더 많은 대우를 받는 것.
그거는 자기 책임이고 더 나쁜 대우를
받는 건 너 개인 책임이다.
국가가 보장해 주지 않는다.
결과의 평등은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이게 중국 사회의 원리입니다.
이 중국 사회의 원리가 송나라 때부터
지속되어온 겁니다.
그러면 중국 사회주의지 않습니까?
이 능력주의 원리에서 벗어난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마오쩌둥이 통치하던 그
시기뿐이에요.
그 시기가 1949년부터 개혁 개방이
78년에 시작되거든요.
이 시기뿐입니다.
1949년부터 78년 말까지 약 30년의
기간이죠.
이 기간만 빼고는 중국은 원래 능력주의
사회였다는 거죠.
이제 이게 개혁 개방을 하면서 다시 중국
사회에 부활이 된 겁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보게 보면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데 여전히 자본주의국가,
역사적으로 여전히 있었던 능력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 이렇게 보이는
거예요.
이런 능력주의는 사실 굉장한
개인주의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 나한테 다른 대우를
해줘야 한다, 내가 다른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속한 회사, 어떤
조직보다도 나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인을 만나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우리랑 똑같은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고 6.25의 집단주의
문화 영향을 받았는데 우리보다 훨씬
개인주의가 강하다, 왜 그렇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는 집단과 개인 사이에 우리하고
다른 원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요.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각 그리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어디냐.
호수에 돌이 하나 떨어집니다.
세계 그리고 인간관계는 이렇게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인간관계 중심점에 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중국의 유명한 인류학자인데
중국을 대표하는 인류학자인데
페이샤오퉁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중국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은 자기를 위해
가족을 희생할 수 있고 가족을 위해서는
당을 희생할 수 있고 당을 위해서는
국가를 희생시킬 수 있고 국가를
위해서는 천하를 희생시킬 수 있다.
이게 중국 사람들의 행동 원리라는
거예요.
그러면 중심은 뭡니까?
나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해서 세상을 보는 거죠.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해서 행동하는
것이죠.
나를 중심에 세워놓고 나하고 가까운지,
먼지, 친한지, 친하지 않은지.
이것을 상대로 해서 상대방을 대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중국인들의 의식을 자아주의라고 합니다.
자기중심주의죠.
이 자아주의는 개인주의하고 또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서구 사람들 흔히 개인주의
사회라고 얘기하는데 서구 사회는
그야말로 개인주의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집단을 이루기는 해요.
그런데 나를 중심으로 집단을 이룹니다.
그 중심점이 나인 거죠.
그래서 이러한 중국인들의 인간관계
주의를 자아주의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를 중심에 두고 나하고 가까운 사람들,
먼 사람들 이 동심원에 따라서 차별
대우합니다.
가족이 제일 가깝겠죠.
그다음에는 친구입니다.
친구도 등급이 있습니다.
진심을 나누는 친구 그리고 오랫동안
사귄 친구 그리고 좋은 친구.
그다음에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왜 저렇게 등급을 나누겠어요?
다른 대우를 하기 위해서.
저를 중심에 두고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
사이에 대우를 달리해주는 거예요.
이게 차별 의식입니다.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나를 중심에
두고 평등 의식이 없습니다.
모두 다 차별 대우하는 게 중국인들의
기본적인 사고라는 거죠.
인간관계만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누구하고 사람 관계를 맺을 때만
그런 게 아니라 국가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한국, 인도, 스리랑카 이 그룹에 있죠.
그런데 가만히 보시면 좀 신기합니다.
저거는 나라의 크기와 상관없습니다.
중국을 중심에 놓고 중국하고 얼마나
친하느냐 이 관계에 따라서 구분한
겁니다.
그리고 다른 대접을 해줍니다.
이게 중국인들이 나를 중심으로 해서
개인, 인간관계를 맺고 그다음에 국가의
외교 관계를 처리하는 기준이 됩니다.
굉장히 자기중심적이죠.
그러니까 흔히 유교 문화도 같고 그다음에
농경 문화도 같아서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있다.
그리고 집단주의도 비슷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보면 다른
겁니다.
우리는 한 집단에 속해 있으면 다
친해요.
얼굴 몰라도, 나하고 친하지 않아도 그냥
인간관계가 생깁니다.
집단으로 모이는 거죠.
그런데 중국인들은 집단으로 모이기는
하지만 나를 중심으로 나하고 친한
사람들끼리만 인맥을 형성하고 집단을
이룬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중국인들을 이해할 때
집단주의라는 차원에서만 중국인들을
보면 중국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우리 많은 기업인이 중국에 가서 사업할
때 애로를 겪는 점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중국 사람들은 사장님을 봐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상사를
보더라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자기
동료처럼 대한다.
더구나 신입사원들도 그런다.
왜 그렇지?
공자님 후손 아니야?
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예의를 몰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차 문도 열어주지 않고 그런 사례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거죠.
왜 그럴까요?
사실 우리가 중국을 유교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중국에는 유교적인
예절과 문화가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많이
없어졌어요.
사실 우리는 아직도 유교적인 전통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우리가 똑같은 유교
국가지만 안을 잘 들여다보면 유교의
원리가 달랐어요.
우리는 유교 중에서도 조선 시대부터
주자학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건국이념이
주자학이었기 때문에 온 나라를 주자학의
나라로 만듭니다.
그래서 사실 일반 사람들은 주자학 필요
없잖아요.
과거 볼 일도 아니고 주자학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양반이 아니라도 그래요.
그러니까 온전히 다 주자학적 원리가
지배했던 거죠.
그러니까 유교적인 가부장제가 굉장히
강하죠.
그런데 여기에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일본식 가부장제가 들어와요.
호주제가 형성됩니다.
일본 메이지 헌법에 호주제를
규정해놨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는 유교적인
가부장제 그다음에 일본식 호주제의
가부장제가 결합하면서 굉장히 수직적인
가부장 사회가 형성되고 수직적인 의식이
굉장히 강해진 겁니다.
그래서 수직적인 서열이 굉장히
강해요.
그래서 어린이들도 유치원에서 만나면 너
몇 살이야 이렇게 물어봅니다.
주민등록증을 까야 수직적인 서열이
잡혀야 인간관계가 형성됩니다.
더군다나 존댓말까지 있어요.
그런데 중국은 달라요.
똑같은 유교 국가인데 다른 점이 있어요.
