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N특집다큐 금릉의 미
등록일 : 2022-11-29 10:33:13.0
조회수 : 172
-(해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금관가야의 숨결을 그대로
품은 경상남도 김해.
2000년 전 인도 아유타국에서 김해까지
하늘이 정해준 사랑을 찾아 멀고 험한
바닷길을 헤치며 대담한 여행길에
올랐던 김수로왕의 왕비, 허왕후.
그녀의 흔적이 아직
김해 곳곳에 남아있다.
그렇게 성공한 사랑의 전설이 된 역사
유적지가 누군가에게는 함께하지
못하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기다림의
장소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조선시대 후기.
김해에 뿌리를 내린 한 떨기 꽃과 같은
여인이 자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시로 노래했다.
지재당 강담운의 눈길에 닿고 발길이
닿은 김해 지역 곳곳이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권의 시집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조선 후기 여류 시인 지재당 강담운의
한시집, 지재당고의 금릉잡시 속
18세기 김해의 아름다운 모습.
그녀의 사랑과 인생이 담긴 그리움의
장소들을 함께 찾아가 보자.
해어화.
말하는 꽃이라고 불리는 기녀를 말한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였던 조선시대.
가장 미천한 신분이지만 고등 교육을
받은 사대부와 어울릴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삶을 사는 여인들.
유흥을 위한 감언은 물론이고
시, 서, 화를 두루 섭렵한 다재다능한
예능인이었다.
-(해설) 조선시대 황진이, 이매창 등
뛰어난 예술적 영감을 가진 기녀들의
활약은 많이 알려져 있다.
노래와 웃음은 팔지만 평생 지조를
팔지 않는 시대의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긴 그녀들.
조선 후기 김해 지역 관기였던
강담운 역시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가진 예기였다.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녀인
어머니의 신분을 이어받아 강담운
역시 기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거부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태생적으로 규정된 신분.
강담운은 기녀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로 써 내려갔다.
-(해설) 억석, 옛날을 추억함.
억석부억석.
옛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생장류영춘.
평양 감영 봄날에 나고 자랐네.
팔세수자모.
여덟 살에 어머니를 따라.
승조남도진.
배를 타고 남쪽 나루를 건너.
오락분성관.
김해 객관에 잘못 떨어져.
구란위차신.
교방에 이 몸 맡겼네.
하증불능화,
언제 거울 본 적 있었던가.
금조착기라,
오늘 아침 비단옷을 입었네.
몽롱회설무,
눈이 휘날리듯 빙빙 돌며 춤추고.
유량알운가,
구름도 멈출 듯 낭랑하게 노래 불렀네.
화방부용수,
함허정에 그림 같은 배 띄우고.
상렴연자루,
연자루에는 비단 주렴 드리웠네.
-(해설) 김해시 동상동에 위치한 연화사.
8살에 어머니를 따라
평양에서 김해까지 긴 여정 끝에
도착한 곳은 김해 객사였다.
거울도 제대로 본 적이 없던 그녀가
기녀가 되어 비단옷을 입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 곳은
함허정과 연자루.
당시 김해 객사 후원에 있던 정자
함허정과 누각,
연자루는 사라지고
현재 연화사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다.
그 자리에 연자루 돌기둥 하나만이
화려한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해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진주 기생 논개의 충정이 서린
진주 촉석루와
검무에 능한 밀양 기생 운심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지역 3대 누각으로 자리매김했던
연자루.
두 누각의 절경에서 연자루의
아름다운 풍광을 유추해 본다.
연자루와 함께 함허정이 있던
김해 객사 후원지는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돼
보호가 되고 있다.
-(해설) 강담운의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김해 객사 후원지.
이곳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시를 만나본다.
-(해설) 연자루전양류화,
연자루 앞 버들개지.
양화연자석양사,
버들개지와 제비가 석양에 비껴나네.
연축비화화축연,
제비는 꽃을 쫓고 꽃은 제비를 쫓아.
성중산입만인가,
성 안의 여러 집으로 흩어져 들어가네.
서망용제운담담,
서쪽을 보니 용의 발굽 구름이 뭉실뭉실.
사군도우마회지,
고을 원님 기우제 올리고
말 천천히 돌아가네.
모입함허홍촉란,
저물녘 함허정에 붉은 촛불 밝히니.
여낭쟁창백구사
아가씨들 노래하고 백구는 시를 쓰네
-(해설) 지재당 강담운이 쓴 시를 엮어
파는 지재당고에는 금릉 잡시라는
제목에 칠언절구 34수가 연작되어있다.
