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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로 간 검은 눈의 천사 (파독간호사)

등록일 : 2023-12-08 09:43:41.0
조회수 : 153
-(해설) 올해는 한독 수교 140주년이자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 근로자로 파견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먼 타향에서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청춘들.
독일로 간 검은 눈의 천사들을 지금 만나봅니다.
경남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독일마을.
이곳은 파독 근로자가 귀향해 정착한 곳입니다.
2005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마을에는 현재 7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요.
주민들 대부분은 관광객을 위한 카페와 숙박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국 속 작은 독일을 보는 듯한 이곳에서 오늘의 주인공을 만났는데요.
-운영한 지는 한 8년째 되지만 제가 74년도에 독일 가서 95년도에 한국에
와서 다른 지역에 살다가 이곳에 와서 집을 짓고 살면서 운영했습니다.
-(해설) 1960, 70년대 한국은 외화 부족 사태와 심각한 실업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파독 근로자는 실업 문제 해결과 외화 획득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서독으로 파견됐었는데요.
-저는 거의 마지막에 갔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가셔서 각 가정마다 도움을 많이 준 거를 알고
저는 저희 가정이 조금 어려웠기 때문에 그렇게 제가 신청해서 갔습니다.
그때는 좀 막막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이라는 나라 자체도 잘 몰랐었고 특히 가장 공포심이 있었던 건 언어.
내가 독일말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가서 일할 수 있을까.
-(해설) 영화 국제시장으로 재조명된 파독 근로자.
영화의 현실 주인공은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합니다.
-그런 고충이 또 있으셨네요.
한국에 앤젤이 왔네, 그런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해설) 잠시 후 카페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네, 수고 많으시죠?
-앉으시죠.
-(해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이들은 파독 세대입니다.
굶는 날이 부지기수였던 가난한 소년은 파독 광부가 됐었는데요.
-(해설) 파독 광부의 월급은 당시 국내 직장인 평균의 8배.
높은 수입에 독일행을 택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하에는 또 지열이 있어서 한 42도 정도가 돼요.
-(해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파독 광부의 노동 강도는 매우 높았는데요.
좁고 낮은 탄광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영화 속 삶이 곧 우리네 삶이었다고 말하는데요.
-해라, 두 번씩 해라.
-우리의 생활과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우리도 미혼이기 때문에 일 안 하는
주말에는 결혼하기 위해서 병원으로 많이 찾아다녔죠.
찾아다니고 주말 되면 가서 찾아다니고 그렇게 하고.
나뿐 아니라 여러 동료들, 미혼들은 다 그랬었어요.
그래서 말년에는 그분들 누구 지인이 소개를 해줘서 그래서 지금 현재 제 아내를 만나게 됐죠.
-(해설) 독일 마을에서는 국내 유일 파독을 주제로 건립된 파독 전시관이 있습니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파독 광부로 살았던 독일에서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한 5000명의 지원자가 있었다고 그러죠.
-(해설) 그는 시간이 휩쓸려 조금씩 잊혀가고 있는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옛날같이 지금도 못 산다면 못 사는 상태라면 하죠.
왜 우리가 이렇게 발전됐던 과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죠.
거기에 우리가 일조를 했으니까.
-또 우리 젊은이들이 기억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거기 가서 일했던 것들이 쉽지는 않았다는 거죠.
-(해설) 나라를 위해 독일로 간 청춘들,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파독 근로자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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