중국 역시 주자학의 영향이 있어요.
그런데 이거는 과거를 보는 사람들,
상층부, 공부하는 선비들 이 사람들만
주자학을 믿었지 밑에 사람들은
상관없었어요.
그러면 일반 백성들, 중국의 일반
백성들은 어떻게 생활했느냐.
그 사람들은 불교를 믿었고 도교를
믿었어요.
조선은 주자학을 도입하면서 불교를
완전히 말살시켰습니다.
그래서 다 절이 산에 있잖아요.
그런데 중국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주자학이 선비들 그야말로
관직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의 고식
공부로서만 중국에서는 작동했는데
우리나라는 주자학이 일상에까지
퍼져있었던 거죠.
그리고 중국은 주자학만이 아니라
양명학도 도입합니다.
우리는 양명학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사상 체계가
공존했던 게 중국의 현실이고 주자학만
그야말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게
조선입니다.
이렇게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유교 영향으로 치자면 조선이
훨씬 더 센 겁니다.
더군다나 중국은 근대 이후부터 유교를
철저하게 타도합니다.
우리가 공자님 말씀 때문에, 유교 때문에
제국주의에 이렇게 당했다.
유교를 버려야 중국이 산다.
공자님 말씀 이제는 버리자.
그러면서 공자를 타도하고 유교를
비판하는 운동이 근대 초기부터 시작을
해서 마오쩌둥 시기까지 지속합니다.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에 공자 비판
운동을 한 거죠.
그리고 사회주의 시대가 되면서 모든
사람을 다 동지라고 똑같이
불러버린 겁니다.
직장 상사도, 사장님도, 기관장도
다 동지.
이렇게 불러버린 거죠.
그러니까 수직적인 서열 의식이 굉장히
약해집니다.
그리고 중국에는 존댓말도 없어요.
그러니까 나이를 뛰어넘어서 친구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거죠.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보기에는 중국은
수직적인 서열 문화가 없고 중국은 유교
국가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유교라는 기준으로
중국을 보게 되면 중국의 모든 것이 잘
보이지 않는 우리하고 다른 부분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의 자랑, 우리의 자부심인
김치라든가, 태권도라든가.
한국 문화 이것이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중국의 극단적인 네티즌들이 자기
문화의 원조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 문화를 비판하면서 한국의
모든 문화는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
세대입니다.
MZ세대라고 우리가 하는데.
이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왼쪽이 우리가 보는 김치고.
다른 쪽이 파오차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실 보면.
오른쪽은 사실은 중국인들이 먹는
파오차이라고 하는 것은 피클
수준입니다.
다르죠.
그런데 왜 저런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소분홍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애국주의 네티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90년대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청년들이죠.
그래서 이 사람들을 포스트 90.
그러니까 후 90 세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원래 이 소분홍이라는 말은.
그런데 여기에 이제 극단적인 민족주의
주장 그다음에 서구 비판하고, 한국
비판하는 이런 주장들이 굉장히 많이
올라온 거죠.
그래서 이제 소분홍하면 극단적인
애국주의 그룹들.
극단적인, 폐쇄적인 애국주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
이렇게 부르게 됐습니다.
이 사람들이 왜 그러면 이렇게
극단적일까요?
이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다른 세대에 비해서 굉장히 커요.
왜 그런가 하면.
그래서 중국이 막 성장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중국이 굉장히 성장하니까
이제는 우리나라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더군다나 베이징올림픽도 개최했죠.
상하이엑스포도 했죠.
그리고 요즘에는 화성에도 가고
달도 가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대단하고 그런 측면에서 보자 하면 미국
뭐, 서구 별...
별거 없네.
중국도 대단한데 뭐하러 서구 나라를
이상적으로 생각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나라.
누가 만들었어?
중국 공산당, 중국 정부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중국에 대한 애국심,
중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도.
이게 굉장히 커진 거죠.
이 사람들이 한중 사이의 문화적 갈등을
낳는 당사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아마 짐작을 하셨을 텐데 한류
사진을 올리고 김치 사진을 올리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세대들입니다.
-(영어)
-그러니까 이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서 한류를 많이 접해요.
그런데 요즘 한류가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대중문화 영역에서 굉장히
한류가 아주 유행을 다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들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이 사람들은 원래 중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는 다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이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세계 사람들이 요즘에는
K-좀비를 비롯해서 한류 콘텐츠를 보다
보니까 동아시아의 문화가 다 한국에서
기원했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자존심이 상해요.
자신들은 중국 문화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데 세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거죠.
한류 문화가 동아시아의 문화의 대표,
상징으로 계속 부각되고 있는 겁니다.
이게 불편해요.
더군다나 이 사람들은 애국주의가
강하잖아요.
이 현실이 불편해서 이제 한국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화적 애국주의가 굉장히
강한 세대인 거죠.
더군다나요.
중국이 애국주의.
이게 이제 전 사회적으로 굉장히
퍼지면서 그러한 편협한 애국주의
주장을 하면 할수록 그 주장을 SNS에
올리면 올릴수록 많이 퍼져요.
클릭 수도 많아져요.
그러면 무슨 좋은 점이 있겠어요?
돈이 들어오죠.
그러니까 애국주의가 돈이 되는 겁니다.
애국 상업주의죠.
그래서 이러한 주장들이 계속
퍼져갑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이 애국주의가
팬클럽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아이돌을 좋아하듯이
아이돌 자리에 중국을 놓고 중국을
아이돌, 오빠.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 중국을 지켜야
한다.
우리 중국을 욕하는 사람들은 다 나쁘다.
내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우리 중국을
지키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국어)
-(영어)
-이러한 소분홍 애국주의 네티즌 중에는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중국으로 간 한국
체험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이 사람들이 이제 한국에서 조금
불공정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무시를
당했는데 이제 그게 중국에 들어가서
애국주의하고 결합해서 계속 한국
문화를 공격하는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문화에서 기원을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문화는 뒤섞이는 게 그 원리입니다.
서구 문화 보세요.
다 그리스, 로마에서 기원했잖아요?
그러면 프랑스 문화.
독일 문화, 미국 문화.
다 의미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잖아요.
그리스에서 세계적인 철학자 배출했다고
해서 지금도 그리스가 철학 강국입니까?
아니잖아요.
문화에서 기원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문화적인 힘입니다.
그리고 문화를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겁니다.
한국이 지금 중국 문화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세계인들이 중국 문화보다
더 한국 문화를 사랑합니다.