금릉은 원래 중국 남경의 아름다운
풍광을 일컫던 말로 금릉 잡시의 금릉은
강담운이 김해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해서
붙인 이름이다.
예로부터 김해 사람들 스스로가 애정을
담아 금릉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재당 강담운의 시선으로 본 아름다운
금릉의 모습은 그녀가 살았던 18세기
당시 김해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있는
지도.
김해부내지도 원본이 있는 대성동
고분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설) 김해부내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강담운이 살았던 150여 년 전
김해의 모습이 변함없이 남아 있는 곳.
분산성 만장대에서 김해가 금릉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해설) 금릉 잡시에 등장하는 역사
유적지 가운데 김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은
김해가 금관가야의 역사를 품은 오래된
역사 도시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해설) 춘수여운창호계
봄물 구름 같이 호계에 넘치니.
완사인격수동서.
빨래하는 사람들 호계 양쪽으로
나뉘었네.
진일자규제부진.
온종일 두견새가 울어대고.
이능한식초처처.
두 능은 한식에도 풀이 무성하네.
-(해설) 지재당 강담운의 금릉 잡시에는
가야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김해의
대표적인 유적지들이 등장하는데 그
역사의 현장에서 시인은 역사를
회상하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감정 이입을 해 더 초연하게 느껴진다.
-(해설) 구지봉두낙조홍
구지봉 머리에 붉은 노을 비치고,
후릉송백기추풍
후릉의 송백에는 가을바람이네.
상심일편파사석
상심한 한 조각 파사석.
만초황연적막중
늘어진 풀 자욱한 안개 참으로 적막하다.
-(해설) 2000년동안 그 자리에 변함없는
사랑의 전설로 남은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무덤에서 지재당 강담운은
연인이었던 차산 배전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더 아름답게 그려낸다.
-(해설) 납릉추유 수로왕릉의 가을 버들.
단장추풍일곡가
가을바람 한 곡조에 애간장 끊어지고
백문잔조영사사
서문에 비친 노을 그림자 비껴있네.
고금무진수제한
고금에 다함 없는 무한한 그리움.
불견비앵청모아 날아오는 꾀꼬리 보이지
않고 저녁 갈까마귀 소리만 들리네.
-(해설) 조선 말기에 내세울 것 없는
병약한 선비 배전과 관기 강담운의
서로를 향한 마음은 두 사람이 사용하는
호를 통해 알 수 있다.
문정을 가다듬는다는 뜻의 태고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한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
그의 시에 심은자불우에서 배전과
강담운은 자신들의 호를 따왔다.
-(해설) 심은자불우
은자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하고
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었더니
언사채약거 스승은 약초캐러 갔다고 하네.
지재차산중 이 산속에 있기야 하겠지만
운심부지처 구름이 깊어 있는 곳을
알 수가 없네.
-(해설) 지재당과 차산 두 사람의 혼은
지재차산중이란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강담운이 지은 지재라는 호는 차산의
품에서만 살아가겠다는 의미가 된다.
한시집 지재당고는 차산이 고종의 사촌
이재긍에게 지재당의 시를 선보인 후
간행되었다.
이 책에서 차산은 일심인 배차산 교라고
남겨 오직 한 사람을 향한
그의 마음을 표현했다.
-(해설) 지재당과 차산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김해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생활을 주로 했던
차산을 기다리는 것은
늘 지재당의 몫이었을 것이다.
떠난 이를 기다리는 지재당의 그리움은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권의 책이 되어
지금 우리 곁에 남아있다.
-(해설) 창망, 쓸쓸히 바라보며.
벽통주숙유가기, 푸른 통에
술 익는 좋은 절기.
독의난간창망시, 홀로 난간에 기대어
쓸쓸히 바라보네.
만장대전운막막, 만장대 앞 구름
막막하고.
사충단하우사사, 사충단 아래
비가 부슬부슬.
곡서화개연병체, 굽은 갯가 꽃 피어
두 꼭지 가련하고.
방원수로애련지, 동산에 늙은 나무
이은 가지 사랑스럽다.
춘풍별후상사한, 봄바람 이별 후에
그리운 정은.
십폭어전기수시, 열 폭 편지지에
몇 수의 시를 쓸고.
-(해설) 천향사리불등홍.
천향사 안 등불 붉고.
만장대전수박공.
만장대 앞 물은 허공을 치네.
