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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록일 : 2024-04-11 09:56:06.0
조회수 : 57
-(해설) 1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봄 극장가를 석권한 흥행작, 파묘.
단순한 오컬트 내용 속에 숨겨진 항일의 메시지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으며 영화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됐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독립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4월 11일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입니다.
영화 파묘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독립운동가에서 따왔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 속에 숨겨진 항일이나 또 독립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2024년 대한민국 국민은 독립운동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오늘이 저희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데요.
혹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분들, 아시는 분 계세요?
-기억에 남는 분들.
-혹시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아는 분 계세요?
-잘 모르겠어요.
공부를 좀 할 걸 그랬네요.
-그렇죠.
도산 안창호 선생님도?
-그거는 들어봤어요.
-그렇죠.
그러면 부산 지역에서 독립운동 하신 분들도 혹시 아십니까?
-부산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있었을까요?
-있지 않았을까요?
-(해설) 우리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첫 번째로 향한 곳은 일제 탄압을
나타낸 창살과 대한민국 독자가 형상화된 건물인데요.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경남도 내 지자체에서 건립한 유일한
독립기념관이기 때문입니다.
경남 양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네 번의 독립운동을 펼친 지역인데요.
양산에 알려진 독립운동가만 200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양산에 이런 공간이 있는 줄 몰랐어요, 선생님.
사실 이 독립운동이라는 게 학창 시절에 배웠던 이름 유명하신 분들 외에도 정말 많은 분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찾을 수 있었던 거잖아요.
앞에 보니까 양산이 경남 본부에서 처음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한 데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알려지지 않은 분 중에서 한 분만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이규홍 선생인데요.
많이 현상하고 있는 윤현진 선생하고 같은 시기에 유학 가서 같이 공부하고 또
거의 비슷한 시기의 상해로 망령해서 활동하신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나중에 윤현진 선생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정무 총장이나 내무 총장
그다음에 임시 의정은 부회장까지 요즘으로 치면 선생님은 장관급 내지는 국회 부의장급입니다.
그렇게 하신 분이 있는데 이분이 귀국 투병을 위해서 귀국하셔서 4년 동안 투병
생활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이 사이에 행적이 불분명하다 이래서 서훈을 못 받고 있어요.
엄격한 잣대로 하는 건 참 좋은 일인데 주위에서는 안타깝게 생각하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많은 양산 시민분이 또 도움을 주셨을 거잖아요.
-그렇죠.
-제가 또 천천히 둘러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설) 이곳에서는 통도사 스님들의 항일 기록이나 3.1운동 최초의 순수 농민운동 기록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요.
양산의 항일 독립 기념사를 시간과 사건, 진품 유물들로 함께 둘러보며 역사
속에서 잊힌 독립운동가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민족의 소리가 끊어지기 전에 우리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말씀을 윤현진 선생이 하셨나 봐요.
이분은 어떤 분이세요?
-이 글에서 보듯이 아주 단호한 결기가 느껴지는데요.
3.1운동 직후에 상해로 망명을 떠나셨습니다.
그때 남기신 말이에요.
임시정부 구성에 참여하면서 초대 재무 차장도 지내시고 그런데 이분이 안타깝게도 2년 반 활동하시다가 과로가 겹쳐서 사망하십니다.
아주 안타까운 일인데요.
안에 들어가시면 쓰던 도장이라든지 그다음에 졸업생 명부라든지 아주 일부의 유품들이 남아 있습니다.
-(해설) 양산시립독립기념관은 복제품 위주인 다른 기념품과 달리 자료의 약
90%가 진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독립운동가 후손과 시민들이 기념관의 뜻에 동참하며 기꺼이 관련 사료들을 기증했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가의 용기와 희생을 마음속에 새겨보면 좋겠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가 정말 가슴 깊게 파고 듭니다.
나였다면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용기가 났을까라는 의문도 많이 들고요.
많은 분의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살고 있다는 것.
하늘에서 꼭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음 장소로 한번 이동해 볼까요?
-(해설) 여성독립운동가를 떠올리면 유관순 열사를 대표적으로 떠올리는데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가 또 한 분 있습니다.
의열단의 숨은 여전사라고 불리는 인물인데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부산 지역에도 이렇게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이 계신다는 거에 되게 놀랐거든요.
여기는 어떤 공간인가요?
-그렇군요.
그런데 복원이 잘되어 있는데 한번 천천히 둘러볼까요?
-(해설) 박차정 의사의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목조기와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불꽃 같은 삶을 산 박차정 의사는 군복과 총으로써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의 선봉에 선 독립운동가입니다.
-이렇게 사진이나 이런 것들도 전시되어 있어서 이해가 조금 더 잘되는 것 같은데
여자분이 이렇게 총을 들고 군복을 입고 있는 동상이나 이런 것들을 본 적이 많이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독립운동에 참여하셨을까요?
-박차정 의사 집안을 보면 예전부터 독립운동가로 유명하신 김두봉
선생님이나 김두전 선생님 그리고 박용한 선생님이 계셨고 큰오빠 박문희 씨,
작은오빠 박문호 씨도 신간회 및 의열단에 거기에 들어가셔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집안 배경을 보면 항일 정신이 투철하고 민족정신이 강한 집안에서 자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박차정 의사도 독립운동에 참여하신 것 같습니다.
-(해설) 조국을 위해 총을 든 여성, 부산 출신 박차정 의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또 다른 업적들도 어떤 게 있을까요?
-박차정 의사는 1929년에 동래일신여학교를 졸업하면서 근우회의
중앙상무위원으로 활동하게 되거든요.
그때부터 아마 독립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것 같고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김원봉 씨랑 결혼하고 31년도부터 조선의열단, 조선혁명간부학교에 제일 첫번째 여자 교관이 됩니다.
그때부터 무장 운동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1939년 장시성에 있던 곤륜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게 돼요.
그래서 독립을 앞두고 1년 전에 1944년에 순국을 하게 되시죠.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을 다 바쳤지만 그렇게 기다리던 독립운동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신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해설) 오롯이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총을 들고 일제에 맞서 싸웠던 박차정
의사의 숭고한 희생을 추모해 봅니다.
-오늘은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맞아서 부산, 경남에서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가분들을 만나봤습니다.
잊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고요.
오늘만큼은 이번 한 주만큼은 이분들의 희생과 용기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시간 가져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해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울려 퍼지던 그날의 함성과
독립운동가들의 진심 어린 마음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길 바라봅니다.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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