우리가 이 문화적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원 논쟁.
그러니까 편협한 애국주의에서 나오는
중국 소분홍.
네티즌들의 기원 논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이 우리가 좀 더 한국 문화를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세계적인 문화로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우리의
과제입니다.
중국과 미국이 이렇게 싸우다 보니까
한국인들이 굉장한 위기감도 갖고
초조감도 생기고 공포심도 생기고.
이렇게 싸우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눈치를 봐요.
중국 편에 설까?
미국 편에 설까?
야, 중국이 이러면 우리가 잘못한 거
아니야?
미국이 이러면 잘못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자신감을 잃어버렸어요.
한국인들은 왜 자신감을 잃어버린
걸까요?
사실 삼전도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런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거죠.
그런데 지금 한국은 삼전도의 굴욕을,
치욕을 겪던 시대의 조선이 아니에요.
그리고 과거 미국 원조에 의존하던
한국도 아닙니다.
초콜릿, 우유 무상 원조받던
한국이 아닙니다.
지난번 대통령 방미했을 때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에 44조 원을
투자했습니다.
바이든이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간절하게 요청했습니다.
과거의 조선이 아니고
6.25 직전의 피폐한
한국도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보다 자존심
챙길 필요 있습니다.
자신감을 챙길 필요 있습니다.
충분히 그런 자신감을 가질만 합니다.
우리가 눈치를 보지 말고
우리의 자신감을 가지고서
중국을 볼 필요가 있고
미국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눈으로
중국을 보는 게 좋을까요?
역사에서 하나의 사례, 우리 역사에 있는
선배님의 말씀, 선배님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지원입니다.
박지원이 1780년에 중국에 갑니다.
집안 친척이 청나라 사신으로 가는 데
그때 당의 황제의 생일 축하연으로
가는 데 이제 따라가게 됩니다.
박지원이 정말 신이 났어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중국, 청나라에
가보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죠.
그 여행기를 모아서 박지원이 남기죠.
그러니까 박지원이 말 타고 가면서
자신이 느낀 것, 보고 들은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게 열하일기죠.
1780년이라는 것은 조선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조 때입니다.
정조라는 사람이 조선을 중흥시켰죠.
그런데 이 부흥의 배경에는
정조의 인식 변화가 굉장히
크게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저때 조선이 어떤 상황이었냐?
이미 명나라가 멸망한 지 140여 년이
지났을 때에요.
명나라는 지금 지구상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층들 위정자들은 명나라 연호를
쓰면서 명나라를 숭배했어요.
그게 140여 년입니다.
아니, 명나라 없어진 지 140여 년도 더
넘었어요.
그런데 명나라를 숭배한 거예요.
정조가 청나라가 오랑캐인 줄 알고
명나라만 숭배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청나라에게도 배울 바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겁니다.
그래서 원래는 연초에만 사신을 보내서
말하자면 청나라 황제에게 인사를 하는데
청나라 황제의 생일 때도
우리의 사신들을 보낸 겁니다.
이게 이제 정조의 인식 변화가 굉장히
중요한 조선 시대의 변화 계기를 맞는.
이게 그래서 1780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해에 연암이 이제 말을 타고
청나라를 가게 됩니다.
그래서 연암이 쓴 열하일기에
청나라의 장관, 그러니까 가장
훌륭하고 멋진 모습이 무엇이냐
이렇게 적어 놓은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중국에 가보신 분 중에
중국에 가니까 뭐가 제일
볼만 하시던가요?
어떤 분들은.
조선의 사신들 얼마나 황홀했겠어요?
이게 정말 장관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금성을 볼 때는 제가 권하는 것은.
이게 장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은 이런 모습이
중국의 장관이 가장 멋진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연암 박지원 눈에는
무엇이 중국에서 가장 볼만한 것,
가장 멋진 모습이었을까?
우리하고는 생각이 다릅니다.
저하고도 생각이 다릅니다.
역시 연암입니다.
말똥 그리고 깨진 기와장이
중국의 장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볼만한 거라는 거죠.
열하일기에서 연암 박지원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중국 베이징에 갔더니 깨진 기왓장을
버리지를 않더라.
그러면 뭐에 썼을까요?
그리고 깨진 기왓장을 질퍽거리는 길에
깔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비가 왔을 때
신발이 젖지 않는 거죠.
그러면 말똥은 냄새나는 말똥은
어디에 쓸까요?
연암 박지원이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저거는 조선에 배워가야겠다.
배워가서 조선을 바꿔야 하겠다.
이 생각은 뭐냐면 청나라에 있는 것을
가져가서 조선에 보급하는 데
무엇을 위해서?
이용후생을 위해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용후생이라는 것은 쓰임새를 이롭게
하고 당시 조선 백성들이 사는 삶을
두텁게 하는 데 쓰겠다 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당시에 지식인 대부분이
청나라는 오랑캐 떼놈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배울 게 뭐 있어 그 떼놈들.
황비용 머리처럼 이렇게 머리도 깎고
하는 떼놈들한테 우리가 뭘 배워?
명나라면 배울 게 있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박지원의 눈은 달랐던 겁니다.
이거는 실용주의의 눈입니다.
박지원은 조선의 백성들을 본 겁니다.
청나라의 어떤 것을 가지고 가서 조선에
보급했을 때 조선 백성들의 삶이 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이런 실용주의의
눈을 가졌던 겁니다.
이용후생의 눈이고 실용주의의 눈입니다.
꼭 중국을 볼 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미국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여러 나라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특정한 나라를 볼 때 지나치게
이념의 눈으로 봅니다.
지배자의 시선이 아니라 관념과 이념의
눈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개선하는
이용후생의 눈으로 우리 주변의 강국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싸우고 있는
위기의 시대에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의 리더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실용주의와
이용후생의 눈으로 우리 주변의
강대국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주구검이 아니라 실사구시에
우리 미래가 있다.
각주구검이란 여러분도 익히 아시다시피
칼이 물에 떨어졌는데
배에 떨어진 자국을 표시해서
칼을 찾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흘러가는 물 현실을 보지 않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변화하는 현실, 흘러가는
물속에서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입니다.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판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그동안 우리가
위기를 겪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위기를
반복하면 안 됩니다.
G2 대립이 격화되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위기의 시대, 도전의 시대에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길 바라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강연
최강 1교시 이욱연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강연
최강 1교시에서 강연을 맡은 중국문화
전문가 이욱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지난 강연에서는 G2 시대 강국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인 이야기입니다.