장사인풍취옥적.
장수가 바람맞으며 옥피리를 부니.
일성유락백운중.
한 소리 아득히 구름 속에 떨어지네.
-(해설) 지재당은 역사적 명소의
아름다움만 시에 담아낸 것이 아니다.
삶의 터전으로 김해에서 살아가는 김해
민중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 숲이 들어서
상전벽해를 이루는 명지.
150여 년 전 아득한 땅끝마을 명지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재당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해설) 명도창망수진남.
명도는 아득히 푸른 남쪽 물 끝에 있고.
판교모점유삼삼
나무다리 초가 주막엔 벼들이 한들한들.
일조백사전반로.
해 비친 백사장 밭 두둑 길.
염거양양천홍삼.
소금 수레 삐거덕삐거덕
붉은 적삼 물들이네.
-(해설) 영운동리침초가,
영운동은 모두 나무꾼의 집.
벌목청정이력사,
탁탁 나무 베는 소리에 해 쉬이 기우네.
십리매신귀아월,
십리 길 가서 땔감 팔고 돌아오는 달밤.
분산정상방고가,
분산 꼭대기에 노래 소리 울리네.
-(해설) 무거운 소금 수레의 무게도
하루종일 나무를 베고 땔감을 만드는 일도
힘들다, 고통스럽다는 말 대신
견뎌내야 하는 고행의 길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재당 강담운.
조선 후기 김해를 대표하는 여류 시인은
지재당의 한시집, 지재당고를 만나기 위해
부산대의 도서관을 찾았다.
지재당고가 세상에 빛을 보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이재근은 서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아, 현재와 미래에 아마도 알아줄 자가
있어 비단병풍과 비단부채에 써서
전하는 이가 있을 것이니 내가 차마
손에서 놓지 못했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말한 미래인 지금,
지재당이 쓴 금릉잡시를 알아본
우리에게 하는 말 같은데 금릉잡시가
지금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해설) 이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
김해의 아름다움을 감안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그려낸
지재당 강담운의 한시집.
지대당고 속 금릉잡시는 이제 김해의
대표적인 역사,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꿈을 꾸고 있다.
오늘 금릉잡시 속 김해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찾아가 조금 천천히
한시의 여유로움을 음미하며
걸어보는 건 어떨까.
진정한 금릉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금관가야의 숨결을 그대로
품은 경상남도 김해.
2000년 전 인도 아유타국에서 김해까지
하늘이 정해준 사랑을 찾아 멀고 험한
바닷길을 헤치며 대담한 여행길에
올랐던 김수로왕의 왕비, 허왕후.
그녀의 흔적이 아직
김해 곳곳에 남아있다.
그렇게 성공한 사랑의 전설이 된 역사
유적지가 누군가에게는 함께하지
못하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기다림의
장소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조선시대 후기.
김해에 뿌리를 내린 한 떨기 꽃과 같은
여인이 자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시로 노래했다.
지재당 강담운의 눈길에 닿고 발길이
닿은 김해 지역 곳곳이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권의 시집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조선 후기 여류 시인 지재당 강담운의
한시집, 지재당고의 금릉잡시 속
18세기 김해의 아름다운 모습.
그녀의 사랑과 인생이 담긴 그리움의
장소들을 함께 찾아가 보자.
해어화.
말하는 꽃이라고 불리는 기녀를 말한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였던 조선시대.
가장 미천한 신분이지만 고등 교육을
받은 사대부와 어울릴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삶을 사는 여인들.
유흥을 위한 감언은 물론이고
시, 서, 화를 두루 섭렵한 다재다능한
예능인이었다.
-(해설) 조선시대 황진이, 이매창 등
뛰어난 예술적 영감을 가진 기녀들의
활약은 많이 알려져 있다.
노래와 웃음은 팔지만 평생 지조를
팔지 않는 시대의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긴 그녀들.
조선 후기 김해 지역 관기였던
강담운 역시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가진 예기였다.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녀인
어머니의 신분을 이어받아 강담운
역시 기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거부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태생적으로 규정된 신분.
강담운은 기녀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로 써 내려갔다.
-(해설) 억석, 옛날을 추억함.
억석부억석.
옛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생장류영춘.
평양 감영 봄날에 나고 자랐네.
팔세수자모.
여덟 살에 어머니를 따라.
승조남도진.
배를 타고 남쪽 나루를 건너.
오락분성관.
김해 객관에 잘못 떨어져.
구란위차신.