중국인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특히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우리 한국인들 하고 어떤
점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지 이게
중국인들을 이해하는 데 되게 중요한
지점이거든요.
그래서 중국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우리가 몰랐던 중국,
중국인입니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 사람들,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는
시대, 중국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중국이 지금 너무 강국이 되고 있고
그것도 굉장히 빠르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게는 굉장히 위기
상황입니다.
왜 그럴까?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가 직면했던 위기의
경험을 살펴보면 이 시기가 굉장히
치명적인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그야말로 나라를
빼앗기거나 병자호란처럼 치욕을 당했을
때는 동아시아판이 흔들릴 때였어요.
그러니까 동아시아가 지각변동이 일어난
겁니다.
과거에 강자 패권 국가가 흔들리고
동아시아의 신흥 강자가 부상하면서
기존의 세력판이 흔들릴 때 우리는 잘
대응을 못 했어요.
그리고 다시 그러한 일들이,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의
시대입니다.
동아시아의 판이 흔들리고 우리가 위기를
맞는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부상입니다.
많은 한국인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초조해요, 왜요?
중국이 저렇게 가다가는 우리를 추월해서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 우리보다
훨씬 강한 나라가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보세요.
근대 이후에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훨씬
앞선 나라였지 않습니까?
이제 역전당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초조하죠, 쫓기고 있으니까
초조하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중국이 너무 큰 나라인데
힘까지 세지고 그리고 생각이나 행동하는
것 그러니까 체제나 중국이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이 우리하고
완전히 달라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와 비슷한 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성장을 해도
우리에게 공포를 줄 수 있는데 우리하고
완전히 다른 나라가 자꾸 힘이 세지고,
강해지고, 커지니까 공포감이 드는
거죠.
옆에 누가 저보다 훨씬 힘도 세고, 키도
크고, 덩치고 큰 사람이 서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나는 괜찮아, 나는 너를
때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하더라도
옆에 있는 작은 사람은 겁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는 위기감이 듭니다.
저렇게 군사력도 강해지고, 경제력도
강해지다 보면 이제 우리나라가
과거처럼 다시 속국이 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지켜왔고 어떻게 발전시킨
대한민국인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이런 위기감이 솔직하게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G2 시대에 중국의 부상을
보는 마음이 굉장히 착잡하고 복잡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웃집은 바꿀 수 있어도 이웃 나라는
바꿀 수 없다.
그렇죠, 이웃집이 싫으면 이웃집이
이사 가는 게 제일 좋겠죠.
이웃집이 이사 가지 않으면 내가 이사
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는 바꿀 수가 없지
않습니까?
나라를 들고 어디로 갈 수가
없잖아요.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대, 그 사람을 모르면
무섭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알면 저 사람은 팔
길이가 얼마야, 주먹의 강도가 이래.
원래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행동해.
이것을 우리가 알게 되면 우리가 중국에
잘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중국에 적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 중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중국을 열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중국 공부 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러면 왜 중국 공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까요?
잘 안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뭐하러 중국 공부해?
다 잘 아는데.
내가 삼국지 갖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중국 사람보다 더 잘 알고 논어, 맹자도
내가 중국인들보다 훨씬 잘 알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잘 아니까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공부할 가치가
없어.
내가 그걸 뭐하러 공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중국은 배울 가치가
없다고 비하하는 거죠.
비하의 대상은 굳이 배울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보다 더 낫고, 잘나고 우리가 배울
만한 어떤 것이 있어야 공부할 가치가
있는데 중국은 그런 가치가 없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더군다나 그런 가치도 없는데 곧 무너질
거야,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수능에서 어떤 특정한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 곧 없어져.
그러면 뭐 하러 공부하겠어요?
공부할 필요가 없잖아요.
여러분 중에 아마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중국이 무너질 거고, 중국은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에 곧 무너질 거니까
굳이 뭐하러 중국 공부하고, 분석하고
우리가 힘을 뺄 필요가 있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중국을 공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겁니다.
너무 비슷하고, 너무 오랫동안 사귀어
왔고, 교류해 온 것입니다, 싸우기도
하고, 같이 즐겁기도 했고 그런 역사가
너무 긴 겁니다.
3000년 길게는 5000년 동안 그렇게
이웃집에서 나란히 살아왔어요.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같이 손을 잡기도
하고 이런 가운데 지내온 겁니다.
더군다나 이웃 나라일 뿐만 아니라
문화가 비슷합니다.
농경문화죠.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중국과 한국이
비슷한 사회 시스템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교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교류해 왔어요.
그러니까 다 비슷하고 그런데 뭐하러
공부할 필요가 있어?
내가 생각하는 게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거하고 비슷하고, 내가 행동하는 게
중국인들이 행동하는 거 하고
비슷하지.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기도 해요.
중국하고 우리는 굉장히 비슷한 게
많아요.
예를 들어서 결혼 풍속을 잠깐
볼까요?
누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자녀들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또는 아는 사람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결혼식에 가서
우리가 축복해 주는 것은 한 가지
염원입니다.
오랫동안 아주 행복하게 끈끈하게 잘
살라.
이게 결혼식에 가서 우리가 축복해 주는
말 중에 또는 기원해 주는 말 중에 가장
중요한 거겠죠.
중국도 그렇습니다.
중국에서는 결혼식 때 저렇게 하얀
사탕을 나눠줍니다.
꼭 흰 사탕이어야 합니다.
이거를 희당 이렇게 중국에서는
부릅니다.
우리도 폐백 때, 폐백 선물을 보낼 때
엿을 넣어줍니다.
그런데 사실 요새는 엿을 그렇게 잘 안
먹잖아요.
그런데 폐백 단자에 꼭 이렇게 엿을
넣어주죠.
그리고 결혼식에 요즘에는 뭐 갈비탕도
먹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국수를
먹습니다.
그래서 언제 국수 먹여줄 거야?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이거는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똑같습니다.
결혼식에는 하얗고 달고 긴 것을
먹습니다.
이거는 머리가 하얘지도록 아주
끈적끈적하게 사이 좋게 오랫동안 잘
살아라는 염원을 담아서 엿도 나눠 주고
그리고 국수도 먹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똑같아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정말 비슷하죠.
또 하나, 회식 문화도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젊은 직장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게 이 회식 문화죠.
정말 회식 때문에 힘들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같이 밥을 먹는 회식이
중요할까요?
중국인들도 회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중국인들은 우리처럼 그렇게 자주
회식을 하지 않아요.
점심만 먹을 때는 각자 따로 먹고 그냥
회식을 하는 경우만 같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심하죠.
점심 때도 모여 먹고 또 저녁 때
회식이라고 또 모여 먹고 그렇습니다.
이 회식 문화가 왜 그렇게 한국과 중국에
유행을 할까요?
이거는 같이 밥을 먹어야 관계, 그러니까
인간 사이의 네트워크죠.
이게 시작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족끼리는 형제끼리는 어떤
형제가 조금 힘들 때,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또 힘든 상황이 터졌을 때 힘을
보태주고 경제적으로도 도와줍니다.
네 것, 내 것이 별로 없습니다.
왜 그렇게 도와줄까요?
문화적으로 설명하면 그렇습니다.
형제 사이는 같은 어머니의 젖을 먹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같은 것을 먹었어요.
똑같은.
그러니까 너 나 없이 나눠 주는 겁니다.
그러면 같은 마을 사람들은 무엇을 같이
먹었을까요?
한 마을에 있는 우물.
그 우물물을 같이 마신 겁니다.
그래서 같은 동네 사람, 마을 사람끼리는
서로 도와주는 겁니다.
중국은 이런 의식이 굉장히 강하죠.
그러니까 같이 먹는다는 것.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게 인간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출발점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회식이 중요합니다.
이 문화는 중국이나 우리나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문화적으로 보자면 중국이나
우리하고 굉장히 비슷한 게 많아요.
그래서 이제 한국인들이 다 비슷한데 뭐
하러 공부해, 다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점만 보기 때문에
다른 점을 보지 않아요.
실제로 겉을 벗어나서
속으로 한 층 한층
들어가다 보면 우리하고 다른 점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한국인들에 가끔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접해
보니까 너무 다르거든.
그래서 이제 문화적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면 중국과 한국 사이에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요?
중국인들의 생각과 한국인들의 생각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흔히 한국인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국에 가봤더니 중국은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사회주의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 같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사람들인 것 같아,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중국인들 특유의 능력주의가 여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능력이 다르면 다른 대우 받아야지.
능력이 다른 데 왜 똑같은 대우를
받으려고 해?
능력이 훌륭한 사람, 능력이 좋은
사람은.
보다 더 좋은 대우 받을 자격이 있어,
이게 당연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국 대학생들하고 중국 대학생들을 모아
놓고 여론 조사를 했습니다.
장학금을 어떻게 나누어 주는 게
좋을까요?
이렇게 여론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적게 주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게 좋다.
이렇게 응답한 비율이 56%.
한쪽에서는 우수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나눠 주라.
이렇게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65%였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느 쪽이 한국이고
어느 쪽이 중국 사람일까요?
적게 주더라도 나눠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한국인이고.
소수의 우수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중국인입니다.
거의 반대 되는.
왜 이런 생각, 이런 차이가 나게
됐을까요?
사실 중국은요.
능력주의 사회의 원조입니다.
중국이 가만 보면요.
우리가 지금 우리 체제를, 또는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신자유주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중국이 정말 뼛속까지 신자유주의적인
원리를 지니고 있는 사회입니다.
굉장히 능력주의 사회예요.
이 능력주의 사회의 원조, 그 국가가
바로 중국인데.
중국이 그러면 왜 그렇게 능력주의
사회로 바뀌었느냐.
굉장히 역사가 오래됩니다.
그 기원은 과거제 때문입니다.
과거제는 시험을 통해서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인과 관료를 뽑는 제도입니다.
신분이 아니라 시험 성적.
그러니까 능력에 따라서 관료를
선발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깁니다.
능력주의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 과거제를 왜
도입했을까요?
귀족 특권을 없애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귀족들이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가 어떤
관직을 맡으면 계속해서 세습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능력 없는 사람도 집안을 잘
만나서,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만나서.
계속해서 고위 관직에 나가는 겁니다.
이거는 안 되겠다.
그래서 능력제를 하자.
그래서 시험을 만들었습니다.
이거는 귀족제도, 이 특권층을 해체하고
황제의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수나라 때부터 과거제도가
도입 되는 거죠.
이 과거제가 도입이 되니까 누가
반대했겠습니까?
당연히 귀족들은 반대합니다.
자기 특권이 없어지잖아요.
권력층들이 다 반대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수나라 때 시행을 했는데 당나라
때까지도 이게 정착이 안 돼요.
기득권층이 당연히 반발하겠죠.
그래서 송나라 때 접어든 이후에야
비로소 이 과거제가 정착이 됩니다.
송나라 때는 우리 고려 때거든요.
그때 이미 과거제도가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이 과거제도를 통해서 신분은
따지지 않는다.
오직 실력만 보겠다.
그 실력을 바탕으로 선발하겠다.
나라를 통치할 사람.
정치를 이끌어갈 사람을 통치하겠다.
이런 원리가 보급되기 시작을 합니다.
이때부터 이제 신분 사회는
없어집니다.
세습하는 사람은 오직 황제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양민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지금 자본주의, 근대
자본주의 사회처럼 이렇게 바뀐
거예요.
이게 송나라 때부터 그랬어요.
물론 중국에도 천민이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천민은 아주 극악한 범죄를 지닌
소수, 아주 소수 사람들뿐이었어요.
그리고 특정 기간이 지나면 양민으로
다시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양민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오늘날 자본주의와 같은 그런
사회가 송나라 때부터.
능력주의 사회가 송나라 때부터 있었던
겁니다.
굉장히 역사, 오랜 역사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그러면
고려 때 우리가 과거제를 도입해서 조선
시대부터 과거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을
하죠.
그러면 조선도 그랬는데 그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여기에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뭐냐 하면 중국 송나라의 경우에는
귀족층, 그러니까 양반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양반이라는 걸 둔 채로
과거제도를 실시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과거제라는 게
능력주의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양반이라는 세습 기득권 층을 강화하는
수단 도구로 전락한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능력주의,
능력주의, 계속 외치는 것은 우리 사회에
그런 부분이 여전히 조선 시대와 같은
그런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능력주의는 성공의 실패는 개인의
능력 탓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는?
사회는?
무엇을 제공해 줍니까?
기회의 평등만 제공해 줍니다.