교방에 이 몸 맡겼네.
하증불능화,
언제 거울 본 적 있었던가.
금조착기라,
오늘 아침 비단옷을 입었네.
몽롱회설무,
눈이 휘날리듯 빙빙 돌며 춤추고.
유량알운가,
구름도 멈출 듯 낭랑하게 노래 불렀네.
화방부용수,
함허정에 그림 같은 배 띄우고.
상렴연자루,
연자루에는 비단 주렴 드리웠네.
-(해설) 김해시 동상동에 위치한 연화사.
8살에 어머니를 따라
평양에서 김해까지 긴 여정 끝에
도착한 곳은 김해 객사였다.
거울도 제대로 본 적이 없던 그녀가
기녀가 되어 비단옷을 입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 곳은
함허정과 연자루.
당시 김해 객사 후원에 있던 정자
함허정과 누각,
연자루는 사라지고
현재 연화사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다.
그 자리에 연자루 돌기둥 하나만이
화려한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해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진주 기생 논개의 충정이 서린
진주 촉석루와
검무에 능한 밀양 기생 운심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지역 3대 누각으로 자리매김했던
연자루.
두 누각의 절경에서 연자루의
아름다운 풍광을 유추해 본다.
연자루와 함께 함허정이 있던
김해 객사 후원지는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돼
보호가 되고 있다.
-(해설) 강담운의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김해 객사 후원지.
이곳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시를 만나본다.
-(해설) 연자루전양류화,
연자루 앞 버들개지.
양화연자석양사,
버들개지와 제비가 석양에 비껴나네.
연축비화화축연,
제비는 꽃을 쫓고 꽃은 제비를 쫓아.
성중산입만인가,
성 안의 여러 집으로 흩어져 들어가네.
서망용제운담담,
서쪽을 보니 용의 발굽 구름이 뭉실뭉실.
사군도우마회지,
고을 원님 기우제 올리고
말 천천히 돌아가네.
모입함허홍촉란,
저물녘 함허정에 붉은 촛불 밝히니.
여낭쟁창백구사
아가씨들 노래하고 백구는 시를 쓰네
-(해설) 지재당 강담운이 쓴 시를 엮어
파는 지재당고에는 금릉 잡시라는
제목에 칠언절구 34수가 연작되어있다.
금릉은 원래 중국 남경의 아름다운
풍광을 일컫던 말로 금릉 잡시의 금릉은
강담운이 김해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해서
붙인 이름이다.
예로부터 김해 사람들 스스로가 애정을
담아 금릉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재당 강담운의 시선으로 본 아름다운
금릉의 모습은 그녀가 살았던 18세기
당시 김해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있는
지도.
김해부내지도 원본이 있는 대성동
고분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설) 김해부내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강담운이 살았던 150여 년 전
김해의 모습이 변함없이 남아 있는 곳.
분산성 만장대에서 김해가 금릉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해설) 금릉 잡시에 등장하는 역사
유적지 가운데 김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은
김해가 금관가야의 역사를 품은 오래된
역사 도시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해설) 춘수여운창호계
봄물 구름 같이 호계에 넘치니.
완사인격수동서.
빨래하는 사람들 호계 양쪽으로
나뉘었네.
진일자규제부진.
온종일 두견새가 울어대고.
이능한식초처처.
두 능은 한식에도 풀이 무성하네.
-(해설) 지재당 강담운의 금릉 잡시에는
가야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김해의
대표적인 유적지들이 등장하는데 그
역사의 현장에서 시인은 역사를
회상하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감정 이입을 해 더 초연하게 느껴진다.
-(해설) 구지봉두낙조홍
구지봉 머리에 붉은 노을 비치고,
후릉송백기추풍
후릉의 송백에는 가을바람이네.
상심일편파사석
상심한 한 조각 파사석.
만초황연적막중
늘어진 풀 자욱한 안개 참으로 적막하다.
-(해설) 2000년동안 그 자리에 변함없는
사랑의 전설로 남은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무덤에서 지재당 강담운은
연인이었던 차산 배전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더 아름답게 그려낸다.
-(해설) 납릉추유 수로왕릉의 가을 버들.
단장추풍일곡가
가을바람 한 곡조에 애간장 끊어지고
백문잔조영사사
서문에 비친 노을 그림자 비껴있네.
고금무진수제한
고금에 다함 없는 무한한 그리움.
불견비앵청모아 날아오는 꾀꼬리 보이지
않고 저녁 갈까마귀 소리만 들리네.