출발선이 비슷하게 설정이 됐다라면 당신
능력에 따라 더 많은 대우를 받는 것.
그거는 자기 책임이고 더 나쁜 대우를
받는 건 너 개인 책임이다.
국가가 보장해 주지 않는다.
결과의 평등은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이게 중국 사회의 원리입니다.
이 중국 사회의 원리가 송나라 때부터
지속되어온 겁니다.
그러면 중국 사회주의지 않습니까?
이 능력주의 원리에서 벗어난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마오쩌둥이 통치하던 그
시기뿐이에요.
그 시기가 1949년부터 개혁 개방이
78년에 시작되거든요.
이 시기뿐입니다.
1949년부터 78년 말까지 약 30년의
기간이죠.
이 기간만 빼고는 중국은 원래 능력주의
사회였다는 거죠.
이제 이게 개혁 개방을 하면서 다시 중국
사회에 부활이 된 겁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보게 보면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데 여전히 자본주의국가,
역사적으로 여전히 있었던 능력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 이렇게 보이는
거예요.
이런 능력주의는 사실 굉장한
개인주의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 나한테 다른 대우를
해줘야 한다, 내가 다른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속한 회사, 어떤
조직보다도 나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인을 만나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우리랑 똑같은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고 6.25의 집단주의
문화 영향을 받았는데 우리보다 훨씬
개인주의가 강하다, 왜 그렇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는 집단과 개인 사이에 우리하고
다른 원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요.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각 그리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어디냐.
호수에 돌이 하나 떨어집니다.
세계 그리고 인간관계는 이렇게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인간관계 중심점에 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중국의 유명한 인류학자인데
중국을 대표하는 인류학자인데
페이샤오퉁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중국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은 자기를 위해
가족을 희생할 수 있고 가족을 위해서는
당을 희생할 수 있고 당을 위해서는
국가를 희생시킬 수 있고 국가를
위해서는 천하를 희생시킬 수 있다.
이게 중국 사람들의 행동 원리라는
거예요.
그러면 중심은 뭡니까?
나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해서 세상을 보는 거죠.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해서 행동하는
것이죠.
나를 중심에 세워놓고 나하고 가까운지,
먼지, 친한지, 친하지 않은지.
이것을 상대로 해서 상대방을 대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중국인들의 의식을 자아주의라고 합니다.
자기중심주의죠.
이 자아주의는 개인주의하고 또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서구 사람들 흔히 개인주의
사회라고 얘기하는데 서구 사회는
그야말로 개인주의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집단을 이루기는 해요.
그런데 나를 중심으로 집단을 이룹니다.
그 중심점이 나인 거죠.
그래서 이러한 중국인들의 인간관계
주의를 자아주의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를 중심에 두고 나하고 가까운 사람들,
먼 사람들 이 동심원에 따라서 차별
대우합니다.
가족이 제일 가깝겠죠.
그다음에는 친구입니다.
친구도 등급이 있습니다.
진심을 나누는 친구 그리고 오랫동안
사귄 친구 그리고 좋은 친구.
그다음에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왜 저렇게 등급을 나누겠어요?
다른 대우를 하기 위해서.
저를 중심에 두고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
사이에 대우를 달리해주는 거예요.
이게 차별 의식입니다.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나를 중심에
두고 평등 의식이 없습니다.
모두 다 차별 대우하는 게 중국인들의
기본적인 사고라는 거죠.
인간관계만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누구하고 사람 관계를 맺을 때만
그런 게 아니라 국가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한국, 인도, 스리랑카 이 그룹에 있죠.
그런데 가만히 보시면 좀 신기합니다.
저거는 나라의 크기와 상관없습니다.
중국을 중심에 놓고 중국하고 얼마나
친하느냐 이 관계에 따라서 구분한
겁니다.
그리고 다른 대접을 해줍니다.
이게 중국인들이 나를 중심으로 해서
개인, 인간관계를 맺고 그다음에 국가의
외교 관계를 처리하는 기준이 됩니다.
굉장히 자기중심적이죠.
그러니까 흔히 유교 문화도 같고 그다음에
농경 문화도 같아서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있다.
그리고 집단주의도 비슷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보면 다른
겁니다.
우리는 한 집단에 속해 있으면 다
친해요.
얼굴 몰라도, 나하고 친하지 않아도 그냥
인간관계가 생깁니다.
집단으로 모이는 거죠.
그런데 중국인들은 집단으로 모이기는
하지만 나를 중심으로 나하고 친한
사람들끼리만 인맥을 형성하고 집단을
이룬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중국인들을 이해할 때
집단주의라는 차원에서만 중국인들을
보면 중국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우리 많은 기업인이 중국에 가서 사업할
때 애로를 겪는 점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중국 사람들은 사장님을 봐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상사를
보더라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자기
동료처럼 대한다.
더구나 신입사원들도 그런다.
왜 그렇지?
공자님 후손 아니야?
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예의를 몰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차 문도 열어주지 않고 그런 사례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거죠.
왜 그럴까요?
사실 우리가 중국을 유교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중국에는 유교적인
예절과 문화가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많이
없어졌어요.
사실 우리는 아직도 유교적인 전통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우리가 똑같은 유교
국가지만 안을 잘 들여다보면 유교의
원리가 달랐어요.
우리는 유교 중에서도 조선 시대부터
주자학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건국이념이
주자학이었기 때문에 온 나라를 주자학의
나라로 만듭니다.
그래서 사실 일반 사람들은 주자학 필요
없잖아요.
과거 볼 일도 아니고 주자학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양반이 아니라도 그래요.
그러니까 온전히 다 주자학적 원리가
지배했던 거죠.
그러니까 유교적인 가부장제가 굉장히
강하죠.
그런데 여기에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일본식 가부장제가 들어와요.
호주제가 형성됩니다.
일본 메이지 헌법에 호주제를
규정해놨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는 유교적인
가부장제 그다음에 일본식 호주제의
가부장제가 결합하면서 굉장히 수직적인
가부장 사회가 형성되고 수직적인 의식이
굉장히 강해진 겁니다.
그래서 수직적인 서열이 굉장히
강해요.
그래서 어린이들도 유치원에서 만나면 너
몇 살이야 이렇게 물어봅니다.
주민등록증을 까야 수직적인 서열이
잡혀야 인간관계가 형성됩니다.
더군다나 존댓말까지 있어요.
그런데 중국은 달라요.
똑같은 유교 국가인데 다른 점이 있어요.
중국 역시 주자학의 영향이 있어요.
그런데 이거는 과거를 보는 사람들,
상층부, 공부하는 선비들 이 사람들만
주자학을 믿었지 밑에 사람들은
상관없었어요.
그러면 일반 백성들, 중국의 일반
백성들은 어떻게 생활했느냐.
그 사람들은 불교를 믿었고 도교를
믿었어요.
조선은 주자학을 도입하면서 불교를
완전히 말살시켰습니다.
그래서 다 절이 산에 있잖아요.
그런데 중국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주자학이 선비들 그야말로
관직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의 고식
공부로서만 중국에서는 작동했는데
우리나라는 주자학이 일상에까지
퍼져있었던 거죠.
그리고 중국은 주자학만이 아니라
양명학도 도입합니다.
우리는 양명학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사상 체계가
공존했던 게 중국의 현실이고 주자학만
그야말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게
조선입니다.
이렇게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유교 영향으로 치자면 조선이
훨씬 더 센 겁니다.
더군다나 중국은 근대 이후부터 유교를
철저하게 타도합니다.
우리가 공자님 말씀 때문에, 유교 때문에
제국주의에 이렇게 당했다.
유교를 버려야 중국이 산다.
공자님 말씀 이제는 버리자.
그러면서 공자를 타도하고 유교를
비판하는 운동이 근대 초기부터 시작을
해서 마오쩌둥 시기까지 지속합니다.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에 공자 비판
운동을 한 거죠.
그리고 사회주의 시대가 되면서 모든
사람을 다 동지라고 똑같이
불러버린 겁니다.
직장 상사도, 사장님도, 기관장도
다 동지.
이렇게 불러버린 거죠.
그러니까 수직적인 서열 의식이 굉장히
약해집니다.
그리고 중국에는 존댓말도 없어요.
그러니까 나이를 뛰어넘어서 친구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거죠.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보기에는 중국은
수직적인 서열 문화가 없고 중국은 유교
국가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유교라는 기준으로
중국을 보게 되면 중국의 모든 것이 잘
보이지 않는 우리하고 다른 부분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의 자랑, 우리의 자부심인
김치라든가, 태권도라든가.
한국 문화 이것이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중국의 극단적인 네티즌들이 자기
문화의 원조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 문화를 비판하면서 한국의
모든 문화는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
세대입니다.
MZ세대라고 우리가 하는데.
이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왼쪽이 우리가 보는 김치고.
다른 쪽이 파오차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실 보면.
오른쪽은 사실은 중국인들이 먹는
파오차이라고 하는 것은 피클
수준입니다.
다르죠.
그런데 왜 저런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소분홍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애국주의 네티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90년대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청년들이죠.
그래서 이 사람들을 포스트 90.
그러니까 후 90 세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원래 이 소분홍이라는 말은.
그런데 여기에 이제 극단적인 민족주의
주장 그다음에 서구 비판하고, 한국
비판하는 이런 주장들이 굉장히 많이
올라온 거죠.
그래서 이제 소분홍하면 극단적인
애국주의 그룹들.
극단적인, 폐쇄적인 애국주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
이렇게 부르게 됐습니다.
이 사람들이 왜 그러면 이렇게
극단적일까요?
이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다른 세대에 비해서 굉장히 커요.
왜 그런가 하면.
그래서 중국이 막 성장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중국이 굉장히 성장하니까
이제는 우리나라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더군다나 베이징올림픽도 개최했죠.
상하이엑스포도 했죠.
그리고 요즘에는 화성에도 가고
달도 가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대단하고 그런 측면에서 보자 하면 미국
뭐, 서구 별...
별거 없네.
중국도 대단한데 뭐하러 서구 나라를
이상적으로 생각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나라.
누가 만들었어?
중국 공산당, 중국 정부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중국에 대한 애국심,
중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도.
이게 굉장히 커진 거죠.
이 사람들이 한중 사이의 문화적 갈등을
낳는 당사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아마 짐작을 하셨을 텐데 한류
사진을 올리고 김치 사진을 올리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세대들입니다.
-(영어)
-그러니까 이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서 한류를 많이 접해요.
그런데 요즘 한류가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대중문화 영역에서 굉장히
한류가 아주 유행을 다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들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이 사람들은 원래 중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는 다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이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세계 사람들이 요즘에는
K-좀비를 비롯해서 한류 콘텐츠를 보다
보니까 동아시아의 문화가 다 한국에서
기원했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자존심이 상해요.
자신들은 중국 문화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데 세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거죠.
한류 문화가 동아시아의 문화의 대표,
상징으로 계속 부각되고 있는 겁니다.
이게 불편해요.
더군다나 이 사람들은 애국주의가
강하잖아요.
이 현실이 불편해서 이제 한국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화적 애국주의가 굉장히
강한 세대인 거죠.
더군다나요.
중국이 애국주의.
이게 이제 전 사회적으로 굉장히
퍼지면서 그러한 편협한 애국주의
주장을 하면 할수록 그 주장을 SNS에
올리면 올릴수록 많이 퍼져요.
클릭 수도 많아져요.
그러면 무슨 좋은 점이 있겠어요?
돈이 들어오죠.
그러니까 애국주의가 돈이 되는 겁니다.
애국 상업주의죠.
그래서 이러한 주장들이 계속
퍼져갑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이 애국주의가
팬클럽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아이돌을 좋아하듯이
아이돌 자리에 중국을 놓고 중국을
아이돌, 오빠.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 중국을 지켜야
한다.
우리 중국을 욕하는 사람들은 다 나쁘다.
내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우리 중국을
지키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국어)
-(영어)
-이러한 소분홍 애국주의 네티즌 중에는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중국으로 간 한국
체험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이 사람들이 이제 한국에서 조금
불공정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무시를
당했는데 이제 그게 중국에 들어가서
애국주의하고 결합해서 계속 한국
문화를 공격하는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문화에서 기원을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문화는 뒤섞이는 게 그 원리입니다.
서구 문화 보세요.
다 그리스, 로마에서 기원했잖아요?
그러면 프랑스 문화.
독일 문화, 미국 문화.
다 의미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잖아요.
그리스에서 세계적인 철학자 배출했다고
해서 지금도 그리스가 철학 강국입니까?
아니잖아요.
문화에서 기원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문화적인 힘입니다.
그리고 문화를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겁니다.