-(해설) 조선 말기에 내세울 것 없는
병약한 선비 배전과 관기 강담운의
서로를 향한 마음은 두 사람이 사용하는
호를 통해 알 수 있다.
문정을 가다듬는다는 뜻의 태고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한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
그의 시에 심은자불우에서 배전과
강담운은 자신들의 호를 따왔다.
-(해설) 심은자불우
은자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하고
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었더니
언사채약거 스승은 약초캐러 갔다고 하네.
지재차산중 이 산속에 있기야 하겠지만
운심부지처 구름이 깊어 있는 곳을
알 수가 없네.
-(해설) 지재당과 차산 두 사람의 혼은
지재차산중이란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강담운이 지은 지재라는 호는 차산의
품에서만 살아가겠다는 의미가 된다.
한시집 지재당고는 차산이 고종의 사촌
이재긍에게 지재당의 시를 선보인 후
간행되었다.
이 책에서 차산은 일심인 배차산 교라고
남겨 오직 한 사람을 향한
그의 마음을 표현했다.
-(해설) 지재당과 차산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김해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생활을 주로 했던
차산을 기다리는 것은
늘 지재당의 몫이었을 것이다.
떠난 이를 기다리는 지재당의 그리움은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권의 책이 되어
지금 우리 곁에 남아있다.
-(해설) 창망, 쓸쓸히 바라보며.
벽통주숙유가기, 푸른 통에
술 익는 좋은 절기.
독의난간창망시, 홀로 난간에 기대어
쓸쓸히 바라보네.
만장대전운막막, 만장대 앞 구름
막막하고.
사충단하우사사, 사충단 아래
비가 부슬부슬.
곡서화개연병체, 굽은 갯가 꽃 피어
두 꼭지 가련하고.
방원수로애련지, 동산에 늙은 나무
이은 가지 사랑스럽다.
춘풍별후상사한, 봄바람 이별 후에
그리운 정은.
십폭어전기수시, 열 폭 편지지에
몇 수의 시를 쓸고.
-(해설) 천향사리불등홍.
천향사 안 등불 붉고.
만장대전수박공.
만장대 앞 물은 허공을 치네.
장사인풍취옥적.
장수가 바람맞으며 옥피리를 부니.
일성유락백운중.
한 소리 아득히 구름 속에 떨어지네.
-(해설) 지재당은 역사적 명소의
아름다움만 시에 담아낸 것이 아니다.
삶의 터전으로 김해에서 살아가는 김해
민중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 숲이 들어서
상전벽해를 이루는 명지.
150여 년 전 아득한 땅끝마을 명지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재당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해설) 명도창망수진남.
명도는 아득히 푸른 남쪽 물 끝에 있고.
판교모점유삼삼
나무다리 초가 주막엔 벼들이 한들한들.
일조백사전반로.
해 비친 백사장 밭 두둑 길.
염거양양천홍삼.
소금 수레 삐거덕삐거덕
붉은 적삼 물들이네.
-(해설) 영운동리침초가,
영운동은 모두 나무꾼의 집.
벌목청정이력사,
탁탁 나무 베는 소리에 해 쉬이 기우네.
십리매신귀아월,
십리 길 가서 땔감 팔고 돌아오는 달밤.
분산정상방고가,
분산 꼭대기에 노래 소리 울리네.
-(해설) 무거운 소금 수레의 무게도
하루종일 나무를 베고 땔감을 만드는 일도
힘들다, 고통스럽다는 말 대신
견뎌내야 하는 고행의 길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재당 강담운.
조선 후기 김해를 대표하는 여류 시인은
지재당의 한시집, 지재당고를 만나기 위해
부산대의 도서관을 찾았다.
지재당고가 세상에 빛을 보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이재근은 서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아, 현재와 미래에 아마도 알아줄 자가
있어 비단병풍과 비단부채에 써서
전하는 이가 있을 것이니 내가 차마
손에서 놓지 못했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말한 미래인 지금,
지재당이 쓴 금릉잡시를 알아본
우리에게 하는 말 같은데 금릉잡시가
지금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해설) 이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
김해의 아름다움을 감안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그려낸
지재당 강담운의 한시집.
지대당고 속 금릉잡시는 이제 김해의
대표적인 역사,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꿈을 꾸고 있다.
오늘 금릉잡시 속 김해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찾아가 조금 천천히
한시의 여유로움을 음미하며
걸어보는 건 어떨까.
진정한 금릉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