한국이 지금 중국 문화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세계인들이 중국 문화보다
더 한국 문화를 사랑합니다.
우리가 이 문화적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원 논쟁.
그러니까 편협한 애국주의에서 나오는
중국 소분홍.
네티즌들의 기원 논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이 우리가 좀 더 한국 문화를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세계적인 문화로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우리의
과제입니다.
중국과 미국이 이렇게 싸우다 보니까
한국인들이 굉장한 위기감도 갖고
초조감도 생기고 공포심도 생기고.
이렇게 싸우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눈치를 봐요.
중국 편에 설까?
미국 편에 설까?
야, 중국이 이러면 우리가 잘못한 거
아니야?
미국이 이러면 잘못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자신감을 잃어버렸어요.
한국인들은 왜 자신감을 잃어버린
걸까요?
사실 삼전도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런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거죠.
그런데 지금 한국은 삼전도의 굴욕을,
치욕을 겪던 시대의 조선이 아니에요.
그리고 과거 미국 원조에 의존하던
한국도 아닙니다.
초콜릿, 우유 무상 원조받던
한국이 아닙니다.
지난번 대통령 방미했을 때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에 44조 원을
투자했습니다.
바이든이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간절하게 요청했습니다.
과거의 조선이 아니고
6.25 직전의 피폐한
한국도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보다 자존심
챙길 필요 있습니다.
자신감을 챙길 필요 있습니다.
충분히 그런 자신감을 가질만 합니다.
우리가 눈치를 보지 말고
우리의 자신감을 가지고서
중국을 볼 필요가 있고
미국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눈으로
중국을 보는 게 좋을까요?
역사에서 하나의 사례, 우리 역사에 있는
선배님의 말씀, 선배님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지원입니다.
박지원이 1780년에 중국에 갑니다.
집안 친척이 청나라 사신으로 가는 데
그때 당의 황제의 생일 축하연으로
가는 데 이제 따라가게 됩니다.
박지원이 정말 신이 났어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중국, 청나라에
가보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죠.
그 여행기를 모아서 박지원이 남기죠.
그러니까 박지원이 말 타고 가면서
자신이 느낀 것, 보고 들은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게 열하일기죠.
1780년이라는 것은 조선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조 때입니다.
정조라는 사람이 조선을 중흥시켰죠.
그런데 이 부흥의 배경에는
정조의 인식 변화가 굉장히
크게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저때 조선이 어떤 상황이었냐?
이미 명나라가 멸망한 지 140여 년이
지났을 때에요.
명나라는 지금 지구상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층들 위정자들은 명나라 연호를
쓰면서 명나라를 숭배했어요.
그게 140여 년입니다.
아니, 명나라 없어진 지 140여 년도 더
넘었어요.
그런데 명나라를 숭배한 거예요.
정조가 청나라가 오랑캐인 줄 알고
명나라만 숭배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청나라에게도 배울 바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겁니다.
그래서 원래는 연초에만 사신을 보내서
말하자면 청나라 황제에게 인사를 하는데
청나라 황제의 생일 때도
우리의 사신들을 보낸 겁니다.
이게 이제 정조의 인식 변화가 굉장히
중요한 조선 시대의 변화 계기를 맞는.
이게 그래서 1780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해에 연암이 이제 말을 타고
청나라를 가게 됩니다.
그래서 연암이 쓴 열하일기에
청나라의 장관, 그러니까 가장
훌륭하고 멋진 모습이 무엇이냐
이렇게 적어 놓은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중국에 가보신 분 중에
중국에 가니까 뭐가 제일
볼만 하시던가요?
어떤 분들은.
조선의 사신들 얼마나 황홀했겠어요?
이게 정말 장관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금성을 볼 때는 제가 권하는 것은.
이게 장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은 이런 모습이
중국의 장관이 가장 멋진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연암 박지원 눈에는
무엇이 중국에서 가장 볼만한 것,
가장 멋진 모습이었을까?
우리하고는 생각이 다릅니다.
저하고도 생각이 다릅니다.
역시 연암입니다.
말똥 그리고 깨진 기와장이
중국의 장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볼만한 거라는 거죠.
열하일기에서 연암 박지원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중국 베이징에 갔더니 깨진 기왓장을
버리지를 않더라.
그러면 뭐에 썼을까요?
그리고 깨진 기왓장을 질퍽거리는 길에
깔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비가 왔을 때
신발이 젖지 않는 거죠.
그러면 말똥은 냄새나는 말똥은
어디에 쓸까요?
연암 박지원이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저거는 조선에 배워가야겠다.
배워가서 조선을 바꿔야 하겠다.
이 생각은 뭐냐면 청나라에 있는 것을
가져가서 조선에 보급하는 데
무엇을 위해서?
이용후생을 위해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용후생이라는 것은 쓰임새를 이롭게
하고 당시 조선 백성들이 사는 삶을
두텁게 하는 데 쓰겠다 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당시에 지식인 대부분이
청나라는 오랑캐 떼놈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배울 게 뭐 있어 그 떼놈들.
황비용 머리처럼 이렇게 머리도 깎고
하는 떼놈들한테 우리가 뭘 배워?
명나라면 배울 게 있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박지원의 눈은 달랐던 겁니다.
이거는 실용주의의 눈입니다.
박지원은 조선의 백성들을 본 겁니다.
청나라의 어떤 것을 가지고 가서 조선에
보급했을 때 조선 백성들의 삶이 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이런 실용주의의
눈을 가졌던 겁니다.
이용후생의 눈이고 실용주의의 눈입니다.
꼭 중국을 볼 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미국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여러 나라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특정한 나라를 볼 때 지나치게
이념의 눈으로 봅니다.
지배자의 시선이 아니라 관념과 이념의
눈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개선하는
이용후생의 눈으로 우리 주변의 강국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싸우고 있는
위기의 시대에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의 리더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실용주의와
이용후생의 눈으로 우리 주변의
강대국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주구검이 아니라 실사구시에
우리 미래가 있다.
각주구검이란 여러분도 익히 아시다시피
칼이 물에 떨어졌는데
배에 떨어진 자국을 표시해서
칼을 찾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흘러가는 물 현실을 보지 않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변화하는 현실, 흘러가는
물속에서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입니다.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판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그동안 우리가
위기를 겪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위기를
반복하면 안 됩니다.
G2 대립이 격화되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위기의 시대, 도전의 시대에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길 바라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강연
최강 1교시 이욱연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